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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서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또다시 합의 번복 SPC 사용자

SPC 사측이 화물연대와 한 합의를 또다시 뒤집어 버렸다. SPC 화물 노동자들은 그동안 몇 차례나 반복된 합의 번복으로 한 달 이상 파업을 했는데(전국 파업 35일, 광주 파업 48일), 이번에도 또 뒤통수를 쳤다.

화물연대는 지난 10월 20일 그룹 본사 측의 위임을 받고 나왔다는 운송사 대표와 합의를 체결했다. 합의서에는 지난 9월 16일 해고된 광주 조합원들의 원직 복직, 기존 손해배상 공제액 지급, 사업장별 현안(합의번복) 해결, 민형사상 책임 면제 등이 담겼다. 파업의 발단이 된 광주 증차(인력 충원)와 관련해선 본사 개입 없이 해당 운수사(현장대리인)와 화물연대가 10월 25일까지 노선 조정을 합의하기로 했다. 이 합의서는 법적 효력이 있는 공증까지 받았다.

노동자들은 원청을 직접 합의 주체로 세우지 못한 점, 광주 노선 조정 문제 등 일부 과제가 남아 있는 점 등에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지만, 95퍼센트 이상의 찬성으로 합의안을 가결하고 파업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들은 예정된 10월 23일, 업무에 복귀하지 못했다. 그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그랬다. SPC그룹의 물류회사 GFS가 노동자들에게 배차를 하지 않고, 직접 직원들을 동원해 공장·물류센터 출입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박상남 SPC 광주지회 총무부장은 말했다. “복귀하기로 한 날 아침에 센터에 갔더니, 배차도 안 돼 있었고, 복직 상태도 아니고, 그동안 담당하고 있던 주관 운수사는 이미 (GFS와) 계약이 해지됐습니다. 새로운 운수사가 배차를 하고 있었습니다. 뭐 하나 해결된 게 없습니다.”

한 노동자는 남양주센터 등에서도 같은 문제가 반복됐다고 분개했다. “공장에 갔더니 GFS 측은 복귀를 막았습니다. 경찰을 부르고, GFS 직원들이 나왔습니다. 남양주 센터에서는 경찰 버스만 4~5대 동원됐습니다. 하루빨리 복귀하라더니 막상 복귀하니까 막았습니다.”

확약서

사측은 각서(확약서) 없이는 업무 복귀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실제로 GFS는 합의서를 작성한 바로 그날 각 운수사들과 현장관리인들에게 복귀 희망자에 대한 확약서 요구 지침을 전자우편으로 일괄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측이 노동자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노예 계약서”(확약서) ⓒ제공 SPC화물노동자

노동자들의 제보에 따르면, 운수사들은 이를 토대로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내용의 확약서를 노동자들에게 요구했다. “위수탁 계약 및 화물운송 용역계약을 준수한다”, “계약 위반 및 불법 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은 운수사의 조치에 따른다”는 내용이다.

노동자들은 이것이 “노예 계약서”라고 반발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것이고, 앞으로도 저항에 나서면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GFS 측은 일괄 전자우편 발송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일부 문구에 오해 소지가 있다고 판단해 즉시 발송을 취소 조처했다”고 둘러댔다.(〈한겨레〉 10월 25일자)

그러나 이는 눈 가리고 아웅일뿐이다. 본지에 제보된 한 노동자와 현장 대리인의 대화에서도 이 점이 확인됐다. 현장 대리인은 “나는 물류회사(SPC GFS)의 지시를 받는 것이다. 어쨌든 확약서가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정호화 화물연대 서경본부 SPC 부지부장은 “결과적으로 모든 결정은 운수사가 아닌 GFS가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그들은 노예 계약서 작성 없이는 출입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합의를 정면으로 뒤집는 것입니다.”

피 말리는

GFS는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한 이후부터 줄곧 “화물연대의 운송 거부는 운수사와의 문제”라며 “이에 개입하면 하도급법 위반이어서 개입할 수 없다”고 밝혀 왔다. 그렇다면 이번에 GFS 측이 확약서를 직접 지시하고, 합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밝힌 것은 하도급법 위반을 스스로 자인하는 꼴이다.

원주 물류센터에서 노동자들의 업무 복귀를 가로막은 SPC GFS 사측 ⓒ제공 SPC화물노동자

처음에 합의서를 체결한 운수사 대표는 지난 며칠 사이 ‘조금만 기다려 달라’, ‘새로운 확약서를 가져오겠다’, ‘다른 운수사들의 위임장을 받아 오겠다’는 등 노동자들에게 거듭 사태 해결을 약속했다. 노동자들은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피가 말랐다.

노동자들은 “이제 더는 못 참겠다”고 말했다. 노조는 각 지역별로 속속 투쟁 거점에 모이고 있다고 한다.

SPC 측이 운수사를 내세워 합의에 나선 10월 20일은 민주노총이 오랜만에 수천 규모의 파업 집회를 열고, 화물연대가 안전운임제 등을 요구하며 전 조합원 파업 찬반투표를 마무리한 날이었다.

그런데 악랄한 사측은 이런 투쟁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사실상 합의를 파기하고 강경 자세로 나왔다. 그들은 화물연대 지도부가 바로 파업을 선언하지 않고 며칠 고심하다 “정부와의 마지막 대화”를 열어놓겠다며 파업 날짜를 미룬 틈을 노렸을 것이다.

SPC 화물 노동자들이 다시 투쟁에 나서려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운송사들은 확약서 요구를 철회할 수 있다는 말을 흘리고 있다고 한다. 노동자들이 SPC의 합의 파기에 단결해 맞서는 게 효과적일 것이다. 그리고 연대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