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일 미얀마(버마) 군부의 반동적 쿠데타가 벌어졌고, 이에 맞선 미얀마인들의 저항이 이어지고 있다. 병원 노동자들이 연거푸 파업과 항의 행동을 선언한 데 이어, 2월 7일에는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에서 10만 명이 모였고 미얀마 곳곳에서 쿠데타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타이 사회주의자 자일스 자이 웅파콘이 타이와 이웃한 미얀마의 상황을 진단하며, 군부 쿠데타에 맞선 대중 운동의 중요성을 지적하고 과제를 제시한다. 웅파콘은 2006년 타이 쿠데타를 옹호한 국왕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국왕모독죄로 기소된 후 유럽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다.


최근 미얀마(버마) 군부 쿠데타로 인해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다. 타이로 망명한 미얀마인들과 타이 민주주의 운동 활동가들은 타이 수도 방콕에 있는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 즉각 시위를 벌였다. 타이 군사 정부는 과연 군사 정부답게, 그리고 미얀마 군부와 공유하는 이해관계에 충실히 따라서 경찰에게 시위대를 공격하라고 지시했다. 코로나19 비상사태가 그 명분이었다. 타이 활동가 2명이 체포됐다.

타이·미얀마 민주주의 운동 활동가들의 연대는 희망의 불꽃이다. 미얀마 민주주의의 진정한 희망은 아웅산 수치나 서방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소위 “국제 사회”는 쿠데타를 규탄하는 공허한 열변을 쏟아 내겠지만, 실제로 바뀌는 것은 없을 것이다. 국제적 제재가 민주주의를 가져온 적은 없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아파르트헤이트[인종 차별·격리 체제]를 종식시킨 것도, 동유럽 스탈린주의 국가들을 붕괴시킨 것도 노동계급과 청년들의 대중 반란이었다.

아웅산 수치는 반쪽짜리 민주주의 체제에서 5년 넘게 군부와 협력해 왔다. 군부에 맞선 ‘8888’ 항쟁* 당시 수치는 학생과 노동자들의 운동을 흩어뜨리고 승리의 문턱에서 좌절시켰고, 자신의 선거적 야망을 이루는 기반으로 전환시켜 버렸다. 미얀마는 그 후 30년 동안 계속 군사 독재였다.

또, 아웅산 수치는 인종차별주의자, 무슬림 혐오자이고, 불교·버마 민족주의자다. 진정한 민주주의 운동을 그의 지도에 내맡겨서는 안 된다.

희망은 타이·홍콩·나이지리아의 저항에서 영감을 받은 새 세대 미얀마 청년들의 저항에 있다.

2월 7일 미얀마인들이 군부 쿠데타를 규탄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날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에서는 약 10만 명 규모의 집회가 벌어졌다 ⓒ출처 iLaw TH (플리커)

한 가지 좋은 징조는 미얀마의 병원 노동자들이 쿠데타 항의 행동을 벌였다는 소식이다.

미얀마의 민주주의가 비록 허울뿐일지라도, 쿠데타는 자유에 대한 공격이다. 미얀마 군부가 만든 헌법은 “비상 사태” 시 군부가 전권을 쥘 수 있게 한다. 이 헌법은 군부에 주요 장관직 독점과 의회 의석 25퍼센트를 보장해 주고, 그 밖의 탄압 조처를 휘두를 수 있게 한다.

우파적 정견을 가진 자들은 최고 권력자들과 강대국들에 의한 합의로 점진적인 민주적 변화가 가능하다는 잘못된 주장을 퍼뜨리려 한다. 최근 〈뉴욕 타임스〉는 아웅산 수치가 군부와 충분히 협력하고 타협하지 못해서 미얀마 민주주의 발전이 심각하게 저해됐다고 암시하는 기사를 실었다. 그러나 아웅산 수치는 5년 넘게 군부와 지나치게 타협해 왔다.

최근 총선에서 수치가 압도적으로 승리한 이후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것은, 군부의 권력과 경제적 영향력을 의회적 조처로 줄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한 사람들을 향해 군부가 선제적으로 경고한 것일 수 있다.

2016년에 필자는 민주화에 관한 주류적 시각에 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거기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얼마 전 영국 외무부와 연관이 있는 한 연구원과 대화를 나누다가 경악스럽고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미얀마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민주적인 나라’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아웅산 수치가 군부와 함께하기에는 너무 융통성이 없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그 글에서 필자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미얀마에 관해서 어째서 이렇게 터무니없는 주장이 나오는가?”

[그리고 이렇게 답했다.] “핵심 관료들, 친(親)서방 정치인들이 민주화를 바라보는 시각은 기예르모 오도넬 같은 학자들과 연관된 우파적인 ‘비교정치학’에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다. 이들에게 민주주의 이행에서 중요한 것은 엘리트 분파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 이들이 어떻게 소위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안정적으로 수행해 내느냐 하는 것이다. 사실 이들은 사회 다수의 자유와 민주적 권리, 다수를 위한 사회 정의에 관심이 없다. 이들은 노동계급과 가난한 사람들이 대중 운동을 일으켜 권위주의 정부를 타도할 가능성에 대해 눈감으려 하고 두려워한다.

“인도네시아 독재자 수하르토나 필리핀 독재자 마르코스가 타도되기 전에 나온 민주주의 이행에 관한 정치학 문헌을 보면, 아래로부터 대중 운동으로 독재자를 타도할 수 있다는 관점이 완전히 결여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정확히 그런 일이 벌어졌다. ‘아랍의 봄’, 타이 군부에 맞선 1973년과 1992년 저항도 그런 사례였다. 그리고 타이를 비롯해 이런 모든 나라들에서 민주화를 관철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힘은 여전히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대중 운동에 있다.”

‘8888’ 항쟁 같은 노동자들도 참가한 대규모 반란이 군사 정부를 제거하지 못한 탓에 군부는 중요한 권력 수단을 계속 쥐고 있을 수 있었다. 군부의 권력을 분쇄하지 않으면 온전한 독재라는 질기고 독한 덩굴은 필시 다시 자라날 것이다.

타이에서는 대중 운동이 아직 노동계급의 힘과 결합되지 못했기 때문에, 군부가 여전히 사회를 통제하고 있다. 타이에서든 미얀마에서든 민주주의 이행을 성취하려면 조직된 노동계급과 동맹을 맺은 청년들의 대중 운동이 필요하다. 군사 정권은 얌전한 협상으로 점진적으로 해체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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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묶음]
미얀마 쿠데타와 저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