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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한다
세계적 투쟁의 분출과 혁명적 교훈들

바야흐로 곳곳에서 투쟁이 고양되고 있다. 홍콩, 칠레, 카탈루냐, 에콰도르, 레바논, 이라크, 이란, 콜롬비아, 페루 등지에서 대규모 시위와 총파업이 벌어졌거나 벌어지고 있다. 이에 앞서 북아프리카의 수단과 알제리에서도 수십 년 집권한 독재자가 쫓겨났고 프랑스에서는 노란조끼 운동이, 영국에서는 기후 위기에 대한 항의 운동인 멸종반란이 사회를 뒤흔들었다. 2013년에 혁명이 패배했던 이집트도 반정부 시위가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투쟁이 이처럼 세계적 규모로 고양됐던 최근 시기는 2011~2013년과 1998년~2005년이었다. 2011~2013년에는 ‘아랍의 봄’, 미국의 ‘점거하라’ 운동, 유럽의 광장 점거 운동과 총파업이 벌어졌다. 그리고 1998~2005년에는 국제 반자본주의·반전 운동이 떠올랐었다.

21세기에 들어서만도 벌써 세 번째 세계적 투쟁 물결이다. 다만, 전에는 라틴아메리카, 중동·북아프리카, 유럽에서 반란을 촉발한 지역적 동학이 비교적 뚜렷했다면, 이번에는 그런 연관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투쟁들을 떼어놓지 않고 하나의 흐름으로 본다면, 공통된 요인들을 찾을 수 있다.

오늘날 세계적 투쟁의 특징들

먼저, 곳곳에서 청년·학생들이 투쟁의 선두에 있고 불안정한 일자리와 물가 상승에 대한 분노를 공유한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선진국뿐 아니라 세계적 규모에서 도시화가 전례 없이 진행됐고 노동계급이 성장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라틴아메리카와 신흥국에서 이런 변화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선진국에서도 이런 흐름은 계속돼, 독일에서 대학 졸업 후 개인사업자가 아닌 임금노동자로 일하는 경우가 20세기 중반과 비교했을 때 갑절로 늘었다.

이렇듯 자본주의는 “자신의 무덤을 파는 사람들”을 대규모로 양산했다. 하지만 경제 상황은 전보다 훨씬 나쁘다. 특히, 2008~2009년 위기 이후 경제는 성장하더라도 위태롭고, 무엇보다 양질의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하다. 지금의 20대들은 사실상 경제 성장을 경험한 적이 없고 그들에게 ‘자본주의의 장점’은 교과서에만 나오는 얘기다.

유가 보조금 삭감(프랑스·에콰도르·이란), 교통비 인상(칠레), 왓츠앱 세금 부과(레바논)처럼 긴축 정책이 분노의 뇌관 구실을 한 패턴의 근저에는 이렇듯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가 있다.

특히, 2008~2009년 경제 위기의 충격을 광물·석유·천연가스·대두 등 원자재 수출로 대응했던 신흥국들이 지금 투쟁의 한복판에 있는 경우가 많다. 이 나라들은 국제 원자재 호황과 가격 급등이 끝나자 신자유주의 개악을 강력하게 추진했고, 그 탓에 계급적 분노가 쌓여 왔다.

한편, 도시화와 노동계급의 성장으로 여성이 (여전히 차별에 시달리지만) 전보다 더 많이 사회로 진출했다. 이런 고통과 분노를 겪는 데서 여성과 남성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고 여성이 투쟁의 핵심적 구실을 하는 일이 흔하다.

세계적 반란에 공통된 또 다른 패턴은, 시위 초기에 정부가 ‘더 볼 것도 없다’는 듯이 강경하게 대응했다가 되레 시위가 격화하자 움찔 후퇴하는 것이다. 그만큼 경제적 압력이 큰 탓도 있지만, 엘리트와 지배자들이 서민과 동떨어진 특권의 세계에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해 사회적 불만에 대단히 무감각한 탓도 있다. 그래서 시위대, 특히 청년들이 불평등(한국에서 통용되는 말로는 “공정성”)과 부패에 민감한 것도 세계적 패턴이다.

투쟁에서 배우고 또 기여해야

그러나 이런 투쟁 물결과 나란히 강성 우익 세력도 세계적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미 미국, 인도, 브라질, 필리핀에서는 이런저런 형태의 강경 우익 정부가 집권했다.

특히, 최근 볼리비아에서 모랄레스 대통령이 쿠데타로 쫓겨난 것은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다. 우익도 사회 위기에 대응하고자 하는 것인데, 다만 인종차별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해법을 관철시키려 나서는 것이다.

그러므로 좌파들이 지금 벌어지는 투쟁에서 배움과 동시에, 투쟁에 동참해 약점을 메우려고 애쓰는 것이 중요하다.

첫째, 노동자들의 조직적 참여가 두드러진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전 시기의 항의 운동들에도 많은 노동자들이 개별적으로 참가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직 노동자들만의 무기인 파업이 자주 등장한다. 알제리·수단·칠레·에콰도르 등지에서 파업이 중요한 무기로 사용됐고, 홍콩에서도 50년 만에 정치 총파업이 벌어졌다.

물론 이 투쟁들에서 조직 노동자들이 언제나 지도적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지금 투쟁에 나서는 청년들은 노동조합의 참여에 이전 세대보다 개방적인 경우가 많다. 멸종반란과 여성 운동에서는 ‘학생 파업’, ‘여성 파업’의 이름으로 투쟁의 형태를 본뜨기도 한다.

따라서 좌파는 조직 노동자들의 구실을 강조하고 노동계급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해야 한다. 노동계급이 어느 때보다 커졌고, 지금 행동에 나서고 있고, ‘노동계급이 더는 사회 변혁의 주체가 아니다’ 하는 오랜 주장에 맞서 논쟁해야 한다.

둘째, 정치가 중요하다. 직장 바깥에서 먼저 시작된 정치적 항의 운동이 커지면서 조직 노동자들의 파업이나 시위 참가를 자극하는 패턴에 주목해야 한다.

이런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려면 좌파가 직장 바깥에서 벌어지는 투쟁, 특히 정치적 항의 행동에 나서는 청년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반면교사로 삼을 사례는 독일 좌파당(‘디링케’) 대표가 기후변화 운동을 벌이는 청년들을 ‘도덕주의에 빠진 이상론자들’이라고 폄훼한 것이다. 그 운동이 독일의 핵심 노조가 조직돼 있는 자동차 산업에 적대적이라는 이유로 그렇게 발언한 것이다.

그러나 청년들의 항의 행동은 노동계급의 광범한 불만과 연결돼 있고, 급진적 잠재력이 있다. 이 점을 이해한다면 분노한 청년들의 운동과 조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같은 적을 상대하고 있다고 조리있게 주장해야 한다.

한편, 지금 벌어지는 많은 투쟁들에서 정치적 구심이 분명치 않은 것은 약점이다. 예컨대 칠레의 경우, 어마어마한 투쟁과 수차례 벌어진 대규모 파업에도 불구하고 운동 내에서 유력한 정치가 무엇인지 특정하기가 어렵다.

이것이 약점인 이유는 투쟁의 정치 전망을 공개적으로 논쟁하기가 어려울수록, 운동이 상황 논리에 떠밀려 중요한 정치적 갈림길에 섰을 때, 과거에 불신 받았고 운동에서 미미한 구실만을 한 정치 세력에게 지도력이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 칠레에서는 사람들에게 불신 받았고 운동에서 존재감이 없었던 공산당이 이런 기회를 노리고 있다.

혁명적 조직 건설

운동에 필요한 정치가 어떤 것인지도 중요하다. 예컨대,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 투쟁 물결들에서 벌어졌던 ‘반신자유주의인가 반자본주의인가’ 하는 정치 전략 논쟁이 그렇다. 당시 투쟁 물결의 결과로 집권했던 라틴아메리카의 핑크 물결 정부들이 지금 위기에 처하거나 분노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그 저변에는 바로 이 문제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대체로 좌파 민족주의적이었던 이 정부들은 자본주의 자체에는 도전하지 않으면서 신자유주의 반대를 표방하는 전략을 따랐다. 볼리비아의 모랄레스는 그중 가장 급진적인 축에 속했다. 그는 실질적인 빈민 구제책을 시행했다. 하지만 자본가들에게 정면으로 도전하기보다는 원자재 호황에 기대는 방식을 택했다. 이를 위해 자신의 지지 기반인 원주민 운동과의 충돌도 불사했다. 최근 볼리비아의 쿠데타는 모랄레스 정부가 여러 해에 걸쳐 아래로부터의 지지가 약해진 데다, 경제 위기를 계기로 강화된 우익의 공세에 취약해진 결과였다.

혁명적 좌파는 우익의 공세에 맞서면서도, 자본주의 자체에 도전하는 혁명적 정치가 중요하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한다.

따라서 혁명적 조직의 건설이 중요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투쟁에 나서는 지금, 혁명적 정치를 단지 선전만 하거나 아니면 정반대로 운동 자체면 충분하다며, 개혁주의자들을 상대로 혁명적 정치를 옹호하는 논쟁을 회피해서는 운동을 정치적으로 무장시킬 수 없다.

이 논쟁은 대단히 중요하다. 올해 미국의 혁명적 조직이던 국제사회주의단체 ISO가 붕괴하자 혁명적 조직 건설이 불필요하다는 주장이 국제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이런 주장을 한다. “오늘날 노동계급이 사기 저하해, 계급의 전위라 할 만한 세력을 찾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혁명적 조직을 건설하려는 것은 운동을 불필요하게 분열시킬 뿐이고 따라서 종파주의다.”

그러나 지금 세계 곳곳에서 투쟁을 벌이는 수백만 대중이 계급투쟁의 전위가 아니면 무엇이라는 말인가.

혁명적 조직의 건설을 대규모 반란이 터질 때까지 미루면 그만큼 혁명이 실패할 가능성만 커진다. 100년 전 탁월한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의 안타까운 죽음이 우리에게 전하는 교훈이다.

지금은 세계적 투쟁 물결의 초입일 뿐이다. 작더라도 혁명적 조직을 착실히 건설하면서, 세계적 흐름에 맞춰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 대기론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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