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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황리에 열린 ‘배이상헌 사건의 의미와 과제’ 토론회:
성평등교육 탄압 중단과 전교조 본부의 방어를 촉구하다

11월 15일 오후 6시, 전교조 본부 회의실에서 배이상헌 교사 사건의 의미와 과제를 논의하는 토론회가 성황리에 열렸다.(‘학교 성평등교육, 어디로 가야 하나? ― 광주시교육청의 도덕수업 사법처리를 통해 본 현실과 과제’)

이 수도권 토론회는 지난 10월 19일 광주 토론회에 이어 두 번째로 열렸다. 이번에는 ‘성평등교육과 배이상헌을 지키는 시민모임’과 전국도덕교사모임이 공동주최했다.

전교조 교사들, 연대단체 활동가들, 교육단체 활동가들 등 약 50명이 모여 토론회 장소를 가득 메웠다. 교사들이 참가자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여성이 많았다. 성평등 교육 탄압에 대한 교사들의 높은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토론회 여는 말을 하는 전국도덕교사모임 진영효 부회장 ⓒ출처 교육희망

토론의 열기는 뜨거웠다. 발제와 청중토론에서는 성평등 교육에 재갈을 물리려 하는 광주시교육청과 수사기관에 대한 비판이 여러 측면에서 제기됐다. 특히 이 토론회 전날 교육부 소청심사위원회가 배이상헌 교사에 대한 직위해제를 유지하기로 결정해, 이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가 컸다. 사건 발생 4개월이 넘도록 자기 조합원에 대한 국가기구의 탄압을 방치하고 있는 전교조 지도부가 이제는 나서야 한다는 촉구도 강하게 나왔다.

“전교조 지도부는 조합원을 지켜 달라”

진영효 전국도덕교사모임 부회장은 여는 말에서 토론회의 취지를 이렇게 밝혔다. “논란이 많은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알리고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공유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진영효 부회장은 이 토론회를 전교조 본부에서 개최하는 각별한 이유가 있다고 강조했다. “노조가 부당한 탄압에서 자기 조합원을 방어하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이 토론회는 자기 조합원을 지켜 달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프랑스 교원노조조차 배이상헌 교사 방어 성명을 낸 마당에, 전교조 본부는 성명 한 장 없다. 유체이탈식 화법의 입장을 내긴 했지만, 이것이 과연 노동조합이 낼 만한 입장인지 의문이다. 전교조 본부의 공식적이고 힘 있는 대응이 필요하다.”

발제하는 배이상헌 교사 ⓒ출처 교육희망

사건 당사자인 배이상헌 교사도 연단에 올랐다. 배이상헌 교사는 ‘성비위 교사’라는 낙인이 찍힌 채 학교에 나가지 못할 뿐 아니라, 직위해제 뒤 첫 3개월 동안 본봉의 절반, 이달부터는 본봉의 30퍼센트밖에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배이상헌 교사는 이런 고초 속에서도 여전히 투지를 보였고, 투쟁의 정당성을 조목조목 설명하며 연대를 호소했다.

배이상헌 교사는 기본적인 사실관계 확인과 소명절차도 없는 광주시교육청의 행정 폭력을 낱낱이 고발했다. 질의응답 시간에는 세간에 퍼진 헛소문들도 바로잡았다.

그 중 한 사례는 다음과 같다. 여성단체들도 추천한 성인지교육용 영상을 성비위로 고발한 것이 터무니없다는 비판이 빗발치자, 광주시교육청은 “그 영상 말고도 여러 가지가 더 있다”며 뭔가 흉측한 혐의라도 더 있는 양 냄새를 풍겼다는 것이다.(그 “여러 가지”에는 온갖 상상이 추가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배이 교사가 조사 받은 혐의는 영상 상영과 이미 공개된 발언들뿐이었다.(당사자는 발언 내용이 모두 사실과 다르다고 자세히 설명했다.)

또한 배이상헌 교사는 일부 여성단체들이 교육 현장에서 선명히 나타난 부작용을 직시하지 않은 채, 자신들이 성취한 성과물(‘피해자 중심주의’에 기초한 매뉴얼)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만 매달리는 듯하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전교조 광주지부장 출신인 진보교육감에게 타격을 줘선 안 된다는 진영논리 탓에 진실을 외면하고 성평등 교육 탄압이 낳을 심각한 폐해를 간과해선 안 된다고도 했다.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시민단체 오픈넷의 오경미 연구원도 발제자로 나섰다. 오 연구원은 탄압의 소재가 된 영상 〈억압받는 다수〉가 어떻게 성비위 혐의로 처벌받을 수 있는지 의아하게 여겼고, 이를 계기로 배이상헌 교사 수사의뢰에 반대하는 오픈넷 입장을 냈다고 밝혔다.

오 연구원은 이번 사건이 스쿨미투 사안, 즉 성비위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교사가 자신의 성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학생을 성적 대상화한 게 아닌데도, 성비위에나 적용돼야 할 매뉴얼을 그렇지 않은 사안에 적용한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억압받는 다수〉 영상이 주는 불편함은 여성차별적 현실을 뒤집어 보여 주는 방식(미러링)의 급진성 그 자체에서 오는 불편함이지, 영상의 음란성 때문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짚었다.

전국도덕교사모임 소속 권혜경 교사의 발제 ⓒ정진희

전국도덕교사모임 소속 권혜경 교사(전남 무안 오룡중 도덕교사)는 허공에 붕 뜬 논의가 아닌 생생한 교실의 경험을 들려주며 배이상헌 교사 탄압의 부당성을 설명했다.

“나를 비롯한 도덕교사들은 교육부가 정한 교육과정에 따라 성평등 단원을 가르치게 되어 있다. 교육부가 제시한 방향에는 ‘학생들의 적극적 참여를 위해 각종 예화, 그림, 영화 등을 활용하라’고 되어 있다. 배이상헌 선생님은 바로 이에 따라 수업한 것이다. 뭐가 문제인가? 이런 식이라면 전국의 도덕교사들은 다 성비위 혐의자나 마찬가지다. 배이상헌 교사와 똑같은 일을 당할까 봐 나도 무섭다.”

권혜경 교사는 청소년에게 성이 모순된 형태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을 설명했다. “청소년들은 성에 관심이 매우 많고 〈억압받는 다수〉보다 더 심하고 노골적인 영상들도 본다. 하지만 성은 음지에 머물러 있어, 학생들에게 민망하거나 불편한 무언가로 여겨진다. 그래서 성평등 교육이 정말 어렵다. 그래도 성을 양지로 끌어내는 것은 필요하다.”

광주시교육청의 조처가 가뜩이나 어려운 성평등 교육을 되레 위축시킨다는 지적도 했다. “광주시교육청은 수업에 불편함이 제기되기만 하면 성범죄 취급한다. 이러면 무슨 교육이 가능한가? 교육에 행정을 들이대며 수업 내용을 경찰에 넘기는 것은 원시 상태이다. 학생들이 원하는 것도 이런 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성교육 포기 선언이냐 성교육 미투운동이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성폭력문제연구소장을 역임한 변혜정 섹스앤드스테이크(sex&steak) 연구소장은 “학교 성평등교육의 현실과 과제”에 대해 발제했다. 변 소장은 오랫동안 성폭력 반대 활동과 청소년 성평등 교육을 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피해자 보호’ 취지에서 도입한 여성주의적 개념과 절차의 과도한 측면들이 어떻게 부작용을 낳았는지 진솔하게 돌아봤다.

변혜정 소장은 “성과 관련한 건 모두 다 성비위 취급”하는 현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실체적 진실규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도대체 무엇이 정신적 학대에 해당하는지(피해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가 중요한데 정작 이런 얘기는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비밀 유지’를 앞세워 필요한 말을 해도 다 “2차가해”라고 입막음하는 방식이 진실규명을 더 어렵게 한다고 지적했다.

변 소장은 실체적 진실 규명을 가로막는 “과도한 규제”와 “탈맥락적 피해자 중심주의”에 문제 제기했다. 또한 “교육청은 성평등 교육을 위해 애쓰는 교사를 죽이지 말라”고 요구했다.

아하 청소년성문화센터 이명화 소장도 성 보수적 관점에서 이뤄지는 통제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밝히며, 성평등 교육 확산을 위해 애쓰는 교사들의 노력을 응원했다. 성(평등)교육 경험이 풍부한 여성운동가들 일각에서도 배이상헌 교사 사건에 대한 문제의식이 공명을 일으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청중토론에서는 발제자들에 대한 질문뿐만 아니라, 성평등 교육을 위축시키고 스쿨미투의 진정한 취지를 훼손하는 광주시교육청의 권위주의적 조처를 비판하는 여러 주장들이 나왔다. 또한 전교조 지도부의 공식 방어 입장을 촉구하는 다양한 활동을 해 나가자는 제안도 나왔다.

이 토론회는 광주시교육청의 부당한 조처에 대한 문제의식을 폭넓게 발전시키고, 운동의 과제에 대해서도 토론하는 뜻 깊은 자리였다.

ⓒ출처 성평등교육과 배이상헌을 지키는 시민모임
ⓒ출처 성평등교육과 배이상헌을 지키는 시민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