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언론들은 MZ세대(1980~2004년생을 지칭함)의 독특함에 대한 기사를 쏟아낸다. MZ세대들이 기성세대와는 구분되는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소비 특성은 무엇인지, 직장 생활은 어떤지 등에 대한 내용들로 말이다.
세대 간 상이한 특성으로 인해 일자리, 임금, 복지 등을 두고 MZ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갈등이 커졌다고 보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세대론은 특정 나이 대에 속한 사람들이 비슷한 조건에 놓여 있고, 유사한 특성이나 가치관을 공유한다고 가정한다. 반면, 서로 다른 세대 사이에는 갈등이 벌어지고 이해관계가 충돌한다.
물론 시대적 조건(특히 경제 상황)에 따라 대다수 청년층의 조건도 달라진다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과거와 달리 오늘날 경제 위기를 살아가는 청년들은 심각한 취업난에 시달리고, 계층 이동이 좌절됐다고 느낀다.
그러나 세대론이 가정하는 것과는 달리 이런 조건 변화는 기성세대 탓이 아니라 한국의 자본주의가 저발전 시기에 접어들고 몇 차례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오히려 MZ 세대는 단일하기는커녕 자산 양극화가 심각한 세대이기도 하다.
예컨대, 최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30대 하위 20퍼센트의 평균 자산이 2000여 만 원인데 비해 상위 20퍼센트는 8억 7000만 원이나 됐다.
상위 20퍼센트와 하위 20퍼센트의 자산 격차는 35배로 전년도 33배보다 더 확대됐다. 1년 사이에 하위 20퍼센트의 자산이 64만 원 늘어나는 동안, 상위 20퍼센트 자산은 7031만 원 증가했다.
가난한 청년이 걸어갈 때 페라리 타고 질주하는 청년이 있는 것이다.

이런 부의 불평등은 상층으로 갈수록 더욱 극단적이 된다.

한 금융정보업체 조사에 따르면 주식 금융자산이 200억 원이 넘는 MZ세대가 161명이라고 집계했는데, 이 가운데 1명은 조 단위 주식을 보유했고, 1000억 원 대 이상을 보유한 청년도 28명이나 됐다. 이 중에는 17세와 15세 청소년 두 명도 포함돼 있다.
이런 부자 MZ들의 부모들이 모두 엄청난 자산가라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런 자산 격차는 부의 대물림을 보여 준다.
부동산 문제도 단적인 사례다. 2019년부터 올해 8월까지 10대 이하(1~19세)의 주택 구입 건수가 2600여 건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자산 형성에서 “부모 찬스”의 중요성을 여실히 보여 준다.
반면, 평범한 20대 청년들이 부모 도움 없이 본인의 저축으로만 서울에서 아파트를 구매하려면 평균 95년이 걸린다(민주노동연구원). 30대 미만 가구의 평균 저축이 연간 1000만 원가량인데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가 10억 원이 넘기 때문이다.
쥐꼬리만한 노동 소득으로는 집도 못 사고 미래가 보이지 않으니 “부모 찬스”도 없는 평범한 청년층에서 비트코인이나 주식 열풍이 부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이런 투기는 평범한 청년들에게 결코 더 ‘공정’한 판이 아니다. 비트코인이건 주식이건 결국 돈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버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청년들 사이에서 주식이나 부동산에 ‘영끌’을 하느라 빚을 지게 된 사람들이 크게 늘었는데,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막대한 빚을 갚는 데 또다시 허덕이게 될 것이다.
이처럼 MZ 세대는 결코 단일하지 않다. 오히려 부모 세대의 부와 지위에 따라 MZ 세대 내에서도 불평등이 세습된다. 이런 세습은 계급 사회에 아로 새겨져 있는 특징이다.

자본주의는 세대를 거듭하면서 계급이 공고화된다. 생산수단을 통제하는 지배계급과 부와 지위를 독점하고 있는 부유층들은 온갖 방식으로 자신들의 유리한 위치를 자녀 세대에 세습한다.

그래서 어느 나라든 시간이 지날수록 하층 계급 출신 자녀들과 상층 계급 출신 자녀들 사이의 출발선은 점점 벌어져 왔다. 역동적인 경제 팽창 시기가 잦아들면서 계층 상승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부모에 따라 자식의 미래도 어느 정도 정해진다.

즉, 세대 간에 근본적 분단이 있는 게 아니라 계급 불평등이 핵심인 것이다. 평범한 기성 세대 노동자와 MZ 세대 사이에서 서로 이해관계가 대립되지 않는다.

기성세대가 좋은 일자리와 복지를 독차지하고 있어서 MZ 세대가 고통받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평범한 기성세대 노동자들은 한국 자본주의 경제 팽창기에 장시간 저임금 노동을 감내하며 부모를 부양해 왔고, 이제는 취업이 어려워진 자녀 세대를 지원하는 부담까지 떠안고 있는 위치에 있다.

진정으로 책임이 있는 자들은 정부와 기업주들이다.

그간 정부와 기업주들은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추진하면서 기성세대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고, 조건을 꾸준히 공격해 왔다. 그러면서 신규채용을 줄이고 복지를 삭감하는 등 청년층에게도 조건 악화를 낳을 정책들을 강요해 왔다.

그러므로 세대 간 갈등이 아니라 계급을 중심으로 기성세대와 청년 세대가 단결하고 연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평범한 기성세대와 청년 세대는 좋은 일자리와 복지 확충을 두고 함께 단결할 수 있다.

세대 간 갈등을 핵심 문제로 보는 MZ 세대론은 청년 문제에 진정한 책임이 있는 자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청년을 들먹이며 기성세대 노동자들의 조건을 공격할 때 이용되기 쉽다.
예컨대, 기업주들이 청년 일자리를 만들겠다며 기성세대 노동자들의 임금을 대폭 깎는 임금 피크제를 도입했지만 실제로 일자리 창출이 거의 되지 않은 사실만 봐도 그렇다.
오히려 이런 세대론 수용은 청년과 기성세대 노동자들이 서로를 탓하면서 계급적 단결을 해치고 투쟁에 걸림돌이 되기 십상이다.

부의 불평등 심화시킬 상속세 완화

한편, 재계는 이건희 사망 이후 상속세 완화 요구를 거세게 하고 있다. 이런 재계의 아우성에 국민의힘 홍준표가 진작에 상속세 폐지를 들고 나왔고, 윤석열도 상속세에 대한 공제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재계의 환심을 사고자 하는 문재인 정부도 상속세를 감면하는 방향으로 손보기에 나서고 있다.
재계는 우리 나라의 상속세가 너무 높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은 상속세의 실효세율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참여연대는 약 40퍼센트에 이르는 상속재산이 과세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부자들은 차명 계좌, 일감 몰아주기 등 온갖 불법·탈법으로 마땅히 내야할 상속세도 회피해 왔다. 이건희는 물려받은 4조 5000억 원을 차명 계좌로 가지고 있으면서 상속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또, 재계는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올라서 웬만한 자가 소유자면 막대한 상속세를 내야할 것처럼 호도한다. 그러나 2019년 상속세 과세자 수는 8357명으로 전체 피상속인의 2.4퍼센트에 불과했다(용혜인 의원).
한편, 이재명 후보는 상속세를 줄이자면서, 대신 상속 받은 자산을 처분할 때 보유한 동안의 이득에만 과세하는 ‘자본이득세’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자본이득세는 일단 상속한 후 그 재산을 처분하게 되면 세금을 매기는 것으로, 부의 무상 이전 자체는 더 쉽게 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경제연구원 같은 재계의 씽크탱크도 상속세 폐지와 자본이득세 도입을 요구해 왔다. 이런 친기업 행보로는 청년들의 공정 염원에 부응할 수 없을 것이다.
재계는 ‘부의 이전’을 자유롭게 해 줘야 안정적인 경영이 가능하고 결국 청년들의 기회도 늘어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제까지 그런 ‘낙수 효과’는 일어나지 않았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감면해 줘도 그것이 청년들의 기회 증가로 돌아오진 않는다.
결국 상속세 완화는 부의 대물림을 더 손쉽게 해주고, 최상층 부자들(과 그 자녀들)에게나 이득이다. 우파든 문재인 정부든 청년층에 대해 말만 늘어놓을 뿐, 막상 부의 대물림을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속세 완화에 반대하고 오히려 부자들에게 세금을 늘려서 청년들에게 복지와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기초자산제가 청년들에게 공정한 출발선을 만들어줄 수 있을까?

한편, 청년층 내부의 자산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로 기초자산제가 제안되고 있다.
원래 기초자산제는 저명한 불평등 문제 학자인 토마 피케티가 내놓은 것으로, 25세가 되는 청년에게 1인당 평균 자산의 60퍼센트인 12만 유로(1억 5800만 원)를 지급하자고 해 관심을 끌었다.
이보다 액수가 적지만 정의당 심상정 후보도 특정 연령이 된 청년에게 3000만 원씩 주는 청년기초자산제를 제안했다. 애초 심상정 후보의 구상은 상속세를 재분배해서 평범한 청년들에게 자산을 마련해 주자는 것이다. 주류 정당들의 상속세 완화 논의보다 훨씬 진보적이다.
기초자산제는 단지 소득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불평등인 자산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급진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불평등을 근본에서 해결하기에는 한계도 분명하다.
기초자산제로 일단 청년들에게 동등한 출발선을 마련해 줬다고 하더라도, 결국 자본주의 경쟁 시스템 속에서는 불평등이 다시 커질 수밖에 없다. 경쟁이 계속될수록 한 번 승자가 다음번에도 더 유리한 출발선을 차지하기 쉽기 때문이다. 또한 결국 패자가 된 청년들도 생길 수 밖에 없는데, 출발선을 보장해 줬으니 그에 따른 결과는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비정한 논리에 문을 열어 주기 쉽다.
또한 자산 불평등의 근원에는 생산수단을 민주적으로 통제하지 않고 자본가들이 소유·통제하는 현실이 있다. 즉, 청년들에게 목돈을 줘서 어떤 시점에서 자산을 어느 정도 평준화시킨다 해도,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들의 착취가 계속되는 한 대다수 청년들은 노동자로서 착취를 받아야만 할 것이다. 그러면 생산수단을 소유한 소수의 손에 부가 집중되는 경향은 계속될 것이다.
현재의 기초자산제 제안들은 불평등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겠다는 취지에 비하면 미약하다. 그런 돈이 보통의 청년들에게 이런 저런 도움이 되겠지만 말이다. 심상정 후보가 제안한 수준(3000만 원)이면 많은 청년은 학자금 대출 빚을 갚고 나면 남는 게 없을 것이다.
기초자산제의 취지대로 최대한 출발선을 공정하게 보장하려 하면 할수록 더 대대적이고 본격적인 부의 재분배가 필요할 것이다. 피케티의 제안 정도만 하더라도 막대한 누진세가 도입돼야 한다.
이런 부의 재분배는 결코 순순히 이뤄지지 않고 부자들의 저항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거대한 투쟁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런 투쟁이 벌어져서 막대한 부의 재분배가 가능할 상황이라면 우리가 기초자산제를 쟁취하는 데서 멈춰야 할까? 오히려 생산수단을 자본가 계급에게서 넘겨 받아서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불평등을 더 직접적이고 효과적으로 해소할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