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쟁점이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다시 떠올랐다. 성소수자 자긍심 행진(퀴어퍼레이드)의 서울광장 사용 허가 문제가 각 정당과 후보 간 쟁점이 됐다.

퀴어퍼레이드는 한국에서는 2000년부터 매해 개최돼 온 성소수자들의 행사다. 50여 명 행사로 시작한 이 행진은 이제 5만여 명이 모이는 행사로 크게 성장했다. 특히, 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5년부터는 서울광장 사용을 허가한 것이 성장에 도움이 됐다. 그 과정에서 퀴어퍼레이드도 미국 대사관을 초대하고 기업 후원을 받는 등 더 주류화해 왔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이 개선돼 왔기 때문이다. 이는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된다.

2019년 6월 서울 퀴어퍼레이드 ⓒ조승진

그러나 인식의 개선으로 성소수자 차별 문제가 해결된 것은 전혀 아니다. 인식 개선조차도 불균등하고 여전히 편견도 많다. 때문에 한국의 성소수자들은 여전히 일상에서는 성적지향이나 성별정체성을 숨기고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라도 성소수자들이 도심에 모여서 함께 행진하면서 연대감을 느끼고 자신을 긍정하는 날은 의미가 크다.

개신교 우파 등은 우파 세력을 결집하는 쟁점으로 성소수자를 문제삼아 왔다. 직접 겨냥해 온갖 편견을 유포해 왔고, 행진을 직접 방해하기도 했으며, 서울광장 사용 허가 문제를 놓고 박원순도 비난해 왔다.

이들은,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가 난처해 이 쟁점을 침묵·회피하거나 과거 박영선처럼 혐오에 동조하면 진보 염원 대중의 일부를 실망과 사기저하에 빠뜨릴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 사회운동이 이런 민주당을 단호하게 비판하지 않고, 협조를 기대해 왔다. 도심 행사를 허가한 박원순 시장도 우파들이 공격할 때 단호하게 방어하지는 않았다.

지금 보수 우파 야권의 유력 후보들인 안철수와 나경원이 퀴어퍼레이드 장소를 도심 외곽으로 밀어내려는 언사를 하는 것도 이런 일환인 듯하다.

보수 야권 단일 후보를 노리는 안철수가 먼저 TV 토론회에서 퀴어퍼레이드를 “거부할 권리” 운운하며 “도심 밖에서 해야 한다”고 했다. 뒤이어 나경원도 ‘동성애 반대’와 퀴어퍼레이드 ‘보지 않을 권리’를 주장했다.

곧장 〈기독일보〉는 사설에서 “[안철수의] 소신을 새롭게 평가”한다며 화답했다.

그런데 안철수는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도 아주 기회주의적 면모를 보여 온 바 있다. 2012년에는 찬성했다가, 2017년 대선 후보일 때는 ‘사회적 합의와 공론화가 필요’를 얘기하며 입장을 유보했다. 그런데 당시 안철수 선거캠프에서 안철수를 대신해 개신교계 행사에 참가한 인물은 “동성애·동성혼 절대 반대”을 약속하기도 했다. 좌우 눈치를 보며 오락가락한 것이다.

여하튼 서울시장처럼 강력한 행정력을 가진 정치인이 성소수자들의 행진에 대고 “거부할 권리” 운운하는 것은 성소수자에 대한 실질적 압박이 될 수 있다. 퀴어퍼레이드의 기원이 되는 미국 스톤월 항쟁 당시 구호가 “벽장에서 나와 거리로”였는데, 성소수자들에게는 다시 ‘벽장’으로 돌아가라는 말로 들릴 것이다.

민주당 후보들의 침묵과 회피

한편, 민주당 안에서도 중도층 지지 확보에 강점이 있다고 여겨지는 박영선은 성소수자들과 진보층의 반감을 누그러뜨리고 싶은 듯하다.

2월 12일 클럽하우스(음성 채팅 앱)와 14일 기자 간담회에서 박영선은 차별금지법에 대한 질문에 “사회적으로 많은 인식 변화가 있었고, 저도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하고 말했다. 5년 전에는 보수 개신교 행사에 참가해서 “동성애법은 자연의 섭리와 하나님의 섭리에 어긋나게 하는 법”이라며 우파에게 아첨을 떨었었다.

그러나 박영선의 발언이 개과천선을 뜻하는 건 아니다. 차별금지법을 ‘찬성한다’는 말은 끝내 꺼렸다. 과거 혐오 발언에 대해 분명히 사과하거나 반성한 것도 아니다. 퀴어퍼레이드의 서울광장 개최 찬반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이것을 확실히 했다가는 중도 보수쪽 표를 안철수나 나경원에게 잃는다고 볼 것이다.

결국 이번 박영선의 발언은 성소수자에 대한 민주당 주류 입장에 발 맞춘 정도라 할 수 있다. 문재인 자신이 2017년 대선 토론회에서 “동성애 반대[하지만] ... 차별에는 반대한다”는 식으로 말한 바 있다. 박영선의 “차별 반대” “인권” 운운 역시 진보층의 반발을 줄여보려는 공허한 선거용 제스처일 뿐이다.

이런 궤변은 대놓고 혐오·차별하지 않지만 성소수자들의 처지를 개선할 의지도 별로 없다는 뜻이다.

문재인을 포함해서 주요 여권 인사들은 “차별에 반대한다”면서도, 실질적인 개선은 거부해 왔다. 오히려 차별 현안에 “사회적 합의” 운운하며 요구를 외면했다. 군형법 92조의6(군대 내 동성애 처벌법) 존속, 차별금지법 요구 외면, 변희수 하사의 강제 전역 등이 차별 문제에서 문재인 정부의 성적표다. 낙제점인 것이다.

경선 대상인 우상호도 퀴어퍼레이드에 대해 답변을 회피했다. 박원순 개혁은 전체적으로 실망스러웠는데, 고작 그 정도도 잇겠다고 못하면서 박원순 계승 운운하니 더 가소로울 따름이다.

이런 우파의 혐오 조장과 민주당의 회피·침묵에 성소수자 단체들은 반발했다.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와 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 등도 비판 입장을 발표했다.

노골적으로 성소수자 차별을 조장하는 우파 후보는 물론, 왼쪽에서도 표를 얻으려고 우파와 다른 듯하려 하지만 정작 구체적인 쟁점에서는 회피하고 우파 눈치를 보는 박영선도 차별받는 사람들의 대안이 아니다.

퀴어퍼레이드가 만만치 않게 세를 유지하며 서울광장에서 개최되고, 성소수자 차별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려면 이들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하고 무엇보다 기층에서 급진적이고 정치적인 운동을 성장시키도록 애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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