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역과 위드 코로나

위드 코로나 정책은 영국과 스웨덴 지배자들이 팬데믹 초기에 밀어붙이려던 집단면역 실험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백신이 언제 나올지 모르니 다 한번씩 걸려서 ‘집단면역’을 획득하자는 것이었죠. 경제를 돌리기 위해 코로나19에 취약한 노약자는 죽어도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조처에 대해 저항이 있고, 감염병 부담이 생각보다 커지면서 의료 대응 역량 등 사회 인프라가 잘 돌아가지 않아 경제에도 부담이 되자, 지배자들은 부분적으로 록다운을 실시해야만 했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요.

그런데 백신이 개발되고 어느 정도 보급되자 위드 코로나가 새롭게 다시 얘기되는 것입니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공동대표 ⓒ<노동자 연대>

이런 방향을 둘러싸고 국제적으로 논쟁이 계속돼 왔습니다. 지난해 10월 발표된 그레이트 배링턴 선언이 위드 코로나를 간단히 요약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레이트 배링턴이라는 작은 마을에 몇몇 역학자들이 모여서 선언한 것입니다. 내용인즉 취약 그룹만 집중 보호하고 젊은 사람들은 일상으로 복귀하자는 거예요. 경제적 피해, 초과 사망 등 록다운으로 인한 부수적 피해가 너무 크다고 말이죠.

이에 반대해서 2020년 11월에는 다른 역학자들이 모여서 존 스노 메모를 발표합니다. 존 스노는 1854년 런던 소호의 콜레라 창궐의 원인을 추적한 ‘근대 역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람이죠. 이 내용이 〈랜싯〉에 실렸는데요. 이들은 그레이트 배링턴 선언을 반박합니다.

먼저 코로나 취약 그룹인 노인, 기저질환을 가진 사람, 필수 대면 노동자 등이 사실상 인구의 40퍼센트나 되는데 이들을 어떻게 따로 보호하냐는 것이죠. 또, 젊은 사람들을 일상으로 복귀시키면 전파가 늘고 그에 따라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사망이 늘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습니다. 사망까지 안 가더라도 ‘롱 코비드’라 불리는 오랜 시간 지속되는 후유증이 있습니다. 6개월 이상 뇌에 안개가 낀 것 같다고 하죠.

지금 얘기되는 위드 코로나는 백신의 요소가 더해진 것 외에는 트럼프나 보리스 존슨이 팬데믹 초기에 취하려고 했던 것과 근본에서 다르지 않습니다.

일각에서는 코로나를 인플루엔자(독감)처럼 관리할 수 있다고도 하는데요. 코로나가 인플루엔자에 비해 치명률이 5~10배 높습니다. 또, 빨리 번집니다. 델타 변이는 감염재생산 지수가 독감과 비교해 3~4배가 돼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인간과 오랫동안 함께 살아 와서 예측이 가능하지만, 코로나는 그렇게 순화된 바이러스가 아닙니다.

백신 접종을 어느 정도 했으니 방역을 다 풀어 버리자? 그러면 어떤 모습이 될까요? 이스라엘이나 영국을 보면 됩니다.

이스라엘은 백신 접종률이 70퍼센트가 안 됩니다. 초정통파 유대교도(인구의 약 15퍼센트) 등의 접종 거부 문제 등으로 접종률이 높지 않죠. 그런데 방역을 완화하고 나서 하루 확진자 수가 1000명이 됐습니다. 우리 나라 인구의 5분의 1밖에 안 되는 나라인데 말이죠.

영국은 백신 접종률이 70퍼센트 정도 됩니다. 그런데 방역을 풀고 나서 하루 확진자가 4만 명으로 치솟고, 하루에 200명씩 죽고 있습니다. 국가보건의료시스템(NHS)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병실과 인력의 한계를 넘어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방역을 완전히 풀면 사망자는 늘어납니다. 당연히 첫째 희생자는 가난한 노인과 약자들입니다. 또, 의료 대응 능력을 넘어설 정도로 환자가 늘면 그 피해가 사회의 평범한 서민들에게 집중되죠. 결국 노동자·서민(과 그 가족들)이 직격탄을 맞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드 코로나는 나라마다 그 맥락이나 대응도 약간씩 다를 수 있습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사실 한국 자본가들은 위드 코로나에 대해서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열의가 없어 보입니다. ‘굳이 위드 코로나를 해야 하나?’ 하고 생각하는 듯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한국 정부도 위드 코로나에 대해 태도가 애매모호한 것이죠.

한국은 엄격한 거리두기와 광범위한 검사·추적·격리 방식을 통해서 어느 정도 방역에 효과를 거두기도 했거니와, 그로 인해 자본가들이 손해 본 게 상대적으로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대자본이 이윤을 내는 곳들은 거리두기가 하나도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제조업, 물류업, 백화점이나 마트 같은 서비스업은 기존대로 굴러갔죠. 지하철과 버스도 마찬가지고요.

오히려 거리두기가 엄격하게 적용된 곳은 개인 서비스업(자영업), 학교, 요양 서비스였죠. 자영업자들은 고통받고, 그 자영업자들에게 고용된 노동자들은 해고되고, 노동계급 자식들은 제대로 교육받지 못해 학력 격차가 벌어졌어요. 요양원의 노인들은 사회에서 완전히 고립돼 죽어 갔죠. 지난해 겨울 요양원·요양병원에서 죽은 사람이 전체 사망자의 45퍼센트까지 됐어요.

미술관이나 예술관? 부자들은 미술관 닫아도 충분히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어요. 하지만 여기를 닫으면 노동자들이 즐길 곳이 없어요. 공공 도서관이 문을 닫으면 대다수 사람들은 공부할 곳이 없어요.

즉, K방역 하에서 코로나의 고통이 온전히 노동자·서민에게 전가된 것입니다. 반면, 자본가들은 크게 손해 본 것이 없기 때문에 기존 K방역에 크게 불만을 느끼지 않는 겁니다.

병원 자본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나라에서 코로나 환자 치료 정책은 소수 공공병원이 독박 쓰는 정책이었어요. 공공병원들만 코로나 환자를 봤기 때문에(입원 환자의 약 80퍼센트) 사립 재벌 병원들은 사회적 책임에서 면제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위드 코로나로 가면 의료 대응을 늘려야 하는데, 이게 병원 자본에게 유리하지만은 않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자본가들이 힘든 척하며 엄살을 부리지만, 사실 K방역이 그대로 가도 좋겠다고 생각하는 측면도 있어 보입니다.

이처럼 K방역이 너무나 불평등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위드 코로나가 일정 부분 진보적인 측면도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죠. 다른 나라에서 위드 코로나는 분명히 악인데, 한국에서는 오히려 지금보다는 낫다고 여겨지는 측면도 있는 거죠.

새로운 지속 가능한 방역이 필요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 백신이 변수인 것은 사실입니다. 백신을 맞으면 중증화 비율이 10퍼센트로 줄어드는 건 확실하니까요. 현대 과학의 성과죠. 인구 70퍼센트가 접종을 마치면 방역을 일부 완화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방역을 다 풀 수는 없습니다.

원래 감염재생산지수가 2~2.5였던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집단면역에 필요한 면역 인구가 70퍼센트였습니다. 감염재생산지수는 한 명이 몇 명을 감염시키는지를 보여 주는데요. 하지만 델타 변이는 재생산지수가 5~9라서 면역 인구가 80~90퍼센트는 돼야 이런 상태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지금 감염자의 9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델타 변이의 경우, 백신 접종 뒤에도 이른바 ‘돌파 감염’이 될 확률이 40퍼센트 정도 되고, 이렇게 돌파 감염된 사람의 경우 남에게 바이러스를 옮기는 비율이 백신 비접종자와 똑같습니다.

따라서 방역을 영국처럼 급격히 전면 완화하면 백신 미접종자의 집단 사망으로 이어지는 거죠. 백신 접종률에 따라 어느 정도 방역을 완화할 수 있지만, 전면적인 방역 완화는 안 됩니다. 또 방역 완화의 속도도 의료 대응 등 준비를 먼저 갖추고 이에 따라 단계적, 점진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지속 가능한 방역을 준비해야 합니다.

우선, 의료 대응 시스템을 새로 만들어야죠. 하루 확진자가 5000명 내지 1만 명이 나온다고 생각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해요. 그러려면 공사립 병원 모두 코로나에 대응해야만 합니다.

1~4차 유행 시기 때마다 병상 부족이 반복됐습니다. 자택 대기 환자가 발생하고, 그러다가 위중증으로 발전한 경우도 있고요. 요양병원은 말이 병원이지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이 아닌데, 치료할 수 있는 병원으로 옮겨지지 못하고 거기서 그냥 죽는 경우도 허다했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병상 수는 세계 1등입니다. 엄청 많아요. 다만 코로나 병상이 부족한 거죠.

지금 코로나 대응을 10퍼센트의 공공병원, 그중에서도 1~2퍼센트의 지방의료원들이 다 하기 때문이에요. 정부가 3차 종합병원은 고작 중환자실의 1퍼센트만 동원하라고 명령했어요. 4차 유행 시기에도 수도권 26개 종합병원의 병상 1.5퍼센트만 동원 명령을 내렸죠. 이조차도 실제로는 다 안 됐다고 해요.

언론에서 삼성병원이 코로나 병실을 내놨다고 엄청 띄웠는데, 고작 20개예요. 웃기는 게 삼성 병원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면 어찌 되는지 아세요? 중증이 아니면 공공병원으로 보내요. 이렇게 되면 병상이 모자라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옮기는 과정에서 적절한 치료도 못 받고, 감염 위험도 높아지죠. 코로나 의료 체계가 엉망진창인 것입니다.

부족한 간호 인력과 방역 인력을 충원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요. 의료 노동자들은 지금 그야말로 사명감 하나로 일하고 있어요. 그만 두거나 휴직하신 분들도 많고요. 자기 눈 앞에서 사람이 너무 많이 죽어서 심리적 번아웃(탈진)도 있어요.

보라매 병원을 예로 들면, 간호 인력이 110명 있었는데(노동조합의 요구로는 최소한 250명 이상이 더 필요하다고 합니다), 지난해 12월 근무기록을 보면 간호사 6명이 환자 50명을 돌봤다고 해요. 파견 인력이 있지만, 현장에서는 크게 도움이 안 되고요. 간호사 1명이 코로나 환자 병실에 들어가서 온갖 수발을 다 들어야 하기 때문에 1:1로 마크해도 부족하죠. 다른 업무들도 있고요.

지금 한국이 무지막지하게 백신을 놓고 있는데, 이것도 의료 인력을 갈아넣어서 하는 거예요. 저도 오늘 100명 넘게 백신을 접종했고요. 그런데 이러면 의료진이 환자를 제대로 못 봐요. 백신 맞고 다음날 사망했다고 하는데, 이게 백신 때문이 아니더라도 의사가 다음날 죽을 환자의 상태를 제대로 알아볼 겨를이 없었다면 정말 문제인 거죠.

‘코로나 영웅’ 병원 노동자들의 투쟁 9월 9일 고려대병원 노동자들의 파업 집회 ⓒ조승진

둘째로 불평등을 강화하는 기존 방역도 극복돼야 합니다. 불필요한 거리두기는 없애고, 불가피한 거리두기는 유지하되 그에 따른 사회적·경제적 지원을 늘려야 해요.

학교는 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학교는 코로나 감염의 허브가 아니라는 것이 경험적으로 밝혀졌어요. 영국에서도 2020년 11월부터 2개월 간격으로 초중등 학생들을 검사했는데 학교에서 코로나 감염이 거의 없었어요. 오히려 학교를 닫으면서 불평등만 늘었죠. 물론, 과밀학급 문제가 해결되고 고령의 교사 노동자에 대한 보호가 필요하지만요.

야외 집회도 허용해야 해요. 민주노총이 대규모 집회를 했지만 확진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어요. 유일하게 확진자가 나온 집회가 지난해 8.15 우익 집회였죠. 여기서 확진자가 500명이 나왔는데요. 뭐 이미 교회에서 감염돼 왔을 수도 있고요. 당시 집회 참가자들은 거리두기는커녕 마스크도 안 쓰고 일부러 침도 뱉고 그랬죠. 매우 예외적인 상황인데, 이걸 포함하더라도 집회에서 확진자가 나온 건 0.2퍼센트에 불과해요. 마스크를 착용하고 거리두기를 한다면 야외집회에서 감염될 가능성은 매우 매우 낮아요. 야외 감염 확률은 0.1퍼센트 미만이라는 논문들도 있고요.

요양원도 지금처럼 유지돼서는 안 됩니다. 요양병원에 1인당 허용되는 공간이 1.3평입니다. 이건 4단계에서의 안마소나 마사지업소의 최소 법적 허용공간인 1.7평보다 못한 건데요.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의 내부에서 물리적 거리두기를 강제하고 지원해야지, 이 요양시설을 ‘사회로부터 거리두기’ 즉 격리시켜서는 안 됩니다.

한편, 불가피한 거리두기는 유지해야 합니다. 3밀 공간에서 대화를 하는 경우에 감염의 60퍼센트가 이렇게 이뤄진다고 해요. 개인 자영업자들은 이런 경우에 속하는 경우가 꽤 있겠죠.

이러한 영업장의 경우에는 일정한 거리두기를 유지하되, 충분한 생활 보장을 해야 합니다. 그 형태가 보상이 될 수도 있고요. 요즘 언론이나 정부의 주장을 보면, 자영업자의 경제적 피해를 강조하며 위드 코로나를 얘기해요. 그런데 위드 코로나를 안 해서 자영업자들이 고통스러운 걸까요?

일본과 비교해 보죠. 일본은 자영업자 소득이 30~50퍼센트 하락했을 때 중앙정부가 임대료의 3분의 2를 6개월간 보상해 줍니다(상한 50만 엔, 약 530만 원). 소득도 월 10만 엔씩 1년을 보상해 줍니다. 영업제한을 하면 하루에 4만~6만 엔을 줍니다. 피고용자 월급도 정부가 80퍼센트 이상을 보장합니다.

바이든도 재정을 꽤 많이 풀었습니다. 유럽은 상대적으로 재정 지출이 적었지만, 우리 나라보다 사회보장제도가 잘 돼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기준 IMF의 ‘국가별 코로나19 대응 지출액’을 보면, 확장 재정이 GDP 대비 일본은 15.6퍼센트, 이탈리아 6.8퍼센트, 독일 11.0퍼센트, 영국 16.3퍼센트인데 한국은 고작 3.4퍼센트입니다. 이것조차도 노동자·서민에게 다 돌아간 게 아니죠.

(왼쪽) 국가별(G20 경제선진국) 코로나19 대응 지출액 (오른쪽) 코로나19 대응 지출 방식별 GDP 대비 비중

이처럼 한국이 유독 재정 지원에 인색했습니다. 말과 다르게 정부의 속내는 ‘원래 자영업자들 많이 망하지 않았어? 우리 나라 자영업자 너무 많은데 구조조정이 필요하지’라고 보일 수밖에 없는 냉혹한 정책이죠.

게다가 자영업자들에게 고용된 노동자들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자영업자의 고통 호소가 이 정도면 거기에 고용됐던 노동자들은 거의 다 해고됐을 겁니다.

직장에서의 거리두기도 더 필요합니다. 싱가포르는 위드 코로나의 대표적 나라로 소개되고 있는데요. 싱가포르에서는 방역이 최고 단계일 때 기업에 50퍼센트 재택근무를 의무화했어요. 다른 나라도 재택근무를 의무화하는 곳이 많아요. 우리 나라는 4단계일 때 고작 30퍼센트를, 그것도 의무가 아니라 권고하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직장으로 가는 길, 즉 버스나 지하철은 지금 완전히 3밀 공간이에요. 따라서 대중 교통도 대폭 늘려서 안전한 대중 교통을 확보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위드아웃 코로나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위드 코로나를 할 수밖에 없다면, 노동자들을 위한,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그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지금처럼 불평등한 방역이 아닌 위드 코로나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백신 불평등과 야만적 세계

백신 문제만큼 이 체제가 얼마나 정신 나갔는지 보여 주는 것도 아마 없을 겁니다.

어제(9월 12일) 기준으로 세계적으로 42퍼센트가 백신을 접종했는데요. 이건 중국 등이 무지막지하게 백신을 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국들은 접종률이 70~80퍼센트 돼요. 그런데 빈국은 접종률이 1.9퍼센트밖에 안 됩니다. 아프리카 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백신을 접종하지 못하고 있어요. 격차가 정말로 심각하죠.

이래서는 효과적으로 변이 발생을 억제할 수 없어요.

100명당 코로나19 백신 접종률(2021년 9월 12일 기준) 전 세계 백신 불평등 상황을 보여준다 ⓒ자료 출처 Our World Data

WHO는 선진국에 부스터샷을 연말까지 미루고, 우선 빈국과 제3세계에 나눠 주라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백신이 부족할 수밖에 없을까요?

현재 백신 생산 공장을 풀가동하면, 제3세계도 다 맞을 수 있습니다.

옥스팜의 올해 5월 20일자 보고서를 보면, 백신으로 새롭게 억만장자가 된 화이자와 모더나 등 9명의 재산을 합하면 193억 달러입니다. 이 돈은 전세계 최빈국 모든 사람들에게 백신을 접종할 수 있는 돈의 130퍼센트라고 말합니다. 또 기존 억만장자 8명(과 그 가족)이 백신으로 2020년과 2021년에 번 돈이 322억 달러로, 이것은 인도의 모든 민중에게 백신을 다 접종시킬 수 있는 돈입니다.

세계의 절반이 백신을 구경도 못 하고 있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천문학적 이윤이 쌓이고 있는 것이죠. 옥스팜이 급진적인 단체도 아니고, 그야말로 인도주의적 단체인데요. 이들의 인도주의적 주장조차 지금 이 체제에서는 실현이 불가능한 것이죠.

바이든이 백신에 대한 지적재산권 면제를 지지한다고 립서비스를 했어요. 유럽이 반대했고, 지적재산권 유예를 결정할 수 있는 WTO는 만장일치 구조이기 때문에 면제가 통과되지 못하죠. 바이든은 자기 우방들에게만 백신을 나눠 주고 있어요.

선진국들은 기술을 이전해 봤자 생산할 수 없다고 하는데, 이건 변명밖에 안 돼요. 모든 나라에서 다 백신을 생산해야 하는 게 아니거든요. 각 대륙에 몇 개국에서만 생산하면 돼요. 남아공이나 인도 같은 나라에서는 충분히 생산할 능력이 되고요. 효능이 어떤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쿠바도 ‘압달라’(호세 마르티의 시에서 따온 이름)라는 이름의 백신을 자체 생산했거든요. 이 백신을 베트남과 베네수엘라가 기술 이전을 해 생산하겠다는 의향을 보였고요. 지적 재산권을 풀면 생산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날 겁니다.

즉 기술이 없거나 생산 시설이 모자라서가 아니에요. 오로지 이윤 때문에 백신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겁니다. 노바백스는 지금 백신을 만들지도 않고 있는데요, 이미 화이자나 모더나가 시장을 점유한 상황에서 지금 만들어 공급해 봤자 이윤이 남지 않을 거라 생각하며 출하 시기를 두고 보는 측면도 있는 듯합니다. 이윤 중심의 무정부적 생산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죠.

변이 바이러스 백신 개발도 이뤄지고 있다곤 하는데 확신한 수는 없어요. 자본 입장에서는 지금 백신으로도 충분한데 새로운 걸 만들어서 파는 게 이윤이 얼마나 남을지 불확실하니까요. 특별히 부국에서 델타변이에 대한 새로운 백신이 절실한 상황도 아니고요. 빈국은 아예 고려 대상이 아니고요.

백신 개발과 생산과 분배가 계획 속에서 이뤄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 어느 것도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한편, 백신 의무화 논란도 있습니다. 그런데 의무화를 얘기하기 전에 먼저 왜 백신을 안(못) 맞는지부터 봐야 해요.

시간을 빼기 어려운 노동자가 많아요. 시간을 빼기 어렵고, 시간을 빼면 일당이나 연차가 날라가고, 심하면 해고될 수도 있는 거죠. 미국에서 일용직이 백신 접종률이 낮은 이유가 급여가 줄어들까 봐라는 이유가 가장 크다는 논문도 있습니다. 우리 병원에도 금요일과 토요일에 백신을 맞으러 오는 사람들이 제일 많아요. 평일에 맞으면 다음날 아파도 쉴 수가 없으니까요.

일부 장애인의 경우 찾아가서 백신을 놔줘야 하는데, 지금 누가 그 일을 하고 있나요? 아무도 없죠.

이처럼 백신 맞을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백신 맞을 시간과 아프면 쉴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해야 하죠. 일단 이런 사람들이 다 맞게 한 후에야 의무화네 차등이네 얘기해야 한다고 봐요.

안티 백서(백신 접종 거부자)들이 왜 판을 치느냐? 그건 그만큼 현대 의학과 의료 체계에 대한 불신이 크다는 뜻이기도 해요. 미국이 안티 백서가 많잖아요? 왜냐면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내는데도 미국 의료가 사람들에게 해주는 게 별로 없단 말이에요. 이런 엉망인 의료체계가 안티 백서가 자라날 토양이 되는 거죠.

팬데믹의 전망

자본주의가 얼마나 야만적인지 코로나19가 새삼 다시 보여 주고 있어요.

세계적인 백신의 불평등 문제, 방역을 잘했다는 한국 요양병원에서 노인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현실, 가장 선진적인 의료체계라는 NHS가 있는 영국에서 하루 100~200명씩 노약자들을 죽이는 것, 아프리카나 인도와 같은 나라에서는 하루에 몇 명 죽는지 집계도 제대로 안 되고 있죠.

인류에게 백신 생산 능력이 있는데도 이런 일이 매일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게 체제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넘어서려고 하지 않고서는, 우리가 코로나 시기를 이렇게 고통스럽게 지나갈 수밖에 없어요.

지적재산권 면제 같은 기본적인 인도주의적인 요구조차도 지적재산권을 가장 중요한 이윤의 토대로 삼는 거대 제약업체, 뿐만 아니라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빅테크 기업들, GMO 종자를 만드는 신젠타 같은 거대 농기업들과 그를 옹호하는 정부들에 막혀 있는 것이죠.

세계적으로 조율되고 계획적인 백신 접종과 집행이 팬데믹을 극복하는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덜 고통스러운 방법임을 누구나 알면서도 이 단순하고 인도주의적인 요구조차 자본주의를 넘어서지 않고서는 실현될 수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팬데믹은 단지 역병의 위기가 아니예요. 팬데믹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사회의 총체적 위기입니다. 코로나 위기, 경제 위기, 정치 위기, 기후 위기 등 여러 위기가 중첩돼 있어요.

기후 문제도 해결하려면 앞으로 10년이 골든 타임이라고 말하는데, 지금 5년을 팬데믹과 함께 보내야 하는 상황이죠.

따라서 질병에 맞서 모두가 단결해 싸우자고 하면 안 돼요. 노동자와 자본가가 팬데믹을 극복하는 방법은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어요.

이제 와서 보니 지금에 비하면 낮은 수준의 위기로 보이기도 하는데요. 한국의 IMF 위기 때도 다같이 허리띠 졸라매고 금 모으자고 했는데, 결과가 어땠습니까? 실업과 비정규직이 늘고 공기업은 민영화되고 불평등이 늘었죠. 그나마 당시 3사 파업 등 노동자들이 저항하고 반격해서 그 정도로 그칠 수 있었거든요.

지금도 반격이 필요합니다. 생명, 건강, 주거, 고용, 소득, 문화와 같은 노동자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실현하려고 하더라도 자본주의를 넘어서야 하는 게 지금의 팬데믹 시기라는 걸 다시 강조하고 싶어요.

지금 팬데믹 상황은 사회의 계급들이 모두 힘을 합쳐 싸워 이겨야 할 ‘역병과의 전쟁’과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지금의 팬데믹은 각기 다른 목표를 지닌 사회계급들이 ‘투쟁하는 전쟁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본가들은 인류의 생명과 미래는 아랑곳없이 자신들만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지금 민중의 호민관으로서 인류의 생명을 지키고 인류의 미래를 지켜 나가려는 투쟁을 벌여야 합니다.

팬데믹의 전망은 이런 노동자들이 얼마나 자기 요구를 걸고 싸우느냐에 달렸다고 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