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간 한국에 살며 이주노동자 차별과 착취에 맞서 활동했던 네팔 이주노동자 미누(본명 미노드 목탄) 씨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안녕, 미누〉가 5월 27일 개봉했다.

미누 씨는 1992년 21살의 나이로 한국에 왔다. 아직 이주노동자를 도입하는 제도조차 없던 때였다. 처음부터 미등록 체류를 각오하고 ‘15일짜리 비자’로 한국에 와 식당, 봉제공장 등 한국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일했다. 지금도 전체 이주민의 18퍼센트인 39만 명이 미등록자이고, 그중 약 29만 명은 미누 씨처럼 처음부터 미등록 체류하며 일할 생각으로 취업이 허용되지 않는 비자로 입국한 사람들이다.

그렇게 10년 넘게 한국인 동료들과 ‘이모’, ‘형·동생’ 하며 살던 어느 날, 미누 씨는 대대적인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을 하겠다는 정부의 발표를 뉴스로 접한다. “나 잡으라는 거네? 이게 뭐지?” 어느새 자신을 한국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미누 씨는 보이지 않던 국경을 깨닫고 당혹한다.

미누 씨의 삶을 바꿔놓은 이 사건은 2003년 7월 고용허가제 국회 통과를 전후 해 당시 노무현 정부가 벌인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 추방이었다.

미누 씨가 한국에 온 이듬해부터 한국 정부는 산업연수제를 도입해 이주노동자 유입을 관리·통제했다. 이 제도는 ‘현대판 노예제’로 악명을 떨쳤다.

이주노동자들의 항의 시위 등 산업연수제 폐지 요구가 계속되자 노무현 정부는 고용허가제 도입을 추진했다. 그러나 고용허가제 역시 사용자들의 필요에 따라 값싼 외국인 노동력을 단기적으로 공급한다는 전제 위에 설계됐다. 그래서 작업장 이동 금지, 정주화를 막기 위한 체류 기간 제한 등 산업연수제의 문제점들은 그대로였다.

살인적인 단속 추방이 이어졌다.(고용허가제 국회 통과 당시 이주노동자의 78퍼센트가 미등록 상태였다.) 오랫동안 미등록 체류하며 한국에 적응하고, 노동조건 향상을 위해 작업장 변경을 해 본 경험이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계속 머무른다면 고용허가제 안착이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정부는 미누 씨 같은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380일 농성

이주노동자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무려 380일 동안 지속된 명동성당 농성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농성을 벌이며 저항했다. 미누 씨는 성공회대성당 농성에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미누 씨는 이주노동자 권리에 눈을 뜬다. 영화 속에서 미누 씨는 개인적인 해결책을 찾을 게 아니라 ‘모두를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스탑! 스탑! 스탑! 크랙다운! (단속추방 중단하라)” 음악에 재능이 있던 미누 씨는 한국어에 서툰 동료 이주노동자들이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구호를 노래로 만든다. 이 노래는 지금도 이주노동자 집회에서 즐겨 불리고 있다.

미누 씨는 이 일을 계기로 농성장에서 결성된 다국적 밴드 ‘스탑크랙다운’의 보컬을 맡게 된다. 이후 미누 씨와 ‘스탑크랙다운’ 밴드는 이주노동자들의 투쟁과 축제의 장이면 어디서든 볼 수 있었다. 메이데이, 이라크 전쟁 반대 집회, 한미FTA 반대 집회,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에서도 공연하며 한국 운동에 연대했다.

2006년 노동자연대(당시 다함께)가 주최한 좌파 포럼 ‘전쟁과 혁명의 시대’에서 ‘스탑크랙다운’ 노래를 부르는 미누 씨 ⓒ<노동자 연대> 자료 사진

또한 미누 씨는 다문화 강사, 이주노동자 방송국 MWTV의 대표 등으로 이주노동자의 삶과 투쟁을 알리기 위해 활발하게 활동했다.

이명박 정부는 이런 정당한 활동을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 2009년 미누 씨를 표적 단속해 강제 추방했다. 인생의 거의 절반을 보낸 곳에서 아무런 준비 없이 쫓겨난 미누 씨는 노동과 투쟁으로 한국에 기여한 모든 것이 부정 당하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나를 불쌍하게 그리지 마세요”

미등록 단속으로 추방된 후 통상 5년이 지나면 입국이 허용된다. 그런데 미누 씨는 8년이 지난 2017년 4월에도 입국이 거부된다. 이른바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던 것이다.

영화는 실의에 빠진 미누 씨를 위로하기 위해 밴드 멤버들이 네팔 현지로 날아가 공연하는 과정을 그린다. 2018년 1월, 밴드는 무려 9년 만에 ‘완전체’로 무대에 선다. 이주노동자를 상징하는 빨간 목장갑을 낀 미누 씨의 주먹이 다시 허공을 가른다. 공연이 끝난 후 “이제 죽어도 좋아”라던 그의 말은 그가 한국에서의 삶과 투쟁에 얼마나 큰 유대감을 가지고 있었는지 드러낸다.

그해 9월에는 미누 씨의 DMZ국제다큐영화제 참석이 허용돼 잠시 한국을 방문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다만, 2박 3일 동안 영화제 장소 내에만 머물러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박근혜퇴진 촛불운동이 정권을 바꿔놨지만 바뀐 정권이 허용하는 변화는 딱 그만큼이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미누 씨는 2018년 10월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향년 46세. 한국 방문 후 한 달 만이었다.

미누 씨는 영화 감독에게 “나를 불쌍하게 그리지 마세요”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그의 말처럼 이주민들은 내국인들과 동등한 주체로서 연대하고 투쟁할 잠재력이 있다. 그리고 진정한 정서적 유대는 국적이 아니라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고 함께 투쟁한 경험에서 형성된다는 것을 그의 삶은 보여 준다.

우리는 여전히 39만 명의 ‘미누’와 함께 살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만 미등록 이주민 2명이 단속을 피하려다 사망했고, 코로나19 지원 대상에서도 배제되는 등 고통을 겪고 있다. 이런 인종차별에 맞서고, 영화 제목의 ‘안녕’이 ‘굿바이’가 아니라 ‘헬로’라는 의미로 읽힐 수 있는 세상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안녕, 미누〉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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