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 발생 시 (원청) 기업주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최근 국민청원 10만 명의 동의를 모았다. 이로써 민주노총 등이 추진해 온 전태일 3법(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는 개정안, 특수고용·간접고용 노동자에게도 노조할 권리 보장하는 개정안,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이 모두 10만 명 동의 목표를 채워 국회 소관 상임위에 넘겨지게 됐다.

민주노총은 9월 24일 전국 민주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즉각 법 제·개정 논의에 착수하라”고 촉구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 노조법 2조 개정안 등은 지난 20대 국회에도 발의됐지만 제대로 다뤄지지도 않고 폐기됐다. “국민 청원으로 발의된 만큼 이번에는 달라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국민의힘은 말할 것도 없고, (다수 의석을 가진) 정부와 민주당은 노동계의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 오히려 노동개악을 추진 중이다. 따라서 관건은 국회 밖 세력관계에 있다. 운동을 확대해 나가야 하는 이유이다.

반복되는 재해와 솜방망이 처벌

끊이지 않는 산업재해는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이윤에 눈 먼 기업주들은 안전에 투자하지 않아 노동자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죽음으로 내몬다. 정부도 솜방망이 처벌, 규제 완화 등으로 이를 뒷받침한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은 재발률이 97퍼센트에 이른다고 알려져 있다. 그만큼 작업 환경이 좀체 개선되지 않고 유사한 재해가 반복되는 것이다.

올해 일어난 산재 사망 사고를 다룬 언론 보도들만 봐도 이 점을 실감할 수 있다. “또! 태안화력발전소”, “2008년 판박이 물류창고 화재 참사”, “현대중공업 죽음의 행렬”.

· 지난 9월 10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한 화물 노동자가 장비에 깔려 사망했다. 2018년 12월 사망한 하청 노동자 고 김용균 씨가 일하던 바로 그곳이다. 한 보고에 따르면, 올 들어 발전소에서 발생한 산업재해는 19건에 이른다.

· 지난 4월 이천의 한 물류창고 신축 공사 현장에서 화재 참사로 노동자 38명이 죽었다. 이와 똑같은 사고는 2008년 1월 이천 냉동창고에서도(40명 사망), 그해 12월 이천 물류창고에서도(8명 사망) 있었다. 2017년 12월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사고, 2018년 1월 밀양 요양병원 화재 사고도 이어졌다.

· 지난 2월부터 5월까지 현대중공업의 원·하청 노동자 5명이 문에 끼이고 추락하는 등으로 참변을 당해 사망했다. 노동부가 현장 근로감독을 실시했지만 보여 주기 식에 그쳤다. 결국 9월 18일 하청 이주노동자가 또다시 안전그물망도 없이 작업하다 추락해 중태에 빠졌다.

이런 사례는 무수히 많다. 곳곳에서 노동자들이 일하다 병들고 다치고 싸늘하게 죽어갔다. 매년 2400명, 하루 7명이 산재로 목숨을 잃고 있다.

그런데도 기업주가 처벌받는 경우는 거의 드물고 처벌도 낮은 수준의 벌금형에 그친다. “노동자 목숨 값이 고작 푼돈 밖에 안 되냐”는 한탄이 나온다.

그 점에서 중대재해 기업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자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이번에 발의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사망 사고를 빚은 기업주에게 3년 이상의 징역 또는 5억원 이하의 벌금을, 사망 이외의 중대재해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기업 법인에 대해서도 1억 원 ~ 20억 원의 벌금을 부과한다.

특히 간접고용, 특수고용 노동자 등이 재해를 당했을 경우, 원청 기업주에게 무거운 책임을 부과하는 것도 명시했다. 사업주의 사고 조작, 조사 방해, 반복적 법 위반에 대한 책임 강화,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도 포함했다. 노동자뿐 아니라 시민 재해도 포괄하고 있다.

외주화, 장시간 노동, 규제 완화

물론, 법률적으로 원청 사업주에 대한 처벌 수준을 높이는 것으로 문제가 다 환원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산업재해를 줄이겠다고 약속했지만 말뿐이었다.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은 외주화 금지조차 매우 제한적으로만 해서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정부가 선언한 “과감한 규제 혁파”가 안전을 위협하는 것도 자명하다. 이미 정부는 화학물질에 관한 안전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노동운동은 오랫동안 처벌 강화뿐 아니라 외주화 금지, 노동자의 작업 중지권 보장 등을 요구해 왔다. 빗장이 풀린 안전 규제를 대폭 강화하라고 요구하는가 하면, 장시간 노동과 교대제가 노동자 건강에 미치는 위험을 경고하며 개선을 촉구하기도 했다.

가령, 최근 부상한 택배 노동자 과로사는 장시간 노동이 낳은 비극이다.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가 발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노동자들의 평균 노동시간은 주당 71시간이었다. 법정 노동시간을 기준으로 매주 19시간, 2.4일을 더 일한 셈이다. 이렇게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다 올해 상반기에만 7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당장 인력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 그래야 노동시간과 노동강도를 줄일 수 있고, 노동자들이 몸과 정신을 회복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

또, 가령 외주화 확대, 다단계 하청구조 속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산업재해의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외주화가 확대될수록 안전 투자도 뒷전이 되고 안전관리에 구멍이 뚫린다. 노동조건이 후퇴되고 현장 통제권도 약화되기 십상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안전보호장구에서도 차별을 받고, 사고를 당해도 제대로 보상을 받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김용균 씨가 살아 생전에 외쳤던 구호, 즉 외주화 철회, 직접고용 정규직화 등은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서도 매우 중요하다.

별로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임금 문제도 노동자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낮은 임금(기본급)과 임금 삭감은 노동자들을 장시간 노동과 투잡, 쓰리잡으로 내몬다.

노동자의 현장 통제력

이런 점들을 볼 때, 빈번한 산업재해를 줄이려면 노동조건과 위험한 작업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또, 노동자들이 사업주에게 안전 수칙을 지키도록 요구하고, 위험 요인이 발견됐을 때 작업을 중단시키고, 실질적 대책이 마련되도록 강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법·제도적 장치만이 아니라, 무엇보다 그것을 현장에 강제할 수 있는 자본과 노동 간의 끊임없는 투쟁에 달려 있다. 

캐나다 ‘일 건강 연구소’의 한 연구팀은 2017년에 다음과 같은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산재 예방 정책과 작업장 안전 수칙의 존재 여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그런 자원과 수단에 실제로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안전한 근무환경을 위해 노동자들이 의사를 표현하고 행동하는 것, 위험이 발생했을 때 노동자들이 그것을 제어할 수 있도록 현장 통제력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 노동운동이 오래 전부터 노동자 작업중지권의 신장을 제기한 데도 이런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위험을 통제하고 제어하는 힘을 키워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자동차, 조선소 등 일부 산업에서 노동자들은 안전사고가 벌어지면 작업중지권을 발동하고 현장 투쟁을 전개했다.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일단 작업을 중단시키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한 후 생산을 재개한다는 원칙도 세웠다.

사측은 이런 투쟁으로 생산에 차질을 빚고 노동자들의 기세가 높아지는 것을 아주 못마땅하게 여겼다. 특히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이후 생산성 향상을 강조하며 작업중지권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제는 사고가 나면 우선 공장부터 가동하는 일이 다반사가 되고, 이에 맞서 투쟁한 노동자들에게 온갖 탄압이 벌어지고, 그러면서 점차 작업중지권 행사가 약화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는 결코 자연스러운 결과는 아니었다. 노조 지도부가 야금야금 사측의 요구를 수용하며 후퇴하고, 현장 투쟁을 방치하면서 빚어진 결과이다.

기업주들과 정부는 안전에 대한 규제와 투자를 ‘수익성을 제약하는 낭비’로 여기면서 노동자들을 위험에 내몰고 있다. 노동자들은 이에 맞서 투쟁할 수 있고, 안전보다 돈벌이를 중시하는 자본주의 이윤 논리에 도전할 수 있다.

지난 몇 년 동안에도 건설 현장, 조선소, 발전소와 우체국, 택배·콜센터·마트 등 서비스 산업, 고속도로와 철도, 병원 등 곳곳에서 노동자들은 법·제도 개선과 작업 현장의 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투쟁했다. 노동운동은 이런 노동자들의 투쟁을 활성화 하려고 애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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