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약자법 개정 요구 시위:
장애인 이동권, 현실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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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서울지하철 오이도역에서 아들 집을 찾아 시골에서 상경한 70대 부부가 휠체어 리프트를 타고 역으로 올라가던 중 와이어가 끊어져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다. 한 명이 죽고 한 명이 크게 다쳤다.
이 일을 계기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분출했다. 장애인들이 집 밖으로 나와 몸에 쇠사슬을 묶고 지하철 선로를 점거하며 전투적으로 싸웠다.
그 결과로 2003년 “이동권”이란 단어가 국어사전에 등재됐다. 2005년에는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2008년 제정된 장애인차별금지법도 이동·교통수단에서 차별이 없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동권은 기본 생활을 유지하고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권리다. 이동할 수 있어야 학교·직장·병원에 갈 수 있고,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이 나라의 장애인 이동권 수준은 지금도 형편없다. 올해 장애인 단체들이 교통약자법 개정을 요구하며 8차례나 시위를 벌인 이유다. 12월 20일에는 ‘기습’ 시위로 서울 5호선 지하철이 출근길에 2시간가량 멈춰 서면서, 장애인 이동권이 다시 사회적 화두가 됐다.
약속 지키지 않은 정부
시내버스는 가장 기본적인 교통수단이다. 그러나 휠체어 장애인이 탈 수 있는 계단 없는 저상버스는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는 이미 약속한 것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정부는 1차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계획
15년간 1차 계획의 목표치도 달성하지 못한 것이다.
시외·고속버스의 경우는 상황이 더 처참하다. 그중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버스는 전국에 단 10대뿐이고, 현재 운영 중인 노선은 딱 하나이다
지하철에는 “살인 기계”라고 불리는 휠체어 리프트가 지금도 남아 있다. 엘리베이터와 달리 리프트는 안전 규정이 훨씬 약소한 탓에 리프트를 이용하다 다치고 죽는 일이 계속 벌어졌다. 사고가 날 때마다 투쟁이 벌어졌고,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는 약속이 거듭 있었다.
이명박은 서울시장 재임 당시 2004년까지 서울 모든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박원순도 2022년까지 엘리베이터 100퍼센트 설치를 약속했다. 하지만 지금도 서울 지하철 역사 16곳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내년 서울시 예산에도 설치 비용이 다 반영돼 있지 않다.
특별교통수단
게다가 특별교통수단은 지자체별로 운영되다 보니, 지역마다 규모·요금·운행시간이 천차만별이다. 대중교통이 잘 발달하지 않은 지역일수록 특별교통수단이 절실한데, 그런 지역일수록 재정이 열악해 특별교통수단이 부족하고 요금은 더 비싸며 운행시간은 짧다.
비용 문제
왜 어렵사리 만든 법조차 이토록 무시되는가? 핵심은 비용 문제다.
정부·지자체는 저상버스 구입비의 절반가량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 특별교통수단 보급 확대에도 모두 돈이 든다. 중앙정부는 대중교통은 지자체 책임이라며 나 몰라라 하고, 지자체는 돈이 없어 어쩔 수 없다며 절실한 필요를 무시해 왔다.
시위 끝에 교통약자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 국토교통위를 통과했다. 이 개정안은 시내버스 교체 시 저상버스 도입을 의무화하는 진전된 내용이 담겼다
최첨단 무기를 사들이고 개발하는 데 수십 조 원을 아낌없이 쓰면서, 장애인들이 안전하게 이동하는 데에 쓰이는 돈은 아깝다는 것이다.
이윤 논리 앞에서 사람들의 절실한 필요가 얼마나 쉽게 무시되는지, 지배자들이 복지 비용에 얼마나 인색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자본주의는 노동력 재생산에 필요한 보건·교육·복지 서비스에 돈을 투자하지만 이윤과 경쟁 논리 때문에 충분히 투자하지 않는다
하지만 장애로 인한 어려움을 줄이는 것은 사회 전체로 봤을 때 꼭 필요한 일이다. 빠르게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 상황에선 더할 나위가 없다.
교통약자법이 규정하는 교통약자는 장애인뿐 아니라 고령자, 임산부, 영유아 동반자 등 이동에 불편을 겪는 많은 사람을 포함한다. 저상버스는 휠체어 승객뿐 아니라 거동이 불편한 노인 등에게도 매우 필요하다. 장애인들의 처절한 투쟁으로 설치되기 시작한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노인, 짐이 많은 사람, 캐리어를 끄는 여행객 등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이동권 보장을 위한 투쟁에 지지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