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8일 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는 기간제 고용 사유제한을 확대하는 단병호 의원의 수정안을 당론으로 결정했다. 48명의 중앙위원들(참석 중앙위원의 20퍼센트)이 수정안에 반대했다.

그 동안 단병호 의원은 비정규직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만드는 데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 그러나 단 의원의 수정안은 그런 명성에 오점을 남겼다.

단 의원은 수정안이 기간제 고용 사유제한을 쟁점화하기 위한 “전술”이라고 말했다. 사유제한을 거부하는 정부와 열우당을 폭로하기 위한 “정치 공세”라는 것이다. 사유제한 범위를 “대폭 확대”해서라도 기간제 사유제한을 명문화하려 했다는 것이다.
열우당이 주장하는 기간제한이 기간제 확대를 막을 수 없다는 단 의원은 주장은 맞다. 이 점에서 단 의원이 한국노총의 사유제한 포기를 비판했던 것은 옳았다.

단 의원은 당 중앙위에서 수정안이 “원칙을 훼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유제한을 폐기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원칙”은 노동계급의 단결이다. 수정안은 그 반대의 효과를 냈다. 안기호 전 현대차비정규직노조 위원장은 “지금 주고받기식 협상에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 당이 원칙을 버리면 분열과 힘의 약화만 낳을 것이다” 하고 지적했다(‘다함께’가 주최한 12월 15일 토론회).

오민규 전국비정규직연대회의 집행위원장도 “수정안은 저들에게 법적·이데올로기적 빌미를 제공했다”고 비판했다(같은 토론회에서).

무비판적 지지, 침묵, 혼란

단 의원의 “정치적 언사”는 정부와 열우당을 폭로한 것이 아니라 우리 운동 내부의 혼란과 분열을 낳았던 것이다. 단 의원이 스스로 인정하듯이, 열우당은 수정안을 수용하기는커녕 검토조차 할 생각이 없다.

당 지도부의 수정안은 열우당으로 기우는 한국노총 지도부를 염두에 뒀던 듯하다. 한국노총 지도부는 민주노총의 12월 파업 하루 전에 기간제한 입장을 내놨다. 이것은 민주노총의 파업에 찬물을 끼얹으며 열우당의 손을 들어 준 것이었다. 이런 한국노총 지도부가 민주노동당이 “양보안을 제출”했다며 환영했다.

당 지도부는 파업 파괴자 구실을 한 한국노총 지도부를 달래기 위해 투쟁 노동자들의 투지와 사기를 끌어내리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런 하향평준화는 노동계급의 진정한 단결을 방해한다. 진정한 계급 단결은 오직 투쟁을 고무하고 건설할 때만 이뤄질 수 있다.

한편, 민주노동당 중앙위에서 전재환 민주노총 비대위원장은 “우리 내부가 분열될까 봐 우려스럽다”는 이유로 수정안 철회를 반대했다. 실제로, 논쟁이 적전분열처럼 비쳐질까 봐 수정안이 문제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생각을 말하기를 주저하거나 꺼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아마 이런 생각이 중앙위 표결에도 제법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실제로, 열우당과 한나라당이 합심해 비정규직 확대 법안을 처리하려 하는 상황이다. 두 당의 차이는 사소하다. 따라서 우리가 단결해 이 공격에 맞서야 한다는 생각은 옳다. 그러나 당과 민주노총 지도부의 수정안 자체가 우리 내부의 갈등과 분열을 자아냈다. 이럴 때 단결을 위해 후퇴에 침묵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 후퇴에 저항하면서 진정한 단결을 추구해야 하는가?

분열은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후퇴에 동조하거나 침묵한다면 그것은 운동의 후퇴를 낳을 것이다. 때로 분열 없이는 전진할 수 없을 때도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진보정치〉는 당의 수정안이 “정부 여당의 처리 강행 움직임에 일단 여론의 족쇄를 채웠다”고 주장했다. “원내외의 입체적인 실천이 열린우리당의 보다 성의 있는 협상 자세를 이끌어냈다.”

터무니없는 소리다. 단 의원조차 이렇게까지 주장하지는 않는다. 최근에 〈진보정치〉는 엄청난 낙관을 보인다. 농민 타살 정국이 “항쟁 수준으로 번져”간다는 과도한 정세 인식이 그 예다. 그러나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계급 세력 균형을 정확히 읽지 않(못하)는 것은 운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내 중도 의견그룹인 ‘전진’은 수정안에 침묵했다. ‘전진’이 수정안에 대해 자체 내에서 단일한 의견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인 듯하다. 그래서 ‘전진’ 소속 중앙위원들은 중앙위에서 수정안 철회에 찬성표를 던지지 않았다. ‘전진’ 회원인 전재환 민주노총 비대위원장은 수정안 철회 반대 발언을 했다.

국회 밖

‘전진’의 이런 태도는 일관성이 없다. 지난해 12월에 ‘전진’ 계열 당원들은 자주계열(NL)이 열우당과의 협상에 기대어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지금 단 의원이 열우당과의 협상에 상당히 기울어 있지만, 이들은 1년 전에 들이댔던 비판의 잣대를 꺼내들지 않고 있다.

당내 좌파 의견그룹인 ‘해방연대’가 제출한 결의안은 올바르게 수정안 철회를 요구했다. 하지만 그 결의안은 임금 인상 투쟁이 “노동자 내부에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빈곤을 양산”한다는 그릇된 주장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당의 비정규직 투쟁 방향이 ‘연내 입법’이 아니라 ‘개악안 저지’로 바뀌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힘의 균형을 고려했을 때, 당이 제출한 비정규직권리보장입법을 ‘연내 입법’화할 가망성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개악안 저지’만을 배타적으로 주장하게 되면 당이 비정규직의 권리 보장을 포기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

또, ‘해방연대’ 결의안은 수정안 철회를 ‘개악안 저지’에 비해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했다. 그러다 보니 권영길 임시 대표는 이 허점을 파고들어 두 요구를 분리시키려 했다.(중앙위원회 보고 기사를 참조하시오.)

이런 문제점들 때문에 적지 않은 중앙위원들이 ‘해방연대’의 결의안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해방연대’ 결의안은 현 상황의 진정한 핵심은 투쟁 요구 문제가 아니라 투쟁 동력 문제라는 점을 놓치고 있다. 열우당은 개악안을 밀어붙이려 하는 반면, 민주노총의 파업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당 의원단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현 상황의 핵심이다. 수정안에 대한 무비판적인 지지, 침묵 등은 모두 이 물음에 대한 틀린 답변들이다.

당 지도부는 국회 내 협상을 통해서 최악의 안을 막으며 연내 입법을 관철하겠다는 생각으로 수정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런 의회주의적 고려에서 비롯한 부적절한 타협과 후퇴는 국회 밖 대중 투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만약 열우당이 민주노동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개악안을 통과시킨다면 그 당의 계급적 본질은 노동자 대중에게 더 분명하게 입증될 것이다. 오민규 전국비정규직연대회의 집행위원장이 지적했듯이, “차라리 정부안대로 통과되면 그 법안은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 법안이기 때문에 싸워나갈 수 있다. 그러나 수정해서 타협하면 싸울 명분도 없어진다.”

단병호 의원이 국회 안에서 수정안을 내놓고 협상한다면 대중은 그 협상을 지켜보며 수동적으로 기다릴 것이다. 민주노동당 의원이 협상하면 그래도 뭔가 나아지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면서 말이다.

단 의원은 “[정부의]비정규법안 가는 걸 막는 힘은 국회 안에 있지 않다. 밖에 있다.”고 강조했었다. 그러나 단 의원의 수정안은 국회 밖 대중 행동을 고무하는 데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결론을 말하자면, 일방으로 강행 처리된 최악 법안을 사문화시키기 위해 (단결해) 투쟁하는 게 노동운동 지도부의 동의 아래 통과된 차악 법안을 (내키지 않아 하며) 받아들이는 것보다 더 낫다. 노무현과 집권당에게 면죄부를 주지 말고 개악안과 강행 처리 시도를 폭로하는 게 대중 투쟁에 더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