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 베이징에서 마주친 젊은 저항자들》(홍명교, 빨간소금)은 2018년 저자의 경험을 배경으로 한다. 이때 중국 동부 연안에서는 노동자 투쟁이 활발하고 이에 대한 대학생들의 연대가 형성됐지만, 중국 정부의 탄압도 거세게 몰아치기 시작했다.

저자는 중국으로 유학을 가 노동운동에 관심을 보이는 다양한 젊은 활동가들을 만나 대화하고 직접 목격한 것을 책에 담았다. 이 경험들에서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중국 사회의 민낯이 드러난다.

중국 시진핑 정부는 시위와 파업을 향한 탄압의 고삐를 조여 왔다. 또 미·중 갈등 심화 속에 ‘국가 통합’을 위해 여러 통제 조처를 단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그려지는 새 세대 활동가들의 모습을 보면 부글부글 끓고 있는 중국 대중의 분노와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다.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 베이징에서 마주친 젊은 저항자들》 홍명교 지음, 빨간소금, 364쪽, 18000원

좌파 일각에서는 미국에 맞서는 중국을 진보적 국가로 여기거나, 중국을 사회주의 사회로 오해한다.

그러나 이 책은 중국에서 억압과 차별에 맞서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노동자·학생들의 입장과 불평등한 현실을 확인하는 데서도 도움이 된다.

불평등

저자는 농민공과 곤궁한 청년들의 현실을 통해 중국의 만연한 차별과 불평등을 드러낸다.

베이징 외곽 다싱구의 한 사구에서 일어난 화재는 정말 참혹했다. 화재가 일어난 건물은 3층짜리 허름한 아파트였는데, 주로 택배기사나 가정부 등 저임금 노동자들이 살고 있었다. 다싱구 인구의 “약 44퍼센트”(2009년 기준)가 외지인이다. 농민공이 상당한 수라는 점을 추론할 수 있다.

그런데 베이징시 시장은 이 화재를 계기로 ‘비공인’ 건물들을 대규모로 철거했다. 가난한 노동계급의 목숨이 스러진 것도 억울한데, 이런 일을 막겠답시고 그들의 터전을 없애고 내쫓은 것이다.

“2018년은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이 40년을 맞는 해였다. 그 사이 중국은 연평균 성장률 10퍼센트에 육박하는 고속 성장을 이뤘다. 이와 함께 팽창한 부동산 개발의 병폐는 중국에 심각한 모순을 안겼다.”

“2017년 말 기준 70개 도시 부동산 가격은 전년 대비 무려 10.3퍼센트 올랐다.” 중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도시에 빈집은 많지만 노동자가 머물 수 있는 집은 없[다.]”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 대유행을 어렵사리 통과한 뒤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 기자회견에서 리커창 총리마저 ‘중국 인민 6억 명의 월수입이 1000위안(16만 5000원)에 불과하다’고 말했을 정도다.”

중국은 극소수의 부유층은 초호화 생활을 영위하는데, 대다수의 민중은 최저빈곤선을 벗어나지 못하는 나라다.

폭스콘 공장에선 “터무니없이 낮은 임금을 받으면서 하루 12~14시간씩 일해야 하는 현실, 휴가도 마음껏 쓰지 못하면서 시달려야 하는 고강도 노동”으로 노동자들의 자살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에 대한 사측의 대응은 “기숙사 발코니와 바깥으로 나가는 계단 주변, 그리고 공장 주변에 그물망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자살 행위가 일어난 이유를 공장 터가 안 좋다며 풍수지리의 문제나 개인의 문제로 돌렸다.

2006년에 실시한 한 조사를 보면, “여성은 남성에 비해 27.2퍼센트가량 적은 임금을 받는다. 남성 농민공의 평균 수입이 월 1068위안(17만 6000원)이라고 했을 때 여성 농민공은 777위안(12만 8000원)에 그쳤다.” 농민공 전반의 임금 수준도 충격적인데, 거기에 더해 성별 임금 격차는 중국 여성들이 처한 차별의 현실을 보여 준다.

중국 청년들의 현실에서 한국 청년들의 모습도 보인다. “많은 학생이 항상 영어 공부에 열중이고, 취업 시장의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무진 애를 쓴다. 그렇게 어렵사리 IT 기업에 취직하면 기다리는 건 저임금 장시간 근무다. 996제(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12시간 노동을 주6일 한다는 뜻)는 이런 현실을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저자는 자신이 만난 청년들이 “대학을 다니며 맞부딪힌 사회 모순과 베이징의 높은 물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방세, 하고 싶은 일과 조화할 수 없는 현실 등 취향과 지향은 달랐지만 하나같이 비슷한 어려움을 공유하고 있었다”고 묘사한다.

저항

그러나 저항이라는 희망도 공존한다. 특히 중국 동부 연안 등지에서 서로 영감을 주며 성장한 노동자 투쟁의 소식, 탄압을 뚫고 건설된 노동자-학생 연대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노동자들의 연쇄 자살 비극이 벌어진 폭스콘 선전 공장과 대규모 파업이 일어난 난하이 혼다자동차 공장 등지에서 노동자들이 어떻게 투쟁에 나서게 됐고 노동조합을 만들려 했는지도 알 수 있다.

또, 젊은 대학생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용감하게 ‘자스커지노동자성원단’을 꾸려 학내외로 연대를 구축했다. 이들은 노동자 투쟁 연대 활동에서 얻은 영감을 대학가로 확산하려 고군분투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와 대학 당국의 대응은 그야말로 국가가 누구 편에 서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정부와 경찰은 노동자·학생 가릴 것 없이 쥐도 새도 모르게 연행·감금·구속했다. 또 베이징대의 마르크스주의 학회 등 여러 대학 동아리들은 노동자 투쟁에 연대했다는 이유로 학교 당국으로부터 존폐 위협을 받았다.

책을 통해 2018년 중국 대학가의 미투 운동도 만나볼 수 있다. 중국에서도 대학 내 교수들의 위계 성추행·성폭행에 맞선 항의 운동이 벌어졌다.

이 점은 중국 여성들의 현실을 일부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동안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어 왔지만, 많은 여성들이 저임금에 차별받고 성적 괴롭힘까지 당해 왔다.

애석하게도 이런 저항들은 현재 탄압에 직면했다. 많은 활동가들이 소리 소문 없이 자취를 감추고, SNS 계정이 삭제됐다.

그러나 중국 사회의 모순은 더욱 심화돼 왔다. 따라서 저항의 불씨가 꺼지긴커녕 물밑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을 것이다.

“물론 국가 권력의 탄압이 극심할지언정 좌파의 생존과 발전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탄압에도 불구하고 언제든 암약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며 곳곳에서 현실의 곪은 상처가 터지고 있다. 2021년에도 플랫폼 노동자들의 산발적 저항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봄에는 IT업계의 장시간 노동 착취가 ‘996 폐지 캠페인’을 통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간판만 ‘마르크스주의’

저자가 중국에 머물렀던 2018년은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맞아 중국에서 다양한 행사가 열릴 때였다. 심지어 국영방송 CCTV는 ‘마르크스는 옳았다’는 제목의 강좌를 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기념 전시회에 설치된 전시품 앞에서 “시꺼먼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고 그림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보안 노동자들의) 표정은 활기차게 웃고 떠들며 단체 사진을 찍는 공산당원들과 달랐다.” 저자의 지인인 한 청년은 이렇게 말했다. “저 보안원들은 다 임시직일 거야.”

자스커지 노동자 투쟁에 연대하다가 탄압받은 학생들은 대부분 대학으로 돌아왔지만, 마르크스주의 동아리 운영에 큰 제약을 받았다. 그런데 시진핑이 기층에서의 ‘마르크스주의’ 탐구를 강조한 터라 대학 당국이 만든 어용 마르크스주의 학회가 그 자리를 대신하기도 했다.

저자는 “한쪽에선 마르크스 관련 대형 전시회가 열리고, 다른 한쪽에선 마르크스주의 관련 학회 대학생들이 노동자 운동 탄압에 맞서 시위를 벌이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하고 물음을 던진다.

또 책은 오늘날 중국을 사회주의로 규정하는 것에 비판적이다. 다만 저자가 중국 사회의 성격을 어떻게 보는지가 이 책에 분명히 나와 있지는 않다.

그리고 저자는 1978년 개혁·개방이 초래한 불평등을 비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중국의 세계 자본주의 질서로의 편입이 “현실 사회주의 붕괴 속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마오쩌둥이든 덩샤오핑이든 형태는 달랐지만, 여타 자본주의 국가들과 경쟁해 강력한 산업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즉, 개혁·개방으로 없던 계급 갈등이 생겨난 게 아니다.

마오쩌둥 시절이나 지금이나 중국을 국가자본주의 사회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 세계 자본주의 경쟁 압력에 대응해 중국 국가는 경제 전반에 개입해 왔다. 시기에 따라 그 형태가 변해 왔지만, 중국은 본질적으로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일부로서 다른 국가와 자본들과 경쟁하고 노동자들을 착취해 왔다.(이에 관해서 《천안문으로 가는 길》(찰리 호어 지음, 책갈피)을 추천한다.)

저자가 만난 젊은 청년들은 “하나같이 오늘날 중국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어떤 행동을 통해 희망을 만들고자 했다.” 이들은 ‘마르크스주의’를 탐독하고, 한국의 노동·학생 운동, 좌파들의 상태에 관해 저자에게 질문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저자의 판단과 답변에 아쉬움이 없지는 않지만, 이들이 던진 질문과 논의를 보는 건 유익할 것이다.

최근까지 중국에서 등장한 마르크스주의 서클들은 (이 자체도 단일하지 않지만) ‘마오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듯하다. 이들은 저항하는 노동운동을 지지하는데, 오늘날 중국공산당의 기치가 ‘진정한 마오주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국 정부는 공산당 통치를 정당화하려고 ‘마오주의’를 내세웠는데, 모순이 뒤따르니 골칫거리일 것이다.

그러나 마오주의는 노동계급의 혁명적 투쟁과는 무관한 스탈린주의 전통의 산물이다. 따라서 진정한 대안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중국 젊은 저항자들의 모습은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또 다른 중국의 참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한 번 읽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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