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인력 충원과 조건 개선은 미적, 요금만 인상:
약속 배신한 CJ대한통운에 맞서 택배 노동자 파업 결의

전국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 노동자들이 12월 28일부터 무기한 전면 파업을 예고했다.

사측이 약속했던 분류 인력 충원과 처우 개선은 이행하지 않은 채, 되레 노동시간 연장, 노동강도 강화 등으로 조건을 악화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사측에 대한 규제는커녕 면죄부를 준 정부(국토교통부) 규탄과 투쟁도 다짐하고 있다.

코로나19로 택배 물량이 급증하면서 지난해와 올해 택배 노동자 21명이 과로사했다. 노동자들은 죽음의 배달을 바꾸려고 지난해부터 투쟁에 나섰고, 올해 6월 파업을 통해 택배사, 정부·여당 등과 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들에 합의했다.

내년 1월 1일부터 택배기사들을 분류 작업에서 제외하고, 노동시간을 주 60시간으로 제한하며, 고용·산재 보험을 적용키로 했다. 이를 위한 비용은 택배 요금을 인상해(건당 170원) 충당하기로 했다. 또한 이 합의를 반영한 표준계약서를 도입하고, 택배기사의 고용을 최소 6년간 보장하기로 했다.

그런데 택배시장 점유율 48퍼센트로 업계 1위인 CJ대한통운이 합의 이행은커녕 요금 인상으로 수익 증대만 꾀하는 것도 모자라, 노동자들의 조건 후퇴 공격에 나서고 있다.

요금 인상 등으로 최대 매출과 높은 이익을 기록하면서도 CJ대한통운 사측은 인력 충원, 조건 개선 약속을 저버리고 있다. 12월 20일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열린 총파업 선포대회 ⓒ이미진

약속 배신

CJ대한통운은 요금 인상액 170원 중 겨우 60원만 분류 인력 충원과 사회보험료로 쓰고, 나머지 금액은 회사가 챙기고 있다. 그래서 여전히 택배기사들이 분류 작업을 해야 하는 실정이다. 내년까지 열흘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회사가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전혀 없다며 노동자들은 열받아 하고 있다.

“현재 우리 터미널에 분류 인력이 10명이 있는데, 기사들이 분류 작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려면 분류 인력이 7명은 더 필요합니다.”(배철윤 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 김포지회장)

택배노조는 요금 인상분의 대부분을 CJ대한통운 사측이 가져가, 이에 따른 수익 증가액이 연 3500억 원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올해 4월 택배 요금이 오른 후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올랐다. 올해 3분기까지 영업이익(1313억 원)이 이미 지난해 전체 영업이익(1267억 원)을 넘어섰다.

뿐만 아니라 택배기사들의 집화(판매자에게 물건을 받아 터미널로 옮기는 것) 수수료를 삭감해, 집화 업무 비중이 높은 노동자들은 임금이 월 40만 원 이상 줄었다고 한다. 지난 30년간 노동자들의 수수료는 한 번도 올리지 않았으면서 말이다.

노동자들은 CJ대한통운이 “과로사를 돈벌이에 이용한다”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표준계약서에 ‘독소 조항’ 가득

노동자들을 분노케 하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사측이 국토교통부에 표준계약서를 제출했는데, 그 부속합의서에 노동자를 장시간·고강도 노동으로 내모는 독소 조항들(당일 배송, 터미널 도착 상품의 무조건 배송, 주 6일제)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회적 합의의 당사자이기도 한 국토교통부는 이 부속합의서를 승인해 줬다.

일명 “죽음을 부르는” 당일 배송은 노동자들이 가장 심각한 독소 조항이라고 입을 모은다. 노동시간을 줄이려면 오전 중에는 짐을 싣고 배송을 나가야 한다. 그런데 당일 배송을 하려면 오후에 터미널에 도착한 물건들 때문에 다시 돌아왔다가 배송을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한밤중 심지어 새벽까지 배송하고 퇴근하게 돼 과로사를 낳는 주범 중 하나다.

터미널 도착 상품의 무조건 배송도 노동조건 악화 조항이다. 그간 노동자들은 운반할 수 없을 만큼 무겁고 부피가 큰 물건이나, 규격에 맞지 않는 물건들은 배송을 거부하며 개선을 요청해 왔다. 이런 물건들은 옮기는 데 시간이 많이 들 뿐 아니라 신체에 무리를 주고, 규격에 합당한 수수료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피가 커서 공간을 차지해 한 번에 다 실을 수 없어 터미널을 수차례 왕복해야 한다.

주 6일제는 충분한 휴식과 인간답게 살 권리를 포기하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노동자들은 독소 조항들이 관철되면 과로사가 재현될 수밖에 없다며 부속합의서를 당장 폐기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12월 20일 파업 선포 기자회견에서 진경호 택배노조 위원장은 “향후 대정부 투쟁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 외에도 택배노조는 사측에 근골격계 질환을 유발하고 노동시간을 증가시키는 저상탑차(화물칸이 낮은 택배차) 대책 마련, 노동조합 인정 등도 요구하고 있다.

택배시장 경쟁 속 골병드는 노동자들

코로나19 이후 택배 물량은 계속 증가 추세이며, 그에 따라 기업 간 경쟁도 더욱 격화하고 있다.

CJ대한통운은 택배 2~3위 업체들(롯데, 한진)의 추격도 뿌리쳐야 하고, 쿠팡 등 자체 배송 역량을 갖춘 이커머스 업체들과의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하려 한다. 최근 ‘풀필먼트 사업’(판매업체로부터 위탁을 받아 상품 배송부터 보관, 재고관리, 교환과 환불까지 모든 과정을 대행하는 서비스)이 업계 추세인 것에서 보듯, 유통과 물류(택배),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업체들 간 합병과 제휴, 사업 확대가 강화되고 있다.

최근 CJ대한통운이 공격적 투자(풀필먼트 구축을 위해 2023년까지 2조 5000억 원 투자 계획을 발표)에 나선 배경이다. 그리고 요금 인상분을 자신들의 주머니로 가져가며, 당일 배송 등 노동자들에게 속도 경쟁을 강요하려는 이유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지금의 조건 후퇴 시도가 수익성 증대에 걸림돌인 택배노조와 조합원들에 대한 공격이기도 하다고 지적한다. 지난가을 한 대리점 소장의 사망 사건을 이용해, 사측과 친사용자 언론들, 우파 정치인들이 택배노조를 마녀사냥하고 조합원들을 위축시키려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만과 분노도 상당하다. 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 전체 지회장들(87명)은 12월 20일 회의를 하고, 12월 28일부터 무기한 전면 파업을 결의했다. 20일 열린 파업 선포 집회에 참가한 지회장들의 투지와 기세가 높아 보였다.

“CJ대한통운이 뚫리면 모두가 뚫릴 것입니다. 다시 한 번 투쟁을 준비합시다.”(김기홍 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 남울산지회장)

“김포장기대리점 소장 사망 사건 후 어려웠던 분위기를 바꿔 볼 수 있다고 봅니다. 이번 투쟁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배철윤 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 김포지회장)

이번 파업에 비노조원들의 지지도 상당하다. 택배노조가 12월 12~13일에 CJ대한통운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조합원은 86퍼센트, 비조합원은 74퍼센트가 파업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파업 조직을 시작했는데 조합원들의 참여 의사도 높아지고 있고, 비조합원들의 노조 가입도 늘어나고 있습니다.”(김원진 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 성남지회장)

투쟁으로 얻은 성과를 회수해 가려는 사측에 맞선 CJ대한통운 택배 노동자들의 투쟁을 적극 응원한다. 투쟁이 강력하게 벌어질 수 있도록 지지와 연대가 확대돼야 한다.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도입하기로 한 표준계약서에도 사측은 독소 조항을 잔뜩 집어넣었다 ⓒ조승진
12월 20일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열린 총파업 선포대회 ⓒ이미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