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2일 전투기, 전략 폭격기 등 러시아 군용기 6대가 한국 방공식별구역(카디즈) 안으로 진입했다. 일부 군용기는 한반도 서해까지 비행했다. 러시아 군용기들이 한반도 주변을 선회하는 무력 시위를 한 셈이다.  

이 일은 그저 일회성 사건이 아니다. 올해에만 러시아 군용기가 카디즈 안에 진입한 게 20번째다. 특히, 7월에는 중국·러시아 군용기들이 합동 훈련을 하면서 동해 카디즈에 들어왔다.

러시아 군용기의 한반도 선회 비행에는 한반도와 아시아에서 점증해 온 제국주의적 경쟁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애초에 한국, 일본, 대만 각국이 선포한 방공식별구역은 모두 냉전 시절에 미국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것들이다. 미국은 동북아시아에서 소련 공군을 경계하고 중국과 소련 해안선을 감시하려는 목적으로 동북아 동맹국들의 방공식별구역을 지도에 그었다. 그래서 한국·일본·대만의 방공식별구역은 세 국가가 소련(러시아)과 중국을 분담해 감시하도록 딱 맞물린 형태다.

따라서 영공과 달리, 방공식별구역에 관한 어떤 국제적 합의가 이뤄진 적은 없다. 소련이나 (소련 해체 이후의) 러시아는 미국이 설정한 동북아의 방공식별구역들을 인정하지 않았다. 러시아가 보기에, 방공식별구역은 러시아군이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동해를 거쳐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데 방해되는 걸림돌이다. 

올해에만 러시아 군용기가 카디즈 안에 진입한 게 20번째다

태평양

오늘날 중국의 부상은 방공식별구역을 둘러싼 갈등의 양상을 바꾸고 있다. 중국은 마오쩌둥 시절의 폐쇄적 국가자본주의에서 세계의 공장이자 주요 대외투자국가로 거듭났다. 그러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바다와 하늘을 지배해 온 미국의 영향력에 도전하게 됐다. 이런 맥락 속에서 2013년 중국은 동중국해 일대에 자체의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했다. 중국이 선포한 방공식별구역은 일본 방공식별구역과 상당히 겹쳤다.

미국 지배자들은 자국 패권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2017년에 발표한 새 국가안보전략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모두 (미국이 주름잡아 온) 기존 국제 질서를 바꾸려 드는 “수정주의 강대국”으로 규정했다.

기존 제국주의 세계 질서를 지키려는 미국은 공세적 조처를 취하려 한다. 트럼프 정부는 ‘인도·태평양 전략’ 하에서 미일동맹을 중심으로 동맹국들을 연결해 중국을 견제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미국은 중거리미사일의 아시아 배치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트럼프 정부는 러시아와 맺은 중거리핵전력조약(INF)에서 탈퇴했다.

중국, 러시아는 미국의 미사일 배치 시도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9월에 러시아 대통령 푸틴은 한국과 일본에 배치될 미국 중거리 미사일이 자국 극동 지역의 주요 전략 기지들을 위협할 것이라고 말했다.

7월 러시아와 중국 군용기가 함께 동해에서 훈련한 일, 10월 미국과 일본이 중거리미사일 일본 배치를 협의했다는 소식이 나온 날에 하필 러시아 군용기들이 대거 동해를 지나 서해까지 갔다 온 일 등은 모두 이런 전체 맥락 속에서 봐야 한다.

한복판

이런 상황은 한반도가 오늘날 제국주의적 경쟁에 얼마나 깊이 휘말려 있는지를 보여 준다. 한반도와 그 주변은 제국주의 강대국들이 힘을 겨루는 한복판에 있다. 이런 경쟁과 갈등이 한반도 정세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준다.

우파들은 러시아가 한일갈등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 것이라며 한미일 공조 강화로 러시아에 대응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럴수록 한국은 열강 간 갈등에 더 깊이 연루되고 한반도 불안정은 더 악화될 것이다.

게다가 한국은 군비를 꾸준히 증대해 한반도 주변의 긴장 악화에 일조해 왔다. 전략무기 F-35A 스텔스기, 공중급유기, 장거리 고고도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 같은 전략 무기들을 대거 도입했거나 곧 그럴 예정이다. 이도 모자란 듯이, 문재인 정부는 대대적인 군비 증강과 미국산 첨단 무기 수입을 추진하고, 항공모함 도입 계획까지 세우고 있다. 미국의 동맹인 한국의 이런 움직임을 중국과 러시아가 모른 체할 리 없지 않은가.

진보·좌파는 문재인 정부의 친제국주의·군국주의 정책을 경계하고 반대해야 한다. 미국의 중거리미사일 한국 배치가 본격 추진되면 이에 반대하는 운동을 건설하는 등 문재인 정부와는 독립적인 반제국주의 운동 건설에 애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