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 유럽학 명예교수이자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중앙위원장이다.


2월 10일 영국 노동당 대표 키어 스타머(좌)와 나토 사무총장 옌스 스톨텐베르그(우). 스타머는 자신이 영국 자본주의의 믿을 만한 수호자임을 입증하려 한다 ⓒ출처 NATO

영국 노동당 대표 키어 스타머는 총리 보리스 존슨의 위기 덕분에 상승세를 타고 있다. 우크라이나 위기를 기회 삼아 스타머는 자신이 총리가 되면 영국 지배계급 이익의 믿을 만한 수호자가 될 것임을 입증하려 한다.

그리고 매우 기가 막히는 방식으로 그렇게 하려 한다. 바로 〈가디언〉 신문에 ‘전쟁저지연합’을 비난하는 글을 기고한 것이다. 스타머는 브뤼셀에 가서 미국 주도 군사 동맹인 나토의 본부를 방문한 뒤 그 글을 기고했다. 스타머는 이렇게 썼다. “전쟁저지연합은 기껏해야 순진하고, 최악의 경우 민주주의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권위주의 통치자들을 적극 돕는다.”

전쟁저지연합에 대한 비난은 전임 당대표인 코빈과 더 거리를 두기 위한 방편으로 널리 풀이되고 있다. 코빈은 여전히 노동당 의원단에서 배제된 상태로 무소속 의원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앞으로 노동당 후보로 출마하지 못할 공산이 크다.

코빈은 전쟁저지연합의 의장을 지냈다. 그의 참모였던 앤드류 머리도 그랬다. 스타머가 이런 식으로 영국 제국주의와 나토에 대한 충성심을 입증하려 하다니 흥미롭다. 이는 핵심 권력층이 그토록 코빈 때리기에 힘쓴 것이 주로 그의 반제국주의 때문이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스타머가 전쟁저지연합을 비난한 것은 몰염치한 일이다. 전쟁저지연합은 2001년 미국 뉴욕과 워싱턴에서 벌어진 9·11 공격 이후 결성됐다. 당시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와 그의 주요 동맹이자 영국의 신노동당* 총리 토니 블레어의 전쟁 몰이에 반대하기 위해서였다.

전쟁저지연합은 2003년 2월 15일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거대한 국제 시위를 조직하는 데서 핵심적 구실을 했다. 전쟁저지연합은 그날 200만 명을 런던 거리로 불러 모았다. 당시 〈뉴욕 타임스〉는 이렇게 논평했다. “지구에는 두 개의 ‘슈퍼 파워’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미국이고 다른 하나는 세계의 반전 여론이다.”

코빈 등이 했던 경고는 이후 숱하게 입증됐다. 서방의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점령은 게릴라 저항에 패배했다. 소위 “테러와의 전쟁”은 알카에다를 분쇄하는 데 실패했고 아이시스(ISIS)와 같은 더 급진적인 운동을 낳았다. 그 운동은 이제 아프리카로 확산되고 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은 폐허가 됐다. 미국의 조 바이든 정부는 이를 설욕하려고 지난해 8월,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을 장악하자 아프가니스탄으로 가는 모든 원조를 차단하고 아프가니스탄 중앙은행의 자산을 동결시켰다.

지난주 바이든 정부는 70억 달러가 넘는 그 자산의 절반을 9·11 희생자 유족들에게 주고 나머지 절반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 쓰겠다고 발표했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국주의 열강이 세계 최빈국의 재산을 강탈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 노동당의 친제국주의 전통

코빈과 머리, 그 외에 린지 저먼과 같은 전쟁저지연합 지도자들은 역사가 입증한 예언자들로 칭송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들은 푸틴의 옹호자라는 비난을 듣고 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물론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점령했을 때 전쟁저지연합이 모호한 태도를 취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쟁저지연합이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한 나토의 호전적 태도에 반대하는 것은 지극히 정당하다. 우크라이나 위기는 푸틴이 자신의 제국주의적 이익 추구를 위해 우크라이나 국경에 대군을 결집시킴으로써 처음 촉발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쟁 위험을 부풀려 온 것은 미국과 영국 정부였다.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는 이렇게 불평했다. “적들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우리 나라 안의 공포다. 그리고 이 모든 정보들은 공포를 부추길 뿐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스타머가 옳게 지적한 점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제2차세계대전 후 클레멘트 애틀리가 이끈 노동당 정부가 1949년 나토를 창설하는 데 적극 관여했다는 점을 부각한 것이다. 당시 노동당 정부는 나토 창설을 통해 미군을 유럽에 남겨 놓고 소련을 견제하게 해서, 쇠락하던 영국과 프랑스의 제국주의를 떠받치려 했다.

스타머는 “둘 다 ‘N’으로 시작하는 나토(NATO)와 국민건강서비스(NHS)”를 연결해 둘을 “변혁적 노동당 정부의 길이 남을 업적”으로 언급한다. 그러나 애틀리 정부는 1950년에 처음으로 국민건강서비스를 삭감했다. 이는 군비 지출을 늘리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신노동당을 이끈 블레어는 서방의 제국주의를 방어해 온 노동당의 전통에 지극히 충실했다고 할 수 있다. 스타머도 이 전통으로 돌아가려 한다. 코빈은 명예로운 예외이며, 그의 입장은 제1차세계대전 때 블라디미르 레닌과 로자 룩셈부르크가 취한 혁명적 국제주의의 입장에 더 가깝다.(비록 그 입장을 실제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룩셈부르크의 동료였던 카를 리프크네히트는 이런 슬로건을 고안한 바 있다. “주적은 국내에 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좌우명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