6월 30일 병문안을 온 동지들을 만난 이승민

지난 일요일 승민을 마지막으로 만나고 왔습니다. 헤어지기 직전 그녀는 아픈 몸을 이끌고 병실 밖으로 나와 꽤 정성을 들여 동지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함께 있는 사진을 가지고 싶나 보다 했는데, 승민이 떠난 지금 생각하니 그 사진은 승민이 우리에게 남겨 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녀와 30년 가까운 시간을 함께 활동했는데, 집회 때 찍힌 사진 말고는 같이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습니다. 비합법 시절, 사진을 금기시하던 습관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쨌거나 승민 덕분에 이제서야 같이 찍은 사진 한 장이 생겼습니다. 

승민을 처음 만났을 때 승민의 가명은 클라라였습니다. 독일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의 동지이자 친구였던 클라라 체트킨에서 따온 것입니다. 나중에도 승민은 다양한 가명을 만들어 사용했을 테지만, 우리는 그냥 계속 클라라로 불렀습니다. 

내가 조직에 들어오자마자 그녀는 제게 큰 인상을 남겼습니다. 

개인 신상을 밝히지 않고 활동하던 때라 몇 살인지는 알 수는 없었지만, 외모로 봤을 때 틀림없이 고등학생이었던 클라라가 30살쯤 돼 보이는 어떤 남성 동지와 논쟁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당시 다른 조직에서는 선배 한 명이 후배들을 같은 학년끼리 모아 세미나 시키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논쟁 장면은 제게 상상도 못한 장면이었고, 아직 조직 활동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에게 “이 조직은 꽤 괜찮구나” 하는 느낌을 줬습니다. 

승민과의 마지막 작업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30년 가까이 수많은 일을 함께 했지만 마지막에 했던 일이 제일 힘들었습니다. 바로 승민의 부탁으로 영정 사진을 만드는 작업이었습니다. 사진 속의 승민은 활짝 웃고 있는데 영정 사진으로 만들어야 하다니 ….

나는 승민이 제일 이쁘게 나왔다고 생각하는 사진을 골라 영정 사진을 만들어 보냈더니 승민은 쿨하게 이런 답을 보냈습니다. “더 찾아 봐!!” 

승민은 〈노동자 연대〉 신문 파는 사진을 영장 사진으로 골랐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있었지만 승민은 여전히 승민다웠습니다.

가끔 그녀가 저에게 한 말을 이제는 스스로에게 던져 봐야겠습니다. “더 찾아 봐!!”


※ 이승민 동지를 기억하는 여러분들의 추모의 글과 사진을 신문사(ws@wspaper.org)로 보내 주세요. 함께 모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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