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사태로 정치적 위기가 심각해지자 문재인 정부가 선택한 길은 전광석화처럼 조국을 사퇴시키고 친기업 행보를 노골화하는 것이었다.

대통령 비서실장 노영민은 국회 국정감사에 나와, 조국 인사는 결과적으로 실패라며 “윤석열 총장이 독립적으로 잘하고 있다 … 검찰이 법과 원칙대로 했다”고 말했다.

조국 정국에서 재계는 공개적으로 불만을 터뜨렸다. 대내외 경제 상황이 악화되는데, 정부가 분명하게 기업 살리기 조처들을 취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후 문재인은 선거제도 개혁 제스처를 취하면서도 친기업 행보를 가속화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문재인, 민주당 당대표 이해찬 등은 부지런히 경제단체들과 삼성, 현대, IT 기업들을 직접 방문해 격려했다.

아마 조국 사퇴 이후 문재인 지지율이 조금 회복되고 한국당 지지율이 다시 떨어진 주요인은, 삼청교육대 운운하는 박찬주 영입 시도 같은 한국당의 헛발질 탓도 있겠지만 바로 문재인이 친기업 행보로 중도우파층을 달랬기 때문일 것이다.

다정다감 문재인이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인 정의선에게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10월 15일 경기도 화성 현대차 남양연구소) ⓒ출처 현대차그룹

이처럼, 문재인은 여전히 진보 염원 노동자·서민층과 사용자·우파 사이에서 줄타기하면서도 실천으로는 좀 더 친사용자 쪽으로 가고 있다. 노동기본권을 담은 ILO 기본협약 비준 목록에 노동조합법 개악을 포함시킨 것이 전형적인 사례다. ILO 협약 비준의 반대급부로 사용자들이 요구하는 “사용자 대항권”은 투쟁의 관점에서 보면, 협약 비준 효과를 상쇄시키고 노동조합 운동에 더 큰 제약을 씌우는 악법이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가 위태로우면서도 아직 레임덕 위기로 가지 않은 것은 노동계 지도자들이 민주당 차악론과 진영 논리에 갇혀 민주당 정부를 사실상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 여름에는 지소미아 연장 거부 같은 항일 제스처, 검찰 개혁 같은 포퓰리즘 소재들이 그런 구실을 했다.

진영논리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그나마 포퓰리즘적 환상을 심어 줬던 항일 제스처 정치에서도 한발 물러서고 있다. 문재인은 국무총리 이낙연을 보내 일본 총리 아베를 만나게 하더니, 이번엔 아세안 회의에서 자기가 직접 아베 소매를 잡아 끌며 억지춘향식 정상회담(면담?)을 했다.

문재인 취임 후 첫 대일 특사였던 문희상은 국회의장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해 위안부 등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한·일의 민간 자금을 모아 보상하자는 황당한 제안을 했다. 문희상의 제안은 일본 정부에게 퇴짜를 맞았다.

손상된 동맹을 복원할 사전정지 작업으로 보이는 이런 행동들의 목적은 노동개악과 마찬가지로 우파와 사용자 계급을 달래는 것이고, 그 효과는 이들의 기를 살리는 것이다.

박근혜도 어깨 수술과 회복을 이유로 강남성모병원 VIP 병동 1인실에서 두 달째 지내고 있다. 적폐 청산의 초점이던 두 우파 전직 대통령들이 모두 고령·병환을 이유로 감옥을 나와 있는 셈이다. 뇌물죄로 구속됐던 재벌 총수들은 진작에 풀려나 활개를 치고 있다.

문재인이 조국을 사퇴시키고 친기업·친우파 기조를 분명히 하자 여론조사들에서 문재인 지지율 하락세(와 한국당 상승세)가 “일단 멈춤”했다. 문재인이 지금 누구의 지지를 받아서 정권을 유지하는지를 보여 준다.

그럼에도 여전히 문재인 국정수행에 대한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보다 높다. 게다가 부정평가는 보수 ‘빅 텐트’를 모색하는 우파 야당들의 지지율 합계보다 높다. 진정한 여론은 문재인 대 한국당으로 양극화돼 있지 않음을 보여 준다.

‘민주당 대 한국당’ 진영 논리로 정세를 보는 것이 지나치게 단순한 이미지인 이유다. 이런 상황은 조국 수호를 정권 수호와 등치시켰던 문재인 지지자들은 물론이고 진영 논리에 빠져 계급 불평등과 계급투쟁 문제를 등한시한 노동계·진보 지도자 일부를 꽤 민망하게 만들고 있다.


또다시 포퓰리즘 제스처?

청와대가 윤석열에게 긍정적 신호를 준 뒤, 검찰은 세월호 참사를 재수사하겠다며 특별수사단을 발족했다. 검찰의 직접 수사 축소를 검찰 개혁의 요체나 사활적 개혁 과제인 것처럼 말하던 정치인들이 이 수사를 환영하는 것은 어색한 일이다.

우파 달래기로 한숨 돌린 문재인이 다시 진보 염원 대중에게 신호를 보내려는 것에 윤석열이 화답한 모양새인데, 실제로 수사가 잘 될지는 지켜봐야 할 듯하다. 그동안 이 문제는 우파 견제용으로만 활용되고 부담을 느낀 여권이 금세 덮기를 반복해 왔다.

참사 원인과 연관된 국가정보원, 참사 원인 수사를 방해한 혐의를 받는 황교안과 기무사(현 안보지원사)가 주요 수사 대상이다. 이들을 수사하는 게 문재인 정부에겐 정치적 부담이(었)다. 총선을 앞두고 제1야당 대표를 검찰이 수사하는 것도 그렇고, 국가의 핵심적인 수사·정보 기관들이 수사에 제대로 응하지 않을 공산도 크다.

지난해 기무사 계엄 문건(촛불 무력 진압 계획 검토) 수사가 흐지부지된 전례도 있다. 당시 검찰은 군 조직을 수사하지 못했다. 군부가 자기 내부를 수사하도록 검찰에게 순순히 허용할 리도 없다. 지난해 문재인의 수사 지시도 군은 군이 수사한다는 것이었다. 청와대가 덮으려 했다는 정황도 있다.

결국 이런 문제들에서도 문재인은 제스처 이상의 것을 하려는 것 같지 않다. 


노동계 지도부들은 노동개악 반대를 실질적으로 조직해야

문재인은 올해 안에 탄력근로제 확대, 파업권 약화를 담은 노동개악, 의료 영리화의 길을 닦을 데이터 3법 등을 통과시키겠다고 한다.

문재인이 온갖 책략을 부리고 있어도 아래로부터의 반감과 저항을 피하긴 어렵다. 이 때문에 노동계 지도자들도 굼뜨지만 반대와 저항을 일단은 조직할 수밖에 없다.

당장의 투쟁으로 드러나지는 않아도 대체로 말해 노동자들의 사기는 나쁘지 않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연달아 주말 대규모 전국노동자대회를 연다. 민주노총은 전국에서 대규모 동원을 하려고 한다. 민주당을 공식 지지해 온 한국노총도 정부 비판을 피하려고 노력하면서도 노동개악에 반대하고 정부에 경고하는 목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는 상태다.

한국노총 지도부가 내놓은 “노동자대회 핵심 요구안 해설 자료”는 이번 집회가 “정부와 여당의 노동 정책 후퇴 기류를 강력히 비판하고 노동 존중 정책 기조에서 이탈할 경우 노동자와 국민의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경고”하는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와 여권이 포퓰리즘 언사를 섞어 가며 진영 논리를 자극해 진보진영을 묶어 놓고 있지만, 이것은 불안정한 궤도 위에 있다.

그런데도 양 노총 모두 국회가 있는 여의도에서 집회를 연다. 공동화 현상이 일어나는 주말 여의도 집회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대규모 동원의 정치적 효과를 반감시킨다. 국회가 불신의 대상인 건 맞지만, 청와대보다 국회를 표적으로 하는 것은 자신의 개혁 배신을 국회와 우파 야당 탓으로 돌리는 문재인의 책략을 못 본 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따라서 운동 안에서 청와대로부터 노동운동의 정치적 독립성을 추구하는 좌파적 목소리가 더 확산돼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다.


개혁주의에 대한 균형감각

진영 논리의 일부로 행동하던 정의당이 민주당과 조금씩 차별화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동안의 친민주당 행보에서 완전히 탈피한 것은 아니다. 정의당은 여전히 문재인 정부에게 불리한 일들은 잘 다루지 않는다.

그럼에도 정의당은 문재인 정부에 실망하는 대중의 진보 염원에도 부합해야 내년 총선에서 성적을 낼 수 있다.

개혁주의는 모순과 동요 속에서도 노동계급 기반 덕분에 성장할 수 있다 ⓒ출처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10월 31일 국회 연설에서 조국 임명 지지가 실수였다고 인정했다. “[조국 임명 지지는] 제 짧은 생각 … [그 결정에 대한] 질책은 아무리 절실한 제도 개혁이라도 일관되게 지켜 온 원칙과 가치에 앞설 수 없음을 일깨우는 죽비 소리였다.”

정의당은 최근 심상정 대표 주도로 외부 명사 영입을 통한 외연 확대도 하고 있다. 권영국 변호사, 이병록 전 해군 준장이자 평화통일시민연대 대표, 이자스민 전 새누리당 의원, 김조광수 영화감독, 박창진 대한항공직원연대 지부장, 강기갑 전 민주노동당 대표 등을 영입했다.

개별 인사별로 조금씩 차이들이 있지만, 면면을 종합해 보면 체제 안에서 점진적 개혁을 추구하는 주류 사회민주주의적 성격이 더욱 부각되는 느낌이다.

그러면서도 노동자 기반을 확대하는 일도 동시에 하고 있다. 최근 포항(약 200명)과 경주 등 경북 지역 노조 활동가들이 정의당에 집단 입당했다.

정의당은 민주당의 배신 덕분에 총선에서 성장을 이어갈 수 있다. 물론 세계경제 위기의 심화와 지정학적 불안정 때문에 개혁을 성취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개혁을 위한 운신의 폭도 좁아진다.(불철저한 노동개악 반대) 그러나 개악이 벌어지는 현실 때문에 역설적으로 개혁주의는 성장할 수 있다.

지금 진보 염원 대중의 정치적 사기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진보 염원이 여전히 정치에 투영될 수 있다. 운동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이런 개혁 염원 정서는 급진화될 잠재력도 있다. 우리 사회주의자는 이 점을 잘 이해하고 개방적인 태도로, 그러면서도 원칙 있게 노동자·청년들의 분노를 조직하고 대변하려고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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