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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하먼의 새로운 제국주의

이 글은 지난 8월 18~21일 다함께가 주최한 포럼 ‘전쟁과 변혁의 시대’에서 크리스 하먼이 한 연설을 녹취한 것이다. 크리스 하먼은 이밖에도 자율주의, 21세기 혁명, 반전·반자본주의 운동의 미래에 대해 연설했다. 크리스 하먼은 《민중의 세계사》(책갈피)의 지은이이자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중앙위원이다.


신자유주의 옹호자들은 매우 모순된 주장을 합니다. 그들은 자유시장, 즉 상품과 자본이 국가 통제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게 국경을 넘어 이동하는 것이 자동으로 국가들 사이의 관계를 평화롭게 만들어 준다고 주장합니다.

영국 총리이던 마거릿 새처는 이런 주장의 핵심 내용을 잘 요약했습니다. 그녀는 “맥도널드 레스토랑이 존재하는 두 국가는 결코 서로 전쟁을 하지 않는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맥도널드를 유치하고 KFC를 유치해 평화를 얻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지난 20년 간 전쟁이 계속 일어났습니다.

미국과 서방 동맹들이 이라크 전쟁[1991년 걸프 전쟁 ─ 옮긴이]을 일으켰고, 전에 유고슬라비아로 통일돼 있던 국가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 국가들에는 모두 맥도널드 레스토랑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영국·프랑스는 [1999년]세르비아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습니다. 사람들은 잘 몰랐지만, 같은 기간에 아프리카 중부의 콩고(옛 자이르)에서도 전쟁이 일어나 3백만 명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또 다른 이라크 전쟁이 일어났고, 점령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직접 전쟁에 개입하지 않은 국가들도 엄청난 규모로 무장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세계 군비 지출은 19퍼센트나 늘었습니다. 오늘[8월 20일] 신문에 일본 총리 고이즈미가 일본 헌법을 개정하고 군비 지출을 늘리려 한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미국은 군비 지출을 엄청나게 늘려 왔습니다. 유럽연합도 군비 지출을 늘리라는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도 대만을 향해 많은 군대와 무기를 배치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포함하는 신자유주의와 자유 시장이 확산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전쟁이 빈번히 발생하고 군비 지출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우파 신자유주의자들만의 모순이 아닙니다. 일부 마르크스주의 좌파들도 비슷한 모순에 빠져 있습니다.

좌파 마르크스주의자들 중 일부는 세계화 속에서 자본주의 국가가 덜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마이클 하트와 토니 네그리는 《제국》에서 자본주의는 더는 국가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전통적으로 전쟁과 관계 있는 자본 간, 그리고 자본주의 국가 간 국제 경쟁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제국주의라는 개념이 더는 타당하지 않다고 기각합니다.

마이클 하트는 2년 전 이라크 전쟁 중에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이라크 전쟁은 평화를 바라는 미국 거대 자본의 이익과 어긋난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하트나 네그리와는 약간 다른 주장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캐나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인 샘 긴딘과 레오 파니치는 자본주의에 국가가 필요하지만 자본주의에는 오직 하나의 국가, 즉 미국 국가만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새로운 제국의 도전》, 한울, 2005년)

그들은 다른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은 미국 국가의 지배를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이든 일부 좌파의 주장이든 이런 주장이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들은 자본주의의 야만성, 그리고 자본주의가 인류 전체를 위협할 수 있는 가능성을 과소평가합니다.

나는 그 이유를 설명하려 합니다. 마르크스는 자본가들을 “서로 싸우는 형제들”이라고 묘사했습니다. 그들은 노동자, 농민과 빈민 등에 대해서는 동일한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지만, 자기들끼리는 서로 죽기살기로 싸우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서로 죽기살기로 싸우지 않더라도, 다른 나라 자본가들에 맞서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자국 국가에 의존합니다.

자본주의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본가들은 기존의 전(前) 자본주의 사회의 국가를 자신들의 이익에 맞게 재편해 변모시켜 왔습니다.

역사상 최초의 자본주의 국가 중 하나인 영국에서 자본가들은 17~18세기에 기존 국가를 장악하고 해군을 재정비해서 세계를 정복하기 시작했습니다.

19세기에 자본주의가 급성장하면서 서유럽과 북미의 자본들은 국가를 장악했고, 이 국가의 군비를 증강해 해외 확장을 추구했습니다.

자본주의가 성장하면서 자본가들은 원료와 새로 착취할 곳 등이 필요했고, 자본주의 국가들의 육군과 해군은 해외로 나가서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는 아프리카의 3분의 1과 인도차이나와 베트남 북부를 포함한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영국은 아프리카의 나머지 3분의 1과 인도 전체와 중동의 대부분을 포함하는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일본에서 1880~90년대에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일본 국가도 조선·대만·만주를 포함한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이런 제국들은 단지 자기 지역 사람들을 착취하는 데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다른 자본가들이 자기 지역 사람들을 착취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데도 관심이 있었습니다.

영국은 인도 지배권을 확고히 하기 위해 처음에 프랑스를, 나중에는 독일을 몰아냈습니다.

따라서 제국 건설의 논리는 경쟁 제국 간 경제적 경쟁을 누가 어디를 지배하는가에 관한 군사적 경쟁으로 전환시킵니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제국주의로 이어지고, 제국주의는 서로 다른 제국주의 간 충돌을 낳습니다.

그래서 20세기 전반에 ‘누가 어디를 지배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자본주의 국가들끼리 끔찍한 전쟁을 벌였습니다.

1903~05년에는 만주(중국 북부)와 조선을 누가 지배할 것인가를 두고 러일전쟁이 일어났습니다.

1914년에는 세계를 누가 지배할 것인가를 두고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한편으로, 영국과 프랑스와 러시아를 다른 한편으로 해서 제1차세계대전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1930년대에는 일본이 극동에서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등 다른 제국들의 지역으로 진출함에 따라 전쟁이 터졌습니다.

그리고 독일이 영국과 프랑스로 영토를 확장하려 하자 또 전쟁이 터졌습니다.

그 때를 “고전적 제국주의 시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레닌은 《제국주의 ─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에서 그 시기를 분석했습니다. 그는 당대 세계 자본주의는 전쟁과 불안정한 평화를 반복해서 겪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최근 네그리·하트와 다른 사람들은 레닌이 분석한 시대와 비교해 오늘날 자본주의는 완전히 변했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제국주의적 단계는 과거의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물론 레닌이 《제국주의》를 쓴 이후 지금까지 90년 동안 자본주의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자라면 마르크스가 이랬고 레닌이 저랬기 때문에 그 주장이 오늘날에도 자동으로 유효하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자는 구체적 현실을 분석해야 합니다.

나는 4가지 근본적 변화가 일어났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미국의 군비 규모 증가가 워낙 컸기 때문에 나머지 자본주의 국가들의 규모를 압도하게 됐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 군사력은 유럽연합 소속 국가들의 군사력을 합친 것보다 4배 이상 큽니다. 따라서 가까운 장래에 유럽이 미국과 전쟁을 벌일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둘째, 자본주의 기업들의 국경을 넘나드는 활동이 확대되자 누구를 공격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놓고 자본가들이 상당히 신중해졌습니다.

미국 자본가들은 자신의 공장이 있는 다른 나라를 폭격하는 것에 별로 열의가 있진 않겠지요. 실제로 미국 최대 기업 중 하나인 월마트는 중국의 공장에서 점점 더 많이 상품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월마트는 미국과 중국이 서로 전쟁을 벌이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1945년 이후 주요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에 전쟁이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신에 1950~53년 한국에서, 그리고 베트남·알제리·아프리카 등 다른 제3세계 나라들에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두 가지 요인 때문에 전쟁이 일어날 확률이 낮아진 반면, 또 다른 두 가지 요인은 전쟁 발발 가능성을 높였습니다.

먼저, 오늘날 미국은 전처럼 다른 국가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면서 자기 의지를 관철시키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소련과 냉전을 벌이던 당시에는 모든 유럽 열강과 일본 등이 결국에는 미국이 원하는 대로 행동했습니다. 소련이 두려웠기 때문이었죠.

오늘날 그들은 단지 미국이 시키는 대로만 행동할 이유가 없습니다. 또, 중국 같은 나라는 훨씬 강해졌기 때문에 중국 지배자들이 미국 지배자들이 원하는 대로 행동할 이유도 없습니다.

인도처럼 덜 중요한 국가도, 그리고 북한처럼 훨씬 약한 국가도 어떤 위협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자동으로 미국의 의도에 따를 이유가 없습니다.

전쟁 발발 가능성을 더 높인 마지막 요인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자본의 세계화’ 때문에 자본주의에는 국가가 덜 필요해졌다는 주장은 완전히 잘못된 것입니다.

자본가들이 주로 특정한 한 나라에서 활동할 때, 그들은 자신이 근거하고 있는 국가가 국내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보호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일단 자본주의가 국제적으로 되면, 자본가들은 전 세계에서 자신의 이익을 보호받을 방법을 강구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미국 대기업 자본가이고 유럽과 아시아·일본 등지에 투자했다면, 이런 투자들을 어떻게 보호하겠습니까?

여러분은 미국 국가가 국제적으로 자신의 힘을 사용해서 다른 국가나 기업들이 미국 기업의 이익을 가로채지 못하도록 조처해 주기를 바랄 것입니다.

유럽이나 영국의 자본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영국 국가가 국제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보호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죠.

여러분이 현대나 LG처럼 유럽에 투자한 한국 기업이고 그 투자가 보호받기를 바란다면, 유럽 국가들이 여러분의 투자를 보장하도록 한국 국가가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리고 단지 투자 보장뿐 아니라 무역 협상, 자유무역협정, WTO·IMF·세계은행 협상, 그리고 환율 협상도 국가에 의존하게 되고, 여러분이 본거지를 두고 있는 국가가 협상 과정에서 최대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바랄 것입니다.

이것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시대에 국가가 덜 중요해지기는커녕 더 중요해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유럽·일본·중국·한국의 자본가들은 “미국 국가가 우리 이익을 보호해 줄 거야” 하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국 국가가 사실상 보잉, 마이크로소프트, 제너럴모터스, 포드 등 미국 대기업의 통제를 받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미국에서 자신의 이익을 보장해 주도록 미국 국가에 압력을 가할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합니다.

이런 자본주의 국가들은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세계에서 자신이 나름으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하고, 이를 위해 군사력을 가질 필요를 느끼고 있습니다.

때때로 그들은 미국의 전쟁을 지지하고, 때로는 스스로 소규모 제국주의적 모험을 벌입니다.

그래서 지난 20년 동안 서로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은 단지 경제적 협상에서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군사적 분쟁에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서로 다퉈 온 것입니다.


이제 저는 이런 틀을 사용해 이라크 전쟁 문제를 분석하려 합니다.

중요한 것은 미국이 여전히 군사적으로 최강대국이지만, 경제적으로는 옛날만큼 강력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 미국은 미국 국내에서 세계 총생산의 50퍼센트를 생산했습니다. 그리고 옛 소련권을 제외하면 모든 곳에서 군사적·경제적으로 지배적 세력이었습니다.

따라서 미국은 다른 서방 열강과의 군사적·경제적 협상에서 우위를 점했습니다. 오늘날 미국은 여전히 군사적으로 강력하지만, 경제적으로는 EU 국가들을 합해 놓은 정도의 규모일 뿐입니다.

비록 미국 경제가 일본 경제보다 상당히 더 크지만, 미국 기업들은 지속적으로 일본 기업들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미국 지배계급 중 일부는 중국 경제의 성장을 보면서 20년 후에는 중국 경제가 미국 경제와 비슷한 규모가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해야 미국 대기업들이 세계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을까”를 걱정합니다. 바로 이런 논리 속에서 지난 10년 동안 미국 지배자들 내에서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라는 군국주의 집단이 성장했습니다.

그들은 다른 열강이 미국에 군사적으로 도전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는 군사력을 미국이 여전히 갖고 있고, 이런 군사력을 경제 분야에서도 우위를 차지할 수 있도록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군사력을 경제력으로 쉽게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에 필요한 원료를 지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 원료는 다름 아니라 석유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이유가 미국이 사용할 석유를 얻기 위해서였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미국은 엄청난 양의 석유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미국이 사용하는 석유의 대부분은 사실 중동이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에서 나옵니다. 석유에 관한 한 미국에게 멕시코와 베네수엘라는 사우디아라비아만큼 중요한 국가들입니다. 그리고 미국은 이미 자신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서아프리카의 산유국들에 손을 뻗었습니다.

중동산 석유가 중요한 이유는 중동산 석유가 미국보다는 유럽이나 일본, 특히 중국에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의 계산은 이라크를 장악하고,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미국의 통제를 공고히 하고, 이라크의 미군 기지를 사용해서 중동의 경비견인 이스라엘을 지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세계 석유 공급 과정을 통제함으로써 무역, 투자, 지적재산권 등의 문제에서 미국이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미국의 이라크 전쟁의 배경이었고, 세계에서 미국의 경제적 지위를 높이기 위해 어떻게 군사력을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었습니다.

그리고 세계화가 전쟁 가능성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긴장을 고조시키는지를 보여 주는 중요한 예이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다른 국가들이 자국의 무장을 강화하는 것으로 대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군비를 증강함으로써 미국에게 우리가 이렇게 무장해서 너를 도울 테니 대신에 너도 우리에게 대가를 줘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는, 미국에게 우리도 이렇게 무장을 했고, 비록 세계적 수준에서 너에게 도전할 수는 없지만 특정 지역에서 너를 골치 아프게 만들 만큼 충분한 수준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일본은 군비를 증강해서 미국의 유용한 동맹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려 합니다. 그리고 중국은 자신이 미국에 대적할 수 있고, 대만 문제에서는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려 한다는 것을 보여 주려 합니다.

물론 상황이 꼭 이렇게 계속되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앞으로 5년 뒤 일본이 중국과 함께 미국에 도전할 수도 있고, 중국이 러시아와 동맹을 맺을 수도 있습니다. 온갖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각 국가는 자본주의 세계에서 영향력을 놓고 다투면서, 협상 과정의 일부로서 군사력을 사용하려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감히 자기들끼리는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하려 하지 않을 수 있지만, 자신들의 강점과 약점을 확인하기 위해 다른 곳에서 벌이는 대리 전쟁에서는 기꺼이 그런 무기를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시가 단지 이라크만이 아니라 이란과 북한도 “악의 축”이라고 말한 이유입니다. 그 외에도 쿠바와 어쩌면 베네수엘라도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다른 주요 자본주의 열강 중 일부는 이미 비슷한 전쟁을 치러 왔습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는 미국의 이라크 침략을 반대한다고 말했지만, 아프리카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코트디부아르에 파병했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 열강 사이의 다툼 속에서 세계 특정 지역에서 세력 균형이 변한다면 사실 굉장히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처럼 휴전선 가까이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세계에서 상황이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또 다른 위험 지역으로는 인도와 파키스탄 국경 지역이 있습니다. 6년 전 두 국가는 거의 핵전쟁을 치를 뻔했습니다.

저는 독수리들이 날아갈 때 형성하는 대열을 예로 들어 세계 전체 상황을 묘사하곤 합니다. 지금 상황은 독수리 한 마리가 선두에서 날고 있고, 나머지들은 누가 바로 뒤에서 날아야 하는가를 둘러싸고 서로 다투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모든 독수리들은 전 세계 노동자와 농민과 빈민을 착취해서 살아가는 공통점이 있음과 동시에, 그들은 누가 가장 커다란 살점을 얻을 것인가를 둘러싸고 서로 치열하게 싸웁니다.

비록 현재 미국이 선두에서 날고 있지만, 다른 독수리들을 통제하지 못하면 계속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나머지 독수리들은 대열에서의 위치를 놓고 때로는 서로, 때로는 미국과 다툽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제가 방금 묘사한 상황이 너무 절망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앞서 묘사한 투쟁은 전적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착취, 살인, 야만을 위한 무의미한 투쟁이기 때문에 절망적인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독수리들은 그다지 영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새입니다.

그리고 지금 성조기를 입고 있는 독수리는 근본적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이라크는 2천만 명의 인구를 가진 나라인데, 미국은 겨우 14만 명의 군대로 기존 이라크 군대를 파괴하고 나면 나머지는 다 알아서 해결될 거라고 믿었습니다.

미국이 얼마나 오만했던지 가장 기본적인 계산조차 무시했습니다. 1956년에 소련은 현재 이라크 인구의 절반밖에 안 되는 헝가리를 침략할 때 저항을 억누르기 위해 50만 명의 군대를 동원했습니다.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를 침략할 때도 50만 명을 동원했습니다.

미국이 베트남을 굴복시키려 했을 때도 50만 명을 동원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부시는 14만 명의 병력을 가지고 이라크를 정복할 뿐 아니라 지배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현실은 이런 믿음과는 완전히 다르게 진행됐습니다.

미국 군대는 이라크에 발목이 잡혔고,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을지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미군이 이라크에 발목이 잡혀 있는 한은 미국 제국주의가 세계 다른 곳에서 패권을 유지하기가 점점 힘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 제국주의의 전통적 중심은 라틴아메리카였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이라크를 제압하지 못한 이상, 라틴아메리카에서 일련의 항쟁들이 발생하고 있는데도 미국은 이들을 위협할 만큼 충분한 군대를 동원할 능력이 없습니다.

따라서 미국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약하고, 북한에게도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라크는 미국 제국주의에 상처를 내어 곪게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 미국에서는 반전 운동이 부활하고 있고, 부시의 인기가 크게 떨어지고 있습니다. 베트남에서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미국은 쉽게 베트남에서 물러나지 않았고 결국 베트남을 포기할 때까지 야만적 행위를 반복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이라크에서도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시아파와 수니파를 이간질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팔루자를 폭격하고 초토화시켰지만, 무크타다 알-사드르의 시아파 항쟁은 그냥 내버려 뒀던 것입니다.

미국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든 얼마나 끔찍한 공포가 발생하든 상관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이라크에서 종족적·종교적 증오를 의도적으로 부추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주에 조지 W 부시는 핵시설 문제를 둘러싸고 이란을 공격하겠다고 다시 한번 으름장을 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모든 시위와 투쟁에 참가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전 세계 투쟁의 일부로서 진정한 국제적 사회주의 운동을 건설하지 않는 한, 제국주의적 모험과 야만이 계속 반복되는 것을 목격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토론 정리 발언

청중 중에서 여러 명이 ‘금융화’에 대한 질문에 답해 주셨는데, 저는 그 분들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프랑스의 아딱은 금융자본의 이해관계는 위험하고 산업 자본은 좋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산업 자본이 금융 자본만큼 야만적이고 잔인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이 남한이 아류제국주의라고 지적하셨습니다. 남한 다국적 자본들은 명백히 남한 국가가 나서서 자신들의 이익을 확보해 주기를 바랍니다. 어떤 기업은 통일을 자기 이해관계에 맞게 이용하려 들 것입니다.

그들에게 통일이란 남한 자본주의의 이익을 늘려 줄 2천만 명의 값싼 노동인구를 확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사회주의자들에게 통일이란 세계 제국주의에 맞서 함께 싸울 2천만 명의 동지를 얻는 것을 뜻합니다.

어떤 분은 WTO의 구실에 대해 발언했는데, WTO는 이중적 구실을 합니다.

하나는 가난한 나라들을 쥐어짜기 위해 강대국들이 회합하는 자리입니다. 다른 하나는 강대국들끼리 서로 격렬하게 다투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지금 WTO에서는 보잉과 유럽의 에어버스 컨소시엄 중 누가 앞으로 30~40년 동안 항공산업을 지배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브라질, 인도, 남아공 등 그 다음 층의 국가들 사이에서도 자국 기업의 유럽 시장과 미국 시장 진출 등을 놓고 갈등이 존재합니다.

여기서 두 가지 중요한 문제가 제기됩니다. 첫째, 강대국들은 어떻게 군사력을 경제력으로 전환시킬 수 있을까요?

1백 년 전에 이것은 매우 쉬웠습니다. 열강은 그저 약소국을 차지하면 됐습니다. 당시 일본은 조선을, 영국은 이집트를 점령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점점 더 많은 부가 일부 선진공업국과 그밖에 한국·중국·브라질·멕시코 등 몇몇 나라에 집중되면서 문제가 더 복잡해졌습니다.

그들끼리 세계를 나눠먹는 것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 간 전쟁의 문제를 제기합니다. 더구나 그들 중 일부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들 중 다수는 다른 선진 자본주의 국가와 전쟁을 벌일 준비가 돼 있지 않습니다. 모두에게 좋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보다 작은 국가를 상대할 때는 군사적 수단을 통해 경제적 결과를 얻으려합니다.

하나의 작은 예로, 지난해 미국은 아이티를 침공해 아리스티드 대통령을 제거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아이티를 점령할 충분한 병력이 없었기 때문에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끌어들였습니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은 미국에게 미국의 요청을 들어줄 테니 미국도 WTO·IMF 등 다른 쟁점에서 양보해 달라고 요구했을 것입니다.

사실, 가장 중요한 예는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이었습니다. 당시 이라크는 유럽과 일본으로 향하는 모든 석유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이라크의 행동은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왕도 겁먹게 만들었습니다.

당시 이라크를 다룰 만한 충분한 힘을 가진 국가는 미국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이 전쟁의 비용을 주로 댄 것은 일본과 사우디아라비아였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 개입의 대가로 그 다음 10년 동안 유가가 너무 오르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그리고 일본 정부는 결국 미국의 힘에 의존해야 한다는 아주 명백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미국의 요구에 호의적으로 대응해야 했기 때문에 일본 통화 가치의 수준을 미국 경제에 유리한 수준에 맞췄습니다.

나는 비슷한 사례를 수없이 들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 국가들이 경제적 쟁점을 놓고 서로 협상할 때 군사력이 영향을 끼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 그런 것은 아닙니다. 프랑스와 독일은 미국의 이라크 침략을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이 전쟁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잃을 것이 있나? 미국은 결국 이라크를 침략하고 난 뒤 엄청난 곤경에 빠질 텐데? 우리가 이것을 걱정해야 하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라크 침략 같은 전쟁이 핵전쟁으로 연결될 가능성에 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강대국 자신이 자신보다 약한 국가들이 군사적 야심을 갖도록 자극한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약한 국가들이 군사적 야심을 이루기 위해서는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두 가지 발전 경향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는 핵무기의 확산입니다. 이스라엘, 파키스탄과 인도 등이 핵무기 보유국이 됐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때에 따라 번갈아 가며 이 국가들의 핵보유를 지지해 왔습니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핵무장을 계속 지지해 왔지만, 파키스탄과 인도의 핵무장에 대해서는 때로는 파키스탄을, 때로는 인도를 지지했습니다.

이런 국가들이 다른 국가와 매우 불안정한 관계를 맺으면서, 그것이 전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 경우 핵전쟁이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 5~10년이 아니라 1백 년을 내다보면, 핵전쟁은 단지 가능성일 뿐 아니라 어디선가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번역 김용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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