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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성장’은 불가능할까?

성장은 자본주의의 핵심이다. 그렇지만 급진적 변화와 결합한다면 생산 확대가 인류와 환경을 위해서 조직될 수 있다고 사이먼 바스케터는 주장한다.

환경 재앙이 닥쳐 오자 많은 사람들이 경제 성장과 발전 그 자체를 문제라고 여긴다.

경쟁으로 작동되는 자본주의적 발전의 무서운 대가로 인간과 자연이 고통을 겪는 것은 사실이다.

이를 보며 어떤 사람들은 가난한 나라는 계속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더 이상의 발전은 환경에 해롭다는 것이다.

발전은 환경 파괴를 수반할 수밖에 없을까? ⓒ출처 Lucas Dumrau(플리커)

그보다 좀더 흔한 이야기는 서구에서 “향유하는” 생활 수준을 지구상 모든 이들이 누릴 여력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문제는 평범한 사람들이 휴대폰을 원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사람들의 필요보다 훨씬 더 많은 휴대폰을 미친듯이 생산할 뿐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그것을 사기 어렵게 만드는 자본주의 체제가 문제다.

기술 발전으로 우리는 주변 세계에 영향을 줄 새로운 방법을 수없이 많이 갖게 됐다. 덕분에 자연 앞에서 인간은 무기력한 존재가 아니다. 또한 환경을 보호하고 기후 변화를 멈출 잠재적인 방법들도 갖게 됐다.

문제는 발전이 아니다. 그 발전이 자본주의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이고, 그 방식에는 거대한 모순이 있다.

한편에서는 생산성이 상당히 증가해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가능성이 열렸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파괴적 힘이 엄청나게 커져 인류와 환경을 위협한다.

생산성이 증가하고 기술이 발전한 결과 식량, 주거지, 난방, 의약품 등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모두 생산할 능력을 갖췄다. 그런 능력을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발휘할 잠재력이 있다.

재생 가능 에너지

또한 산업 발전과 신기술은 기후변화를 해결할 수단을 제공한다. 재생 가능 에너지와 효율적인 수송 수단을 발전시킨 것이 그 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작동 방식 때문에 이 잠재력이 온전히 발현될 수 없다. 자본주의는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하는 대신 극소수를 이롭게 하도록 작동한다.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인 이윤 동기와 계급 분단은 우리의 잠재력을 억누르고 또한 매우 파괴적이다.

혁명가와 사회주의자들은 오래전부터 자본주의가 가져온 위대한 잠재력을 봤고, 또한 자본주의가 왜 그 잠재력을 가로막을 것인지 이해했다.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는 1926년에 이렇게 썼다. “나는 사람들이 항공기 개발로 전쟁이 종식될 것이라고 썼던 때를 기억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공기보다 무거운 비행 기계의 발명은 군국주의의 역사에 새롭고 더욱 잔인한 장을 열었다.

“의심의 여지 없이 지금도 우리는 더욱 끔찍하고 피비린내 나는 국면의 도입부에 있다.

“기술과 과학에는 독자적인 논리가 있다. 그런데 기술 그 자체는 군국주의적이지도 평화주의적이지도 않다. 지배 계급이 군국주의적인 사회에서 기술은 군국주의에 복무한다. ”

자본주의는 돈벌이를 위해 모든 것을 무자비하게 이용하는 잔인한 체제고 그 대상에는 노동 계급부터 지구 자체까지 포함된다.

혁명가 카를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썼듯, “자본주의적 농업의 모든 진보는 노동자뿐 아니라 토지를 약탈하는 방식의 진보이며, 일정한 기간에 토지의 비옥도를 높이는 모든 진보는 그 비옥도의 항구적 원천을 파괴하는 진보다.”

자본주의 하에서 기업들은 이윤을 줄이는 방향으로 생산 방식을 바꾸는 것에 저항한다. 동시에 체제는 매우 낭비적이다.

질 좋은 음식을 우리가 필요한 만큼 생산하는 것보다 쓰레기 같은 음식을 과잉 생산하고 버리는 것이 더 수익성 있다. 음식은 충분한 것 이상으로 많다. 그러나 여전히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고, 우리가 식량을 생산하는 방식은 환경을 파괴할 뿐 아니라 음식 그 자체도 유해하도록 만든다.

발전

지속가능한 발전을 하는 것보다 환경을 파괴하는 것이 더 수익성이 높다.

바로 이 이윤 추구 논리에 따라 어떤 개발을 하고 어떻게 성장할지가 결정된다.

많은 기업들은 전혀 생산되지 않는 편이 이 사회에 나을 무의미하거나 유독한 것들을 만든다. 낭비는 체제의 본성인데 그래야만 기업들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기업들은 제품을 쉽게 망가지게 설계해서 사람들이 계속 새로 구입하게 만든다.

사장들이 전화기나 자동차의 ‘최신’ 기종을 우리에게 끊임없이 들이미는 이유는 우리에게 그것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더 많이 팔기 위해서다.

우리가 구입할 수도 없는 물건들이 흘러 넘치고 있다. 이는 소비지상주의 문제가 아니라 체제 작동 방식의 문제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이렇게 썼다. “모든 위기 시기에 사회는 사용할 수 없는 자신의 생산력과 생산물의 무게 아래 짓눌리고, 소비자가 궁핍하기 때문에 생산자가 소비할 것이 없는 어처구니없는 모순 앞에 속수무책으로 선다.”

흔히 경제가 성장하면 모두에게 이롭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부자들에게만 이롭다. 일자리, 임금, 공공서비스는 자본주의가 잘나간다고 할 때도 어렵다고 할 때도 공격받는다.

화학 무기나 일회용품을 더 많이 생산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좋지 않다. 따라서 관건은 단순히 생산량이 너무 많은가 아닌가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어떤 목적으로 생산하느냐다.

자본주의적 성장은 생산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중국과 인도는 급속한 성장으로 세계 강대국이 됐지만 이런 “성공” 뒤에 수백만 명이 비참하게 산다.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자본주의는 “궁궐을 짓지만 노동자를 위해서는 가축우리 같은 집을 짓는다.”

사람들은 종종 세계를 ‘선진국’과 ‘저개발국’으로 나눈다.

이런 용어는 ‘저개발’ 국가들이 ‘선진국’이 지난 수백 년 동안 밟아 왔던 것과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지만 속도만 더 느릴 뿐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오늘날 서구 국가들이 경제적으로 더 강한 위치를 차지한 주된 비결은 그들이 다른 국가들의 부를 빼앗고 후퇴를 강요한 것이다.

유럽 자본주의는 정복, 대량 학살, 노예제에 의존해 발전했다.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확장적이다. 그래서 전 세계를 하나의 경제 체제로 통합했다.

평범한 사람들은 극심한 억압, 혹독한 노동 규율, 사회 급변에 따른 충격이라는 대가를 치른다.

예를 들어 노예 무역은 천연 자원 약탈을 동반했다. 이렇듯 전 세계적으로 사람과 자원을 빈약하게 만들고 착취하는 과정이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20세기에 스탈린주의 독재 국가들이 제시한 미래상과는 달리, 사회주의는 경제를 멋드러지게 발전 시킨다고 이뤄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재앙으로 치닫는 이 체제와 역사적 단절을 이루는 것이다.

그럴 때만이 마르크스가 썼듯 “인류의 진보가, 살해된 자의 두개골로 만들어진 술잔으로만 마시려는 저 끔찍한 이교도의 우상을 닮지 않게 될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이 자연 정복을 통해 사회주의로 나아가려 한다는 고정관념과 반대로, 엥겔스는 이렇게 썼다. “그럼에도 인간이 자연에 승리를 거뒀다고 우쭐해서는 안 된다. 매번의 그런 승리 뒤에는 자연의 복수가 도사리고 있다.”

“그런 승리는 처음에는 분명 우리가 기대했던 결과를 가져 온다. 그러나 점차 예기치 못한 효과들이 등장하고 급기야 최초의 성과를 무로 돌리는 일이 너무도 잦다.”

엥겔스는 인간이 가진 한 가지 장점은 배울 수 있다는 것이며, 진정으로 생산적이고 공정한 발전을 실현하려면 지배 계급을 타도해야 한다고 믿었다.

발전을 죄악시하는 것은 해결책이 못된다. 무질서한 자본주의를 거부하고 지속가능한 세계를 위해 싸워야 한다.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중점을 두도록 생산을 조직해야 한다.

매년 무기와 전쟁에 쓰이는 돈만으로도 세계의 빈곤을 손쉽게 끝장낼 수 있다.이윤을 동기 삼는 체제를 제거할 때 마르크스가 말했던 필연의 영역에서 자유의 영역으로 넘어갈 수 있다.

가난할수록 기후 재해에 더 고통받는다. 기후변화에 맞서 싸운다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더러 희생하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삶의 질을 더 높일 기회다.

물론 지배자들을 압박해 일부 개혁을 따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배자들은 환경 보호에 맞서는 데 강력한 이해관계가 있다. 더욱이 우리에게는 개혁을 기다릴 시간이 없다.

민주적으로 통제되는 세계에서는 기후 재앙을 막을 수 있다.

이윤을 놓고 경쟁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사회주의로 즉, 모든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집단적으로 조직하는 체제로 대체해야 한다. 서둘러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