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신냉전인가? 또는 신냉전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이 물음은 국제적으로 중요한 화두가 돼 있다.

지난해 10월 〈파이낸셜 타임스〉는 5차례에 걸쳐 신냉전 주제를 연재했다. 일본 기업이 소유하고 있고 영국 런던에 본사가 있는 그 신문은 트럼프뿐 아니라 미국 엘리트들도 최근 수년 동안 중국에 대한 태도가 급격히 바뀌어 이제 중국을 적으로 보는 데 초당적 합의에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미국과 중국이 이제 냉전의 초입에 접어들었다”(헨리 키신저). 그리고 과거 냉전 때처럼 “세계가 두 개의 진영으로 나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이런 신냉전 담론은 모두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점증하면서 생긴 변화를 반영한다.

1989년 동유럽 스탈린주의의 몰락으로 인한 냉전 해체 이후 처음으로 신냉전론이 제기된 계기는 2008년 러시아와 그루지야(지금의 조지아) 사이의 전쟁이었다. 당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특히 이라크 점령에 발목이 잡혀 있는 동안 러시아는, 힘의 공백을 파고들어 나토(NATO)에 가담하려는 그루지야와 전쟁을 벌였다. 미국이 옛 소련 영토 내로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이처럼 지역적 수준에서 러시아가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자 서방 정치인들과 언론들은 러시아를 비난하면서 신냉전이 도래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오늘날 러시아는 미국 지배자들이 보기에 분명 성가신 존재이지만, 냉전 때의 맞수였던 소련보다는 크게 약해진 국가다. 올해 1월 바이든 정부의 국방장관 로이드 오스틴이 의회 인사 청문회에서 한 말은 러시아에 대한 그들의 인식을 보여 준다. “러시아도 위협이지만, 약해지고 있다.”

로이드 오스틴을 비롯한 미국 지배자들이 보기에 미국 패권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단연 중국이다. 그래서 지금 신냉전론의 중심에는 중국의 부상 문제가 있다.

자신의 패권을 합리화하기 위해 바이든을 비롯한 미국 지배자들은 미국과 중국·러시아 사이에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차이가 크다고 부쩍 강조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권위주의 국가들인 반면 그 반대편에는 미국 중심의 민주주의 진영이 있다는 것이다. 중국 시진핑 정부가 홍콩 민주주의 운동과 신장·티베트의 소수 인종들을 억압하는 것은 미국 지배자들이 이런 주장의 정당성을 위해 가장 자주 드는 사례가 됐다. 미국의 우파 국제관계학자 로버트 카플란은 이렇게 주장했다. “미국과 중국 시스템의 철학적 차이는 [냉전 당시의] 미국 민주주의와 소련 공산주의의 간극만큼 커지고 있다.”(《포린 폴리시》 2019년 1월 7일치)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바이든도 중국을 적으로 보고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는 것을 미국 대외정책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여긴다. 바이든은 동맹국들을 중시하고 이들을 다독여 (물론 필요하면 그들을 압박해), 중국을 견제·봉쇄하려는 자신의 전략적 목표로 끌어들이려 한다. 반중국 진영을 구축하려는 것이다. 바이든 정부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쿼드(QUAD, 미국, 일본, 인도, 호주가 참여해 만든 연합체)를 강화·확대하려 하고, 서방 강대국들의 모임인 G7을 D10(‘민주주의’ 10개국 연합체)으로 확장하려는 까닭이다.

이러다 보니,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신냉전 구도가 동북아시아에서 형성되고 있다는 주장이 많이 나온다.

오늘날 남중국해는 미국과 중국의 힘 겨루기로 매우 불안정한 곳이 됐다. 지난 2월 남중국해에서 합동 훈련을 하는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 니미츠함과 시어도어 루스벨트함 ⓒ출처 미 해군

냉전은 무엇이었나?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신냉전의 초입에 접어든 것일까?

이에 대해 알려면 과거 냉전의 주된 특징들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과거 냉전과 오늘날의 세계 질서 사이에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냉전은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곧 시작됐다. 흔히 냉전은 자본주의 체제와 ‘사회주의’ 체제라는 질적으로 다른 두 사회 체제의 대결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냉전은 미·소 양대 초강대국이 주도한 제국주의적 경쟁이었다.

당시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자국 산업들이 ‘자유무역’을 통해 세계 곳곳으로 침투해 계속 세계경제를 지배하기를 바랐다. 이에 맞서 소련은 동유럽을 종속시켜 폐쇄적인 국가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블록을 구축했다. 소련의 생산성과 경제 효율은 미국에 견줘 너무 낮아 자유무역으로는 미국과 경쟁을 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동유럽을 비롯해 소련이 장악한 ‘동구권’에 미국이 접근하지 못하게 막았다. 미국 지배자들도 소련 블록의 권력에 밀리면 자칫 서유럽과 태평양 연안국 등 자신이 장악한 세력권을 침해받을까 봐 우려했다.

그래서 미국과 소련은 자국의 세력권에 상대방이 밀고 들어오는 것을 경계하며, 핵무기를 포함한 엄청난 군비 경쟁을 벌였다. 특히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활발했던 제3세계 민족 해방 혁명 운동은 미·소간 제국주의 경쟁을 더한층 격렬하게 만들었다.

요컨대 냉전은 거의 모든 국가 간 경쟁이 미·소 양대 초강대국이 주도하는 진영들 안으로 욱여넣어져 국가들이 어느 한 진영에 속하도록 강요받는 세계 질서였다.

서방은 소련에 맞서 미국의 동맹 체제 속에 단결했다. 미국의 헤게모니 하에 통합된 서방 경제는 미국 기업들뿐 아니라 다른 서방 기업들이 성장하는 데도 득이 됐다.

그러나 오늘날의 세계 질서는 냉전 때와는 사뭇 다르다.

무엇보다, 미국과 중국 모두 상대방의 경제적·외교적·군사적 촉수를 차단한 배타적인 세력권으로 세계를 양분하고 있지 못하다. 오늘날 미국 지배자들은 자국 패권의 상대적 약화 때문에 수십 년째 골머리를 앓고 있다. 물론 여전히 미국은 가장 강력한 초강대국이지만, 자신의 의지를 동맹국들에 관철하는 데 갈수록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의 부상은 미국의 패권을 상대적으로 더 약화시킨 요인이다. 투자와 교역 증대로 중국 경제와 다른 경제들 사이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중국의 지정학적 영향력도 제고돼 왔다. 이것은 미국의 영향력을 갉아먹고 있다. 미국의 동맹인 한국, 호주 등이 중국 주도의 자유무역협정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참여한 일, 이탈리아를 비롯한 몇몇 유럽 국가들이 중국의 일대일로에 참여하고 중국에 항구 운영권을 넘긴 일 등은 미국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음을 보여 준다.

중국은 엄청난 경제성장으로 대외적 위상을 제고해 왔으나 냉전 시절의 소련처럼, 동유럽 같은 군사적 완충 지대를 확보하지 못했고, 미국의 접근을 차단하는 세력권을 형성하는 데에도 이르지 못했다. 사실, 중국은 동맹 확보 면에서 미국보다 매우 뒤처져 있다.

한편, 미국과 중국 간의 이데올로기적 차이가 많이 얘기되지만, 이 문제도 냉전 시대와는 다르다. ‘자유와 민주주의의 수호자’로서 미국의 이미지는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중국 지배자들은 중국이 ‘사회주의 사회’라고 주장하지만, 오랫동안 시장 지향적 경제 구조 개편을 추구해 왔다. 그래서 중국의 시장 스탈린주의 체제는 그 이데올로기적 영향력 면에서 과거 소련의 전통적 스탈린주의 체제보다 훨씬 약하다. 전성기에 소련은 국경과 블록 밖에서 공산당들의 강력한 지지가 있었지만 오늘날 중국은 그렇지 못하다. 게다가 각국의 공산당들은 여전히 취약하다.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에선 존재가 유명무실하다.)

냉전 시절에는 동방과 서방 진영 사이의 경제적 교류가 매우 적었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과 중국은 경제적으로 상호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 그리고 미국-중국을 잇는 국제화된 생산 네트워크는 오늘날 세계경제를 구성하는 핵심이 돼 있다.(그렇다고 두 강대국들이 전쟁을 벌이지 못할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경제적 연관 때문에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생각은 카우츠키 사상의 일부로, 제1차세계대전의 개전으로 그 오류가 증명됐다.)

오늘날의 제국주의

오늘날 세계가 신냉전으로 가고 있다고 본다면, 그래서 경쟁하는 양대 진영으로 세계가 양분되고 있다고 본다면, 이는 상황의 한 측면을 크게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 위에서 언급했듯이 강대국들 간의 경쟁과 갈등이 줄어들거나 전쟁 가능성이 제어되는 것은 아니다. 경제의 깊어진 상호 의존 속에서도 그동안 강대국들의 불협화음은 커져 왔고, 미국과 중국의 이해관계 충돌도 점점 악화돼 왔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국제 관계는 기본적으로 자본 축적 논리에 연동돼 있다. 다국적기업들은 세계시장을 무대로 더 많은 이윤을 얻으려 애쓰고, 투자 기회, 자원, 시장 확보 등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한다.

다른 한편, 세계는 자본주의 국민국가들 사이에 국경으로 나뉘어 있고, 대기업들은 특정 국가(들)와 좀 더 깊은 연계를 맺고 있다. 자본주의 국가들은 ‘국익’(사실은 자신의 이익이나 자국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위해 다른 국가들과 경쟁한다. 이를 위해 군사력을 경쟁적으로 늘린다.

물론 자본주의 국가들은 (항구적일 수는 없지만) 다른 국가들과 협력하기도 한다. 장기적인 협력 구조를 형성하려고 협정을 맺고 WTO(세계무역기구) 같은 국제 기구들을 세워 왔다.

그러나 이런 국제 기구에는 국가들 간 힘의 차이, 즉 위계 질서가 반영돼 있다. 그래서 처음에 중국 경제가 세계경제에 통합되고 세계무역기구 가입 신청도 하자 미국 지배자들은 대부분 이를 양국에 윈-윈으로 여기고 환영했다. 당시에 중국 경제의 규모와 경쟁력은 미국에 견줄 만하지 못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들의 협력은 결코 안정적이지 못하다. 국가 간 협력의 근저에 자본 간 경쟁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레닌은 자본주의의 역동적 성격 탓에 경제력의 분포가 바뀌게 되고, 그러면 국가들의 힘도 바뀌면서 강대국들 사이의 갈등이 다시 불거지고 심지어 전쟁까지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 위기와 불황도 국가들 간의 불협화음이 커질 여지를 키운다.

한때 미국 지배자들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경제에 중국이 통합되는 게 대체로 미국에 유리할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이런 생각이 더는 들어맞지 않는다고 본다.

오늘날 중국은 제조업의 중심지이자 수출 대국으로서 자국의 경제 성장을 뒷받침하도록 자국의 힘이 해외의 더 넓은 지역으로 뻗어나가기를 원하게 됐다. 그리고 반도체, 5G, 인공지능, 배터리 등 첨단산업을 육성하며 미국 기업들과 경쟁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중국 국내총생산(GDP)은 미국 GDP의 70퍼센트 이상으로 커졌다. 경제 규모 면에서 중국은 미국이 이전에 직면해 보지 못한 가장 강력한 경쟁자이다.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제국주의적 경쟁이다. 그러나 힘이 엇비슷한 국가들 간의 경쟁은 아니다. 미국은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고, 세계 곳곳에 군사 기지와 동맹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2008년 미국발 금융 공황 이후에도 여전히 미국 국가와 자본은 국제 금융 시스템을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비록 시진핑 정부가 위안화의 국제화를 추진하지만 중국 기업들도 교역과 투자에서 여전히 달러 결제에 의존해야 한다. 그래서 미국이 중국의 달러 사용을 제한하는 것은 중국 지배자들이 염려하는 시나리오 중 하나이다.

그러나 제국주의 국가들의 힘의 격차가 양측의 갈등과 충돌을 막아 주지는 못한다. 1941년 일본이 자신보다 훨씬 강한 미국에 도전하면서 태평양 전쟁이 일어난 일은 이 점을 방증하는 역사적 사례다.

동아시아의 불안정

중국의 군사력 증대는 미국의 군사 패권을 지역적으로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바로 동중국해, 남중국해를 비롯한 서태평양 일대에서 말이다. 미국과 달리 중국은 이 지역에 힘을 상대적으로 더 집중할 수 있다. 그래서 미국의 군사력이 전 세계에 “과잉 확장”(특히, 이라크 등 중동 지역에서 미국이 점령 능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을 가리키는 국제관계학자들의 용어)된 틈을 비집고 들어가 중국은 남중국해 등지에서 군사력을 전진 배치해 왔다.

중국이 남중국해를 군사화하고 미국이 이를 견제하면서 이 일대는 세계에서 가장 불안정한 곳 중 하나가 됐다. 남중국해, 대만 등지에서 미국과 중국이 우발적이든 계획적이든 국지적 충돌을 벌일 가능성이 항상 있다.

문제는 남중국해 일대를 비롯한 동아시아가 오늘날 세계경제의 새로운 중심지로 부상한 지역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곳의 지역적 수준에서의 국가 간 갈등이 세계 자본주의 질서 전체에 심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배계급들은 나름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많은 국가들이 중국 경제와의 연계로 경제 규모를 키우고 산업을 육성해 왔다. 이 때문에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긴장된 이 국가들의 이해관계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예컨대, 베트남은 과거에 중국과 전쟁을 치렀고 지금도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그렇지만 오늘날 중국은 베트남의 최대 교역국이다. 2019년 현재 대중국 무역이 베트남 전체 무역액의 22.6퍼센트에 이른다.

그래서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하는 것을 꺼린다. 비록 미국의 동맹 질서에 묶여 있더라도 자국의 선택을 미국의 전략에 순순히 일치시키지는 않는 것이다. 바로 한국이 그렇다.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무역전쟁에 열을 올리는 와중에도, 지난해 삼성전자 매출에서 중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국보다 컸고, 삼성전자는 반도체 매출의 26퍼센트를 중국에서 거뒀다. 이런 경제적 관계 때문에 한국이 한미동맹을 중시하면서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계속 줄타기를 해 온 것이다.

이 밖에도 미국의 관여에도 불구하고 한·일 갈등이 쉽게 해소되지 않는 일, 지난 3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와 대치하는 와중에 한국이 러시아와 외무장관 회담을 한 점 등은 신냉전론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도 갈등과 분열의 불씨가 있다. 당장에 중국의 군사력 강화와 지정학적 확장은 중국 주변 국가들에 위협으로 여겨진다.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중국의 남중국해 장악 시도에 반발하고 있다. 자원 수입과 상품 수출을 동·남중국해 바닷길에 의존하는 한국도 중국의 이런 움직임을 걱정스런 눈길로 바라본다. 그리고 이런 맥락 속에 댜오위다오(센카쿠) 분쟁, 대만 독립 문제, 인도-중국 국경 분쟁 같은 해묵은 갈등은 더한층 악화되기도 했다.

이처럼 아시아 국가들 간의 관계가 모순되고 가변적이다 보니, 아시아 지역의 질서는 갈수록 불안정하고 유동적으로 변하고 있다. 그래서 아시아 각국은 경쟁적으로 군비를 늘리고 있고, 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군비가 늘어나는 지역이 됐다. 그중 (중국은 물론) 인도, 일본, 한국, 호주 등이 아시아에서 군비를 특히 많이 쓰는 국가로 꼽힌다(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

한국도 이처럼 군비 경쟁 격화에 일조한다. 문재인 정부는 역대급 군비 증강 계획을 세웠는데, 임기 5년 동안 정부가 쓰거나 쓸 국방비를 합하면 250조 원가량이나 된다. 문재인 정부는 동·남중국해 일대에서 작전이 가능한 경항모를 건조하려 하고, 인도네시아와 합작해 KF-21 전투기를 새로 개발하고 있다. 그런데 인도네시아는 중국 등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당사국이다.

미국과 중국 모두 이 지역 질서를 조금이라도 자국에 유리하게 만들려고 애쓴다.

바이든 정부는 아시아 국가들을 대중국 견제·봉쇄에 끌어들이려 애쓰고 있다. 쿼드를 개방해 한국 등의 사안별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그런 사례다. 그리고 아시아 동맹들과의 연합 훈련 확대 등으로 미국은 이 지역에서 군사적 존재감을 키우려 한다.

당연히 중국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트럼프 정부 4년을 거치면서 중국도 주변 문제에 훨씬 더 강경해져 있다. 대만 독립 문제에 대해 시진핑 정부가 무력 시위 등 날로 강경한 태세를 보이는 점, 방글라데시가 쿼드에 가입하려 하자 방글라데시 주재 중국 대사가 ‘그러면 중국과의 관계는 심각한 손상을 입을 것이다’ 하고 위협한 일은 그 최근 사례들이다.

이처럼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과 도전자 중국의 갈등은 한반도를 비롯한 아시아 지역을 불안케 하고, 머지않은 미래에 정말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

지난 4월에 열린 KF-21 보라매 시제 1호기 출고식 ⓒ출처 청와대

균형외교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그동안 한국 정부는 한미동맹을 중시하면서도 중국과의 관계를 의식해 왔다. 우파가 집권했을 때도 그랬다. 예컨대, 2015년 박근혜는 미국 동맹국 정상 중 유일하게 중국 전승절 기념식에 참석했다. 물론 이후 미국의 사드 배치를 결정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한국 지배자들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한국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두고 그들 사이에 논쟁도 벌어진다. 가령 우파의 표적이자 문재인 정부의 외교 조언자인 문정인 교수는 최근 저작에서 한국은 이제 이른바 “초월적 전략”을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양자택일하지 말고 “화합적 균형자”가 돼, “다자 협력과 지역 통합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정인 교수의 제안은 좌파적인 성격의 것도 아니고, 평화를 위해 현실적이지도 않다. 그가 언급한 협력 대상들은 일본, 호주, 캐나다, 프랑스, 영국처럼 대부분 미국의 동맹국들이며 그 국가들은 모두 제국주의적 경쟁의 화신들이다. 이런 국가들이 과연 제국주의적 충돌을 제어하며 항구적으로 평화를 유지하는 지역 질서를 형성할 수 있을까?

문정인 교수가 얘기하는 초월 외교는 ‘균형외교’의 한 형태다. 균형외교론에는 불안정해지는 국제 정세에 직면한 한국 지배자들의 고민이 담겨 있다. 그러나 한국은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경쟁 속에서 주된 플레이어가 아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한미동맹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성장하고 이제 나름의 대우도 받고 있다. 그만큼 안보·경제적 이해관계 면에서 미국(그리고 일본)과 역사적·구조적으로 깊이 얽혀 있다. 제국주의 열강의 경제적·지정학적 경쟁이 점증할수록 한국의 균형외교 전략은 그 한계와 모순을 드러낼 여지가 크다.

문정인의 초월 외교와 똑같지는 않지만, 좌파 내에서도 지금의 제국주의적 국제 질서를 “호혜와 평등의 국제질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제국주의적 갈등을 비판하는 것이겠지만, 제국주의 질서의 골간인 자본주의 체제를, 특히 그 성분인 자본주의 국가를 와해시켜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지 않는다면 개혁주의로 더욱 미끌어질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제 관계는 경쟁적 자본축적의 논리에 종속돼 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진정한 호혜와 평등의 국제 질서를 실현한다는 것은 다 큰 야생 호랑이를 길들여 한 방에서 함께 산다는 생각만큼이나 공상이다.

지금 우리는 신냉전에까지 이르지 않았다. 물론 미·중을 중심으로 제국주의적 대결과 투쟁이 격화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제1차세계대전 전야에 영·프와 독일이 갈등의 축이었어도 당시 세계 상황이 냉전이 아니었던 것과 비슷하다. 진정한 좌파라면 경쟁하는 열강 중 어느 한쪽도 지지하지 않으면서, 반제국주의 대안을 추구해야 한다. 그 대안은 자본주의 타도와 분리된 것일 수 없다.


이 글은 5월 14일 동명의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에서의 발제문을 다듬은 것이다. 토론회 영상은 ‘노동자연대TV’ 유튜브 채널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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