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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미국·한국의 계속된 대북 압박이 낳은 결과

6월 16일 오후 북한 당국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공동연락사무소가 “비참하게 파괴됐다”고 보도했다. 공동연락사무소는 2018년 4월 김정은-문재인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의 합의로 개설됐다.

이번 일의 여파로 17일 통일부 장관 김연철이 장관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앞서 6월 13일 조선로동당 제1부부장 김여정은 “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 말이 나온 지 사흘 만에 전격적으로 폭파가 이뤄졌다.

그전부터 북한 김정은 정부는 대북전단을 문제 삼아 문재인 정부가 ‘적대행위 중지’를 약속한 남북 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규탄했고, 남북 간의 모든 통신선을 차단했다.

그래서 이번 폭파는 북한 김정은 정부가 공언한 연속적 행동의 일부인 셈이다. 6월 4일 김여정은 공동연락사무소 폐쇄 외에도 개성공단 완전 철거,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 등을 언급했다. 그리고 6월 13일 이렇게 밝혔다. “다음 번 대적행동의 행사권은 우리 군대 총참모부에 넘겨 주려고 한다.”

6월 17일 오전 북한군 총참모부는 금강산관광지구와 개성공단에 군대를 배치할 것이며, 2018년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철수한 비무장지대 민경초소(GP)를 다시 세우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서남해안 등 접경지 포병부대 증강 및 훈련 재개를 알렸다.

개성공단과 금강산은 북한 당국이 공단 입주와 관광지구 개발을 위해 휴전선 인근 군대를 철수시킨 곳들이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두 곳이 남북 화해·협력의 상징으로 여겨진 까닭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제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지구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다시 북한 군대가 들어오게 됐다.

더 중요하게도, 군사분계선(MDL)과 서해 북방한계선(NLL) 등지에서 남북이 충돌할 위험이 커졌다. 이곳들은 비교적 최근까지 남북이 여러 차례 충돌한 곳이었고, 이 때문에 접경지역 주민들의 안전이 위험해진 적이 많았다. 2018년 9·19 남북군사합의는 이런 위험을 방지하자고 맺은 합의였지만, 이번 사태로 그 합의는 휴지조각이 된 셈이다.

이로써 2018년 남북 정상회담의 합의들은 사실상 모두 파기됐다. 그리고 남북관계가 과거 대결 상태로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개성공단

피상적으로 돌아가는 형세를 본다면, 북한의 행동이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킬 주된 원인으로 보일 것이다. “화가 난다고 밥상을 모두 엎어버리는 행동”일 테니 말이다.

그러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상황을 관찰해 보면, 그림은 다르다.

우선, 미국과 중국의 제국주의적 갈등을 중심으로 한반도 주변 정세가 계속 악화되고 있었다. 예컨대 지난해부터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 발사가 ‘도발’이라는 지적들이 나왔지만, 사실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 미사일 경쟁을 주도하는 쪽은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국가들이었다. 문재인 정부도 지난해 북한보다 더 많은 미사일 시험 발사를 진행했다. 이런 경쟁 압력에서 북한이 자유로울 수 없다.

무엇보다, 북·미 정상회담이 여러 번 열렸음에도 북·미 관계는 지금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주로 중국을 겨냥하나 북한 국가의 생존에도 심각한 위협이 되는 미국 군사력의 전진 배치, 북한 점령 상황을 가정한 한미연합훈련은 계속 진행됐다.

대북 제재는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 지난해 하노이에서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은 트럼프에게 영변 핵시설을 폐기할 테니 일부 제재를 해제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는 요지부동이었다. 트럼프 정부는 북·미 관계를 서두를 필요 없다며 북한의 선 비핵화를 고수해 왔다. 제재와 미국의 군사 위협에 시달리는 북한 당국 처지로선 북·미 관계의 교착으로 초조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 와중에 문재인 정부는 미국의 대북 정책에 보조를 맞췄다. 국제 대북 제재의 선을 넘지 않고 그것에 협력했고, 북한에 중단을 약속한 한미연합훈련을 계속했다.

지난해 1월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은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조건 없이 재개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름에 역대급 군비 증강 계획을 내놨다. 결국 10월에 김정은은 금강산 남측 시설을 모두 철거하라고 지시했다.

이번 공동연락사무소 폭파는 6월 15일 대통령 문재인의 메시지에 대한 북한 당국의 답변이기도 하다. 문재인은 대화의 창을 닫지 말자면서 남북이 “작은 일부터, 가능한 것부터” 시작하자고 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남북관계는] 더디더라도 국제사회의 동의를 얻으며 나아가야 한다” 하고 말했다. 17일 김여정이 “제재의 틀 안에서” 대통령 문재인이 “철면피한 감언이설”만 늘어놓는다고 비난한 까닭이다.

이런 맥락을 보면, 한반도를 불안케 하는 주된 원인을 북한의 “이해하기 어려운 과잉행동”으로 보는 것은 심각하게 전도된 시각이다.

식량 사정 악화

최근 북한 내부 사정이 어려워진 점도 북한이 대북전단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한 배경인 듯하다. 6월 3일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북한의 식량 사정이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고 보고했다.

코로나19 대유행이 벌어지자 북한 당국은 국경을 막아야 했고, 이 때문에 교역이 원활하지 않게 됐다. 유엔 북한 인권특별보고관 토마스 오제아 퀸타나는 중국과의 교역이 급감해 북한이 “심대한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북한 당국이 대북전단을 규탄하며 북한 곳곳에서 군중대회를 여는 것 등은 모두 이런 내부 사정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북한 대중의 불만에 대처하는 데 고심하는 북한 당국이 내부의 어려움을 외부의 적 탓으로 돌려 내부 결속 효과를 얻으려 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에게 기대할 수 있을까?

이렇게 남북 간에 긴장이 높아지는 와중에 일부 우파 단체들은 대북 전단을 살포하려고 한다. 현 시점에서 이런 행동은 자칫 남북 간 무력 충돌까지 부를 수 있는 “무모한 행동”이다.

그러나 진보·좌파가 대북 전단 살포를 법으로 금지하고 처벌하라고 정부에 촉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그런 제재 논리는 우리 편을 향한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접경지역 주민들이 대북전단 살포에 반대하는 행동을 지지하거나 진보·좌파가 대북전단 살포 현장에서 맞불 시위를 하는 게 나을 것이다.

한편, 남·북한 정부들의 합의로 한반도 평화가 진전될 것이라고 기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현 상황은 매우 곤혹스런 변화다.

그런 가운데 많은 진보 단체와 인사들이 문재인 정부가 2018년에 맺은 남북 합의들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점과 미국의 대북 정책에 보조를 맞춰 온 점 등을 옳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를 향해 태도를 바꿔 남북 합의 이행에 적극 나서라고도 촉구한다. 즉, 미국과 친미 우파에 더는 휘둘리지 말고 “우리민족끼리”의 길로 나아가 남북 합의들을 이행하라는 요구다.

그러나 지난 2년여의 경험을 돌아봐도, 진보가 문재인 정부를 한반도 평화 문제에서 설득하고 변화를 촉구할 만한 대상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증거는 정말 많다. 예컨대 문재인 정부는 북한에 “단계적 군축”을 약속해 놓고, 첨단 스텔스 전투기인 F-35를 도입했다. 그리고 주한미군 사드 배치에 협력하고 한국 미사일방어체계와 미국 미사일방어체계의 연동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부터 남북관계를 살펴보면 이와 같은 사례들은 차고 넘친다. 냉전 해체 이후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에 기대를 걸었고, 남한(특히, 민주당 정부들)을 향해 “우리민족끼리”를 강조했다. 그러나 북한의 이런 접근은 계속 실패해 왔다. ‘합의문에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미국은 새로운 명분을 앞세워 합의를 깨기 일쑤였고, 남한 민주당 정부들은 한미동맹을 중시하며 남북관계에서 후퇴하곤 했다.

한국 지배계급은 제국주의 세계 체제의 일원이고, 현존 제국주의 체제 안에서 나름의 이익을 추구한다. 이들은 미국과 대등한 관계를 맺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한미동맹을 통해 유형·무형의 이익을 얻고 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한국 지배계급의 정치세력이다. 민주당은 이미 세 번이나 집권했고, 그 과정에서 지배계급의 제1 선호정당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지배계급의 유기적 일부로 자리매김해 있다. 미래통합당만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도 친제국주의·군국주의를 지향하는 데 이해관계가 있는 것이다.

이런 점을 봐야, 문재인 정부가 남북 화해·협력 같은 포퓰리즘적 태도를 보이는 한편으로 국제 대북 제재를 준수하고 한미동맹 강화에 협력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미국 지배자들은 북·미 관계를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는 더 큰 맥락 속에서 다뤄 왔고, 그 점은 트럼프 정부도 마찬가지다. 북·미 정상회담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정부 하에서 북·미 관계 진전이 더딘 까닭이다. 오히려 트럼프 정부는 문재인 정부에 요구해 ‘한미워킹그룹’을 설치했고, 이를 통해 남북 교류·협력 정책의 속도 조절을 계속 주문했다.

물론 지금 정부를 향해 남북 합의 이행을 촉구하는 여권 인사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도 한미동맹 문제 등에서 대통령 문재인과 근본에서 다르지 않다. 예컨대 전 통일부 장관 정세현은 2018년 5월 남북관계가 한창 좋을 때 열린 민주노총 초청 강연회에서 민주노총 간부들을 향해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말라고 했다. 지난 5월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 문정인은 미국의 한 연구소 세미나에서 한국이 중국을 적대하기는 어렵다고 하면서도 “한국은 미국의 동맹이고 중국과는 전략적 파트너”라고 말했다. 여전히 한국한테 “최우선은 미국”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제국주의에 맞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구축하려는 노력은 문재인 정부와는 독립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좌파는 문재인 정부의 친제국주의·군국주의를 비판하고 반제국주의 노선을 분명히 해야 한다.

6월 16일에 게재한 기사를 17일에 업데이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