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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확진자, 입원도 못 하고 사망:
민간병원의 병상과 인력을 동원해야 한다

서울 동대문구에서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은 환자가 3일 동안 입원하지 못하고 집에서 대기하다가 홀로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방역 당국은 감염을 이유로 집 밖에 나오지도 못하게 했지만 피가래가 나온다는 호소에도 결국 병원에 입원시키지 못했다. 수도권에 사실상 코로나 환자를 진료할 병실이 동났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요양병원에서 확진 판정을 받고 전원을 기다리다가 사망한 수도권 환자도 최소 3명 이상이다. 상황은 한동안 더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서울시는 18일 0시 기준으로 확진 판정을 받고도 자택 대기 중인 환자가 서울에만 580명이 있다고 밝혔다. 경기도에 사는 환자가 목포 등 연고가 없는 타 지역으로 이송되고 있다. 현재 매일 추가되는 확진자의 40퍼센트 가까이는 노인이거나 기저 질환이 있어 생활치료센터가 아니라 곧장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하루 확진자 수가 며칠째 1000명을 넘는 상황이 1주일 가까이 이어지며 기존의 공공병원은 사실상 한계에 봉착했다. 공공병원의 수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데다 정부의 투자 부족 때문에 중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시설과 인력이 극도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계 상황에 놓인 병원 노동자들도 감염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며칠 사이에 잠시 확진자 수가 줄어도 올겨울 내내 확진자가 폭증할 가능성은 매우 크다.

따라서 공공병상과 인력을 대폭 늘려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이는 하루이틀 사이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코로나19의 대유행이 시작된 올해 초부터 공공병원과 인력을 준비해야 한다는 경고가 계속됐지만 정부는 이를 무시해 왔다. 그러기는커녕 조금만 확진자 수가 줄어도 민간병원에서 확보해 둔 병상을 다시 민간병원 측에 돌려주며 병상 확보를 소홀히 했다.

민간병원에 대한 보상 문제도 있겠지만, 정부가 민간병원에 대한 통제를 최소화함으로써 시장에 대한 개입을 최소화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시장 질서를 지키고 그렇게 함으로써 기업 이윤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여긴다. 그래서 공공병원을 늘리겠다는 약속은 전혀 지키지 않았지만, 의료 ‘산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약속은 임기 내내 착실히 진척시켜 왔다. 규제자유구역법 등 의료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고, 추가 규제 완화(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도 추진하고 있다.

공공병원이 한계에 이른 지금 상황에서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어쩌면 유일한 대안은 민간 대형병원들이 보유한 양질의 시설과 숙련 인력을 동원하는 것이다.(본지는 대구에서 코로나19가 크게 확산한 올해 3월에도 ‘필요한 지역에서는 민간병원도 동원해야 한다’고 요구한 바 있다.)

민간병원들은 개인이나 법인이 소유하고 있지만 수입의 대부분을 건강보험에 의존한다. 따라서 사실상 정부의 재정으로 운영되는 병원들을 정부가 통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정부는 민간병원을 동원하라는 요구에는 선을 긋다가 상황이 심각해지자 19일에서야 상급종합병원들에 동원 명령을 내렸다. 18일까지도 정부는 그동안 동원하지 않고 있던 공공병원들(보훈병원, 성남의료원 등)을 비워 병실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또 컨테이너 병상을 만들고 대학 기숙사 등을 빌려 생활치료센터로 전환하는 등 민간병원을 동원하는 것만 빼고는 다 하겠다는 식이었다.

12월 19일 오후 서울 은평구 서울시립서북병원 앞 주차장에서 컨테이너 임시 음압 병실 설치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조승진

그러나 이런 조처들로는 사망자 증가를 막기 어렵다. 앞서 지적했듯이 당장 시설과 인력이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이다. 집이나 생활치료시설이나 혹은 산소호흡기도 없는 침대 위에서 전원을 기다리다가 숨지는 경우가 속출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을 ‘의료 붕괴’라고 한다. 의료기관이 사실상 치료를 포기하거나 거부할 수밖에 없는 셈이기 때문이다. 2~3월 대구에서, 그리고 미국 뉴욕, 이탈리아, 영국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바 있다.

차이가 있다면 한국 정부는 당장 동원할 수 있는 민간병원들이 있는데도 환자들과 공공병원 노동자들을 의료 붕괴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런 조처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감염병예방법에는 질병관리청장, 시도지사 등이 감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의료인과 의료기관 병상 등 시설을 동원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이 조항은 2~3월 대구에서의 경험처럼 대규모 유행이 벌어졌을 때 대처하기 위해 올해 7월 새로 만들어졌다.

다른 나라의 경험도 많다. 스페인의 경우 코로나19 환자 수용 능력이 공공병원의 한계를 넘는 것이 분명해지자 정부가 민간병원들을 일시 국유화해 코로나 환자를 치료하도록 한 바 있다. 미국의 경우 한국처럼 대부분의 병원이 민간병원이지만 주정부가 나서서 민간병원들이 코로나 확진자를 진료하도록 명령했다.

이런 조처가 지금 즉시 실행되도록 해야 하고 팬데믹이 끝날 때까지 유지돼야 한다. 더 이상 환자들이 병원에 입원도 못 한 채 죽도록 방치돼선 안 된다. 사회적으로 힘없고 취약한 사람들일수록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다.

서울에는 수천 병상 이상에 분리된 건물을 가진 민간 종합병원이 많다. 그러나 수익성을 최고의 우선순위로 여기는 경영자들의 선의에 맡겨둬서는 병상을 확보할 수 없다. 이 경영자들은 코로나19 환자를 수용해 해당 병원의 기능이 마비될 때 발생하는 손해를 감수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책임지고 이 병원들을 동원해야 한다. 해당 병원 노동자들의 안전을 지킬 보호장비를 충분히 지급하고, 경제적 보상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겨울은 이제 초입을 지나고 있을 뿐이다.

기사를 발행한 직후 정부가 상급종합병원(민간과 공공 모두)들에 병상 동원 명령을 내렸다는 소식이 알려져 본문 내용 일부를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