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7일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정부가 체결한 한·일 ‘위안부’ 합의가 위헌임을 확인해 달라는 헌법소원을 각하했다. 한·일 ‘위안부’ 합의가 “헌법소원심판 청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 체결 이후 ‘위안부’ 피해 할머니 29명과 유족 등은 정부가 피해자들을 배제한 채 합의해 재산권과 알 권리 등의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그러나 헌재는 한·일 ‘위안부’ 합의가 “정치적 합의이며 이에 대한 다양한 평가는 정치의 영역에 속한다”며 “해당 합의로 인해 [피해자들의] 법적 지위가 영향을 받는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헌법소원과 동시에 한일 ‘위안부’ 합의로 생긴 고통을 보상하라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냈었다. 하지만 2018년 1심 재판부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패소로 판결했다. 당시에도 이번 헌재 결정과 비슷한 이유를 들었다. “이러한 합의로 원고들 개인의 일본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했다고 볼 수도 없다.” 이번 헌재 판결도 과거 법원 판결의 연장선으로 보이는 이유다.

물론 헌재 판결 하루 전인 12월 26일, 손배 소송 2심에서는 재판부가 1심 판결과 다르게 국가를 질타하며 강제조정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이 판결도 본질은 얼버무리기에 지나지 않는다. 손해배상 청구 소송인데 명확히 책임을 따져 물어 배상 액수를 정하지 않고, 그저 정부더러 “향후 피해자들의 존엄과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대내외적인 노력”을 하라며 ‘조정’안을 내는 것으로 마무리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헌재의 결정은 ‘위안부’ 문제를 한·일, 한·미·일 관계에 종속시켜 해결하려는 정부의 입장을 돕는 판결이자 과거를 덮자는 강대국들의 요구에 타협한 결정이다.

책임 회피 

당초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는 미국이 중시해 온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를 위해 과거 일본 제국주의에 희생된 사람들을 또다시 희생시킨 것이었다. 10억 엔(약 106억 원)에 일본 국가의 전쟁 범죄 책임을 면하게 해 준 이 부당한 합의에 대중적 공분이 들끓었다.

대통령 문재인은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위안부’ 합의가 무효라더니 당선 후에는 합의 파기는커녕 재협상 시도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하자 그마저도 막으려 들었다. 2018년 6월에 문재인 정부의 외교부는 이 헌법소원을 각하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헌법재판소에 냈다. 

이번에 헌재는 당시 외교부가 주장한 논리를 그대로 반복했다. 한·일 ‘위안부’ 합의가 “정치적 합의”일 뿐이며 피해자 개인들에게 배상청구 등 일본 정부에 맞서 싸울 권리는 없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 아베 정부는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강변해 왔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과 더불어 한·일 ‘위안부’ 합의가 그 근거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 합의를 그대로 두고 피해자 개인들한테 알아서 일본에 맞서 싸우라고(또는 그럴 권리가 있다고) 하는 것은 뻔뻔한 책임 회피일 뿐이다.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를 대변하지는 못할망정, 피해자로 하여금 제대로 된 사과와 배상 없이 일본의 전쟁 범죄를 용서하도록 강요한 일은 명백히 피해자들의 기본적 권리를 침해한 일이었다. 이런 국가의 행위가 “헌법소원 대상”이 아니라는 건 말도 안 된다.

외교부는 헌법재판소의 결정 직후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존엄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해 가능한 노력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일 ‘위안부’ 합의를 그대로 두고, 피해자들의 소송을 각하하도록 재판부에 압력을 넣은 당사자가 “피해자의 명예·존엄 회복”을 운운하는 것은 기만일 뿐이다. 

한편, 같은 날 헌재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2012년 ‘국가가 구제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며 낸 헌법소원 건에서도 각하를 결정했다.

‘위안부’, 강제징용 등 과거사 문제는 한·미·일 동맹 강화라는 오늘날 제국주의 질서와 긴밀하게 연결된 문제다. 문재인 정부가 앞에서는 피해자들을 위로하면서 여론의 눈치를 살피지만, 끝내는 번번이 미국과 일본의 압력에 타협하는 이유다. 그리고 이런 지배계급과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법관들이 타협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위안부’, 강제동원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 실마리를 한·미·일 동맹에 반대하는 제국주의 반대 투쟁에서 찾아야 하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의 위선과 제국주의와의 타협은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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