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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산재 재판 참관기:
노동자 4명의 목숨 값은 2천만 원인가

나는 영화 보는 걸 좋아한다. 슈퍼 히어로가 악당과 싸워 이겨서 묶어 두면 경찰이 와서 법의 처벌을 내리는 그런 내용을 좋아했었다. 어쩌면 정의가 살아있는 법의 공정함을 꿈꿨던 것 같다. 적어도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며 억울한 사람이 없는 세상을 위해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지난해 4월 16일 현대중공업 특수선(군함 제작) 부서에서 일하던 한 노동자가 잠수함 무장 발사관 도어에 머리가 끼어 목숨을 잃는 중대사고가 있었다.(관련 기사 : 본지 319호, ‘현대중공업 줄잇는 중대재해: 안전 조처 무시하고 사고 책임 증거 조작한 사측’)

당시 사고를 조사한 특수선 부문 노조 대의원들은 많은 문제점을 찾아냈다. 사고 현장에 안전시설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작업지시서나 작업표준서 같은 지침서도 없었다. 작업자들은 공정이 바쁘다는 이유로 위험 작업에 대해 어떤 교육도 받지 못했고, 위험을 인지하지 못한 채 어둡고 비좁은 곳에 투입됐다.

결국 노동자 한 명은 목숨을 잃었고, 함께 일한 동료 노 아무는 자책감과 공포로 일상 생활이 힘든 지경이 됐다. 노 아무는 대의원들의 도움으로 트라우마 치료를 받으며 산재 승인을 받고 하루하루 힘든 시간을 보냈다.

동료를 잃은 슬픔도 모자라 죄책감에 시달려야 하는 현대중공업 노동자들 ⓒ출처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회사의 악행은 사고에서 끝나지 않았다. 재해자가 의료기계에 의지해 아직 목숨을 부지하고 있던 시간에, 회사 관리 감독자는 서류 위변조를 시도했다. 나를 포함한 특수선 대의원들은 그런 만행을 찾아내 언론과 고용노동부에 알렸다.

사측은 이 고발에 앞장선 내가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징계를 시도했지만, 현장 조합원들의 거센 반발에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솜방망이 처벌

9월 27일 울산지방법원에서는 2019년 9월부터 2020년 5월까지 현대중공업에서 발생한 중대재해(사망) 4건과 고용노동부 점검에서 적발된 산업안전보건법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행위 635건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현대중공업 사장 한영석을 비롯한 임직원과 하청업체 대표 13명이 피고인 신분으로 참석했다. 또, 특수선 중대재해 당시에 함께 일한 노 아무 조합원도 피의자 신분으로 참석했다. 검찰이 그의 과실로 인해 사고가 났다며 기소를 한 것이다.

나는 재판 전부터 격앙된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하루하루 힘든 삶을 살고 있는 노 아무의 억울한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머리 끝까지 분노가 차올랐다.

누가 봐도 노 아무는 억울한 피해자였지만,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재판에 출석해야만 했다. 현대중공업지부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이지만, 지부는 지금껏 이런 사고에 법적 대응을 한 사례가 없으니 법률 지원을 하기 어렵다고 했다.

결국 노 아무는 500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개인적으로 변호사를 선임해 재판에 대응해야만 했다.

재판에서 한영석 사장의 변호인은 안전조치 의무 위반행위에 대한 일부 혐의는 인정했지만, 다른 건에 대해서는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검찰도 사망 사고는 뺀 채 안전조치 의무 위반에 대해서만 한영석 사장에게 벌금 2000만 원을 구형했고, 그날 공판은 끝났다.

일부 노조 간부와 산재 단체 관계자는 터무니없이 적은 구형에 거세게 항의했다. 재판정을 나서는 모든 노동자들의 눈에는 억울함과 분노가 어려 있었다.

다음 날 출근해서 재판 소식을 조합원들에게 알렸다. 조합원들 역시 나처럼 분노하고 억울해 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됐지만 무엇이 달라졌는가! 나는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공정한 법’에 일말의 기대를 하고 있었기에 이렇게 분노가 치민 듯하다. 법은 노동자들에게는 ‘공정’하지 못하며 멀리 있다는 것, 법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라도 거센 투쟁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걸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결심했다. 노 아무 조합원에 대한 법률 지원 모금 운동, 탄원서 서명 운동, 선전물 배포로 억울함을 알리고 끈질기게 싸울 것이다. 또한 노동자들이 힘을 보여 주는 게 현장에서 노동자의 목숨을 지키는 길이라는 것을 알리고 싸울 것이다.

한편, 사측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을 비웃기라도 하듯, 9월 30일에 현대중공업에서 또 다른 노동자가 굴착기 바퀴에 치어 사망하는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회사는 단순 교통사고라고 우기고 있다. 미쳐도 완전 미쳐 돌아간다.

이날 사망한 고인은 내가 현대중공업에 입사했을 때 나에게 업무를 가르쳐 준 선배 노동자다. 엄격하지만 세심하게 일을 가르쳐 줬던 선배의 얼굴이 떠올라 글을 쓰는 내내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프다.

정년을 훨씬 넘긴 연세에도 열심히 사셨던 고 최병춘 노동자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