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마르크스가 지적했듯이, 가장 근본적인 층위에서 자본주의는 순환을 기반으로 한다. 자본가들은 자본을 이용해 원자재·설비·노동력을 작업장에 끌어모으고는 노동력을 착취해 재화와 서비스를 만들어 낸다.

자본가들은 재화와 서비스를  다른 자본가나 노동자에게 판매해 이윤을 내고 자본을 증식하려 한다. 그런 다음에는 더 많은 원자재와 설비를 구입하고 더 많은 노동력을 고용해 이 과정을 반복한다.

어느 곳에서든 그 이유가 뭐든지 간에 이 순환의 고리가 끊어지면 위기가 터진다.

이번 코로나19가 일으킨 충격을 보자. 모든 나라에서 노동력의 활동이 제한됐다. 원자재·설비 공급에 지장이 생겼다. 많은 재화·서비스의 판매가 멈추다시피 했다.

이번 충격의 진원지는 중국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중국은 전자제품 제조 등의 분야에서 세계 생산망의 중심지로 부상해 왔다. 그래서 중국발 충격은 이제 세계경제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

세계경제의 구성 요소들이 신용 사슬로 엮여 있어서 그 타격은 훨씬 심각해진다. 모기지·대출·신용카드 등의 형태를 띤 소비자 부채 규모도 방대하지만 기업들도 서로 돈을 빌려 주고, 은행에서 자금을 빌리고, 금융시장에 직접 투자해 왔다.

예컨대 “기업어음” 시장 규모는 1조 달러가 넘는다. 기업어음이란 기업들이 일상적 영업에 쓸 돈을 금융시장에서 단기간(보통 며칠에서 몇 주) 빌리려고 발행하는 것이다.

코로나19는 이런 금융시장을 얼어붙게 했다. 요즘 같은 때에 누가 어느 기업에 돈을 빌려 주려 하겠는가? 이런 시장들이 수축하면 자본주의의 원활한 작동에 필요한 자금이 씨가 마르는 “신용 경색” 위험이 생긴다. 

경제 위기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때마침 유가 전쟁을 단행하는 바람에 더 심각해졌다. 그전까지는 산유국들이 석유 공급량을 제한해 유가를 상대적으로 높게 유지하는 데에 합의해 온 덕택에, 상대적으로 비싼 미국 셰일 원유 생산이 한동안 수지 타산을 맞출 수 있었는데 말이다.

코로나19와 같은 대유행과 유가 전쟁이 만나면 언제든 세계경제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심각한 세계 경기 침체를 촉발한 것은 코로나19 이전부터 진행된 장기적 과정 때문이다.

2008~2009년에 닥친 지난번 대규모 위기는 자본주의 체제 전반에서 이윤율이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서 투자 수준이 부진한 결과 벌어진 것이다. 1980년대부터 자본주의 체제는 신용 확대에 크게 의존해서 작동했다.

그 결과 원자재, 주택, 첨단 기술 기업 주식 등 여러 번 거품이 생겼는데, 그 밑바탕에는 거대한 신용 거품이 있었다.

2008년은 이런 식의 확장이 한계에 이른 해였다. 위기는 거품 하나 — 손실 위험이 큰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 — 가 터지면서 시작됐지만, 과잉 확장된 금융 시스템 곳곳으로 순식간에 번졌고 경제 전반을 침체로 끌고 들어갔다.

과거에 경제 위기는 수익을 못 내는 기업들을 정리해 이윤율을 반등시키고 급격한 경기 확장을 재개할 가능성을 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들이 경제에 개입했다.

이들은 경기 부양책을 펴고 은행을 인수하고, 중앙은행이 유동성[자금]을 풀기 위해 금융 기업에게서 자산을 매입하는 양적완화를 시행하고, 금리를 이례적으로 낮췄다.

이런 조처는 경제가 추락하는 것을 막았지만 낮은 이윤율이라는 근본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지난 십 년 동안 투자 수준과 생산성 향상이 저조했다.

설상가상으로 양적완화와 제로 금리, 마이너스 금리 정책 때문에 금융 시장의 불안정성이 심화했다. 시장으로 풀려 나온 신용 상당 부분이 손실 위험이 높고 투기적인 활동에 쓰였고 주가가 아찔하게 치솟았지만, 결국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마자 주저앉았다.

그러나 값싼 신용은 “좀비 기업”들의 생존에도 쓰였다. “좀비 기업”들은 부채를 갚으며 연명했지만 그 말고는 하는 게 없었다. 이는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상식이었지만 이제는 주류 인사들도 인정한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지난 십 년 동안 기업들이 값싼 신용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다”고 지적하며 제너럴모터스(GM)·포드 같은 자동차 기업들, 노드스트롬·콜스 같은 미국의 대형 유통사가 부채에 의존하면서 위험에 처하게 됐음을 시사했다.

이 글을 쓰는 현재, 지배계급의 코로나19 위기 대응은 어떤 면에서 보면 2008~2009년에 시행한 조처의 재탕이다. 긴급 금리 인하, 양적완화 프로그램 확대 등이 그런 사례이다.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중앙은행인 미국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도 지난번 위기 때 마비된 주요 경제 영역에 개입했다. 여기에는 기업어음 시장과 환매조건부채권 시장도 포함된다.(환매조건부채권은 기업들이 [비교적 장기적인] 채권 같은 담보물을 [곧 되산다는 조건으로] 팔아 단기적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데에 쓰이는 것이다.)

연준은 중앙은행 간 통화 스와프도 확대했다. 이는 타국 중앙은행이 세계경제의 핵심 윤활제인 달러화를 확보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십여 년 전 신용 경색 직후에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달러가 씨가 말라서 그런 조처를 취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위기는 중앙은행이 해낼 수 있는 것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예컨대 이미 금리는 이례적으로 낮다. 양적완화도 이미 대대적으로 시행됐지만 이번에는 투자자들을 안심시키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경제에 직접 개입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정부는 기업에게 돈을 빌려 주거나 부채를 인수하고 자금을 그냥 퍼주기도 하며, 부분적 또는 전면적으로 국유화하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개인 계좌로 현금을 일회 지급하기도 했다. 그런 조처들은 정부가 소득을 보장하고 필수적 재화·서비스 생산을 조직하는 방향으로 더 나아가야 한다는 요구로 이어졌다.

이것이 더 발전할수록 필요에 따라 생산을 조직하는 계획 경제, 즉 사회주의적으로 운영되는 경제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더 분명해질 것이다. 단지 자본주의 국가가 기업을 운영한다고 해서 사회주의인 것은 아니다.

진정한 사회주의 경제는 아래로부터 민주적으로 운영돼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기본 전제 상당 부분이 뒤집힌 지금 상황은 적어도 그런 그런 목표를 대안으로서 제기하기 좋은 조건이다.

이미 코로나19 위기는 경제 붕괴와 공중보건 위기라는 두 재앙을 헤쳐 나가야 하는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상당한 연대 의식을 불러일으켰다. [예컨대 북미, 유럽 등지에서는 이번 위기로 어려움에 직면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조직하기 위해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상호 부조 단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혁명가들은 이런 연대를 자본주의의 논리와 완전히 단절하자는 호소로 발전시켜야 한다. 자본주의의 논리는 거듭 실패를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