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반도체 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하기 위한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 특별법’, 일명 ‘반도체 지원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법안은 정부·여당이 주도적으로 추진한 것이다.

이 법안의 핵심 중 하나는 반도체 기업의 영업기밀을 “국가첨단전략기술”로 규정해 보호하고, 이를 유출할 시 처벌(최대 징역 5년 또는 벌금 5억 원)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기업주들은 경쟁 기업에게서 내부 정보를 지키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자기에게 불리한 정보를 은폐할 필요가 있을 때 전가의 보도처럼 “영업비밀”을 내세워 왔다. 이번 특별법은 반도체 기업주들에게 “국가핵심·전략기술”이라는 명목까지 더 쥐어 주는 셈이다.

반올림, 오픈넷 등 12개 노동·안전보건 단체들로 구성된 산업기술보호법 대책위원회는 이렇게 비판했다. “국가핵심기술 ‘관련 정보’가 무엇이며 그 기술이 ‘포함된 정보’가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어디에도 없다. … 결국 그 기술을 보유한 사업주가 은폐하고 싶은 모든 정보들이 곧 ‘관련 정보’와 ‘포함된 정보’가 되고 말 것이다.”

기존에도 산업기술보호법이 이런 구실을 하면서 악명을 떨쳐 왔는데, 이번 특별법은 영업비밀 유출의 처벌 수위를 강화한다. 이 외에도 특별법에는 반도체 기업의 예비타당성 조사나 인·허가 절차 등 규제를 축소·면제해 주고 재정·금융·세제 지원을 강화하는 등 다양한 지원 방안들을 포함한다.

반도체 칩에 새겨진 산재 피해자들 2015년 삼성반도체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제 ⓒ이윤선

산업기술보호법은 ‘삼성보호법’이라 불려 왔다. 2018년 법원이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고 삼성이 공장 작업환경보고서를 공개해야 한다고 판결하자 삼성이 즉각 해당 정보가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한다며 반발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와 국회는 이에 장단을 맞췄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국정원,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반도체전문위원회는 해당 정보가 ‘국가핵심기술이 맞다’는 입장을 발표하고, 이듬해인 2019년 8월 국회가 영업비밀 비공개 영역을 확대하는 산업기술보호법 개악안을 통과시켰다. 반대는 한 표도 없었다.(이에 동참했던 정의당 의원들은 이후 사과하면서 법안의 독소조항을 제거하는 재개정안을 발의했다.)

당시는 한·일 갈등이 불거진 상황이었다. 여야 막론 정치권과 재계가 한목소리로 소재·부품·장비 산업(일명 ‘소부장’)의 일본 의존을 극복해야 한다고 외쳤다. 반도체 기술 또한 핵심 국가 이익으로서 보호·육성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세계적 이윤 경쟁

정부와 국회가 노골적으로 반도체 기업의 이익을 감싸는 것은 단지 삼성이 로비하거나 압박한 결과만은 아니다.

여기에는 반도체 산업을 비롯해 자국 핵심 자본이 얼마나 번성하느냐에 의존하는 국가 자신의 이해관계가 반영돼 있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 기술은 오늘날 국가 안보 문제와도 긴밀한 관련이 있다.

2021년 5월 정부가 발표한 ‘K-반도체 전략’ 보고서(여기에 이번 특별법의 초벌적 내용이 담겼다)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세계 각국이 자국 내 반도체 공급망 강화와 미래기술 확보를 위한 속도전을 진행 중이다. ... 반도체 산업은 ‘산업의 쌀’이자 ‘전략무기’로 부각되고 있다. 민·관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

특히 세계적 규모로 벌어지는 치열한 이윤 경쟁은 국가 간 경쟁으로 발전한다. ‘K-반도체 전략’ 보고서가 발표된 날 대통령 문재인은 모두 발언에서 이렇게 말했다. “반도체 산업은 기업 간 경쟁을 넘어 국가 간 경쟁의 시대로 옮겨 갔습니다.”

무엇보다 반도체 경쟁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제국주의 패권 경쟁에서 한 축으로 작용하고 있다. 두 강대국은 경쟁적으로 반도체 분야에 대한 대대적 투자와 지원에 나서고 있다.

앞서 미국은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공급망 관련 정보를 공개하라는 행정명령을 자국에 진출한 반도체 기업들에 내린 바 있다. 여기에 삼성전자가 포함되면서 한국 정부는 반도체 기술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는 압박을 더 받은 듯하다.

세계적 경쟁의 심화 속에서 한국 정부도 국내 반도체 산업 보호에 두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한국 경제에서 반도체는 “9년째 수출 1위를 지속 유지 중인 국가 제1의 산업”(위 보고서)이다.

자본주의의 무한 이윤 경쟁 논리는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짓밟는다. 나아가 세계 시장에서 자국 자본을 보호·강화하려는 국가들 간의 갈등을 추동한다.

그러한 세계적 경쟁의 심화가 다시 국내 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억압을 강화하는 압력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착취와 위험한 노동 조건에 맞선 투쟁과 제국주의적 갈등에 반대하는 투쟁이 동떨어진 문제가 아닌 이유다.

반복되는 산재로 인한 노동자들의 고통과 알 권리, 진실이 짓밟히는 현실을 끝장내려면 이윤 경쟁에 눈먼 기업과 그들의 이익을 지켜 주는 국가에 맞서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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