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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약 허가 미적거리는 문재인 정부

최근 현대약품이 낙태약 ‘미프진’ 품목허가를 신청했으나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허가를 미적거리고 있다.

지난 3월 초 현대약품이 영국의 낙태약 제약사와 공급 계약을 맺었을 때 식약처는 올해 상반기 중 낙태약 국내 도입을 목표로 “신속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었다.

하지만 현대약품이 정식 허가 신청을 하자 말을 바꿔 “외부 자문절차를 할 수 있다”며 제동을 거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결국 당시 “신속 검토” 운운이 입발린 말에 지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낙태약 ‘미프진’은 세계보건기구 WHO가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했을 만큼 안정성과 효과가 입증된 약이다. 그래서 이미 세계 70여 나라에서 합법적으로 도입돼 사용되고 있다. 영국과 유럽 등지에서는 낙태의 70퍼센트가 낙태약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한국에서 낙태약은 여전히 불법이다.

지난해 낙태죄 효력 정지로 낙태를 처벌할 수는 없게 됐지만, 낙태 권리에 대한 법적·제도적 공백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해 말 낙태죄 효력 정지 직전까지도 낙태죄를 유지하는 대체 법안을 추진하려다, 여성들의 반발을 의식해 중단했다. 그 뒤로 정부와 여당은 이 공백 상태를 방치해 왔다.

특히 낙태약은 대체 입법이 마련되기 전에라도 얼마든지 도입할 수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올 초에는 대체 입법이 없어서 낙태약을 도입할 수 없다고 유체이탈 화법으로 핑계를 대더니, 이제는 ‘외부 의견’을 핑계 삼아 낙태약 도입을 회피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여전히 여성들은 음성적인 방식으로만 낙태약을 구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수십 만 원에 이르는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을 치러야 하는 데다 ‘가짜약’에 따른 피해도 여전하다.

인터넷에서 수십 만 원에 거래되는 미프진. 국가가 안전하게 미프진 사용을 보장해야 한다

낙태 합법화에 반대해 온 일부 산부인과 의사들은 낙태약의 부작용을 근거 없이 과장해 왔다.(관련 기사: 낙태약을 무상 도입하고 낙태권을 보장하라)

그러더니 최근 이들은 낙태약을 국내에 도입하려면 반드시 안정성을 위해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별도의 임상실험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낙태약 도입을 가로막거나 늦추기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 임상실험을 거치는 데에는 최소 1년 이상이 소요되는데, 그 사이에 여성들의 고통은 지속될 것이다.

이미 WHO가 안정성과 효과를 검증해 필수의약품으로까지 지정한 약을 두고 반드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다. 이 약은 중국, 태국 등 ‘아시아인’들 사이에서도 이미 널리 사용되는 중이다.

이들이 해외 검증이 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미소프로스톨’ 성분 역시 이미 국내에서 분만유도에 쓰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파의 목소리가 커진 상황에서, 정부는 진보층과 보수층 모두의 눈치를 보며 낙태 문제를 쟁점화시키려 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특히 내년 대선을 앞둔 상황이라 더더욱 그럴 것이다.

지난달 말 건강보험책정심의위원회가 임신중지 교육·상담료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기로 결정했는데, 이런 미미한 조처를 도입하는 데 그치려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보건복지부는 이 조처를 소개하며 임신중절 의학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뿐 아니라 “반복적인 인공임신중절 예방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이런 목적의 교육과 상담이라면 낙태를 원하는 여성에게 오히려 죄책감을 심어줄 수도 있다.

정부는 낙태약을 신속히 도입하고, 의료보험을 적용해 무상으로 제공해야 한다. 낙태약 도입뿐 아니라 기간과 사유 제한 없이 무상으로 낙태할 수 있는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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