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8일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이주민 남성 A씨가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란 출신인 A씨는 1년가량 구금돼 있던 상태였다. 이 사실은 A씨를 도와 온 이주민 인권 단체 ‘아시아의친구들’에 의해 알려졌다

사망진단서 상의 사인은 외부감염에 의한 급성신부전증이라고 한다. A씨는 병원으로 호송됐지만 안타깝게도 며칠 만에 운명을 달리 했다. A씨는 평소 안과 관련 질환 외에는 특별히 심각한 건강 문제는 없었다고 한다. 진상이 더 정확히 밝혀져야겠지만, 급성신부전증이 외부감염에 의한 것이었다면, 화성보호소의 열악한 조건이 발병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외국인보호소는 강제 추방을 앞둔 외국인들이 구금되는 곳인데, 상당수가 단속당한 미등록 이주민들이다. 정부의 차별적 제도‧정책들과 출입국 규제가 미등록 이주민을 양산해 왔는데도, 정부는 미등록 이주민들을 “불법 체류자”라며 범죄자 취급하고 구속하고 강제 추방해 왔다. 특히 난민을 포함해 즉시 한국을 떠날 수 없는 여러 이유들로 1년 넘게 장기 수용된 이들이 A씨 외에도 화성외국인보호소에만 10명가량 된다. 외국인보호소 수용에는 기간 제한도 없다시피 해 무기한 구금도 가능하다.

‘보호소’의 처우는 열악하기로 악명 높다. 화성외국인보호소에 2년 7개월간 수용됐던 민주콩고공화국 출신 카밤바 씨는 이번 사망 사건이 “놀랍지 않다”고 말한다. 어찌나 조건이 끔찍한지 사람이 죽어 나가도 이상할 게 없다는 것이다.

2007년 4월 29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단속추방 중단, 미등록이주노동자 전면합법화, 노동권 확보를 위한 이주노동자 대회가 열렸다. ⓒ<노동자 연대>

이런 비극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7년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 참사로 이주노동자 27명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했고, 2012년에는 화성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된 몽골인이 알코올 중독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듬해 화성외국인보호소 측은 구금 중이던 우즈베키스탄인이 심장질환, 우울증 등으로 발작까지 일으켰음에도 이주민 지원 단체들이 수차례 항의한 후에야 외래진료를 허용했다. 2015년에도 같은 곳에서 모로코인이 사망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체류 기간을 초과하거나 취업 자격 없이 일했다는 이유로 미등록 이주민들을 단속해 추방하는 정책을 강화해 왔다. 이런 정책이 지속되면 비극은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

무고한 이주민들을 교도소보다 못한 시설에 구금하고, 추방하는 것은 당장 중단돼야 한다. 인권유린의 온상인 외국인보호소는 폐쇄해야 한다.

[인터뷰] 2년 7개월 화성외국인보호소에 갇혀 지낸 난민 카밤바 씨

“그곳은 사람이 머무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카밤바 씨(사진)는 민주콩고공화국에서 온 난민이다. 2016년 4월부터 2018년 11월까지 화성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됐었다.]

A씨와 그의 가족에 대해 너무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러나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게 전혀 놀랍지 않다. 그곳의 조건은 사람이 살 곳이 못된다. 그곳의 모든 처우가 사람이 죽게끔 만든다.  

아플 때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없다. ‘클리닉’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지만 ‘클리닉’이라고 할 수 없다. 의사는 1명뿐이다. 머리나 배가 아플 때 먹는 약만 있고, 그밖에 다른 증상이 있으면 어떠한 약도 제공받지 못했다. 그럴 땐 보호소 밖에 나가서 알아서 진료를 받아야 하는데, 밖에 나가는 것은 쉽지 않다. 만약 변호사가 있으면, 신속하게 조처를 취할 수 있다. 그러나 변호사가 없으면 나가는 걸 허락받기가 어렵다. 이건 매우 심각한 문제다. 보호소 밖에서 치료받을 때 비용도 스스로 대야 한다. 돈이 없으면 죽는 거다. 

우간다에서 온 지무와라는 친구가 있었다. 약 3년간 화성외국인보호소에 있었다. 이 친구는 스트레스 때문에 거기 있는 동안 정신 질환을 얻었다.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는 보호소 측이 이 친구를 [아프리카 사람들과 떼어] 홀로 배치했기 때문이다.(한 방에 12명씩 수용되는데, 특히 아프리카 사람들은 서로 같이 못 있게 했다. ‘아시아의친구들’에게 얘기하고 난 뒤부터는 조금 바뀌어서 2~3명씩 같은 방에 수용될 수 있었다.) 그는 누군가와 얘기를 나눌 수 없었고, 그를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다. 

콩고에서 온 한 여성이 있었다. 그녀가 죽고 싶어 할 만큼 정말 많이 아팠던 적이 있다. 우리는 시끄럽게 굴어서 그녀가 밖에서 치료받을 수 있게 하라고 요구했다. 나는 이런 식으로 보호소 내에서 항의를 많이 했다. 

화성외국인보호소는 좋은 음식을 제공하지 않는다. 구치소 음식이 더 낫다. 거기는 한국인들이 있으니까 좋은 음식을 주는 것이다. 만약 구치소에서 질 떨어지는 음식을 계속 제공하면 한국 사람들이 항의할 것이다. 화성에는 외국인만 있고,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무도 모른다. 

구치소에서는 하루 1시간 운동 시간을 보장하지만,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는 1주일에 2번 20분씩만 줬다. 전혀 충분하지 않다.

“5년이나 갇히기도 해 … 인생 파괴하는 일”

우리는 마치 짐승 같[이 취급 받는]다. 누구든 그렇게 느낄 것이다. 화장실이든 샤워 시설이든 어디서든 감시당한다. CCTV가 어디에나 있다. 우리는 범죄자가 아닌데, 어디에서 무얼 하든지 감시당한다. 화장실을 감시하는 CCTV에 대해서 한 여성이 항의한 적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범죄자가 아니다. 이게 매우 중요하다. 그곳에는 마약 거래로 잡혀 온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보호소 측은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을 범죄자 취급한다. 

법적으로는 외국인보호소에서 인터넷을 통한 의사소통 수단을 사용할 수 있게 돼 있다. 그러나 메시지나 이메일을 보내는 등 인터넷을 절대 사용할 수가 없다. 유료 전화카드를 이용해 공중전화기로만 전화할 수 있다. 

겨울에는 매우 춥다. 아프리카에서 온 우리에게는 정말 너무 춥다. 잘 먹지 못하니까 더 위험하다. 보호소 측에 춥다고 해도 그저 담요 2개를 줄 뿐이다. 나처럼 키가 큰 사람에게는 담요가 너무 작다. 

나는 2003년에 한국에 온 난민이다. 난민 인정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난민으로 인정받으려면 굉장히 많은 증거자료가 필요하다. 그런데 내가 [본국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는 걸 문서 증거로 제출한다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이런 걸 가지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난민 인정이 거부된 뒤 체류 자격을 잃었는데] 살려면 일을 해야만 했다. 일하다가 출입국 당국에 붙잡혀서 보호소로 가게 된 것이다. 

[정부는 그곳을 ‘보호소’라고 부르는데] 농담하나? 그곳은 사람이 머무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정부가] 사람들을 속이려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가리려고 그런 이름을 붙인 것이다. 거기서 사람이 죽어도 뉴스에 잘 나오지도 않는다. 그곳을 ‘보호소’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우스운 일이다. 

한 아프리카 출신인 사람은 5년이나 갇혀 있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파괴하는 일이다. 왜 이렇게 오래 가둬 두는지 정말 화가 난다. 그곳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신체적·정신적·감정적으로 피폐해져 있는 상태다. 

인터뷰·정리 김주혁, 이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