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원근 감독, 101분

얼마 전 한 혁명가의 회고록을 읽었다. 이 책의 역자가 책의 끝에 남긴 말이 인상 깊었다. 전기는 ‘한 보통 사람의 얼굴로 큰 시대의 몇몇 측면들을 보는 것’이라고 했다. 영화 〈김복동〉도 이에 따라 메시지를 풀어나가면 어떨까 싶어 글을 써 본다.

2015년 12월 28일 한·일 양국은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하는 합의에 이르렀다. 민중은 분노했고 한일 위안부 합의 무효 선언 국민대회와 ‘소녀상을 지켜 주세요’ 토요시위가 이어졌다. 이 영화는 그 가운데에서 가장 뜨겁게 활동한 인물이자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의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에 나왔던 것처럼 (그리고 세간에 잘 알려진 것처럼) 그는 1992년부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아내고 다시는 그때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열심히 싸웠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왠지 모를 울컥한 감정이 들었고, 영화의 초반 영상과 노래는 ‘서글퍼야 할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하지만 그러한 감정이 들기 무색하게도, 온갖 힘든 상황 속에서도 위안부 문제로 끝까지 싸워 일본의 사과를 받아 내겠다는 그의 힘과 열망은 나를 한껏 매료시켰다.

그의 강인함을 유독 느낀 장면이 있었다. 한일 위안부 합의 1주년인 2016년 12월 28일, ‘미래 세대가 세우는 평화의 소녀상 추진위원회’는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소녀상을 설치했으나, 설치한 지 불과 4시간 만에 소녀상은 지게차에 실려 철거당하고 말았다. 당시는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이 한창인 때였는데, 김복동 할머니는 부산 소녀상 철거에 대해 “대통령이 길을 잘못 가면 목이 달아나는 한이 있어도 안 된다고 말려야지 대통령 말만 믿고 시키는 대로 하느냐. 박근혜, 윤병세[당시 외교부 장관]는 오늘이라도 자리에서 물러나라” 하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도 계속 활동했고, 힘이 다할 때까지 30여 년 가까이 싸우다가 올해 초 별세했다.

영화는 박근혜 정부의 12·28 한일 합의를 골자로 위안부 문제와 민중의 분노를 풀어 나간다. 나 또한 위안부 피해자의 동의도 없이 무작정 한일 합의를 해 버린 것에 대해 당시 분노했던 사람 중 한 명이다. 과거 전쟁 범죄를 부정하고 덮으려 하는 일본의 태도는 분명 잘못이다. 우리는 위안부 문제를 바라볼 때 , 일본과 긴밀하게 엮여 온 한국 정부들의 실천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박정희 정부는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회담에서 일제 강점기 강제 동원 피해 청구권을 헐값에 교환했다.

박근혜 정부는 2015년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합의를 통해 고작 10억 엔을 받는 것으로 이와 관련한 논의를 종결시키려고 했다. 한국의 위안부 문제에 대해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다면, 이들 정부의 행적에 분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우파 정부들에 비춰 (비교적 조명을 덜 받고 있는) 노무현 정부나 문재인 정부도 위안부 문제에 있어 전혀 앞장서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노무현 정부는 2005년에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아직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대외적으로 밝힌 바 있으나, 바로 1년 뒤인 2006년 아베와의 정상회담에서 ‘양국 관계가 과거사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정부 차원의 교섭도 진행된 적이 없다.

한일 위안부 합의 폐기는 박근혜 퇴진 운동의 중요한 쟁점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런 과정에서 탄생한 ‘촛불’ 정부의 문재인은 집권 후 위안부 문제 해결에 대해 전혀 더 나은 길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 한일 합의 때 설치된 화해·치유 재단이 해산됐지만, 일본이 피해자들에게 강제로 쥐어주려 하는 ‘위로금’ 10억 엔은 반환하지 않고 있다. 이 문제가 더 결정적인데 말이다.

영화 〈김복동〉을 보고, 현재 상황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이 진정한 사과와 배상을 받으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하는 고민이 가장 먼저 들었다. 과거의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현재까지 넘어오면서 상황은 다소 복잡해졌다. 과거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고, ‘침략’당한 역사가 있다. 그 역사에는 김복동 할머니를 비롯한 수많은 위안부 피해자가 있었다.

이런 역사를 하나하나 살펴보면 ‘반일 감정’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생길 수는 있다. 요즘 상황을 보면 이런 반일 감정이 ‘대한민국 정부에 기대어 문재인 정부가 일본 아베 정부에 맞서 싸워 주리라는’ 기대감으로 표출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21세기 일본과 한국은 역사 속 지배 국가와 식민지가 아니다. 한국은 지난 수십 년간 급속하게 성장한 중간 규모의 강국이다.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군사 동맹에 있어 한국 정부가 이들의 제국주의 전략에 협력해 왔다는 점도 함께 봐야 한다. 한·일 지배자들이 역사 속 피해자들의 문제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고 어떻게 대응해 나가는지 계속해서 주시해야 할 것이다.

위안부 문제를 진정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정부에 기대어 반일 감정을 내비치는 것보다는 우리의 독자적인 항의가 필요하며, 동시에 지배계급에 대항하는 제국주의 반대 운동을 모색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