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빈번한 전투기 무력시위 등 대만에 대한 패권적 압박을 강화해 왔다 ⓒ출처 중국 국방부

최근 대만의 〈자유시보〉가 전한 소식이 세계인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올해 대만을 무력 침공해 중국공산당 20차 당대회 이전에 대만을 ‘전면 접수’하는 방안을 고려했었다”는 것이었다.

그 기사는 러시아 인권운동가 블라디미르 오세치킨이 폭로한 러시아연방보안국(FSB)의 기밀문서에 근거해 작성된 것이었다.

기밀문서의 진위 여부는 잠시 제쳐 두자. 중국이 대만을 무력으로 장악하려 하고 이를 위해 군사적 준비를 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번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국방비를 경제성장률보다 높은 7.1퍼센트로 정한 데서 보듯 중국 정부는 국방비 지출을 해마다 늘려 왔다.

또한 중국 군용기들이 대만의 방공식별구역을 넘나들며 무력시위를 한 것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게다가 지난해 11월 이후 무력시위가 부쩍 늘어났다.

따라서 러시아연방보안국 기밀문서의 내용처럼 시진핑이 올해 20차 당대회 이전에 대만을 무력 점령하려는 계획을 세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기밀문서의 내용이 설령 사실이고 푸틴의 우크라이나 공격이 벌어지지 않았다 할지라도, 시진핑이 당장 대만을 무력 공격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았다.

양회에서 ‘안정’을 강조한 것에서 보듯이, 시진핑은 자신의 장기 집권을 위한 최종 결정을 올해 말로 앞두고 있다. 그래서 시진핑이 대만을 먼저 공격함으로써 국내외의 불안정과 격변을 초래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물론 시진핑이 큰 업적을 내놓아야 할 상황이거나 국내의 사회 불안정이나 계급투쟁 같은 사태를 전환할 카드가 필요할 때 대만 침공은 진지하게 고려될 수 있다.

다만, 2024년 대만 총통 및 입법위원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고자 중국 정부는 대만에 경제적·군사적 압박을 가할 것이다. 최근 중국은 4억 4700만 위안(205억 원)의 벌금을 대만 파이스턴그룹에 부과했는데, 그 기업이 차이잉원 총통이 이끄는 민진당에 정치 헌금을 했기 때문이다.

또한 폭스콘으로 잘 알려진 홍하이 그룹을 포함한 많은 대만 기업들이 중국 대륙에서 기업 활동을 하기 때문에 중국 정부의 견제와 탄압에 노출돼 있다.

중국 정부는 대만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는 또 다른 수단으로 ‘조국통일법’을 준비하고 있다. 아마도 시진핑의 국가주석 3선 연임이 통과되면 내년 양회에서는 이 법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조국통일법은 2005년에 제정된 ‘반분열국가법’과 마찬가지로 대만 통일을 촉진하는 기능을 할 것이다.

반분열국가법에 따르면, 대만 독립을 지지하는 세력에 “비평화적 수단,” 곧 무력 수단을 사용할 수도 있다. 조국통일법은 통일을 촉진하는 다양한 활동에 중점을 두고 있다.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이 미·중 갈등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앞으로 양안 관계의 군사적 긴장은 계속 고조될 것이다.

1992년 합의

1949년 중국공산당은 대만을 미수복 지역으로 규정하고 통일의 열망을 버리지 않았다.

내전에서 패배한 국민당은 대만으로 후퇴했지만 그들도 (공산당에 반대하는) 국가를 되찾는다는 반공복국(反共復國)의 입장을 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1958년에만 해도 진먼다오(금문도)를 두고 서로 포격을 가하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졌다.

하지만 소련의 영향력 확대와 미국의 베트남전 패배라는 환경 속에서 미국과 중국은 가까워졌고, 결국 1979년에는 국교 수립으로 이어졌다.

그때나 지금이나 대만은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과 중국과의 관계에 의해 그 쓰임새가 결정되는 장기판의 말과도 같다.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동아시아가 세계경제 성장의 중심으로 부상하던 2012년, 미국의 오바마 정부는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을 천명했고, 몇 해 뒤에는 미·중 무역전쟁이 시작됐다.

2014년 대만에서는 신자유주의와 중국 자본의 대만 진출에 대한 반발로 대학생과 사회운동가들이 대만 입법원을 점거 농성한 ‘해바라기 운동’이 벌어졌다. 이 투쟁 덕분에 2016년 총통 선거에서 대만 독립을 강조하는 민진당의 차이잉원이 당선될 수 있었다.

반면 중국 지배자들은 1992년 중국과 대만이 합의한 일명 ‘92공지’(九二共識)를 대만과의 통일을 위한 하나의 근거로 여긴다.

그러나 ‘92공지’는 “하나의 중국”을 표방함에도 각자 “서로 다른 설명”(一個中國 各自表述)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중국 지배 관료와는 달리, 대만의 리덩후이 당시 총통은 이 합의를 두고 양국론(兩國論: 중국과 대만은 별개의 두 국가라는 의미), 후임 천수이볜 총통(2000년 5월~2008년 5월 재임)은 일변일국론(一邊一國論; 양안의 두 연안에 있는 서로 다른 국가라는 의미)을 주장했다.

대만 지배자들이 중국에 대한 태도를 두고 분열해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현재의 중국과 대만 관계를 유지하자는 입장인 현상유지파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현상유지파는 대만이 분리독립을 추구할 것도 없이 이미 독립해 있는 국가라는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만에 대한 중국 정부의 패권적인 압박은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켜, 양안 관계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다. 게다가 대만 사회의 지배적 여론을 애국주의적이고 친미적인 성향으로 바꿀 수 있다.

리덩후이(1988년 초부터 2000년 5월 중순까지 재임)가 말한 ‘신대만인’ 논리나 대만 정체성 또는 대만 본토주의(localism)가 점차 지지를 확대하고 있다.

대만 노동운동도 중국 문제를 두고 분열할 공산이 크다.

혁명적 국제주의자들은 중국의 대만 공격에 반대해야 한다. 물론 중국의 권위주의 정치체제에 맞서 미국과 서방의 자유민주주의가 대안이라는 주장도 반박해야 한다.

대만의 노동계급과 중국 대륙의 노동자들이 연대하고 단결할 수 있는 국제주의 정치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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