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제1차세계대전(1914~1918년) 중 영국은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독립을 약속하며 반란을 고무했다. 그러나 1917년 말, 영국은 시온주의자들에게 팔레스타인에 시온주의 국가를 건설하도록 돕겠다고도 약속했다(밸푸어 선언).

1939~1945년 제2차세계대전 기간에 많은 유럽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이주를 택했다. 원래 유대인들이 가장 선호한 목적지는 영국이었지만 시온주의자들의 강요와 서방 국가들의 공모 속에 중동으로 간 것이다.

1947년 유엔이 팔레스타인 영토의 55퍼센트를 유대인 몫으로 인정한다는 분할안을 발표했다. 당시 팔레스타인의 유대인 인구는 전체의 3분의 1이었다.

1948년 유엔 분할안과 서방의 후원에 고무된 시온주의 민병대가 팔레스타인인 수만 명을 학살하며 분할안보다 더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이스라엘을 건국했다. 팔레스타인인 85만 명이 고향에서 쫓겨났다. 이 와중에 요르단과 이집트는 팔레스타인 일부 영토를 점령했다. 예루살렘은 동서로 나뉘어 동예루살렘은 요르단, 서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이 차지했다.

1959년 아랍 민족주의 성향의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인 ‘파타’ 결성. 파타는 1960~1970년대 팔레스타인 저항을 이끈 주요 그룹이 된다.

1967년 이스라엘이 이집트·시리아·요르단을 상대로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 이로써 이집트 시나이 반도, 시리아 골란 고원, 동예루살렘 등 나머지 팔레스타인 영토를 차지했다. 가자지구,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가혹한 통치 아래 놓이게 됐다. 이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중동 지역 패권을 지키는 데 자신이 유용함을 서방 제국주의에 각인시켰다.

1978년 미국의 중재로 이집트가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고 친미 국가로 돌아섰다(캠프 데이비드 협정). 이스라엘 국가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아랍 국가들의 합의가 깨졌다.

1982년 이스라엘 군대가 당시 침공 중이던 레바논에서 약 36시간 동안 팔레스타인 난민 수천 명을 학살했다(사브라·샤틸라 난민촌 학살).

1987년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대중 항쟁이 분출했다(1차 인티파다). 이집트, 터키, 쿠웨이트, 시리아, 튀니지 등지에서 현지 지배자들에 대한 불만과 결합돼 연대 시위가 확산됐다. 그러나 파타(팔레스타인 민족해방운동)는 아랍 지배자들을 우군으로 추켜세우며 운동이 이 지배자들을 위협하는 것을 단속했다. 이때 이슬람주의를 따르는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인 ‘하마스’가 결성돼, 주요한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으로 부상했다.

1993년 미국의 개입으로 파타는 이스라엘을 인정하는 대신 이스라엘의 점령 아래 자치 정부를 꾸리기로 합의했다(오슬로 협정).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세워지지만,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은 사실상 포기해야 했고 동예루살렘 지위(누구의 영토로 할 것인지) 문제는 추후 논의로 미뤄진다.

1995년 미국 의회가 주이스라엘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법을 통과시켰다. 예루살렘 전역이 모두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선언한 것이다. 그런데 미국 정부는 실제로 대사관을 이전하는 것은 계속 미뤘다.

2000년오슬로 협정 이후에도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영토 확장과 이를 사실상 옹호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대한 분노가 폭발해 팔레스타인에서 2차 인티파다가 분출했다.

2006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선거에서 하마스가 승리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세가 강한 가자지구를 봉쇄했다. 또 다른 이슬람주의 단체 헤즈볼라를 격퇴하고자 레바논을 침공했지만 실패했다.

2007년미국과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제거하려고 파타의 쿠데타를 사주하지만 쿠데타는 실패했다. 이후 가자지구는 하마스가, 서안지역은 파타가 지배하게 된다.

2009년 이스라엘이 하마스 격멸을 내걸고 가자지구를 침공하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곧 퇴각한다.

2010~2011년 아랍 혁명으로 미국과 이스라엘의 핵심 우방이던 이집트의 무바라크 정권이 붕괴했다.

2012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폭격에 나서지만 혁명적 민심을 우려한 미국과 주변국 지배자들의 만류 속에 8일 만에 꼬리를 내렸다.

2013년 7월 이집트에서 군부의 반혁명으로 엘시시가 집권했다.

2014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또 폭격했다. 아랍 혁명의 퇴조 속에 이스라엘은 50일 넘게 가자지구를 마음껏 유린하지만 하마스를 뿌리 뽑지는 못했다.

2017년 10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가 10년째 이어지고 하마스가 고립된 가운데, 이집트의 중재로 하마스가 파타에게 가자지구를 넘기는 협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하마스가 무장을 포기하기를 거부해 이듬해 1월 협약이 깨졌다.

2017년 12월 미국 트럼프 정부가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수도’라고 선언하며 주 이스라엘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겠다고 발표했다.

2018년 3월 가자지구 국경 지대에서 “귀환 대행진” 시위가 시작됐다. 매주 열린 이 시위는 많게는 수만 명이 참가했으며 이듬해 12월까지 이어졌다. 시위대는 가자지구 봉쇄를 끝내고 이스라엘 건국 때 쫓겨난 사람들이 돌아갈 권리를 인정하라고 요구했다.

2018년 7월 이스라엘을 유대인들의 배타적 국가로 명시한 ‘민족국가법’이 통과됐다.

2019년 11월 미국 트럼프 정부가 팔레스타인 땅의 유대인 정착촌은 불법이 아니라고 선언했다.

2020년 1월 트럼프 정부가 이스라엘의 무단 점령지와 유대인 정착촌 상당 부분을 이스라엘의 공식 영토로 인정하는 ‘중동평화구상’을 발표했다. 트럼프는 이란 견제를 위해 이스라엘과 걸프 국가들을 묶는 데 장애가 되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치워버리려 했다. 걸프 국가들은 이미 이스라엘과 관계를 개선해 왔으나 여전히 팔레스타인 연대 전통이 우세한 자국 대중의 반발을 의식해 트럼프의 구상을 선뜻 지지하지는 못했다. 한편, 트럼프의 이런 행보는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설을 더 가속시켰다.

2020년 7월에 이스라엘 정부가 서안지구 합병 계획을 발표하지만 그 파장을 우려한 서방 국가들의 압력으로 연기했다. 11월에는 동예루살렘에 정착촌 확대 계획을 발표했다.

2020년 8월 대표적인 걸프 국가의 하나인 아랍에미리트(UAE)가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공식적으로 정상화했다.

2021년 1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대한 백신 공급을 가로막았다. 이스라엘은 이를 하마스에게서 양보를 얻어내는 카드로 활용하려 했다.

2021년 5월 11일 동예루살렘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내쫓으려는 시도에 맞선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이 심화하는 가운데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폭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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