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민족주의는 ‘자연스러운’것이라 한다. 국제 스포츠 경기 대회에서 우리 나라 팀을 응원하고, 국민경제를 살리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전쟁에서 자기 민족 국가를 지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한다. 그러나 민족주의는 결코 자연적인 것도, 당연한 것도 아니다.

박노자 씨의 신간 《나는 폭력의 세기를 고발한다》는 한국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와 민족국가가 근래에 생겨난 산물이며 그 발생 과정이 전혀 자연적이지 않았음을 설득력 있게 증명한다.

민족 국가의 이상을 꿈꾸기 시작한 1백년 전 구한말 개화파들의 근대화 프로젝트는 어떤 내용이었을까? 민족주의를 예쁘게 포장하는 군대, 스포츠 등 각종 담론들은 언제,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을까?

개화기 근대화 건설의 핵심은 경찰국가와 징병제였다. 개화파들에게 향촌 사회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조선은 ‘야만’이었고 인구 1천 명당 1명의 경찰관을 자랑했던 독일제국은 최고의 ‘문명’으로 간주됐다.

일본 경찰과 감옥을 흠모했던 김옥균, 박영효, 유길준 등 개화파들은 신흥 자본가, 관료, 지주들의 사유재산을 철저하게 보호하는 “문명화된 진보의 지킴이”가 필요했다.

또한 근대화된 경찰과 군대를 보유한 국가를 세금 뜯어가는 ‘괴물’ 정도로 여기는 평민들에게 ‘국가권위’를 교육시킬 수 있는 묘법이기도 했다.

그래서 〈독립신문〉을 운영한 윤치호, 서재필 등 개화파들은 징병제를 통해 ‘복종정신·위생·예절·준법’을 가르치는 평민개조기구로서 군대문화의 일상화를 꿈꿨다.

군대의 호전성과 규율을 좀더 내면화시키기 위해 개화파들은 무술과 스포츠에도 주목했다.

조선 침략을 주도한 주한 일본인에 의해 전해졌던 국가주의적 유도를 한국 민족주의자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 것 같지만, 당시 상당수 민족주의 지식인들은 유도 보급에 앞장섰다.

스포츠로 체력을 단련하면 ‘근면한 근대인’으로 조선인을 ‘개조’하고, 스포츠의 경쟁으로 민족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민족 국가의 ‘힘’에 집착하는 개화파들은 역사를 각색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오늘날 중국의 ‘동북공정’에 격분하는 것처럼 1천5백년 전의 고구려 사를 각별히 소중히 여기는 민족주의적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은 불과 1백년 전인 개화기 때부터였다.

개화파들은 신라·백제·고구려 삼국 간 세력균형으로 특별한 의미가 없었던 고구려사를 ‘민족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역사로 포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의도는 조선인 뇌리에 군사주의적 애국심을 심어야 하는데, 동아시아 역사에서 수나라, 당나라에 대한 승리로 유명한 고구려야 말로 그들의 의도에 가장 부합했던 것이다.

개화기 계몽 단체의 주요 회원들은 지주나 전현직 관료, 향리, 상인이 다수를 이루었다. 그래서 개화파는 전근대적인 소작제도의 모순과 지주의 수탈 등은 철저하게 외면했다.

민족의 ‘힘’을 강조했음에도 정작 개화파들은 무기력하고 소심했다. 고종에 의해 탄압을 받아도 제대로 도전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고종만이 개화파가 대변하는 지주 유산층의 실질적인 보호자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종에게 도전하는 동학, 활빈당, 의병들은 개화파들에게 민주혁명의 원천이 아니라 자신들의 재산을 위협하는 도적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후발 근대화 국가의 신흥 부르주아지들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구 지배세력과 제국주의세력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트로츠키의 분석을 한국에도 적용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저자는 개화파들이 민중을 탄압한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와 대량학살주범 나폴레옹을 근대화의 ‘영웅’으로 열성적으로 흠모했고 그들의 모델은 미국, 서구, 일본의 제국주의 국가였음을 폭로한다.

마르크스주의자는 민족주의를 전혀 수용하지 않지만 제국주의에 맞서는 저항적 민족주의를 비판적으로 지지해야 한다.

그와 동시에, 저자는 애초 민족국가 수립을 설계했던 자들의 목적은 이윤추구를 위한 지배자들의 ‘힘’기르기였기 때문에 민족주의가 우리 운동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훌륭하게 증명한다.

늘 이런저런 민족적 포장으로 이윤 추구를 위한 폭력과 권력을 덮어왔던 ‘민족 국가’를 넘어 다른 세계를 꿈꾸는 이들에게 이 책은 매우 유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