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맥락에서 살펴보는 홍콩 시위
〈노동자 연대〉 구독
송환법 반대로 출발한 홍콩 시위가 첨예해지고 있다. 행정장관 캐리 람이 송환법 개정 추진 중단을 선언한 후에도, 운동은 송환법 완전 철회, 캐리 람 사퇴 등을 요구하며 계속 이어졌다. 7월 21일에는 43만 명이 시위에 참가했는데, 경찰과 담합한 깡패로 추정되는 자들의 ‘백색테러’가 있었다. 그 후 홍콩에서는 경찰 폭력과 백색 테러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곳곳에서 일어나 경찰과 충돌했다.
2014년 ‘우산 혁명’ 때 침묵했던 중국 정부가 이번에는 시위를 “서방의 간섭”이 낳은 산물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그러나 홍콩의 시위는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투쟁에 나선 사람들의 대중 운동이다.
이 글은 지난 몇 십년 동안 중국과 홍콩이 발전하고 모순을 축적해온 과정이라는 맥락 속에서,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 지금의 시위를 조망하고, 그 근저에 있는 사회적·경제적 불만과 배경을 살피는 글이다.
200만 명이 참가한 6월 17일 시위와 학생이나 학생-노동자 연합이 주도하는 그보다 작은 시위가 우후죽순 번지는 과정은 정말로 흥미진진했다.
이 시위를 촉발한 것은 홍콩 입법회
입법회는 정치적으로 분열해 있다. 한편에는 중국과의 더 긴밀한 협력을 대체로 지지하는 친중파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점진적 민주 개혁을 요구하는 범민주파가 있다. 범민주파는 2014년 “우산 운동”에 깊숙이 관여했다. 이 운동은 처음으로 지금의 운동 지도자 대다수를 배출한 거대한 대중 운동이었다.
이번 운동은 대체로
“자유를 위해 파업하라! 우리는 용감하게 거리로 나선 홍콩의 자식들이 경찰에게 야만적으로 짓밟히는 것을 보았다. 더는 이런 상황에 눈감을 수 없다. 홍콩은 우리 모두의 것이며 소수 힘있는 자들이 지배하고 파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홍콩노총은 직급, 직종, 직업에 상관없이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자 파업 행동과 6월 17일 송환법 개정안 반대 집회에 동참할 것을 촉구한다.”
올해 시위의 전면에는 청년신정
시위를 촉발한 것은 송환법이었지만 시위의 폭과 깊이의 근저에는 극소수 부자를 제외한 모든 홍콩 사람들의 고단하고 갈수록 팍팍해지는 일상 생활이 있다. 2018년에 홍콩 경제는 10년 이래 성장률이 가장 낮았다. 낮은 소비자 수요와 부동산 가격 “냉각” 탓에 성장률은 2018년 마지막 사분기에 1.2퍼센트로 떨어졌고 총수출은 4.2퍼센트포인트 하락했다. 도시 소득의 대부분을 수입·수출에 의존하는 홍콩에게 이는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불평등
홍콩은 전 세계에서 부의 불평등이 가장 심한 나라에 속한다. 홍콩은 저세율 정책 때문에 정부는 토지 매매나 토지세 징수, 해외 자본 유치로 수익을 내서 재정을 마련한다. 힐리 컨설턴트 사에 따르면, 홍콩은 외국인직접투자
최근 통계를 보면 137만 명이나 되는 사람이 빈곤선 이하에서 산다. 이들 중 1인 가구의 사람들은 월 4000홍콩달러
홍콩은 주택난이 심각하다. 이는 수익을 목적으로 토지를 임대해 주는 정부 정책 탓이기도 하다. 정부는 수익성 관리를 위해 공급을 제한하곤 했다. 지난 10년간 소득은 제자리걸음인 반면 주택 가격은 242퍼센트 올랐다. 아파트의 거주 면적은 보통 아주 작으며 홍콩인 대다수는 고층 아파트에 산다. 일부 홍콩인은 “당방
상황이 이렇다 보니 스트레스와 정신 건강 질환이 급증했다. 적어도 홍콩 청년들의 3분의 1이 스트레스와 불안, 우울증에 시달린다. 홍콩 유락장협회의 조사 결과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홍콩 청년의 삶은 쉽지 않다. 이토록 풍족한 사회에서도 청년의 삶은 편안하지 않으며 청년 모두가 저마다의 압박을 견디고 있다.” 과중한 학업으로 운동이나 휴식, 기분 전환을 할 시간도 없다. 19~24세는 스트레스와 불안, 우울증이 ‘심각’ 또는 ‘극도로 심각’한 비율이 더 크다.” 이런 상황이 앞서 언급한 학생 단체들의 성장을 촉진하고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홍콩은 전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사람들의 스트레스가 심한 나라다. 인구의 무려 92퍼센트가 일상적으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데 이는 세계 평균인 86퍼센트보다 훨씬 높다
내부에서 불만, 정치적 항의·불확실성이 자라나는 한편, 홍콩은 주강 삼각주 지역의 발전, 특히 중국 정부가 추구하는 ‘대만구’ 전략과 점점 긴밀하게 얽히고 있다.
현재 대만구 지역의 총인구는 6900만 명이고 국민총생산
그 지역으로 자본을 유인하는 핵심 요인은 거대하고 저렴한 노동시장, 싸고 풍부한 토지, 거의 없다시피한 법률적 산업 규제다
새로운 환경
일부 대만구 지역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있으며, 여러 지방에서 고도로 숙련된 노동력이 성장했다. 많은 산업의 “자체 혁신”으로 이 지역은 “세계의 공장”에서 “실리콘 삼각주”로 발돋움하고 있다. 수많은 인력을 고용하고 있는 통신 장비 제조 업체인 화웨이와 ZTE는 본사를 선전에 두었다. 레노버, TCL, 비야디, 애플, IBM, 필립스, 루슨트, 올림푸스 같은 회사들이 이 지역에 생산기지를 짓고 연구와 설계를 한다.
주강 삼각주가 있는 광둥성 지역의 경제는 크게 팽창해서 인도네시아보다 규모가 더 크다. 홍콩 일간지
도시로 인구가 몰리고, 탈숙련화와 재숙련화 과정이 진행되면서 엄청난 부의 불평등이 나타났다. 2007년에 광둥성 공산당 서기를 지낸 왕양은 “부끄럽게도 광둥성의 화려한 외벽 뒤에는 가난한 광둥성이 있다”고 말했다. 공식 통계상 2009년 광둥성 북부·동부·서부의 1인당 GDP는 1만 7000~1만 8000위안으로 주강 삼각주 평균인 6만 7000위안의 4분의 1을 겨우 넘는 수준에 불과하다.
이 지역의 공중 보건은 심각한 난관에 직면해 있다. 나열하자면 이주민의 대거 유입, 그와 관련된 여러 사회적 문제가 있고, 가혹한 노동 조건과 그로 인한 산업 재해도 문제도 있다.
대규모 이주가 수반하는 사회적 문제, 예컨대 부랑자
대다수 기업은 이주민을 고용해 가장 위험한 작업에 쓰고 위험 물질에 노출시키지만 안전 조처에는 매우 인색하다. 가령 한 설문에 따르면 이주민의 63.8퍼센트는 일주일에 평균 56시간을, 쉬는 날 없이 7일을 내리 일한다. 이런 상황은 이주노동자의 급여 체계가 굉장히 형편 없음을 반영한다. 2010년 일련의 파업이 부분적으로 승리하기 전까지 이들의 기본급은 월 900위안
중국 지배자들은 홍콩의 정치와 산업 현장의 불안과 동요 배후에 있는 더 깊은 불확실성에 대처해야 한다. 주강 삼각주에 있는 유연하고 성장 중이며 재구성되고 있는 엄청난 규모의 노동력이 바로 그것이다. 무수히 많은 농촌 노동자들은 고작 30년 만에 한 곳으로 떠밀려와 도시의 새로운 생활 방식에 적응해야 했고, 중국 지배계급은 이 잠자는 거인을 깨우지 않으면서 새로운 노동 규율을 부과하려고 애썼다. 무역 전쟁이 심각해지고 경제 성장이 둔화하면서 이 과제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 지역의 노동조합 활동이 증가하고 전투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 이를 보여 준다.
여러 중요한 쟁의가 지난 2~3년 사이에 벌어졌다. 지린성의 성도 창춘의 제일-폭스바겐 공장에서는 파견 노동자들이 체불 임금 지급과 노동조건 개선, 정규직 노동자와 동등한 대우를 요구하면서 파업에 나섰다가 진압당했다. 2018년 7월 중순 선전시의 자스커지에서는 노동조합 설립에 나선 노동자들이 해고되고 일부는 보안 요원에게 구타당했다. 노동자들은 해고자 복직과 함께 생산 공장의 안전 개선, 임금 체불 중단 등 노동 조건 개선을 요구했다. 29명의 파업 노동자와 파업 지지자들이 체포되자 중국 본토에서는 베이징대학과 칭화대학을 포함해 20곳 넘는 대학의 학생들이 자스커지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 후
이에 맞서 중국 IT노동자들은 노동조건 개선 운동을 시작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소유의 코드 공유 플랫폼인 깃허브
노동자들의 항의에 대한 엄청난 지지
996.ICU 프로젝트는 중국 내에서 엄청난 지지를 얻었다. 깃허브 사용자들은 프로젝트 저장소의
“우리 마이크로소프트와 깃허브 노동자들은 996.ICU 운동을 지지하며 중국 IT노동자들에게 연대를 표합니다. 이것은 국경을 가리지 않는 문제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물론 산업 전반에서 전일제든 임시직이든 모두가 같은 문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중국의 노동자들과 연대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다국적 기업들이 이윤을 위해 일자리를 아웃소싱하여 열악한 노동 기준으로 득을 보면서, 노동자들끼리 바닥을 향한 경쟁을 하게 한다는 것을 역사가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 모든 노동자에게 정당한 노동조건을 보장하려면 함께 국경을 넘어서야 합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지난 6월 홍콩에서 200만 명이 시내를 행진하는 역사적 시위가 벌어졌다. 좁은 곳으로 내몰리고 계속해서 성장하는 거대한 노동계급은 같은 직장, 같은 고용주, 가족적·문화적 일체감을 통해 긴밀하게 서로 연관을 맺고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이런 지역에서 분노가 표출되고 노동자와 학생들이 조직되고 있는 것이다. 새로 등장한 학생 운동은 이 과정의 선두에 서 있다. 노동자 투쟁을 지지하고 또 거꾸로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기도 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