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 유럽학 교수이자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중앙위원장이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터키의 시리아 북부 침공을 막아 온 미군을 철수한다고 결정하자 쿠르드가 이끄는 시리아민주군(SDF)은 “배신”이라고 비난했다. 지당한 비난이다.

시리아민주군은 미국이 시리아에서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ISIS, 이하 아이시스)’를 토벌할 때 핵심 현지 동맹이었다. 트럼프는 쿠르드가 “제2차세계대전 때 미국을 돕지 않았고,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둘러댔다. 어처구니없는 변명이다.

노르망디에서 30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네 국가에 지배당한 나라 없는 민족이 어찌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군대를 보낼 수 있었겠는가?

"인종청소 지원하는 트럼프 규탄한다" 토사구팽 당하는 쿠르드를 보며 많은 이들이 분노한다 ⓒ이윤선

시리아민주군과 함께 활동한 여러 전·현직 미군 장교들을 인터뷰한 《포린 폴리시》는 이렇게 전했다. “그들은 터키가 쿠르드 군대를 도륙하는 것을 미국이 방관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했다. 여러 명이 뼈아픈 수치심을 느낀다고 했다.”

한 장교는 이렇게 말했다. “미군 한 세대 전체가 이 배신을 잊지 못할 것이며, 이 일에 대해 끊임없이 용서를 빌 것이다.”

사회주의자와 반(反)제국주의자의 주된 임무는 터키의 침공에 반대하고, 쿠르드에게 연대를 표하며, 쿠르드의 민족자결권을 지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는 일에서 교훈을 얻기도 해야 한다.

미국이 쿠르드를 배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역사가 그렉 그랜딘은 헨리 키신저(닉슨과 포드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냈다)를 다룬 자신의 명저를 페이스북에서 인용했다.

1970년대 초 키신저는 “이라크 바트당 정권을 흔들기 위해 이란 샤 왕조와 손잡고 쿠르드를 지원하는 계략을 꾸몄다. 쿠르드에게 무기를 줘서(미국 국무부를 놀래지 않으려고 이스라엘이 무기를 제공하게 했다.) 이라크 북부에서 독립 전쟁을 벌이게 하는 계략이었다.”

“1975년 12월, 이란과 이라크의 세력 균형이 장기적으로 미국에게 유리해졌다고 판단한 키신저는 쿠르드 지원을 철회했다. 이라크 정부는 재빨리 맹공을 퍼부어 수많은 쿠르드인을 학살하고 인종 청소를 자행했다. 아랍인들을 대거 쿠르드인 거주 지역으로 이주시켰고 쿠르드인 수십만 명을 다른 곳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의존

그럼에도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 민족주의자들은 미국에 대한 의존을 끝내 버리지 못했다. 쿠르드민주연합과, 그 연합의 군사 조직이자 시리아민주군의 핵심 전력인 인민수비대(YPG)는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 민족주의자들보다] 훨씬 더 인상적인 운동을 벌였다.

《포린 폴리시》가 인터뷰한 미군 장교들은 인민수비대가 해방시킨 지역에서 보여 준 정치 운영 능력을 찬양해 마지않았다.

인민수비대는 쿠르드노동자당(PKK)의 동맹이다. 쿠르드노동자당은 터키 내 쿠르드 지구에서 오랫동안 무장 항쟁을 벌여 왔다. 바로 쿠르드노동자당과의 관계 때문에 인민수비대는 터키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의 분노를 샀다. 에르도안과 그와 가까운 군부 인사들은 국경 너머 시리아 북부에 쿠르드 자치구가 공고해지면 쿠르드노동자당이 더 강해질 것을 우려한다.

운신의 폭

시리아민주군이 누린 정치·군사적 운신의 폭은 더 강력한 세력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한편에서는 잔혹한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시리아 혁명이 벌어지자 시리아 내 쿠르드 지역을 포기했다. 혁명적 무장 조직들에 대처하는 데에 힘을 집중하고 그들을 분열시키기 위해서였다.

다른 한편에서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정부와 뒤이어 들어선 트럼프 정부는 시리아민주군이 아이시스 격퇴에 유용한 동맹이라고 여겼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미국은 쿠르드를 배신했다. 이번 사태를 볼 때 지나치게 트럼프에게만 초점을 맞추려는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십중팔구 오바마도 같은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전략·정보 웹사이트 〈스트랫포〉는 미국의 결정에 깔린 냉혹한 논리를 이렇게 풀이했다.

“백악관은 결정적 순간이 다가오면 충직하지만 상대적으로 작은 국지적 동맹을 방어하기보다는, 중대한 전략적 동맹국과 협력 관계를 강화하기를 택해 왔다. 터키는 국경 지역 장악을 중대 사안으로 보고 커다란 위험도 무릅쓸 용의가 있는 반면, 미국은 이미 시리아를 뜨려고 하고 있었고 국경 문제로 터키와 충돌하고 싶어 하지 않는 듯하다.”

이제 시리아민주군은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있다. 이제 쿠르드는 터키의 맹공에서 살아남기 위해 [시리아인 수십만 명을 살해한] 아사드 정권과 협약을 맺었다.

제국주의 열강과의 동맹에 기대는 실수 때문에 이토록 엄청난 고통을 대가로 치러야 하다니 비극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