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읽기 전에 “문재인 정부, 호르무즈해협 파병 시사: 평화 염원 배신하고 중동의 화약고에 뛰어들려는 문재인”을 읽으시오.

문재인 정부는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검토하며,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 파병 경험을 참고할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미국의 중동 정책에 협력해 미국의 유연한 대북 정책을 끌어내겠다며, 이라크 파병을 정당화했다. 

2003년 노무현 정부는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의 요구에 응해 이라크에 자이툰 부대를 파병하는 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실제 파병은 2004년 2월에 이뤄졌다.) 미국·영국에 이어 세계 3위 규모였다.

당시 노무현은 이렇게 말했다. “우호 관계와 동맹의 도리를 존중해, 어려울 때 미국을 도와 주고 한미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게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당시 청와대 국방보좌관실 행정관이었던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훗날 이를 이라크 파병과 북핵 문제를 맞바꾸는 “평화 교환론”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이었던 이종석은 이라크 파병 결정을 “‘평화를 증진하는 파병’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쓴 것]”이라고 술회했다. “노무현의 정치적 경호실장”이었던 유시민도 거들고 나섰다. “부시에게 ‘형님, 형님’ 하면서 아부라도 해서 … 북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해]야 [한다.]”

수백만 이라크인들의 피를 대가로 한반도 평화를 사겠다는 생각이 너무 염치가 없어 감히 상상하기 힘든 반인륜적 발상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이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과연 노무현 정부의 평화 교환론이 한반도 평화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을까?

파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은 훗날 “파병을 계기로 북핵 문제는 [노무현] 대통령이 바라던 대로 갔다”(《문재인의 운명》)고 술회하며, “국가 경영”을 모르는 진보·좌파들이나 파병을 반대했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노무현의 구상은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었다.

당시 미국 국무장관 콜린 파월은 북핵 문제와 이라크 파병을 연계할 수 있다는 노무현의 구상을 단칼에 거부했다. 미국은 노무현의 “평등하고 수평적인 한미 관계” 운운에 불쾌해 했다. 

미국의 대북 전략은 세계 패권 전략에 종속된 것이었고, 따라서 이라크 전쟁과 북핵 문제는 서로 “교환”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동아시아에서 급성장하는 중국을 군사적으로 견제하면서도 공공연한 충돌은 피하고자 했던 미국 지배자들에게, 북한 악마화는 대(對)중국 견제와 동맹국 단속을 위한 좋은 명분이었다.

2002년 부시는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이라크·이란과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증거도 없이 고농축 우라늄(HEU) 의혹을 제기해 2차 북핵 위기를 촉발했다.

이는 세 가지를 노린 것이었다. 첫째는 대량살상무기를 색출하겠다는 명분으로 이듬해 시작될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을 환기시키는 것이었고, 둘째는 북한과 잠시나마 거리를 좁히려던 일본·한국을 단속하는 것이었다. 셋째는 중장기적으로 미사일방어체계(MD) 등 대(對)중국 군비 증강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었다.(이는 훗날 박근혜가 도입하고 문재인이 확정한 사드 배치로까지 이어진다.)

미국의 대북 압박 강화와 2003년 이라크 점령은 북한 지배자들에게 위기감을 불러일으켰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 명분은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것이었지만, 북한 지배자들이 보기에 사담 후세인은 오히려 그런 방어 무력이 없었기 때문에 침략을 막지 못하고 몰락한 것이었다. 김정일은 핵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뒤이은 6자회담은 갈등 해소가 아니라, 이라크에서 수렁에 빠진 미국이 북한 문제를 묶어둠으로써 시간을 벌기 위한 ‘전술적’ 조처였다. 회담은 책임 소재 다투기와 설왕설래로 점철됐다. 하지만 노무현의 구상과 달리, 그런 대화조차 미국 제국주의가 승리해서가 아니라 위기에 빠진 결과였다.

그러나 미국은, 2005년 6자회담 9·19 합의 직후 대북 금융 제재를 단행해 북한을 옥죄었다. 결국 북한은 2006년 탄도미사일 발사와 1차 핵실험으로 대응했다. 부시의 대북 정책이 총체적으로 실패한 순간이었다. 

미국 제국주의가 중동에 이어 동아시아에서도 무력함을 드러내면서, 노무현의 평화 교환론도 완전한 파산을 맞았다.

2004년 노무현 정부의 파병은 “나는 살고 싶다”던 청년 노동자 김선일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노동자연대

대가

노무현의 평화 교환론은 커다란 대가를 치렀다. 노무현은 수많은 이라크인들과 무고한 김선일 씨의 피를 손에 묻혔지만, 그것이 무색하게도 동아시아 긴장은 나날이 고조됐다. 국내적으로 “지지자 절반이 무너질 수 있다”면서도 ‘학살 동맹’에 동참했던 노무현은 대중의 분노를 사 정치적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다.

근본에서 보면 평화 교환론은 한반도 평화에 역행하는 전략이었다. “악의 축” 선언이 노골적으로 보여 준 것처럼, 미국이 중동 침략에 성공한다면 그 여세를 몰아 북한(그리고 중국)을 향한 공세를 더욱 강화할 터였다. 제국주의 갈등을 흥정거리로 삼아 한반도의 봄을 가져올 수 있다고 본 것은 재앙적 패착이었다.

역사적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시리아 아사드 정부는 1991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미국을 지원하며 1만 7000명을 파병하는 등 미국이 주도하는 반이라크 연합에 가세했지만 미국의 압박에서 끝내 벗어날 수 없었다. 

당시 노무현과 함께 손에 피를 묻힌 문재인이 지금 호르무즈해협에 파병한다면 당시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도 봐야 한다.

2008년 미국발 경제 위기로 세계적 갈등이 훨씬 심각해졌고 그 핵심에는 미·중 갈등이 있다. 지금 미국이 통제권 확립을 노리는 호르무즈해협은 중국의 석유 조달에도 적잖은 영향을 주는 데다, 개입 명분으로 미국이 내건 (문재인이 최근 공공연히 지지 선언한) “통항의 자유”는 미국의 중국 압박 전략의 핵심 구호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라도 호르무즈해협 파병 시도는 중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