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이란 무엇인가?》 린지 저먼 지음, 책갈피, 176쪽, 12,000원

자본주의가 만들어 내는 불평등과 지난 수십 년 동안 심화된 양극화로 많은 사람들이 이 사회가 평평하지 않다는 걸 잘 안다. 팬데믹 하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쪽도 가난한 사람들과 노동계급이다. 반면 많은 자본가들은 이 시기에 재산이 더 늘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 심지어 많은 좌파들도 갖가지 불평등의 원인을 이해하고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로서 계급에 주목하지 않는다.

이번에 출간된 《계급이란 무엇인가?》는 불평등의 진정한 원인을 이해하는 열쇠로서, 사회체제의 작동 원리 속에서 계급을 살펴본다. 무엇보다 계급에 대한 각종 표피적 접근과 혼란에서 벗어나 계급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한다.

저자 린지 저먼은 영국에서 오랫동안 혁명적 사회주의자로서 활동하며 계급투쟁 속에서 계급·여성해방·개혁주의 문제를 다룬 많은 글과 책을 써 왔다. 난해한 학술 서적들과 달리, 이 책은 날카로운 폭로, 풍부한 역사적 사례, 다양한 쟁점을 담고 있고 마르크스주의의 접근법을 이해하기 쉽게 제시한다. 《오늘날 한국의 노동계급》(책갈피, 2017)의 저자 김하영은 추천사에서 “계급 문제를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쓴 쉽고 명쾌한 입문서”라고 했다. 게다가 누구나 쉽게 도전할 수 있는 분량이기도 하다.

노동계급의 혁명적 잠재력

상당수 진보·좌파들은 ‘노동자답게’ 행동하는 사람들이나 각성한 정치 의식이 있는 노동자들이 진정한 노동계급이라고 본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현재(있는 그대로)의 노동계급과 노동계급의 잠재력을 구별”했다. 린지 저먼은 “노동계급에 속한 누군가가 보수당에 투표하고 공영주택을 사거나 주식을 약간 소유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노동자”라며 이 점을 놓치면 노동계급의 현재 의식에 낙담해 그들의 혁명적 잠재력을 부정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계급을 생산수단 지배 여부로 구분하지 않고 막스 베버처럼 다양한 경제적 요인으로 구분하거나, 사무·전문기술직 노동자들을 노동자가 아닌 ‘신중간계급’으로 분류하는 관점도 널리 퍼져 있다.

이런 관점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금속 노동자와 교사·간호사를 하나의 계급으로 보지 않는다. 이처럼 계급을 소득, 지위, 직종,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잘게 나누기 시작하면 결국 노동계급이 사라지고 있다는 주장을 강화하고, 더는 이 사회를 양대 계급이 적대하는 사회로 보지 않게 된다.

반면 저자는 이런 피상적 구분을 거부하며, 착취 관계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에 따라 계급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착취 관계 속에서 발휘되는 노동계급의 집단적 힘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마르크스는 “노동계급이 집단행동을 통해 생산수단을 장악하고 사유재산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사회적 생산을 조직하는 사회를 확립”할 특별한 존재라고 봤다.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노동계급은 이런 집단적 힘으로 특별한 구실을 할 수 있음을 여러 차례 보여 줬다.

파업 집회 중인 한진택배 노동자들 대공장 생산직 등 특정 부문만을 노동자라고 보면, 노동계급의 구성 변화를 노동계급의 쇠퇴로 잘못 볼 수 있다. 그러나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등 새롭게 등장한 부문도 노동계급의 일부이고, 착취에 맞설 잠재력이 있음을 거듭 보여주고 있다 ⓒ조승진

한편, 이 책은 1996년 영국에서 처음 출판된 책임에도 현재 한국 노동운동 안에서 유행처럼 제기돼 온 주요 쟁점들, ‘제조업 육체 노동자들이 쇠퇴했는가’, ‘서비스 노동자 증가로 노동계급이 약화했는가’, ‘비정규직 증가로 노동계급이 분절되고 이질화됐는가’, ‘비정규직이 무한정 늘어나고 있는가’ 등에 답하고 있다. 20년 전 영국의 구체적 현실에 관한 자료와 사례들을 이용했음에도 시대에 뒤처지기는커녕 오히려 요즘 한국 상황에 딱 들어맞는다.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생산의 변화와 함께 변해 왔다. 20세기 후반 서비스 산업의 폭발적 성장과 고용 확대, 사무직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의 증가로 노동계급의 구성이 변해 왔다. 그러나 노동계급의 구성 변화를 노동계급의 종말로 보는 것은 단견이다. 저자는 비정규 노동(유연 노동)도 증가했지만 이것을 과장해선 안 된다는 것을 역사적 사례와 통계 등으로 입증한다. 이 책의 편집자는 최신 통계를 병기했는데, 이를 보면 놀랍게도 저자가 20년 전에 진단한 추세가 현재에도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본가 계급을 다룬 부분도 무척 흥미롭다. 저자는 자본가 계급을 생산수단 소유 여부뿐 아니라 기업을 관리·경영하는 사람들, 자본가 계급을 대신해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위해 운영되는 모든 국가 기구의 고위 관료, 직업 정치인 등도 자본가 계급으로 규정한다. 이들은 서로 경쟁하지만 착취에서는 모두 동일한 이해관계를 갖는다. 하지만 저자는 자본가 계급이 서로 경쟁하기에 분열이 벌어지고, 노동계급이 이를 이용해 단결해 싸운다면 결정적 승리를 얻을 수 있다고 역설한다.

이 책은 양대 계급(자본가 계급과 노동계급) 사이에 낀 중간계급도 다룬다. 중간계급은 현대 사회에서 계급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상당수 좌파들은 자본주의가 변화하면서 점점 중간계급이 양산된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이 책은 ‘신중간계급’으로 분류되는 전문직·기술직·관리직 종사자 중 많은 수가 프롤레타리아화해 왔음을 보여 준다. 중간계급은 단일하지 않고 양대 계급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이기에 더 단호한 쪽을 따르게 된다. 중간계급의 이런 특징을 잘 이해한다면 노동자운동이 어떻게 중간계급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지, 중간계급과 노동계급의 차이를 흐리는 민중주의 전략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있다.

혁명적 정당

노동자는 자본주의 이윤 시스템과 사용자들이 가하는 압력 때문에 집단적 투쟁으로 떠밀리고 바로 이런 투쟁 속에서 관념이 바뀌고 사상이 발전한다. 한국 노동계급도 1987년 7~8월 대중파업뿐 아니라 지난 30년간 여러 집단적 투쟁 속에 의식과 조직을 성장시켰다. 노동조합은 그런 의식과 조직 발전의 산물이다.

이 책은 여기서 설명을 멈추지 않고 노동조합 투쟁을 통한 의식 변화에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는 노동조합의 한계에서 비롯한다. 노동조합은 착취 자체가 아니라 그 결과물을 놓고 싸운다. 그래서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조합원들의 요구만이 아니라 사측의 사정도 살펴야 한다는 압력을 받는다. 많은 투쟁에서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불가피하지 않은데도 양보와 타협을 하는데 기층 노동자들도 이를 뛰어넘지 못하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노동계급의 혁명적 잠재력과 실제 현실 사이의 모순을 극복하려면 노동조합에서 더 나아가 혁명적 정당이 필요하다. 혁명적 정당은 노동계급 운동에 뿌리내리고 노동계급의 가장 선진적인 부위와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한다. 혁명적 정당은 운동 내에서 토론과 논쟁을 통해, 과거의 투쟁과 전통에서 발전시킨 이론과 사상을 전하는 동시에, 끊임없이 변화·발전하고 새로운 조직과 투쟁 형태를 만들어 내는 노동계급에게 배우기도 해야 한다.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계급 문제를 보려 할 때 아주 유용한 입문서다. 입문서라고 해서 깊이가 없을 것이란 선입견은 버려라. 계급 문제에 대한 최신 논쟁까지 다루기에 경험 있는 활동가들도 꼭 읽어 봐야 할 필독서다. 이 책과 함께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한국의 노동계급을 분석한 《오늘날 한국의 노동계급》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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