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5일 정부는 국가채무 비율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60퍼센트, 통합재정수지1 적자는 3퍼센트로 제한하는 재정준칙 방안을 발표했다. 국가재정법에 재정준칙을 포함시켜 2025년부터 시행할 것이라고 한다.

국민의힘과 우파 언론들은 정부의 재정준칙이 “맹탕”에 불과하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현재 GDP 대비 40퍼센트대인 국가채무 비율을 2025년부터 60퍼센트로 제한한다는 것은 문재인 정부 자신은 돈을 펑펑 쓰겠다는 것이라며 말이다. 더욱 강력한 긴축 정책을 쓰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실제 사정은 딴판이다.

9월 초 기획재정부는 저성장과 고령화 등의 영향으로 한국의 국가채무가 2024년에 GDP 대비 58.6퍼센트로 늘어나는 데 이어 2043~2045년에는 84~99퍼센트로 늘 것이라는 장기재정전망을 발표한 바 있다. 당시 국회예산정책처는 기획재정부의 전망이 너무 낙관적이라며 2030년에 75.5퍼센트에 이어 2040년에는 103.9퍼센트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채무 비율을 60퍼센트로 한정하겠다는 것은 재정적자를 상당히 줄이는 긴축 정책을 쓰겠다는 것이다. 위기 상황 때 재정 정책을 쓸 여지를 열어 뒀다 할지라도 말이다. 실제로 기획재정부는 재정준칙을 발표하면서 2025년 이후 국가채무 비율 60퍼센트를 지키려면 지금부터 “지출을 과감하게 구조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계 지원은 생색만 내고 긴축을 예고하다 10월 5일 재정준칙 발표 브리핑 ⓒ출처 기획재정부

국제적으로도 재정준칙은 복지 삭감을 위한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이다. 특히 신자유주의 정책이 거세게 추진되던 1990년대 초에 미국, 유럽 등에서 강도 높은 재정준칙을 시행했다. 국가채무를 GDP 대비 60퍼센트, 재정적자를 3퍼센트로 제한한 악명 높은 유럽의 마스트리히트 조약이 대표 사례이다.

또 미국, 유럽 등의 지배자들은 2008년 세계경제 위기 때 기업과 부자들에게 막대한 재정을 지원했지만 경제가 회복되지 않고 세수가 줄어 재정적자 문제가 커지자, 2010년경부터 긴축 정책을 본격화했다. 복지와 임금이 삭감됐다. 그리스 노동계급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코로나19와 함께 세계적 불황이 심화하자 각국 정부는 기업과 부자들을 위해 2008년 위기 때 이상으로 돈을 쏟아부었다. 이에 따라 재정적자 증가세가 가팔라지자 노동자들에게 그 고통을 떠넘기는 공격을 강화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도 건강보험료를 인상했을 뿐 아니라 교육 예산을 삭감했고, 내년 공무원 임금 인상률을 0.9퍼센트로 결정(실질임금 삭감)하는 등 지출을 줄이려고 애쓰고 있다.

재정준칙 제정은 이처럼 노동자·서민에게 재정적자의 책임을 떠넘기려는 신호로 봐야 한다.

공격 강화 신호

정부와 우파는 모두 재정적자를 걱정한다면서도 기업에 대한 막대한 지원이나 군비 증가 등은 문제삼지 않는다.

코로나19 확산 상황 속에서 한국 정부가 올해 9월 초까지 기업 지원에 쓴 돈은 49조 7400억 원에 이른다. 고용 유지에 쓰인 돈은 1조 3900억 원, 실업 대책에 쓰인 돈은 2조 1700억 원에 불과했는데 말이다. 기업 지원 액수가 고용 유지 대책의 35배, 실업대책의 22배나 되는 것이다.(이창근, ‘코로나19 대응 실적을 통해 본 문재인 정부 위기 대응 성격’, 민주노동연구원)

그런데도 정부는 기업 이윤을 위해 노동법 개악을 추진하고 있고, 김종인 등 우파들은 노동유연성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또 기업과 우파들은 법인세 인하도 요구하고 있다. 기업에게 쓰는 돈은 투자이고, 노동자·서민을 위한 돈은 낭비라는 식이다.

반면, 이재명 경기도지사나 정의당·진보당 등 개혁주의 진영은 더 확장적인 재정 정책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긴축론자들에 맞서 복지를 늘리자는 의도에서 제기하는 것으로 긴축론자들보다 백 배는 더 나은 입장이다. 

그런데 이들은 자본주의와 조화를 이루고 사회의 주류를 설득하려고 이런 주장을 덧붙인다. 지금과 같은 위기 시기에는 재정 지출을 늘려서 소비를 부양해야 경제 회복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확장 재정이 경제를 회복시킬 것이라는 케인스주의적 주장에는 허점이 많다. 정부가 재정 지출을 늘리면 일부 소비 진작 효과가 단기적으로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기업 이윤율을 근본에서 회복시켜 주지는 못한다. 지난 수십 년간 일본이 대규모 재정 지출을 통해 경제 회복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한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최근에는 긴축론에 맞서 국가채무 증가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유행하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채무 증가가 체제의 위기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국가채무 증가는 심각한 재정 위기와 외환 위기로 이어질 수 있을 뿐 아니라, 설사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그 부담으로 인해 오히려 소비가 위축될 수 있다. 

이와 같은 문제들은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한계를 보여 준다. 재정 지원을 늘려 경제 회복을 이루자는 사람들의 주장에 선한 의도가 있다 할지라도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는 그런 의도가 실질적 결과로 이어지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주류의 긴축론에 제대로 맞서려면 케인스가 아니라 마르크스의 논리가 필요하다. 경제 성장이나 이윤보다 노동계급의 삶을 우선해야 한다. 노동계급의 삶을 지키기 위한 요구와 투쟁을 확대하면서 그 힘을 이용해 자본주의 체제를 혁명적으로 뒤집기 위한 대안을 추구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심각한 위기 시기에서는 그런 혁명적 정치를 추구할 때 작은 투쟁도 더 효과적으로 전진시킬 수 있다.


  1. 일반 세출입에 국민연금, 사학기금 등 사회보장 기금까지 포함한 재정 수지. 

    최근까지 정부는 재정 지출을 줄이려고 일반 세출입 부문을 관리재정수지로 떼어내 사용해 왔다. 한국은 국민연금 지급을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아 사회보장 부문에서 흑자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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