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주간 쿠바 거리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가난과 코로나19 팬데믹의 충격으로 많은 쿠바인들이 정부에 분노를 터뜨렸다.

그러나 어떤 쿠바인들은 정부를 방어하는 행동에 나섰다.

쿠바 역사는 중요한 교훈을 준다. 미국의 개입이 얼마나 악랄한지, 그리고 그것을 물리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도 보여 준다.

쿠바는 제국주의에 맞서 민족 해방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고무적인 사례다. 그러나 사회주의의 본보기는 아니다.

1440년대 후반, 오늘날 쿠바로 불리는 땅을 최초로 점령한 제국은 스페인이었다. 그곳의 원주민 시보니 타이노족은 식민지 정복자들에 의해 쫓겨나고 노예가 됐다.

스페인은 1800년대 내내 쿠바를 두고 미국과 싸웠고 결국 미국에 밀려 1898년 쿠바를 포기해야 했다.

1902년 쿠바는 독립을 선언하지만, 헌법에 삽입된 ‘플랫 수정안’으로 사실상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플랫 수정안의 한 조항은 쿠바섬에 있는, 오늘날 고문으로 악명 높은 관타나모 기지를 미국에 넘긴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미국은 쿠바를 통치하는 데서 강력한 입김을 행사했다. 사실상 대통령을 지명하고, 모든 저항을 박살내기 위해 군대를 보내기도 했다.

이것은 정치적 불안정의 시기를 낳았다. 부사관 출신 풀헨시오 바티스타는 이 상황을 이용해 정권을 장악하고 1940~1944년 쿠바의 대통령을 지냈다. 바티스타는 1952년 선거에서 패배하자 미국을 등에 업고 군부 쿠데타를 일으켜 독재 정권을 수립했다.

바티스타는 미국, 마피아, 쿠바 자본의 일부와 협력해 부패한 정권을 세웠다. 이 체제는 부자들에게는 놀이터였고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공포의 장이었다.

1950년대 말까지 아바나에는 270곳의 성매매 집결지가 있었다.

대다수 노동계급, 소작농, 그리고 심지어 몇몇 자본가들도 바티스타의 통치에 반대했다. 바티스타는 일반 대중의 삶을 파괴했지만, 쿠바인 소유 기업의 성장도 억제했다.

사회적 기반이 없었던 바티스타는 경찰과 군대에 의존해 반대자들을 억눌렀다. 이것만으로는 자신에 맞서 결집하는 세력들을 저지하기에 역부족이었다.

1953년 7월 [26일] 좌파 포퓰리즘적인 오르토독소당 내의 더 급진적 부위로부터 소규모 혁명가 그룹이 결성됐다. 이들은 피델 카스트로의 주도로 몬카다 병영을 습격했다. 카스트로는 그 습격을 벌인 죄로 투옥됐고 이후 멕시코로 망명했다.

쿠바로 돌아오면서 카스트로는 그의 동생 라울,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와 함께 ‘7월 26일 운동’을 조직했다.

게바라와 카스트로는 혁명가들의 무장 게릴라 투쟁으로 사회 혁명을 가져올 수 있다는 믿음으로 단결했다. 노동자와 농민의 투쟁은 유용하다고 여겼지만 그것을 중심에 놓지는 않았다.

그 후 1950년대 내내 여러 그룹들이 바티스타의 군대에 맞선 무장 투쟁을 이끌었다.

무장 투쟁은 의심의 여지 없이 영웅적이었다. 1957~1958년 사이 2000명에 이르는 도시 저항군이 목숨을 잃었다. 반정부 세력에 대한 탄압은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독재 정권에 등을 돌리고 저항군에 공감하게 만들었다.

바티스타에 대한 지지는 곤두박질쳤고, 그의 군대 상당수가 반정부 세력과 싸우길 거부했다. 바티스타 체제는 결국 1958년에 무너졌다.

1959년 1월 1일 바티스타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고 카스트로가 혁명 승리를 선언했다. 그해 2월 카스트로는 총리가 됐다.

혁명은 세계 곳곳에서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힘을 줬다.

1959년 1월, 피델 카스트로

7월 26일 운동

반란자들에 대한 노동계급의 대중적 지지가 있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참여는 쿠바 사회를 변화시킬 방법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혁명 전해인] 1958년에 시도된 총파업은 실패로 끝났다. 이듬해 신중하고 치밀하게 준비된 파업들은 노동자 투쟁이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줬으며, 혁명을 엄호하는 데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

쿠바 혁명이 승리한 방식은 이후 쿠바 사회의 성격을 결정짓는 바탕이 됐다.

쿠바 사회는 상층 집단이 대다수 사람들에게 무엇이 최선인지를 결정하는 사회였다. 이들은 대중에게 이로운 변화를 원했다. 그러나 이들은 노동계급의 해방이 노동계급 자신의 행동이어야 한다는 마르크스의 핵심 사상을 버렸다.

혁명 직후 카스트로와 신생 공산당은 대중을 만족시킬 개혁들을 도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임을 알았다. 의료와 교육에서 실질적인 개선이 있었고 산업의 상당 부분이 국유화됐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들은 단지 노동자에게만 이로운 것이 아니었다. 산업화를 재촉해 쿠바 경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경제 성장은 사활적인 과제로 여겨졌다. 특히,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미국이 쿠바에 금수 조처를 내린 뒤 더 그랬다.

미국의 금수 조처는 수입에 크게 의존하던 쿠바에 심각한 타격을 줬다. 모든 사회주의자들은 이를 해제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수십 년 동안 미국은 쿠바 정부를 뒤흔들려고 암살과 테러를 후원하고 침략을 감행하는 등 쿠바에 협박을 일삼았다. 가장 악명 높은 시도 하나가 바로 1961년 피그스만 침공이다. CIA가 우익 반군을 지원해 쿠바를 공격하려 했다.

이 사건 이후, 쿠바 정부는 쿠바 혁명이 사회주의 혁명이라고 선언했다. 쿠바는 소련과 동맹을 맺었다. 그리고 [소련에] 설탕을 수출해 석유를 수입함으로써 경제를 살릴 수 있었다.

쿠바 정부는 사회 조직 방식으로서 소련 모델에 갈수록 큰 기대를 걸었다. 동유럽과 중국에 도입된 국가자본주의 모델은 축적 수단을 민간 자본가들이 아닌 국가와 국가 관료들의 손에 집중시키는 것이었다. 이 나라들은 국가자본주의 모델에 기대어 세계 시장에서 경쟁국과 계속 경쟁할 수 있었다.

쿠바도 이런 모델을 채택했다. 이것은 단지 동맹국을 보고 배우려는 것이 아니라, 경기 침체 대응책이기도 했다.

사회주의는 소련 한 나라에서 건설될 수 없었다. 쿠바처럼 작은 나라에서 사회주의가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쿠바 정부는 살아남기 위해 낙관적인 경제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려고 노동자들을 엄청나게 쥐어짰다. 쉼 없는 경제 성장 노력은 대중을 곤궁에 빠뜨렸다.

그리고 다른 국가자본주의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반대자 탄압과 진압은 쿠바 사회의 뚜렷한 특징이었다. 노동자 투쟁을 적극적으로 억제하는 조처들이 시행됐다. 토지 개혁은 소작농이나 농장 노동자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채 단행됐다. 노동조합은 국가의 통제를 받았다.

풀뿌리 민주주의 요소라고 하는 것들은 상층의 명령을 하달하는 수단이 돼 버렸다.

ⓒ출처 Movimiento San Isidro

국가자본주의

혁명의 결과는 ‘차별받는 사람들의 축제’가 전혀 아니었다. 성소수자들은 잔혹한 박해에 시달렸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투옥되기도 했고 1980년부터는 수만 명의 게이와 레즈비언이 나라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1988~1991년 소련의 붕괴로 쿠바는 식량 부족에 직면했다. 이런 어려움을 견디던 쿠바 정권은 경제를 지탱할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민간 기업에 대한 점진적 개방을 해결책으로 삼았다.

2000년대가 시작될 무렵 쿠바에서 이뤄진 합작 사업과 대기업과의 제휴 협약은 405건에 달했다. 대부분은 관광 산업에서 형성된 것이었다. 2011년에는 정부의 통제 없이 기업들이 영업할 수 있게 하는 경제 개혁 조처가 도입됐다.

그리고 올해 2월, 쿠바 노동부 장관은 국영 부문들을 거의 전부 기업에 개방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어떠한 개선도 가져오지 못했다. 그러나 이것은 새로운 형태의 계급투쟁을 낳았다.

미국은 한때 마치 입장을 바꾸려는 듯 보였다. 미국 대통령이 된 버락 오바마는 쿠바와의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차기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240개 조처를 도입해 어느 때보다도 더 가혹한 제재를 가했다.

이 조처들은 조 바이든 하에서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이번 달 시위를 촉발한 식량 부족 사태는 쿠바를 굶주리게 하려는 미국의 제재 탓도 물론 일정 부분 있다.

그러나 이 시위는 쿠바 사회 자체의 산물이기도 하다. 이 사회는 ‘공산주의’를 표방하면서도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다수의 빈곤 위에 군림하는 지배 계급이 형성되는 것을 용인했다.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는 데에서 우리는 언제나 쿠바를 지지한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우리는 노동자들의 자주적 활동, 시위·결사의 권리, 정부에 맞서 진정한 사회주의를 위해 투쟁할 권리도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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