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세계는 냉전 시대에 벌어진 두 차례의 가장 심각한 위기(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와 1983년 미·소 간 핵미사일 발사 위협 사건) 이후 가장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옛 제국을 수복하려는 러시아에 맞선 우크라이나의 국민 방위 전쟁으로 흔히 간주된다. 많은 좌파들도 이런 인식을 공유한다. 물론 여기에는 일말의 진실이 있다. 그래서 이런 측면은 우크라이나군의 항전 열의가 러시아군의 사기보다 높은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이 전쟁의 더 지배적인 성격은 제국주의 강대국 간의 충돌, 즉 러시아를 상대로 한 서방의 대리전이다. 이런 성격에서 비롯하는 확전의 논리가 작용하는 모습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비극은 제국주의 간 쟁탈전의 무대가 됐다는 것이다 ⓒ출처 우크라이나 국가비상대책본부

우크라이나 전쟁의 진정한 성격

비록 나토는 전쟁에 직접 관여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서방은 전쟁 첫 날부터 경제 제재로 러시아를 강타했고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고 있다.

이에 러시아는 핵무기 경계 태세를 높였고, 나토-우크라이나의 무기 공급선을 타격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러시아가 지난 13일 우크라이나 서부의 군사 훈련 기지(나토 회원국인 폴란드 국경에 인접한)를 미사일로 공격한 것도 이런 메시지를 보내려는 것이다.

서방 정부들은 군비를 증강하고 있다. 특히, 독일 정부는 1000억 유로 규모의 대대적인 군비 증강 계획을 발표했다.(현재 독일 정부는 사민당이 주도하고, 과거 평화 운동을 이끌던 세력의 하나였던 녹색당도 이 정부에 참여하고 있다.)

서방과 러시아 어느 쪽도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더 궁지에 몰릴수록 서방의 군사적 개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고, 그런 개입은 상황을 더한층 위험하게 만들 것이다.

한편, 러시아의 침공은 우크라이나 내에서 배타적 애국주의를 강화시키고 있으며, 우크라이나의 항전에 직면한 푸틴은 승전을 선언할 만하다고 생각될 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런 만큼 충돌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 전쟁은 현상적으로는 러시아의 침공으로 나타났지만 시간이 갈수록 제국주의간 충돌이라는 본질적 성격이 더 분명해질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는 적어도 네 열강이 관여하고 있다. 나토를 주도하는 미국과 러시아 외에도 유럽연합과 중국이 있다. 유럽연합은 미국과 행보를 같이하고 있지만 미국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 독자적인 이해관계가 있고, 러시아에 비교적 신중한 태도를 취해 왔다.

중국은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러시아를 배후에서 지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서방의 제재가 자국으로도 번져 경제에 타격을 입을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경제적 압박이 심해질수록 중국에 더 기대게 될 것이고, 그럴수록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중 갈등과 얽히며 국제적 차원을 띄게 될 것이다.

이것은 중국 지배자들에게도 딜레마를 안겨 주고 있다. 얼마 전 전 총리 주룽지 등 중국 지배 관료 내에서 시진핑에 대한 비판이 나온 배경이다.

한편, 영미권과 서유럽을 벗어나면 많은 국가들이 미국을 편들지 않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페르시아만 연안국들의 지배자들은 미국의 요구가 있음에도 러시아와 척지기를 거부하고, 석유 증산 요구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 인도는 중국 견제에서는 미국과 함께하지만, 러시아 제재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도 유엔 총회에서 러시아 규탄 결의안에 기권표를 던졌다. 비록 한국 정부는 러시아 재제에 동참하고 있지만 말이다.

결국 세계적으로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아직 서방도 러시아도 편들지 않는 국가가 상당하고, 향후 이들이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러시아를 택할 가능성조차 배제할 수 없다.

이런 복잡한 상황과 모순을 이해하려면 제국주의 체제와 국제적 수준에서의 계급 세력관계를 이해해야 한다. 제국주의에 대한 분석을 발전시켜 온 우리 국제사회주의 경향은 그러기에 좋은 처지에 있다. 이런 분석을 견지하는 쪽이 비록 소수일지라도 우리는 오늘날 제국주의의 동역학을 참을성 있게 설명하고 반제국주의 정치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일관성

우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해 다른 좌파와는 매우 다른 정치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제국주의에 일관되게 반대하기 때문이다. 요약적으로 말해, 우리는 러시아 제국주의에도 반대하고 서방 제국주의에도 반대한다.

현재 국제적으로 서방과 (한국 같은) 친서방 나라에서 활동하는 좌파의 대부분은 러시아 제국주의에만 초점을 맞춘 채 서방 지배계급의 관여 문제를 회피하는 기회주의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혁명적 좌파는 이런 태도와 단호하게 논쟁해야 한다. 즉, 서방 제국주의가 나토 확장을 통해 이번 전쟁의 발발을 위한 조건을 조성하고 확전 가능성을 키우고 있는 책임이 있다고 주장해야 한다.

우리는 분명하고 단호하게 말해야 한다. “전쟁에 반대한다”, “침공을 중단하고 러시아군을 철수하라”, “동부·중부 유럽으로 진출한 나토도 철수하고 갈등을 키우지 말라”, “확전에 반대한다” 하고 말이다. 서방의 경제 제재도 전쟁 관여의 한 형태이다. 이는 나토에 의한 확전 가능성을 키우고, 이 전쟁에 책임이 없는 러시아 대중에 고통을 주기 때문에 분명하게 반대해야 한다.

일관된 반제국주의 정치를 기초로 반전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3월 6일 서울의 반전 시위 ⓒ이미진

정치적 혼란

오늘날 우리가 반전 운동을 건설해야 하는 상황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맞서 국제 반전 운동이 일어나던 때와는 많이 다르다. 현재의 운동은 분열해 있는데, 개혁주의자들이 취하는 태도 때문에 특히 그렇다.

지금의 국제 반전 운동, 특히 서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반대 집회들 중에는 서방의 제재나 나토의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요구들은 전쟁을 멈추려는 바람과 달리 확전 가능성을 키울 것이다.

일부 개혁주의자들은 공공연히 나토에 의한 확전을 지지하고 있다. 키어 스타머가 이끄는 영국 노동당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래서 노동당 지도부는 조금이라도 서방에 비판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마녀사냥하고 있다. 노동당 좌파는 거기에 순순히 굴복했다. 이라크 전쟁 때 노동당의 상당한 일부가 제러미 코빈 등을 중심으로 전쟁에 반대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런 문제점은 지난 7~8년간 발전해 온 추세와 결합돼 있다. 바로 권위주의적 우파나 극우가 부상하는 가운데 자유주의자들과 좌파들이 정치적 대립을 ‘권위주의 대 자유주의’의 구도로 보고 여기서 자유주의자들을 지지하는 것이다.

이것은 유럽 좌파에 한정된 얘기가 아니다. 오카시오-코르테스 등 미국 민주당 좌파이자 사회민주주의자들이 트럼프의 부상에 대응하면서 보인 태도이기도 하다.

이제 서방 좌파들은 비슷한 구도로 푸틴에 맞서다 보니 사실상 또는 노골적으로 서방 지배자들을 지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런 경향은 좌파 정치에 매우 해악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기회주의적으로 침묵을 지키는 쪽도 있다. 예컨대 독일 좌파당 내 스탈린주의적 전통을 물려받은 인사들이 그런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 정부의 대대적인 군비 증강 계획으로 첨예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태도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나토 확장 반대, 독일 연방군 증강 반대’라는 좌파당 입장이 당 안팎의 이의 제기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게 내버려 두는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한편, 일부 좌파들은 2010년대 러시아를 제국주의로 보지 않고, ‘적의 적은 친구’라는 논리에 입각해 미국 제국주의의 대항마로 봤다. 그래서 이번 전쟁에서는 그들이 러시아를 비판하더라도 그들은 사람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터키(나토 회원국이다)나 아프리카 등 영미권과 유럽을 벗어나면 좌파들 사이에서 오히려 러시아에 대한 지지가 두드러지는 곳도 많다고 한다. 그 나라들의 반전 운동 안에서는 서방의 위선과 책임만 지적되고, 이번 전쟁이 강대국 간 경쟁 체제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점은 간과되는 탓에 혁명적 국제주의자들이 그런 점을 논쟁해야 했다. 이처럼, 나라마다 좌파가 직면한 상황은 다를 것이다.

각국이 혁명가들이 반전 운동에 취할 태도와 강조점이 정확히 무엇이어야 할지는 나라마다 다를 수 있다. 이것은 전술적 판단에 달린 문제다.

예컨대, 베를린에서 열린 수십만 명 규모의 대규모 시위는 서방의 제재에 지지를 보내거나, 또는 혼란된 태도를 취했지만, 러시아의 침공과 독일 정부의 군비 증강 모두에 반대했다. 그런 점에서 이 시위는 단순히 푸틴만을 규탄하는 시위와는 달랐다. 그래서 독일의 혁명가들은 이 시위에 함께 하면서 모순을 비집고 들어가 사람들을 설득하려 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제재 동참과 군수품 지원이 이 나라 정부가 확전 가능성에 일조하고 있는 주된 방식이기에 제재 반대가 핵심적인 요구일 수 있다.

전쟁의 파장

앞서 언급했듯이 지금은 반전 운동의 규모뿐 아니라 정치적 혼란 면에서도 2003년과 다르다. 그러나 이번 전쟁이 제국주의 간 충돌이라는 성격은 시간이 갈수록 더 분명해질 것이다. 우리는 분명한 반제국주의 정치를 바탕으로 반전 운동을 건설하려 해야 한다.

이 전쟁이 일으킬 사회·경제적 파장에도 주목해야 한다. 우크라이나가 주요 곡물 수출국인 만큼 개발도상국과 빈국의 식료품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이미 팬데믹으로 발생한 공급 대란 때문에 인플레가 가속돼 많은 사람들이 생활에 압박을 받고 있었다. 여기에 전쟁의 여파로 에너지 가격도 오르고 있다.

제재는 러시아뿐 아니라 서방의 대중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 벌써 우크라이나를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지배계급이 위기의 비용을 노동계급에 떠넘기기가 쉬워진다. 이 점을 주의해야 한다. 전쟁의 참상뿐 아니라 그것이 국내에 초래한 결과에 대한 분노가 늘어날 수 있고 노동계급 투쟁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줄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군비 증강과 확전의 논리도 전쟁에 대한 환멸을 낳는 데서 일정한 구실을 할 테지만, 경제 제재는 훨씬 즉각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

난민 문제를 연결하는 것도 중요하다. 당장은 서방 정부들도 우크라이나 난민에 대한 동정 여론과 확전을 정당화하는 데 유용해 난민을 끌어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고, 우크라이나인들도 서유럽의 다른 난민들과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다.

한편, 이 전쟁에는 환경적 측면도 있다. 우크라이나는 핵발전소가 15개나 있는 곳이다. 더구나 미군은 단일 조직으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거대한 ‘기후 악당’이다. 이는 꽤나 기본적인 사실이지만 종종 간과된다. 요컨대, 전쟁은 기후 변화 전선에서 재앙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푸틴이 제재에 대응해 핵 전력 경계 태세를 높인 바로 그날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새 보고서를 발표했다. 기후 변화가 이미 인간 사회에 심각한 피해를 낳고 있고 그 피해는 향후 악화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각국의 사회주의자들은 반전 운동을 성공적으로 건설해 자국 지배자들에 맞선 계급투쟁 건설로 나아가야 한다. 제국주의 전쟁에 맞선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전통적 구호들, 즉 “주적은 국내에 있다,” “미국도 러시아도 아닌 국제사회주의”는 제국주의 강대국들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계급적 입장을 견지하기 위한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노동자 연대〉 신문 국제팀 대표집필


영미권·유럽 이외의 국가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설명한 부분을 네 열강의 태도를 언급한 부분 다음으로 옮겼다. 초판에서는 그런 나라 좌파들의 태도를 다루는 부분 앞에 자리잡고 있어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 또, 각국 혁명가들이 반전 운동에 취할 태도와 강조점을 설명하는 부분을 좀더 명료하게 다듬었다. 이 밖에도 문장을 다듬어 뜻이 좀더 명확하게 전달되도록 수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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