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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정상회담:
한미동맹 강화 선택한 문재인 정부

5월 22일(한국 시각) 워싱턴DC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바이든이 대통령 취임 후 백악관에서 맞이한 두 번째 외국 정상이다. 첫 번째가 바로 일본 총리 스가 요시히데였다. 정상회담 일정만 봐도, 바이든 정부가 인도·태평양 지역에 전략적 우선 순위를 두고 일본·한국과의 협력 강화를 중시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양국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한미동맹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됐다고 밝혔다. 문재인은 안보·경제 등에서 동맹 강화를 약속했고, 바이든의 대중국 정책을 포괄적으로 지지해줬다. 이런 점들을 보면 이번 정상회담은 훗날 한반도와 그 주변의 불안정에 “새로운 장”을 연 계기로 기록될지 모르겠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문재인과 바이든은 안보, 경제, 우주 등 광범한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5월 22일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기자회견 ⓒ출처 청와대

대북 정책과 관련해, 문재인은 바이든 정부가 성 김을 대북특별대표로 임명하고 “남북 대화와 협력 지지”를 표명한 점을 강조했다. 바이든 정부가 북한과 대화할 준비가 돼 있고 남북 관계에서 한국의 자율성도 어느 정도 인정해 줬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에서 대북 정책은 선언적 수준으로 언급되는 데에 그쳤다. 구체적인 계획이나 약속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다.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나 계약이 이뤄진 다른 분야 협력 약속과 다른 점이다.

외려 공동성명은 관련 유엔 안보리 결의를 완전히 이행하라고 촉구해, 대북 제재 완화는 없다고 못 박았다. 그리고 “합동 군사 준비태세 유지”가 강조됐다. 한미연합훈련 등 대북 군사적 억제가 유지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2018년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 등 기존 남북·북미 간 합의를 중시한다고 명시했지만 이것이 합의의 주된 줄기로 보이지 않는 이유다.

대만해협

양 정상은 한미 관계가 한반도를 훨씬 넘어선다고 밝히면서 공동성명에 광범한 주제들을 포함시켰다. 특히, 남중국해 문제, 인도-태평양 구상 협력 등 미국이 대중국 견제에서 중시해 온 의제들이 광범하게 다뤄졌다. 비록 지난 4월 미·일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견줘 보면, 중국을 직접 거론하지 않는 등 표현 수위를 다소 낮췄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대만 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가 공동성명에 들어간 것은 중국이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일 것이고, 향후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 공식 문서에 대만 관련 문구가 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외교부 장관 정의용은 대만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문제를 두고 “아주 일반적인 표현”이라고 했다.

그러나 “하나의 중국”을 표방하는 중국은 지금껏 대만 문제를 국내 문제이자 결코 양보할 수 없는 “핵심 이익”의 하나로 공표해 왔다. 한미 양국 정상이 “대만 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를 공언한 것을 두고 중국 외교부가 “내정 간섭”이라며 반발한 까닭이다.

게다가 대만 관련 표현은 향후 미국이 한국에 해당 지역에서 군사적 협력을 요구할 수 있게 물꼬를 터준 셈이다. ‘유사시 주한미군의 대만 분쟁 개입 지원’, 한·미·일 군사 공조 강화 등 앞으로 대만 문제와 관련해 미국이 한국에 요청할 만한 것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우려스런 결과다.

한·미·일 3국 협력과 쿼드(Quad) 등 미국 주도의 다자주의에 대한 협력도 강조됐다. 특히, 쿼드 문제가 시선을 끌었다. 쿼드는 미국·일본·인도·호주가 참여하는 협의체로, 바이든 정부는 아시아 국가들을 반중국 진영으로 끌어들이려고 이 기구에 공들여 왔다. 이번 공동성명은 쿼드를 “개방적이고, 투명하며, 포용적인 지역 다자주의”로 묘사해 앞으로 한국이 쿼드에 협력할 것임을 시사했다.

정의용도 정상회담 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개방적이고 투명하고 또 포용적이라는 그런 원칙만 지켜진다면 쿼드 국가들과의 몇몇 분야에서는 협력이 가능하다.” 아마도 한국은 정식으로 쿼드에 가입하지는 않으면서, 기술과 기후 변화 등 사안별로 협력하게 될 듯하다.

공동성명에는 이런 문구도 있다. “민주주의 국가로서, 우리는 국내외에 인권 및 법치를 증진할 의지를 공유했다.” 예전에도 이와 유사한 표현은 있었지만, 이번에는 실행 계획이 있다. 청와대가 공개한 ‘한·미 파트너십 설명자료’에 따르면, 한·미 양국은 ‘한미 민주주의·거버넌스 협의체(DGC)’를 두어 “국내외 인권 및 민주주의 증진 노력에 관한 조율 메커니즘”으로 삼을 것이다. 아마도 이 기구는 신장 위구르, 홍콩 민주주의 문제 등 미국이 경쟁국을 압박하려고 이용하는 국제 인권 현안에서 양국이 의견을 조율하고 보조를 맞추는 데 쓰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한미 미사일 지침이 42년 만에 종료된 것을 정상회담 성과의 하나로 내세운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새롭게 만들어질 한국의 중거리 미사일들의 사거리에는 중국의 주요 도시들이 포함된다. 바이든 정부는 그래서 미사일 지침 폐기에 동의해 줬을 것이다.

반도체·배터리·5G

한편, 정상회담에 앞서 삼성, 현대, SK, LG 한국 주요 재벌들은 44조 원에 이르는 미국 투자 계획을 밝혔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공장을 미국에 확충하고, 현대차는 미국 내 전기차 생산과 충전 인프라에 투자한다. SK는 배터리와 반도체 부문에 신규 투자를 하고, LG도 배터리 분야 신규 투자 계획을 내놨다. 백신 스와프는 체결되지 않았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모더나 백신을 위탁생산키로 하는 등 한국과 미국 기업 간에 백신 관련 계약들이 성사됐다.

이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첨단산업 공급망, 기술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것과 연관 있다. 양국은 반도체, 배터리, 5G·6G 네트워크, 의약품 등의 분야에서 기술 협력을 강화하는 등 경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바이든 정부는 첨단 산업 분야에서 중국에 주도권을 내주지 않으려고 공급망 재편과 기술 개발에 애쓰고 동맹국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는데, 한국도 이에 어느 정도 화답해 공동 기술 개발과 공급망 논의에 협력하기로 한 것이다. 아예 두 정부는 “청와대와 백악관 간 한미 공급망 태스크 포스 구축을 모색”하기로 했다(‘한·미 파트너십 설명자료’). 중국의 반발이 있겠지만, 재벌들도 첨단 기술과 시장 확보를 위해 문재인 정부의 이런 선택을 지지하는 듯하다.

문재인 정부는 한미동맹을 중시하면서도 중국을 의식해 왔다. 이달 초 국무총리 김부겸이 인사청문회에서 한 말은 이런 인식을 잘 보여 준다. “한미동맹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토대 자체를 우리가 허물어뜨릴 수 없다. 그렇다고 중국이라는 세계 최대시장을 옆에 놓고 마치 중국하고는 다시 안 볼 사이처럼 할 순 없다.”

그러나 한국은 제국주의 경쟁 속에서 주된 플레이어가 아니고, 미국·일본과는 안보와 경제 면에서 이해관계가 구조적·역사적으로 깊이 얽혀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정부는 이런 한국 나름의 이해관계를 고려하며 한미동맹 강화를 선택했다. 여전히 중국과의 관계도 고려하겠지만 말이다.

정상회담 결과가 나오자 주류 언론과 재계는 모두 환영했다. 〈중앙일보〉 등은 모두 ‘한미동맹의 토대를 굳건히 하기로 한 것은 다행스럽다’ 하며 안도했다. 전경련도 ‘한미동맹이 안보를 넘어 경제동맹으로 나아갔다’며 환영 논평을 냈다. 국민의힘도 대체로 이번 회담이 성과를 냈다고 본다.

그동안 레임덕 위기에 빠졌던 문재인 정부로서는 우파와 재계의 찬양에 힘을 얻고 한미동맹 강화 등 더 우경적인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로 인한 불안정 증대와 부담은 문재인을 비롯한 지배자들이 아니라 한국의 평범한 사람들이 고스란히 짊어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