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이 노사정 잠정합의안을 놓고 견해가 갈리면서 혼란과 위기에 처했다. 혼란과 위기에 처하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노사정 협의는 지난 3월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의 제안에서 비롯한 것이다. 지난해 초에 경사노위 참여가 좌절되자 김명환 위원장은 형세를 보며 가만히 기회를 살피다가 이런 우회로를 택했다.

김명환 위원장의 노사정 협의 제안은 여당이 대승을 거둔 총선 바로 다음 날인 4월 16일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이하 중집)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이후 실무 논의를 거쳐 5월 20일 노사정 본회의가 시작됐다. 그리고 6월 29일 잠정합의안이 나왔다.

그러나 막상 김명환 위원장이 잠정합의안을 들고 오자 민주노총 중집에서 논란이 시작됐다. 원래 중집은 노사정 협의 추진은 물론이고 양보교섭안 제시까지 만장일치로 지지했었다. 그런 중집의 다수 위원들이 보기에도 잠정합의안은 너무 형편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중집은 잠정합의안 추인을 사실상 거부했다. 그러자 애초에 합의 문안이 나오면 중집에서 승인받으려던 김명환 위원장은 입장을 바꿔, 임시대의원대회를 소집하고 나섰다.

이에 맞서 중집 위원 다수는 잠정합의안 폐기와 임시대대 소집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었다. 여기에 부위원장 8명 중 6명, 9개 가맹노조 위원장, 16개 지역본부장 전원이 동참했다. 또, 비정규직 조합원들을 비롯해 가맹/산하 조직의 각급 단위에서 잇달아 잠정합의안 반대 성명이 발표되고 있다.

그럼에도 김명환 위원장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임시대대 소집 강행 의사를 재천명했다. 김명환 위원장은 잠정합의안의 내용도 별문제 없고, 임시대대 소집 절차도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계급협력은 노동자 조건 지키기에 해롭다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노동자 측의 협조·양보 강조한 노사정 잠정 합의안은 폐기돼야 한다 ⓒ출처 국무총리실

민주노총 취지대로 합의안이 마련됐다?

김명환 위원장은 이렇게 주장한다. “민주노총이 제기한 코로나 위기 극복 프레임과 3대 핵심 의제 중심으로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진행되었고 그런 방향으로 최종안이 마련[되었다.]” 노사정 교섭이 민주노총의 기대대로 진행됐고 합의안도 그렇게 작성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김명환 위원장 자신이 6월 하순에 했던 주장과 정반대다. 당시 그는 기자회견을 통해 “열세 차례에 걸쳐 회의를 진행[했지만] 진전이 없다”고 했다.

그 뒤 사용자와 정부 측이 한 발 물러선 것도 아니므로 민주노총의 핵심 요구는 잠정합의안에 담기지 못했다. 가령 민주노총이 핵심 중 핵심 요구로 내놓은 “재난 시기 해고금지”를 살펴보자. 이 요구는 기업 지원 시 해고 금지를 의무화하고, 하청·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도 보장하라는 것이다.

이번 교섭의 책임자 중 한 명인 이주호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지난 4월 13일 〈한겨레〉에 칼럼을 실어 이렇게 말했다. “[사회적 대화가 성공하려면]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이번 대화의 목표는 “해고금지[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잠정합의안은 재난 시기 해고금지를 명시하고 있지 않다. 문재인 정부는 40조 원이나 되는 돈을 기업에 퍼주면서도 이런 의무는 기업주에게 부과하지 않은 것이다.

김명환 위원장 측은 “재난 시기 해고금지”라는 노사정 협의의 “목표”를 성취하지 못했고, 따라서 이번 노사정 대화가 성공하지 못했다고 시인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스스로 제시했던 잣대에 따라 정직한 평가를 내리는 것이다.

민주노총의 다른 핵심 요구들은 전국민고용보험제와 상병수당이다. 김명환 위원장 측은 이 요구들도 얻어 내지 못했다. 이 쟁점에 관해 잠정합의안은 하나마나 한 언급에 그치면서 오히려 후퇴를 열어 두기까지 했다.

자본의 개악 요구 저지했다? 계속되는 노동개악

김명환 위원장은 노사정 협의 과정에서 “자본의 개악 요구를 분명하게 저지했다”고 주장한다. 임금체계 개편, 탄력근로 확대 등을 “최종안에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것이 이런 주장의 근거다.

그러나 이것은 성과이기는커녕 오히려 노사정 협의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 줄 뿐이다. 노동자 측 교섭자가 애를 써서 어떤 문구를 합의문에서 뺀다 해도 정부는 괘념치 않고 그것을 추진할 것이라는 것이 벌써 입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7월 6일 민주당이 탄력근로를 확대하는 근로기준법 개악안을 제출한 것이다. 김명환 위원장이 탄력근로 확대를 합의문에서 뺐다고 자랑했지만, 여당은 잠정합의안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탄력근로제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명환 위원장이 잠정합의안을 장밋빛으로 색칠해 홍보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가 지금 이 순간 추진하고 있는 노동개악을 은폐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실제로 김명환 지도부는 여당의 탄력근로 확대 법안 발의를 비판 없이 넘겼다. 이틀 뒤 문재인 정부는 특수고용노동자 다수를 고용보험 적용에서 제외하는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는데, 김명환 지도부는 이것도 비판하지 않았다.

전국민고용보험은커녕 내팽개쳐진 특수고용 노동자들 6월 9일 차별 없는 고용보험 전면적용 요구 특수고용 노동자 기자회견 ⓒ출처 <노동과세계>

잠정합의안이 마중물이 될 수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잠정합의안의 미흡함을 인정한다면서도 이번 잠정합의안을 마중물로 생각하고 앞으로 채워 나아가자고 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잠정합의의 세부 항목들보다 노사정 대표자들의 합의라는 정치적 상징, 즉 노동자 측이 사용자와 정부 측에 협조하기로 했다는 상징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무시하는 것이다.

잠정합의안은 경제 위기 시기에 노동자 측이 사용자 측에 협조해야 한다는 점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기업의 힘만으로 고용유지 비용을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므로 노사정 연대와 협력이 절실하다.” “노동계는 … 경영위기에 직면한 기업에서 근로시간 단축, 휴업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경우 이에 적극 협력한다.”

그러나 경제 위기와 침체기에 노동자 측이 사용자와 정부 측에 협조하겠다는 것은 결국 조건 악화를 용인하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김명환 위원장이 “임금과 고용을 교환하는 기존 사회적 대화 방식을 전면 철회시[켰다]”고 자랑하는 것은 부정직한 것이다. 이번 잠정합의안에 명시된 “근로시간 단축(조업단축)과 휴업 조치에 대한 협력”은 임금 삭감을 뜻한다. 휴업수당 감액도 마찬가지 효과다.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전 세계 사용자들은 노동시간 단축(조업단축)을 통한 임금 삭감으로 이윤을 지키고자 애썼고,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이를 합의해 줬다. 이것이 이른바 임금과 고용 맞바꾸기였는데, 바로 이런 방향이 이번 민주노총 잠정합의안에도 담긴 것이다.

김명환 위원장과 그 측근들은 2008년 이후 이런 합의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폭로하지는 못할망정 조합원들에게 진실을 감추려 해선 안 된다.

노사정 실무 협의 과정에 관한 보고를 보면, 정부는 “합의 안 되는 것은 일단 이것 저것 다 빼고 합의 되는 것만으로라도 합의문을 만들자”는 입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어떻게든 노사정 합의를 한 다음에 이면에서 개악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계산일 것이고, 경제 위기 시기에 노사정이 협력하기로 했음을 부각하는 것 자체가 매우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최근 문재인도 노사정 합의 정신을 살려야 한다며 “대립적 노사관계”를 벗어나 “협력하는 새로운 노사관계”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정치적 상징을 함께 만들며 계급 협력을 약속한다는 것은 경제 위기 시기에 노동자들의 조건이 악화되는 것을 감수하겠다는 사실상의 항복 문서다. 그래서 상층 차원에서 어떤 구체적 양보가 명시되는 것보다 더 우려해야 할 점은 기층 차원으로 양보 또는 양보 분위기나 압력이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상층에서 그렇게 노사정 협력이 강조된다면 기층 사업장 차원까지 생산성 제고나, (고용 위한다며) 임금 양보 같은 것이 확대될 것이라는 점에서 노사정 합의 자체의 위험성을 명확하게 해야 할 것이다.

김명환 위원장의 임시대대 소집 정당화

김명환 위원장이 중집을 거슬러 임시대대 소집 의사를 밝히자, 중집 위원 다수가 노사정 잠정합의안 폐기와 임시대대 소집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대의원 연서명도 추진했다. 여기에 전국회의와 중앙파와 좌파도 동참했다.

그러자 김명환 위원장은 반대파에 이렇게 반박했다: 임시대대에서 잠정합의안 승인 여부를 결정하자는 것은 절차상 아무 하자가 없다. “조직운영상이나 규약상 지극히 정상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김명환 위원장은 지난 6월 일부 좌파단체들이 선제적 양보안을 반대하면서 임시대대 소집을 요구했던 것을 영악하게 이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형식적 민주주의를 앞세우는 것에 동의하면 김명환 위원장의 임시대대 소집에 효과적으로 반대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나 내용이 형식에 앞선다. 절차 규정과 형식적 민주주의보다 우선하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임시대의원대회를 무슨 목적으로 소집하느냐는 문제가 그것이다. 김명환 위원장이 임시대대를 소집하는 것은 중집 회의를 나흘간 매일 열었는데도 잠정합의안을 승인받지 못했기 때문이지, 노동조합 민주주의를 존중해서가 아니다.

김 위원장 측의 관심은 오로지 잠정합의안을 승인받는 것이다. 합의안 추인 시도 과정에서 저지른 파행으로 지탄받고 있는 김명환 위원장이 규약과 형식적 민주주의를 내세워 임시대대 소집을 정당화하는 것은 기만일 뿐이다. 민주노총 대의원과 활동가들은 이를 직시하고, 김 위원장의 조직 형식주의와 관료주의를 거부해야 한다.

게다가 이번 임시대대는 온라인 방식으로 개최될 뿐 아니라, 김명환 위원장 측은 토론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토론을 보장하겠다며 이틀 동안 온라인 게시판 이용 방안을 내놨는데, 이것은 면피용일 뿐이지 진정한 토론이 될 수 없다. 얼마 전 전교조는 온라인 대의원대회에서 찬반 토론을 촬영해 실시간 방영했는데 김명환 위원장은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김명환 위원장은 왜 그토록 집요하게 잠정합의안 승인을 추진하는가

김명환 위원장은 ‘꿈보다 해몽’ 식으로 합의안에 대한 낯뜨거운 장밋빛 해석을 내놓고 노조 핵심 기구의 파행을 거듭하면서까지 필사적으로 잠정합의안 승인을 위해 달려들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이해하지 못할 행동이 아니다. 오히려 노조 지도자들이 교섭 전문가로서 교섭의 안정화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잘 보여 주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과 국가 기구의 밀착도 의미한다. 각종 정부위원회에 참여 권리를 얻는 것 등이 이에 포함된다. 세계 노동운동은 노동조합이 온건화하는 과정과 이런 일이 통일돼 일어났음을 보여 준다.

김명환 위원장이 잠정합의안 승인에 집착하는 것은 〈노동자 연대〉 신문이 일찍이 지적했듯이 사회적 대화의 모멘텀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교섭(을 통해 확보한) 내용보다 교섭 유지 자체가 목적인 것이다.

김명환 위원장은 7월 10일 기자회견에서 이 점을 수줍게 감추지 않고 툭 터놓고 말하며 강조했다. “만약 책임감 있는 결정을 하지 못한다면 민주노총의 대정부 교섭틀 마련은 앞으로 더 이상 불가능하고, 가맹 산하 조직의 노정 협의에도 심각한 타격이 예상된다.”

김명환 위원장이 잠정합의안 승인에 열을 올리는 것은 사용자와 정부 측에 교섭 상대로서의 신뢰성을 입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자기 조직도 통제하지 못하는 교섭 상대를 믿고 시간과 노력을 들여 대화를 할 사용자와 정부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논리상 노동자 조건 지키기보다 교섭을 이어가기 위한 양보와 타협을 중시하게 됨을 뜻하고, 노동조합 내에서 조합원들의 의견보다 교섭 대표자의 권한이 막강해져야 함을 뜻한다.

이런 점에 비춰 보면, 만약 노사정 잠정합의안이 승인되면 그것은 민주노총의 적잖은 변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대화와 교섭에 점점 의존하고, 그것을 전담할 전문성 있는 상근간부층의 권한이 더 커지는 방향으로 말이다. 물론 이것이 지금 같은 경제 침체기 속에서 탄탄대로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사실 그동안 김명환 위원장과 그 측근들은 민주노총을 이렇게 바꿔야 한다는 노선을 추구해 왔다.

따라서 이번 잠정합의안이 노동자 조건 지키기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점 때문만이 아니라 노동조합 관료주의가 강화된다는 점에서도 그것을 폐기시켜야 한다.

일각에서는 김명환 위원장이 경사노위에 참여하려고 잠정합의안 추인에 열을 내는 것 아닌가 의구심을 제기하기도 한다. 물론 합의 이행 점검을 경사노위에서 하도록 돼 있으므로 그 핑계로 경사노위 행을 시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명환 위원장이 잠정합의안 승인에 필사적인 이유를 이렇게만 보는 것은 지나치게 협소하다. 이런 시각은 경사노위만을 문제로 여기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반대파 중집 위원들의 임시대대 수용

김명환 위원장은 투쟁의 ‘프레임’을 중집보다 상위 기관에서의 결정으로 제시했다. 이에 맞서 중집 내 반대파는 임시대대 반대로 맞서 왔다. 그러다가 분명한 근거도 공개적으로 제시하지 않은 채 ‘참여 후 반대 투표’ 입장으로 7월 13일 선회했다.

같은 지도층으로서 조직의 규약을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인 듯하지만, 이런 행보는 김명환 위원장 측에 득이 된다. 임시대대는 절차로서도 결함투성이다. 잠정합의안 내용을 두고 패널간 찬반토론과 청중 질의 응답이 전혀 마련돼 있지 않고 그저 댓글이나 달라는 식이다. 토론이 제약된 온라인 대대에서는 반대파들이 부동층 대의원에게 영향을 미치기가 쉽지 않다. 이것은 노동계급에 불리한 잠정합의안을 요식 행위를 통해 통과시키려는 김명환 위원장 측의 의도를 반영하는 것이다.

무슨 수단을 써서든 잠정합의안을 승인받고 노사정 대화로 복귀하려는 김 위원장을 저지하려면, 임시대대 거부 대의원들을 계속 확대해, 정면 반대를 하고 있다는 것과 그 기세를 보여 줘야 한다.

지금까지 대의원 3분의 1의 서명을 받았고 앞으로 여드레 동안 기존 기구나 조직 채널에만 의존하지 않고 미서명 대의원들을 직접 연락해서 설득하며 조직한다면 과반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활동에 전력을 기울이지 않은 채, 임시대대까지 꽤 남았는데도 지레 임시대대를 수용하기로 한 것은 잠정합의안 반대 운동의 힘을 빼는 효과를 낸다.

물론 불참 주장을 계속하는 것은 반대표 던질 사람의 수를 줄이는 위험성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따라서 불가피하게 임시대대에 참석해야 하거나, 참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대의원이 있다면 그는 잠정합의안에 반대표를 찍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불가피하지 않은데도 타협을 하면 우리 측 전열을 혼란에 빠뜨리고, 지도부의 투지와 능력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전술이나 요구의 수위를 낮추는 것을 두고 사회주의적 전술의 용어로 ‘타협’이라고 한다.)

지금 타협은 불가피하지 않다. 임시대대 성사와 잠정합의안 지지를 주장하는 대의원들과 보통 조합원들의 기세는 전혀 강력하지 않고 오히려 군색하다. 그래서 임시대대 불참 주장을 불가피하게 철회토록 만드는 압력을 전혀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불참 호소를 접는다면 그건 불가피하지 않은 타협인 것이다.

지금은 노사정 합의와 잠정합의안의 실체를 폭로함과 동시에 김명환 위원장의 임시대대 소집 논리를 해체시켜야 할 때이다. 두 가지 주장을 결합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고 후자의 주장을 포기한다면 너무 일찍 효과적 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사실, 임시대대를 손쉽게 받아들인 반대파 중집 위원들은 노동조합 기구의 결속과 통일성을 지키려고 관료주의적이고 쌀쌀한 태도로 조합원들의 투쟁성과 사기 진작의 필요성을 비웃는 것이나 다름없다.

투쟁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 2019년 10월 31일 노동개악 분쇄!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 저지! 민주노총 결의대회 ⓒ이미진

잠정합의안 거부하고 싸워야 한다

민주노총 중집 위원 다수는 잠정합의안이 위기에 내던져진 노동계급의 조건을 지키겠다던 민주노총의 애초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맞는 말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왜 목표를 이루지 못했는가? 김명환 위원장 측의 협상 기술과 준비가 부족해서? 대화와 투쟁 병행을 공약해 놓고 대화 일변도로 나아가서? 요구가 부적절해서?

이번 노사정 회의가 보여 준 것은, 특히 경제 위기 상황에서 사용자들은 이윤 지키기에 혈안이 돼 한 치도 양보하지 않을뿐더러, 전에 했던 양보마저 도로 빼앗으려 한다는 것이다. 내년 최저임금이 역대 최저 인상률(1.5%)로 책정된 것이 가장 최근 사례다. 민주노총이 요구하는 고용과 소득 보장은 대화 테이블에서 사용자와 정부 측을 좋은 말로 설득해서 얻을 수 없다. 경제 위기나 침체기에는 중요한 것을 투쟁 없이 얻어 내기가 불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경제적·사회적 위기에 내던져진 노동계급의 조건을 지키려면 잠정합의안을 거부하고 투쟁에 나서야 한다. 잠정합의안의 형편없는 내용을 폐기하는 것뿐 아니라, 대화에 일말의 기대를 걸어 온 기존 방침에 대한 180도 전환을 단행해야 하는 것이다.

반대파 중집 위원들의 정치적 모호함과, 그와는 다른 대안

반대파 중집 위원들의 입장은 필자가 방금 지적한 점이 분명하지 않다. 잠정합의안을 폐기하고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지 않다.

사회적 대화와 투쟁에 관한 입장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중집 위원들은 7월 13일 발표한 입장 해설 자료에서 이렇게 토로한다: 사회적 대화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고, 이번 합의가 추인되지 않을 경우 노정/노사정 관계에서 배제될 우려에 대해 현실적인 고민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반대파 중집 위원들은 “조직력·투쟁력을 확보해 정부를 노정교섭(협의)에 끌어내야 한다”는 투쟁적 결론으로 맺긴 했다. 그럼에도 반대파 위원들의 또 다른 입장설명서는 이런 고민도 표현하고 있다. “합의문이 대의원대회에서 통과되어도 문제, 부결되어도 문제[다.]” “부결되더라도 힘있는 투쟁을 할 수 있는 내부 태세가 안 돼 있다.”

사실상 이 말은 부결돼도 싸우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 들린다. 그래서 조합원들 사이에서 ‘잠정합의안을 부결시켜 봐야 뭐 하겠나’ 하는 회의감을 일으키기 딱 좋을 것이다. 조합원들에게 불만의 초점을 제공하고 투지를 불러일으켜야 할 텐데 말이다. 게다가 김명환 위원장 측이 이용하기도 딱 좋을 것이다. “어차피 저쪽은 대안도 없다”면서 말이다.

따라서 중집 위원들의 잠정합의안 반대를 지지하면서도, 노동자 조건을 지키기 위해 대중 투쟁, 특히 파업이라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을 사용하라고 촉구해야 한다. 임시대의원대회가 무산되거나 잠정합의안이 부결된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사용자들의 공격과 정부의 배신 행진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현실의 세력균형을 고려하면 노조·연맹 위원장들 자신이 파업을 소명해야 한다. 현장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비공인 파업에 나설 자신감 수준은 아닌 것이다. 그래도 노조의 공식 파업 소명이 있으면 거기에는 기꺼이 응할 것이다. 중집 위원 다수가 “현장을 조직하고 투쟁하는 데 헌신하겠다”고 한 만큼 그 말대로 실행해야 한다.

잠정합의안 폐기를 주장하는 중집 위원 가운데는 민주노총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투쟁 역랑도 있는 노조의 위원장들이 포함돼 있다. 공공운수노조와 금속노조가 대표적이다. 이런 노조들이 ‘재난 시기 해고 금지와 고용 보장, 고용보험 특고 적용’ 등을 요구하며 투쟁을 호출(명령)하는 것은 전혀 비현실적이지 않다.

투쟁을 현실화하기 위한 과제

김명환 위원장 측을 지지하는 매우 온건한 전직 민주노총 상근간부는 “밑도 끝도 없이 투쟁만 주장”하는 좌파를 비판했다.

그러나 필자가 앞에서 강조했듯이 경제 위기와 침체기에는 노동자 조건을 지키려는 어떤 중요한 요구도 결코 투쟁 없이 성취할 수 없다. 투쟁은 지금 상황과 관계없이 공허하게 제기된 공문구가 아니다. 오히려 투쟁만이 현실적 대안이다. 그러므로 투쟁을 호소하고 요구하는 것은 무능하고 무력한 무용지물 단체나 개인들의 편리한 도피 수단이 아니다.

물론 세력관계도 면밀히 따지지 않은 채 주문 외우듯이 “투쟁!” 하고 외치면 투쟁이 일어나리라고 기대해선 안 될 것이다. 오히려 반대파 중집 위원들이 투쟁을 소명하도록 압박하면서 현장 조합원들의 참여와 사기 회복을 추구하려 해야 할 것이다.

언제나처럼 온건파 인사들은 현장 동력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이 사실일지 몰라도 그것은 주로 계급 협력과 타협, 양보에 사실상 거의 전적으로 의지해 온 김명환 위원장 등 온건파 노조 지도자들의 방침과 지향이 낳은 효과이다. 투쟁 동력 부재를 들먹이는 사람들은 평소 투쟁 동력을 떨어뜨리는 데 일조하는 사람들이기도 한 것이다. 정규직이 자기 조건 지키려고 투쟁해선 안 된다거나,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하나의 계급이라고 말하기 어렵다거나 ‘제4차 산업혁명’으로 플랫폼 노동자들이 크게 늘어나 투쟁력이 약화될 것이다, 노동계급의 양극화가 너무 심화됐기 때문에 단결하기가 어려워졌다 등등의 주장을 하면서 말이다.

진정한 좌파라면 이런 주장에 맞서 계급을 단결시킬 수 있는 정치를 제시해야 한다.

김명환 위원장 사퇴론과 진정한 혁명적 노선

일부 좌파단체들은 김명환 위원장 사퇴 또는 집행부 총사퇴를 주장한다. 잠정합의안의 내용과 추인 시도 과정에서 김명환 위원장이 보인 행태에 대한 이들의 분노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단지 분노를 표출하는 것에 그치지 않으려면 김명환 위원장을 실제로 사퇴시킬 수 있는 현실적이고도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거기에 힘을 집중해야 한다. 김명환 위원장이 임시대대를 소집한 현 국면에서 위원장 사퇴는 오직 잠정합의안 승인을 좌절시키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 전에 위원장 사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위원장 사퇴를 촉구하는 것은 공허한 요구이기 십상인 데다, 가장 효과적인 전술이 무엇인지에 답하지 않는 회피 수단이 될 수 있다.

임시대대 소집 거부를 분명하게 하지 않으면서(그 주된 이유는 형식적 민주주의 논리를 공유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퇴로 초점을 맞추는 것은, 김명환 위원장을 사퇴시킬 수 있는 사실상의 유일한 전선에 힘을 집중시키기를 흐리는 효과를 낼 수 있다.

김명환 위원장 사퇴(또는 집행부 총사퇴)론은 현 사태의 대안을 지도부 교체에서 찾는 것과 맞닿아 있다는 난점도 있다. 그러나 애초에 중앙집행위원회 성원 모두가 노사정 합의와 양보교섭 하는 것을 김명환 위원장 측과 공유한 마당에 지도부 교체는 김명환 위원장과 그 핵심 측근들만을 배제하는 정도에 그칠 것이다. 그보다는 계급투쟁 속에서 더 나은 지도부도 등장할 수 있다. 또한 경제 위기가 매우 심각한 데다 문재인 정부 같은 진보적 포퓰리즘 책략을 구사하는 정부 하에서는 계급투쟁만이 활로이다.

현 사태의 대안을 지도부 교체에서 찾으면서 민주노총 임원선거 준비로 방향을 맞추면, 실질적인 저항의 초점을 형성하는 데 추가적인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 선거공학이 주된 방식이 되면서 기회주의적 이해타산과 이합집산이 득세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집행권 장악을 앞세우기보다 기층의 투쟁성과 활력 회복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지금 같은 심각한 경제 위기 속에서는 이윤 논리에 굴복하지 않는 혁명적 정치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그런 정치로 무장한 혁명적 좌파가 기층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느냐 여부가 미래의 성공에 필수적인 요인이다.

따라서 우리는 노사정 잠정합의안 반대 운동을 하는 동시에, 기층에서 혁명적 정치와 조직을 구축하는 과제를 함께 추구해야 한다.


[편집팀] 이 기사의 독자는 필자의 다음 책들에도 관심을 가질 것 같다:


이 글은 지난 7월 14일 같은 제목의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에서 필자가 한 발제에 기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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