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리드는 조 바이든의 대선 선거 운동을 비판적으로 살펴보면서, 11월 선거에서 누가 이기든 사회주의자들에게는 막중한 임무가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 정치에서 수십 년 동안 반복돼 온 ‘차악론’을 끝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맥락 속에서 본 2020년

이 글을 쓰는 현재 [미국 시각으로 10월 12일] 미국의 코로나바이러스 사망자 수는 21만 명이 넘는다. 타격이 가장 컸던 주(州)들을 포함해 많은 주들이 확진자 증가세에도 경제 활동 재개를 강행하고 있다. 전염병 대유행으로 경기가 급락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연방정부는 재난지원금 액수가 경기부양패키지법(CARES) 때 지급했던 것보다 줄어들 것이라고 시사했다. 이미 그 자체도 불충분했는데 말이다.(노동자들에게는 확실히 그랬다. 지배계급은 톡톡히 덕을 봤지만 말이다.)

범죄적이라 할 만큼 엉터리였던 팬데믹 대책 때문에 경제가 노동계급에게 더 불리하게 변화했다. 여기서 원래대로 돌아가는 데만도 몇 년이 걸릴 듯하다. 확진자가 늘고 있는데도 주정부들은 무능하고, 연방정부는 노동계급의 건강과 안전을 희생시키면서 월가(街)에 수십억 달러를 퍼 주는 것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런 일들은 자본주의 체제와 신자유주의적인 그 운영자들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닥친 비극을 경감하거나 막는 데 필요한 일을 전혀 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 준다.

전염병 대유행에 더해, 체계적 인종차별의 잔혹함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전국의 도시에서 거리로 나와 경찰의 비무장 흑인 살해에 항의해 왔다. 최근 위스콘신주(州) 케노샤에서 일어난 제이컵 블레이크 피격 사건으로, 경찰은 경찰 개혁이 효과가 없으리라는 점을 또다시 스스로 입증했다.

2020년에 일어난 다른 많은 일들처럼, 이번 대선도 미래 세대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고민이 들게 하는 초현실적인 느낌이 있다.

좌파 진영의 많은 사람들은 버니 샌더스가 기득권층의 단호한 저항을 넘어 [민주당] 대선 후보로 지명될 수도 있다는 기대에, 민주당을 이용한 선거 정치가 사회 변화에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얼마쯤 품었다. 버니 샌더스가 패배한 후 찾아온 실망 때문에, 사회주의자들이 민주당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고, 더 넓게는 선거 정치에서 좌파의 구실이 무엇인가에 관한 오랜 질문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위기가 깊어질수록 이런 질문을 둘러싼 논쟁도 치열해지겠지만, 지배계급과 정부 운영자들은 [좌파의] 도전에 응할 생각이 없으니, 계급투쟁을 전진시킬 필요만 더해지고 있다. 선거 정치의 변증법에 따라, 한편에서는 자유주의라는 막다른 골목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서 좌파적·비판적 분석의 필요성이 커지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최악 대 차악의 양자택일로 정치적 가능성의 범위를 좁히는 “실용적인” 접근법에 따라야 한다는 자유주의자들의 (심지어 일부 좌파들도) 요구도 커진다. 

새로운 선거, 똑같은 논쟁

물론, 이는 새로울 것 없는 일이다. 미국 사회주의자 핼 드레이퍼가 차악론에 관해 1968년 대선 때 제시한 분석은 그후 모든 선거에도 기가 막히게 유효하다. 그럼에도 1968년과 2020년 사이의 유사성은 특별히 두드러진다.

지금 트럼프처럼 당시 닉슨도 “법질서 확립”을 내세웠다. 이는 해묵은 인종 갈등을 무기로 삼은 것이었다. 당시 민주당 부통령 휴버트 험프리는 그다지 영감을 주는 인물이 못 됐는데, 특히 베트남 전쟁을 한결같이 지지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험프리는 민주당 기득권층의 지지 덕에 예비경선에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는데도 대선 후보로 지명됐다. 지금 바이든처럼 당시 험프리의 대선 선거운동에서도 이전 민주당 정권의 연속성이 대체로 두드러졌다.

그럼에도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차이가 있다. 1968년 닉슨의 대선 승리로 뉴딜 시대는 종언을 고하기 시작했지만, 그 당시에는 신자유주의가 아직 지배계급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로 자리매김하지 못했다. 뉴딜의 동학 때문에 양당 모두가 당시 위기에 대응해 “관료적 국가화”(드레이퍼는 “국가 개입으로 위로부터의 경제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압력을 받았다. 그 때문에 닉슨은 환경보호청과 산업안전보건청을 설립해야 했다. 오늘날 공화당 대통령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신자유주의 동학은 판을 완전히 바꿔 놨다. 오바마 정부의 대표적인 국내 치적인 건강보험 개혁 ‘오바마케어’는 거대 민간 보험사들을 배불리는 정책이었고, 오바마는 이민 개혁 약속을 했음에도 이전 그 어느 정권보다 이민자들을 더 많이 추방했다. 레이건 정부 이래 시장적 해법 추구는 공화·민주 양당의 기본 입장이었다. 심지어 시장 자체와 이윤에 대한 근시안적 집착이 많은 문제의 원인일 때조차 그랬다. 오바마케어가 바로 그런 사례다.

바이든의 출마와 [그가 당선하면 시작될] 미래의 바이든 정부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트럼프의 부상이 이변이 아니라 물질적 조건이 몇 년에 걸쳐 축적된, 전적으로 예측 가능한 결과임을 이해하는 듯한 사람들조차 만만찮은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 사람들마저, 실속 없고 진실을 왜곡하는 중도주의 정치의 화신이라 할 만한 자[바이든]을 지지하고 있다. 그 중도주의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수많은 노동계급 사람들의 삶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었는데도 말이다.

바이든은 1973부터 2009년까지 상원의원을 지내면서 민주당을 신자유주의적으로 변화시키는 데서 줄곧 핵심적 구실을 했다. 오랫동안 바이든은 대량 투옥, 기후 변화, 이주민, 제국주의, 복지 “개혁”, 평등권, 낙태권 등등에서 잘못된 편에 섰다. 그의 행보는 가뜩이나 부정의한 기존 상황을 고수하고 점진적으로 악화시키는 데에 기여했으며, 그런 점에서 바이든에 필적하는 전국적 정치인은 없다시피 하다.

그러므로 바이든이 당선해도, 트럼프가 지난 몇 년간 더럽혀 온 “미국의 정신”이라는 허울을 다시 세우는 것 말고 다른 일을 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턱없는 생각이다. 바이든 식 정치의 핵심에 있는 깊은 모순은 미국과 세계를 지금 상태로 만든 데 책임이 크다. 게다가 바이든은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고 기꺼이 필요한 조처들을 취해 현재 위기에 대처하려는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려면 본인의 정치적 업적 전부를 부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전국위원회(DNC)에서 드러난 것은 민주당이 신자유주의적 기존 상태를 더 완강히 밀어붙이고 있으며, 진보와의 협력보다는 우파의 환심을 사는 데 더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유명한 전범[콜린 파월]이 신예 민주사회주의자 하원의원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보다 발언 시간을 훨씬 길게 얻었다. 오카시오-코르테스에게는 겨우 60초만 주어졌을 뿐이다.(그녀는 그 시간을 최대한 활용했다.)

이 중 어느 것도 놀랄 일은 아니었다. 바이든이 해리스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함으로써 민주당이 앞으로도 월가·실리콘밸리·교외 지역의 온건파들에 충실할 것임을 확인시켜 준 것도 놀랄 일이 아니듯 말이다.

최근 연방대법원에 공석을 남긴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사망이나 트럼프 행정부로까지 확산된 코로나19 재앙은 가뜩이나 《환상특급》 수준으로 기묘하던 2020년 상황이 더한층 기묘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언론을 장식하는 이런 대형 뉴스에도 불구하고 선거의 근본적 역학, 또 그보다 중요한 사회 나머지 부분의 근본적 역학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어느 누구도 위기 해결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으리라 여기고는 위태로운 경제 상황에 적응하려 분투하고 있다.

좌파의 구실

이번에도 좌파는 다가오는 대선에서 자신의 구실이 무엇일지 고민해야 하는, 우울할 정도로 익숙한 상황에 처해 있다. 앞서 바이든이 형편없고 부적절한 후보인 이유를 들었지만 이런 얘기는 다음과 같은 커다란 질문 앞에서 별 소용이 없다. “이번 선거는 그냥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트럼프에게 승산이 있다면, 트럼프를 막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닐까?”

간단히 답하기 어려운 물음이다. 바이든이 아무리 나빠도 트럼프와 똑같지는 않다. 바이든이 당선하느냐, 트럼프가 4년 더 집권하느냐는 실질적 차이를 낳을 수도 있다. 트럼프는 인종차별과 외국인 혐오를 무시무시한 수준으로 밀어붙였고, 포틀랜드에서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대에게 사용한 잔인한 진압 전술을 전국 대도시들에 확대 적용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트럼프의 대통령 집권은 모든 면에서 정말이지 재앙이었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트럼프가 1차 대선 TV 토론에서 ‘프라우드 보이스’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것이었다. 트럼프는 2017년에도 파시스트 깡패들이 버지니아주(州) 샬러츠빌에서 열린 반파시즘 맞불 시위에 참가한 헤더 헤이어를 살해한 것을 지지했었다. 최근에 트럼프 지지자들은 [샬러츠빌에서처럼]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를 향해 자동차 돌진 공격을 하고 있다. 트럼프는 파시스트 조직들이 입지를 다지는 데 도움을 주고 있는데, 이는 최근 미국사에서 유례 없는 일이다. 바이든이 당선하더라도 파시즘이 제기한 위협은 계속될 것이며 좌파들은 전국에서 공동전선을 건설해 이 위협에 정면 대응해야 할 것이다.

바이든이 승리하면 적잖은 변화가 있을 것이고, 개중 몇몇은 의미심장한 변화로 여겨질 것이다. 예컨대 이민자 가족을 [강제 수용소에] 분리 수용하는 트럼프의 잔혹한 정책 같은 것들이 철회된다면 말이다. 하지만 바이든의 선거 운동으로 기대치를 잡아 보면, 신임 바이든 정부 하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트럼프 이전의 “정상” 정치로 되돌아가는 정도일 것이다. 바이든이 추진할 가장 대담한 해법조차 벌어진 상처에 반창고를 붙이는 정도의 미봉책에 불과할 것이다.

선거 정치를 넘어

그렇다고 선거가 중요하지 않다거나, 좌파가 선거에 관해 입을 닫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정치 참여 수준이 심각하게 낮은 것 때문에 외려 전국 선거는 사회주의자들에게 더 많은 청중과 접촉할 좋은 기회일 수도 있다. 버니 샌더스는 심지어 선거에서 패배한 상황에서도 사회민주주의 사상이 단지 비주류로만 치부될 수는 없음을 입증했다.

선거는 한 나라의 계급 의식을 측정하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기득권층의 지저분한 술책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사회주의자들은 바이든이 수백만 표를 얻었다는 ─ 대다수가 [샌더스의 주요 공약인] 전국민 단일건강보험(‘메디케어 포 올’)을 지지했음에도 ─ 사실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샌더스 지지자들의 다수가 기득권층에 대한 두려움과 불만을 품고 2016년에 그랬듯 이번에도 민주당을 찍을 것이다. 민주당 기득권층은 샌더스의 공약을 지지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바이든이 더 “현실적인” 후보라고 설득하는 데 성공했고, 좌파는 그런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며 효과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 만큼 정치적으로 강력하지 못했다.

이는 현 상황의 시급성을 웅변한다. 위기가 첨예해지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다. 혁명적 메시지와 전술이 필요하다. 이로써 정치적 가능성을 확대할 필요가 절실한 노동계급 대중에게 다가가야 한다. 그것만이 2020년 세계의 야만에서 벗어날 유일한 길이다. 트럼프의 부상으로 이어진 근본적 모순에 대처하는 데에 실패한다면, 미래에 훨씬 더 위험한 우익이 권력을 잡는 길을 닦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주의자들의 앞에 놓인 과제들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궁극적으로는 거리 운동과 작업장에서의 투쟁이 중요하다 ⓒ출처 Paul Becker(플리커)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봉기에서 배워야 할 교훈이 있다. 이 운동은 인종차별 반대 투쟁과 작업장 내 착취 문제를 연결하는 노동계급 연대와 조직의 고무적 사례들을 보여 줬다. 또, 불과 몇 주 만에, 지나치게 급진적이라 제쳐지던 경찰 재정 삭감 요구는 미국 전역 활동가들의 핵심 요구로 부상했다. 이는 통상적 선거 흐름에 따른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선거에 얽매이지 않는 정치 활동[‘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이 급작스레 폭발한 결과였다. 좌파는 바로 이런 운동에 초점을 둬야 한다. 여기에 노동계급 권력을 건설할 진정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11월 3일 선거에서 누가 당선할지는 궁극적으로, 인종 정의를 요구하며 국가 탄압에 맞서는 거리 운동이나 팬데믹 하에서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요구하며 싸우는 작업장 내 운동들의 정치 활동보다 덜 중요하다. 결국, 2020년 대선에서 제기되는 질문들은 정치의 가능성과 진정한 목적에 대한 더 큰 문제들을 제기한다. 사회주의 단체들에게 정치란, 기성 정당들과 독립적으로 노동계급 권력을 건설하는 것, 인종차별·파시즘·낙태권 등의 쟁점에서 공동전선을 통해 활동하는 것을 뜻한다. 어느 당이나 인물이 집권하든 마찬가지다.

핼 드레이퍼는 1967년에 이렇게 썼다. “자본가 정치인들 밖에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는, 그런 제한된 선택지를 받아들이는 데에서 패배가 온다.” 민주당이 트럼프의 유일한 대안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사회주의자들은 민주당과 바이든이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더 많은 노동자들이 이해하게끔 분투해야 한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들의 앞에 놓인 과제는 비교적 단순하면서도 막중하다. 선거 결과가 어떻든 간에, 장기적 의미에서 승리는 좌파가 계급 투쟁을 얼마나 전진시킬 수 있을지, 거리와 작업장에서 더 나은 세계를 향할 유일한 길을 제시할 운동을 거리와 작업장에서 건설할 수 있을지로 가늠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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