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검찰이 윤석열 찍어내기에 격렬히 반발할 것임을 전혀 예상 못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무리하게 “판사 사찰”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었을 것이다. 검사 인사권으로도 모자라 판사까지 동원해 정권 핵심부 수사에 제약을 만들어보겠다는 얄팍한 발상이었다.

그러나 공개된 문건만 봐서는 “불법 사찰”보다는 재판 대비용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 판사들의 판결 이력은 더 공개될 필요가 있다. 윤석열 측도 켕길 게 없다고 보고 이 문서를 언론에 먼저 공개한 듯하다.

그러나 재판 대비 문서라면 담당 검사들이 만들면 될 텐데, 왜 대검에서 그것을 제공했는가 하는 의문은 남는다. 이는 검찰이라는 조직의 매우 중앙집중적인 성격을 보여 준다. 정보가 지휘부(대검찰청)로 집중되니, 이를 무기로 삼고 또한 지휘부가 일선에 통일된 정보와 지시를 제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문건을 만든 수사정보정책관실의 기원은 그 유명한 대검 중수부 산하 범죄정보과다. 한때 ‘검찰의 국정원’으로 불렸던 이 부서는 온갖 사찰 정보를 수집해 축적했다. 이 부서가 범죄정보기획관실로 변경됐다가 검찰 개혁 차원에서 수사정보정책관실로 변경된 것이다.(현재는 추미애의 축소 조치로 수사정보담당관실로 변경)

윤석열의 전임 총장인 문무일은 이제 “일반 정보”는 다루지 않고 “수사 정보”만 다룬다는 취지로 명칭 변경 이유를 설명했다. 그때껏 수사 대상이 아닌 사람들의 범죄 혐의에 관한 정보도 조사해 모았었다는 말이다. 여기에는 정치·경제 권력자들의 유착과 은밀한 사생활, 그리고 노동계·좌파에 대한 정보가 다 포함됐을 것이다. 권력자들과 검찰은 이런 정보를 가지고 서로 거래해 온 것이다.(덮어 주기, 정적 제거, 운동 탄압 등) 이번 문건이 사찰 문건으로 안 보인다고 해서 검찰에 문제가 없다고 봐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렇듯 검찰 권력에서 상징적이고 중요한 수사정보정책관실(현 수사정보담당관실)을 윤석열 직무정지 다음 날에 전격 압수수색한 것은 시사적이다. 그러나 정부는 주요 억압기관의 기본 기능을 건드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의 이번 조처는 개혁적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일단 기능 자체를 건드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판사 정보 문건을 윤석열 측이 추미애 측 검사들에게 전달한 것이 이미 2월이다. 그들도 애초에는 당연한 관행으로 여겼던 것이다. 9개월이 지나서 이 문건을 문제 삼는 것은 윤석열 제거의 명분을 만들어내려고 과장해 판사 불법 사찰 프레임을 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이 프레임으로 윤석열 찍어내기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억제하고 판사들의 동조를 얻어내고자 한 듯하다. 그러면 향후 검찰의 집권층 수사의 힘도 빼 놓을 수 있다고 봤을 것이다. 민주당 초선 의원 김남국이 국회에서 이런 내용으로 판사 측 여론 조성을 부탁하는 통화를 했다는 의혹도 터졌다. 검찰과 민주당 모두 믿지 말아야 한다.

범죄정보과

사찰 기관은 경찰청에도 있다. 경찰청 범죄정보과가 그것이다. 지난해 말, 경찰청이 범죄정보과를 강화하고 인력을 대폭 늘린다는 소식이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경찰의 범죄정보과는 검찰과 그 기능이 유사하지만, 경찰이 자신의 상위 기구 위상을 갖는 검찰에 대항하려고 검찰의 비리를 몰래 캐는 일도 한다.검찰도 이에 맞대응하므로 이런 상호 감시는 검·경 갈등의 한 요소가 된다.

둘의 갈등은 버닝썬 사건에서도 드러났다. 경찰 간부인 윤규근을 고리로 문재인 청와대의 연관성이 나왔고, 검찰과 경찰 모두 연루된 의혹도 드러났다. 어쩌면 경찰을 혼내 주려던 검찰의 수사가 흐지부지된 것은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 경찰의 범죄정보과는 더 양적으로 팽창했다. 오히려 범죄정보경찰 인력이 공수처의 발 구실을 할 수도 있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물론 경찰도 공수처의 견제를 받을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권력기관 개혁을 주창하면서 경찰의 범죄정보과를 문제삼은 적은 없다. 기관 규모상 경찰의 사찰이 훨씬 광범위한데 말이다. 국정원법 개정에서도 국내 정보 사찰권은 남겨 놓았다. 선거, 정당, 노동운동, 좌파 등에 관한 동향 정보 일부는 흔히 청와대 보고 대상이 되곤 한다. 아마 정권의 경쟁 정치인이나 재벌 비리도 그럴 것이다.

이런 점들을 봤을 때, 문재인의 권력기관 개혁 슬로건은 위선이다. 진지한 실행 의사도 없다는 점에서 그렇고, 또 이루지 못할 것을 이룰 것처럼 말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통치의 효율을 높이고 자신들의 부패·치부 감추기를 거짓으로 포장하는 수단으로 ‘개혁 사기극’을 벌이는 것이다.

가령 검찰 문제에서 문재인과 조국·추미애는 정권을 수사한 검사들을 찍어내기나 했지, 기존 시스템을 크게 바꾸지도 않았다. 한 것이 있다면, 경찰 권력이 늘었다는 점이다. 또한 문재인이 추진하는 공수처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강화된 감찰 기관이다. 이는 집권 세력이 국가기관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하려는 수단에 불과하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누구에게 주느냐, 어떻게 분산하느냐 하는 것으로 국가의 억압적 기능을 약화시킬 수는 없다. 그 권한 자체가 권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국가가 독점한 수사권과 기소권을 없앨 수 있는가? 국가가 존재하는 한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그 권력을 어떻게 분배해도 자본주의 국가의 억압적 기능이 줄지 않는다. 그래서 검찰 개혁은 공상이고, 공상을 현실처럼 선동하니 위선인 것이다.

현 체제 안에서 검찰·경찰·국정원 등을 선하게 바꿀 수 없고, 국가권력을 흔드는 아래로부터의 대중 투쟁 압력으로만 일시적이나마 원하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 진보·좌파가 청-검 갈등과 정권의 부패 의혹 문제는 외면하면서 검찰 개혁 구호는 (당연하다면서) 지지하곤 하는데, 이는 현 정치적 맥락상 오히려 부패를 감싸고 대중의 정당한 분노를 외면하는 효과를 낼 뿐이다.


사실관계를 일부 첨가했다.(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