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갈등을 계기로:
‘자립경제’를 지지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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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수출 규제 조처로 본격화된 한일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9월 18일 문재인 정부는 일본을 백색국가
앞서 9월 11일 아베 정부는 대대적으로 내각을 개편했다. 평화헌법 개정을 비롯한 아베의 핵심 구상을 함께 추진할 우익 인사들이 전진 배치된 게 이번 개각의 특징이다. 과거사 망언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물의를 일으킨 자들이 요직에 새로 기용됐다. 한일 갈등에서 선봉에 선 외무상 고노 다로는 방위상으로 보직만 바꿨다.
내각을 개편하면서 아베는 한일 갈등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체제에서 조금도 바뀌는 것은 없다.” 과거사 문제에서 한국이 양보할 때까지 현 강경 태세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아베 정부의 이런 과거사 부정에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식민 지배의 경험은 여전히 많은 한국인들에게 역사적 기억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미·일 패권 전략’ 대 ‘한반도 평화 체제 수립’?
그런데 일부 진보·좌파는 일본의 현 실체를 오해하고 있는 듯하다. 그들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진전으로 동북아에서 일본의 지위가 취약해지자
그러나 미국은 결코 일본을 ‘패싱’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일본은 미국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로 재천명되고 있다.
그래서 지금 일본은 미국과 함께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아시아에서 공세적 조처를 감행하고 있다고 간주돼야 한다. 아베 정부는 이 과정에 걸림돌이 될 만한 과거사 문제에서 한국 지배자들의 타협을 얻고자 한국을 압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압박이 민족적 억압인 것은 아니다. 한국은 제국주의 강대국 축에는 못 끼긴 하지만 경제 규모 12위 국가다. 특히, 한국이 자본축적의 중심지 중 하나로 떠올랐다는 점에서 일본과 한국의 관계는 과거 지배-피지배 관계가 결코 아니다. 그리고 1960년대 초 이래 50년 넘게 한국 지배계급과 일본 지배계급은 함께 자본축적과 안보를 이뤄 왔다.
한국 지배계급은 자기 자신을 위해 제국주의 체제에 기꺼이 편입되고자 한다. 그래서 그들도 제국주의 질서 유지에 이해관계가 있다.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전통적 우파들은 자기 개개인의 전력 때문에 노골적으로 친일 행보를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극일 행보’도 위선적이다. 문재인 정부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그리고 이미 문재인 정부는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를 철회하면, ‘지소미아’ 종료를 재검토할 수 있다”며 일본과 타협할 여지를 남겨뒀다.
무엇보다, 한국 정부는 국익
다른 진보·좌파는 한일 갈등을 ‘미·일 패권전략과 한반도 중심의 평화체제 전환이 첨예하게 부딪히는 상황’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일본 패싱이 아니라 미국과 일본이 손잡고 “패권 회복을 도모”하는 가운데, 남·북한의 연대가 추동하는 한반도 평화 체제 전환도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상황을 이렇게 이해한다면, 미·일의 공세에 대응해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조속히 성공하도록 뒷받침하거나, 정부가 제대로 추진하도록 “견인”하는 게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아시아에서 미국·일본 제국주의에 협력해 온 역대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를 한반도 평화 문제에서는 노동운동이 견인할 수 있다는 모순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또한 무엇보다 한반도 정세를 규정하는 진정한 핵심 요인을 놓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미국과 중국을 양 축으로 한 제국주의 경쟁이 점증하고 있다. 이것이 불안정성을 낳으며 곳곳에서 균열과 파열음을 일으키고 있다. 일본의 군국주의화, 트럼프의 대북 접근이 모두 이 더 큰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진전이 평화의 견인차라는 인식은 주관적 의지의 표현에 가깝다. 남·북한은 한반도에서조차 실은 주된 플레이어가 아니다.
진보·좌파 일각에선 한국에서 ‘반아베 평화 세력’과 ‘친일 적폐 세력’이 대립한다고도 본다. 이런 그릇된 세력관계 설정 때문에 문재인 정부 비판을 삼가고 정부의 대일 정책에 협조하는 것을 정당화하면서 노동운동의 정치적 독립성을 훼손시키고 있다. 그러나 앞서 살펴봤듯이, 미·일 동맹과 그 하위 파트너인 한국의 친제국주의적 협력이 진정한 문제다.
노동운동은 오히려 정부의 친제국주의 협력에 반대해야 한다. 노동문제에서뿐 아니라 이런
“자립적 경제 체제”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일본의 경제 공세에 대응해 핵심 부품·소재 산업의 국산화
일부 진보·좌파는 이를 지지하면서 일본산 불매운동에도 동참한다. 계급을 가로질러 단결해, 일본산 불매로 일본 경제에 타격을 주자는 것인데, 한일 갈등을 일본의 한국 경제 ‘침략’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우 불매운동
그런데 불매운동에서 더 나아가, “종속적 경제 체제”를 극복하고 일본 경제에 의존하지 않는 “자립적 경제 체제”를 쟁취하자고 주장하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이런 구상은 우선 경제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공상이다. 정치적으로도 나쁜 효과를 낳는다. 100 년 전에 러시아 혁명가 레닌은
스탈린의 ‘일국 사회주의’는 바로 자립경제를 뜻했는데, 1980년대에 그 경제 체제의 파산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오늘날 경제 침체와 보호무역주의 때문에 세계화 추세가 다소 주춤거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본의 세계화 경향 자체가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다.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의 생산과 금융 수준에서 자본이 맺은 다국적 상호의존 관계는 쉽사리 되돌리기 어려울 정도로 깊다.
이런 현실은 비단 한국뿐 아니라 미국과 일본 같은 경제 강국들도 마찬가지다.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
노동운동이 수입대체산업화 등의 자립경제 노선과 재벌 개혁 같은 민중주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나이젤 해리스는 과거 남미에서 좌파들이 수입대체산업화를 지지한 효과가 무엇인지를 이렇게 지적했다. “사회주의는 완전히 급진적 민족주의에 의해 포위됐다. 개념들이 묘하게 바뀌게 됐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자본과 노동 사이의 관계로 상정한 착취가 이제는 정부 간, 국가 간, 혹은 국가군 간의 관계를 가리키게 됐다. 더욱 극단적인 경우에는 나라 전체가 동질적 계급으로 돼 “프롤레타리아 나라들”이 “부르주아 나라들”한테 착취당한다는 식으로 됐다.”
노동운동이 ‘국민의 이익’을 앞세우고 자립경제 노선을 위해 자국 정부와 일부
당장 문재인 정부는 포퓰리즘
노동운동은 ‘우리’ 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