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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리나 재난이 보여준 것

망할 부시, 연방재난관리청은 뭐 했냐!카트리나 재난은 단순한 자연 재해가 아니었다. 미국 제국주의가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카트리나 재난은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몇 가지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첫째, 이것은 미국 자본주의의 우선순위가 어디 있는지 명백히 보여줬다.

모든 이들이 뉴올리언즈가 대형 폭풍에 취약하다고 경고해 왔다. 이 도시는 이미 폭풍의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다. 멀리는 1927년 대규모 피해가 있었고, 가까이로는 2004년 태풍 아이반이 있었다.

1998년 이후 여러 번에 걸쳐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실시됐고, 그 결과 5급 태풍이 닥치면 8만 5천∼1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죽음을 당할 거라는 경고가 있었다.

분명 2001년 9.11 이후 부시가 신설한 국토안보청은 이런 경고를 최우선 순위로 여겨야 마땅했다. 그러나 준비한 것이라고는 1만 장의 시체운반용 부대뿐이었다.

최근 〈워싱턴 포스트〉에 실린 ‘뉴올리언즈의 느린 익사’는 2백50년 전 프랑스인이 처음 도시를 건설했을 때부터 부시 정부 때까지 뉴올리언즈의 재해 대책을 정리하면서 이런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것[카트리나 재난]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잘못된 우선순위가 만든 비극이었다 … 정책 결정자들은 재난을 막을 수 있는 장기적 투자를 외면하고 단기적 이익을 추구했다. 그런 이익을 얻기 위한 계획들은 뉴올리언즈를 더 재난에 취약하게 만들었다.”

둘째로,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과 계급 문제가 노골적으로 폭로됐다.

이미 1927년 홍수 때 뉴올리언즈의 금융자본가들은 부유한 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흑인 빈민들이 주로 거주하던 지역의 제방을 부수라고 요구했고, 제방을 관리하던 공병대들은 둑을 폭파했다.

오늘날에도 사정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뉴올리언즈에는 40킬로미터에 달하는 제방이 건설돼 있는데, 흑인들이 주로 사는 가난한 지역은 시내 관광지에 비해 제방 높이도 낮고, 오랫동안 보수가 안 돼 쉽게 붕괴했던 것이다.

당시 뉴올리언즈 금융가들의 현대판인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1980년대 이후 흑인 빈민들을 거주지[공민권 운동의 성과인 공공주택]로부터 몰아내고 (막상 그 역사를 만들어 낸 가난한 흑인들은 없는) 역사 테마 공원과 월마트를 짓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이번 카트리나로 흑인 빈민들이 난민이 되자 한 공화당원은 “드디어 우리가 원하던 상황이 왔다. 다만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신의 노력으로” 하고 말했다.

이들은 지금 이 계획을 진행시키려 한다. 주로 중간계급 백인들의 표로 당선된 흑인 시장 레이 나긴은 얼마 전에 카지노 단지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그는 다수가 흑인인 시 정부 피고용인 절반을 해고하겠다고 발표했다.

연방정부는 지역 개발업자들이 만세를 부를 만한 정책을 내놓았다. 이 지역을 일종의 “기업 지구”로 지정하고 부동산세를 포함해서 부자들이 내야 하는 온갖 종류의 세금들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회조사국 보고서도 인정하듯이 “기업 지구”라는 것은 대체로 부자들의 돈벌이 놀이터였지,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구실을 한 적은 없다. 심지어 연방정부는 ‘재건 사업’에 고용되는 사람들에게는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못을 박았다.

셋째, 이라크 점령에 대한 불만과 결합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정치화됐다.

평화정의연합 조직자인 레슬리 케이건은 “이라크 전쟁과 걸프 만의 위기가 동시에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9·24 시위에 참가했다고 지적했다.

심지어는 팝스타 셀린느 디온조차 한 대담 프로그램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을 죽이라고 그렇게 쉽게 그 많은 비행기들을 다른 나라로 보내면서 허리케인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돕는 것은 어쩌면 그렇게 더딜 수 있나요?” 사실 더디긴 더뎠다. 디온의 모국인 캐나다 구호물자가 먼저 도착했으니까.

넷째, 카트리나 재난은 세계적으로 미국 제국주의·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더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조지 W 부시 1기 정부 국무부 관료였던 리차드 하스는 이 점을 잘 지적했다. “이 정부의 외교 정책 핵심은 세계적으로 민주주의를 확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식 모델의 매력, 그리고 미국이 더 민주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사회의 효과적 옹호자일 수 있는 능력은 이미 이라크 전쟁 때문에 상당히 약화됐지만, 국내의 혼란 때문에 더 약해졌다. 따라서 앞으로는 자유시장과 더 열린 사회를 주장하는 것이 더 힘들어질 것이다. 그러한 개혁의 결과가 뉴올리언즈식 혼란이라면 누가 그 모델을 따르고 싶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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