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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 한국 국회 연설은 확전에 기여하라고 촉구하는 것이다

무기 지원과 확전은 더 큰 비극으로 이어질 것이다. 한국 국회에서 화상 연설을 한 젤렌스키 ⓒ출처 우크라이나 대통령궁

4월 11일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한국 국회에서 화상 연설을 했다. 러시아와의 모든 경제적 관계를 끊고 우크라이나에 군사 기술과 무기를 지원해 달라는 연설이었다.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에 “비행기, 탱크 등 여러가지 군사용 기술이 필요”하고, “탱크와 배, 미사일을 막을 수 있는 여러 군사 장비가 한국에 있다”면서 러시아에 의한 전쟁과 파괴를 멈추려면 이런 것들을 지원해 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연설 전에 국방부는 우크라이나 국방부 장관이 휴대용 대공 미사일 지원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현재로서는 ‘살상 무기 지원 불가’ 방침에 따라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하지만 젤렌스키는 이를 다시 쟁점화했다. 게다가 무기 지원은 단지 무기를 보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무기 사용에 필요한 다른 인적·물적 지원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미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군이 전열을 정비하고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방에 전력을 집중하는 것에 대응해 무기 지원을 더한층 늘리고 있다. 지난 7일 나토 외무장관 회의는 첨단 무기 지원에 합의했다.

현재까지 나토 회원국들은 주로 휴대용 대전차·대공 미사일과 드론을 지원해 왔다.

이보다 더 무거운 무기의 경우, 우크라이나군은 옛 소련 무기 체계에 더 익숙한데, 이제 이런 상황을 탈피하고 새 무기 체계를 도입하며 장기전을 준비하겠다는 것이다.

같은 날 미국 국무장관 블링컨은 이제껏 지원한 적 없는 “새로운 무기 체계”를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주말에 키예프(키이우)에서 젤렌스키를 만난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도 장갑차 120대와 대함 미사일 체계, 경제 지원을 약속했다.

젤렌스키의 연설은 한국도 이런 흐름에 발맞춰 무기와 더 많은 지원을 보내라는 것이다.

이미 한국 정부는 이런 방향으로 움직여 왔다. 문재인 정부는 러시아군 침공 초기부터 대러 제재에 동참했고, 우크라이나에 군수 물자를 지원했다. 그리고 이번 나토 외무장관 회의에 외교부 장관 정의용을 보내 파트너십을 다졌다. 한국 정부의 나토 회의 참여는 이번이 처음이다.

3월 29일 윤석열도 젤렌스키와 직접 통화해 “이른 시일 내에 만나자”고 했다.

문제는 이런 지원이 서방 대 러시아의 각축전이 심화되는 데 일조하는 것이고 그럴수록 평화는 더 요원해질 것이라는 것이다.

도발

젤렌스키는 한국전쟁을 언급하며 한국이 “국제사회의 많은 도움”으로 그 전쟁을 “이겨 냈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전쟁이야말로 우크라이나에서 어떤 비극이 전개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다. 한국전쟁은 북한의 공격으로 시작됐지만 그 근저에는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제국주의 초강대국 간의 대결이 있었다. 미국은 금세 이 전쟁에 개입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도 전쟁에 뛰어들었고, 소련도 (원산과 평양 이북 상공에 공군을 참전시키는 등) 이를 지원했다.

미국이 중국의 경고를 무시하고 38도선 너머로 진격하자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이 지원하는) 중국이 맞붙는 전장이 됐다. 전쟁은 휴전선 부근에서 양측의 균형이 크게 바뀔 수 없다는 사실이 확인될 때까지 계속됐고, 서로가 조금이라도 우위를 점하려는 과정에서 엄청나게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

바이든은 부차 학살을 계기로 푸틴을 다시금 “전범”으로 규정하고 이참에 러시아를 확실히 제어하려 한다. 서방은 직접 개입을 제외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러시아가 최대한의 비용을 치르게 하려 한다. 그러나 이 충돌에 엄청난 정치적·군사적 자산을 쏟아부은 푸틴도 쉽사리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국제관계 학자 로런스 프리드먼이 썼듯이 “현재로서는 어느 쪽도 장기적 합의를 할 동기가 없다. 군사적 돌파구가 생기거나 향후 전망이 뚜렷해질 때까지 그들은 기다릴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고통을 겪는 것은 물론 우크라이나인들일 것이다.

게다가 이번 전쟁은 핵무기 보유국 간의 직접 충돌로 커질 위험도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나토는 무력시위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정보 지원을 겸해 러시아의 인접국 상공에서 대규모 항공 작전을 벌이고 있으며, 러시아 정찰기의 출현과 이에 따른 긴급 발진이 매일 벌어지고 있다.

이 대결에서 서방이 승리한다면, 미국은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맛본 패배를 딛고 자신의 패권을 경쟁자들에게 각인시키려고 다시 공세에 나설 것이다.

사실, 나토 확장도 러시아를 도발할 것임을 알면서도 강행한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서방 제국주의의 이런 노선에 종속되고 다시금 갈등에 휘말릴 것이다.

“커다란 이스라엘”

젤렌스키는 그런 결과가 가져올 우크라이나의 무시무시한 미래상을 어느 정도 인정한 바 있다.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 언론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토가 승리하면 우크라이나는 유럽과 달리 “자유주의”적이지 않고 “커다란 이스라엘 같은” 사회가 될 것이다. “영화관과 마트에 군대나 국민방위군의 대표, 무장한 사람들이 배치돼 있어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향후 10년간 안보가 최우선 문제가 될 것”이다.

한국전쟁이 민주주의 수호와 아무 관계없었듯이(남북 모두에서 독재 정권들이 장기 집권하는 계기가 됐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 아니다. 젤렌스키는 국내 좌파 정당들의 활동을 금지하고 정부나 서방에 대한 비판을 모두 “친러시아”로 몰아 탄압하고 있다.

한국보다 먼저 있었던 그리스 국회 연설에서 젤렌스키는 파시스트들과 연계된 무장 조직인 아조프 연대의 대원을 함께 연단에 올렸다가 물의를 빚기도 했다.(그리스에서는 거대한 반파시즘 투쟁이 일어나 파시스트 정당인 황금새벽당을 해산시킨 바 있다.)

러시아군의 무자비한 침공과 살육이 벌어지는 가운데 평범한 우크라이나인들이 절박한 심정을 갖는 것은 십분 이해되는 일이다. 그러나 서방 제국주의에 기대는 것은 결코 해결책일 수 없다. 진정한 대안은 러시아 내의 반전 운동과 러시아 군대 내의 사병 반란, 서방세계에서 벌어지는 반전 운동과, 자국 지배자들에 맞서 벌이는 저항에 있다.

한국 국회 연설에서 젤렌스키는 “이 전쟁은 러시아 정부의 잘못이라고 하지만 러시아 국민도 함께하는 전쟁”이라고 주장했다. 제재가 전쟁과 관계없는 사람들을 고통에 빠뜨린다는 비판을 의식한 것이자, 러시아 내에서 푸틴 지지 여론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일 테다. 그러나 제재는 진정한 해결책의 일부인 러시아 내 반전 운동을 약화시키고 푸틴의 전쟁몰이가 더 잘 먹히게 하는 데 도움이 될 뿐이다.

이미 이 전쟁은 국제 질서에 상당한 불안정과 군비 경쟁을 낳고 있다. 이런 맥락 속에서 위험을 느낀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하고, 미국이 이에 대응해 동해로 항모 전단을 보내고 있다. 이것은 러시아를 동쪽에서 견제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반도 주변 정세도 우크라이나 전쟁과 맞물려 함께 긴장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이런 불안정을 키우는 데 일조할 제재 동참과 무기 지원을 늘려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