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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교육이 직업계고 학생을 죽음으로 내몰다

지난 4월 8일, 경북의 S특성화고 기숙사에서 2020년 지방기능경기대회를 준비하던 한 학생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제 겨우 18살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었다. 안타깝게도 이 학생은 혹독한 기능대회 훈련과 경쟁 압박에 시달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듯하다. 이 학생은 지난해부터 너무 힘들어서 기능반을 나가고 싶다고 여러 차례 밝혔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학생의 죽음은 잘못된 경쟁 교육제도에 의한 사회적 타살이라 할 수 있다. 공업, 가사 등 직업계 학교들은 극심한 기능대회 경쟁으로 내몰린다.

직업계고 학교들은 기능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야 대기업에 취업할 수 있다면서 기능대회 준비 학생들을 선발해 기능반을 만들고 별도의 훈련을 시킨다.

코로나19로 4차례에 걸쳐 등교 개학이 연기되는 상황에서도 직업계고 학교들은 합숙훈련을 강행했다. 기능대회 성과가 학생들의 생명과 안전보다 우선이었던 것이다.

잔혹한 경쟁교육

직업계고 학생들이 참여한 기능대회 ⓒ출처 〈교육희망〉

기능대회 훈련 과정은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 아니다. 기능반은 동아리 같은 곳이 아니다. 기능반 활동이 학생들의 희망을 위한 선택이라는 말은 허상이다.

기능대회 입상 성과는 학교의 선전 도구로 활용된다. 그래서 기능반 학생들은 기능대회 입상 경쟁에 혈안이 된 교장과 관리자들의 관심 대상 1호다.

학생들은 매우 폐쇄적인 조건에서 철저히 통제된다. 장기간 훈련으로 건강권과 학습권도 침해당한다.

전교조가 직업교사 조합원 19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65.7퍼센트는 기능반 하루 평균 훈련 시간이 6시간 이상이라고 답했다. 심지어 오후 8시가 넘어서도 ‘야간 훈련’을 한다는 답변은 86.9퍼센트에 달했다.

한 기능대회 수상자 학생은 수상 소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침 7시부터 훈련을 하는데 하루의 시작과 끝이 모두 훈련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오늘 작업한 내용을 정리하고 분석하고 문제점 파악하고 청소까지 마치면 오후 11시가 됩니다. 대회기간에는 새벽 3시까지 훈련을 하기에 정말 힘듭니다. 이런 고된 훈련 때문에 기능반을 하다가 그만두는 사람도 많습니다.”

기능대회 준비 학생들은 일반교과 수업도 제대로 듣지 못한다. 기능반 학생 10명 중 7명은 일부 수업만 참여하고, 10명 중 4명은 아예 수업에 참여하지 못한 채 하루 종일 대회 준비에만 매달려야 한다.

경쟁 압박이 심하다 보니 지도교사와 학생 또는 학생들 간의 관계도 위계적이고 항상 갈등이 유발된다.

보통 기능반은 직종별 소수 학생으로 1~3학년이 구성되는데, 대회에 출전하는 3학년들을 위한 작업 준비과정과 뒷정리 등은 저학년의 몫이 된다. 이 과정에서 갈등이 심해지면 폭력이 벌어지기도 한다.

학교가 교사를 압박하고, 교사가 3학년을 압박하면, 3학년은 후배들을 압박한다. 후배들이 3학년이 되면 다시 후배들을 압박한다. 이렇게 억압적인 경쟁교육이 폭력의 대물림을 양산한다.

기능대회를 통해 취업 혜택을 받는 학생들은 극소수다. 기능반 중도 탈락자와 기능대회 참가자를 합하면 약 1만 5000명이다.

이 중 실제 우승하여 취업의 혜택을 받은 학생은 50명이 되지 않는다. 대기업 취업도 만만치 않다.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 수준이다.

우승하지 못한 학생들은 버려진다. 기능대회 준비에만 매진한 학생들은 일반교과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해 진로 선택에서도 어려움이 많다.

기능대회와 기능반 활동의 폐해와 학생들의 고통이 계속되고 있지만, 교육부는 제대로 된 개선책을 내놓은 적이 없다.

이번 S특성화고 학생의 죽음에 대해 교육부는 철저한 자기 반성도 없이 형식적인 제도 개선 검토만 운운했다. 경쟁이 아닌 평등과 협력을 지향하는 교육을 약속한 문재인 정부는 죽음의 경쟁에 내몰리는 학생들의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이윤을 위한 노동력

기능대회는 박정희 정부 때 만들어졌다.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을 추진하던 박정희 정부는 ‘경제발전과 숙련기술인력 양성’이라는 과제를 내세워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참가했다. 이에 따라 국내 기능대회들이 생겨났다. 이는 한국 자본주의 성장에 필요한 숙련 노동자들을 길러내기 위함이었다.

1970년대 이후 기능대회는 직업계고 학생들과 당시 대학 미진학 기능공들의 치열한 경쟁의 장이 됐다. 경쟁에서 승리한 소수의 수상자들에게 대학 진학 등의 혜택을 부여하며 직업계 고등학생들의 경쟁을 부추겼다.

직업계 학생들은 실습 과정에서 저임금 노동착취와 산재 위험에도 내몰리고 있다. 많은 학생들이 기업이 요구하는 노동력이 되기 위해 열악한 조건을 감내하며 치열한 경쟁에 스스로를 갈아 넣고 있다.

따라서 죽음의 경쟁을 부추기는 기능대회는 사라져야 마땅하다. 아이들은 기업의 이윤을 위한 미래의 노동력 상품이 아니다.

삶에 필요한 노동과 지식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교육이 보장돼야 한다. 그러려면 경쟁 교육 제도와 이윤 경쟁 체제가 근본적으로 변혁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