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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프랑스를 휩쓸다
대선 결선 투표를 둘러싼 논쟁도 커지다

“르펜·마크롱에 맞선 사회적 투쟁을 지금 시작하자” 4월 16일 파리에서 열린 인종차별·파시즘 반대 집회 ⓒ출처 DIACRITIK/Jean-Philippe Cazier

4월 16일 프랑스 곳곳에서 수만 명이 프랑스 정치·사회를 오염시킨 인종차별에 맞서 집회를 벌였다. 신자유주의자 에마뉘엘 마크롱과 파시스트 마린 르펜이 경합하는 4월 24일 프랑스 대선 결선 투표를 앞두고 벌어진 집회다.

시위 조직자들은 파리에서 약 4만 명이, 전국적으로는 15만 명이 시위에 참가했다고 밝혔다. 프랑스 내무부는 전국적으로 1만 3600명, 파리에서 9200명이 행진했다고 발표했다. 파리에서는 행진이 끝날 무렵 경찰이 최루탄을 쏘고 현수막을 찢고 수많은 시위 참가자들을 체포했다. 극우를 막을 방벽을 자처하는 마크롱이 경찰 특수부대를 투입해 극우에 맞선 시위대를 공격한 것이다.

행진에는 다양한 견해를 지닌 사람들이 참가했다. 많은 시위 참가자들이 “르펜에게는 한 표도 안 된다”는 슬로건을 지지했다. 하지만 그 표를 마크롱에 던지라고 호소할지를 두고 첨예하게 의견이 갈렸다.

파리 시위에 참가한 시민단체 ‘인종차별 반대 및 민족 간 우정을 위한 운동’ 공동위원장 프랑수아 소테는 이렇게 말했다. “마린 르펜이 대통령궁에 들어앉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표를 이용해 르펜 집권을 막아라’ 하고 외치지 ‘마크롱을 찍어라’ 하고 외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렇게 귀결되네요.”

파리 시위에 참가한 에밀리는 〈리베라시옹〉 신문에 이렇게 말했다. “상황이 심각합니다. 마크롱 투표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르펜 정부보다는 마크롱 정부하에서 거리 시위를 벌이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 누구를 적으로 삼을지 골라야 해요. 르펜이 집권하면 시위를 할 수 없을 겁니다. 다들 너무 겁에 질릴 거예요.”

그러나 행진에 참가한 다른 많은 사람들은 어느 후보도 지지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생테티엔에서는 수백 명이 마크롱 마스크를 쓰고 “선거 가면극에 반대하는 카니발”에 참가했다. 그들의 구호는 “마크롱도 르펜도 아니다”, “주식 시장에 반대한다”였다. 파리 시위에서 참가한 윌리암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기권할 겁니다. 선거라는 함정에 빠지고 싶지 않아요. 좌파 정당들이 우리에게 마크롱이냐 르펜이냐 하는 양자택일을 강요했습니다.”

지난주 마크롱 대 르펜이라는 “썩어빠진 선택지”를 규탄하며 대학을 점거한 학생들 일부도 행진에 동참했다. 소르본대학교 학생 마리는 〈소셜리스트 워커〉에 이렇게 말했다. “점거는 잘 한 일이에요. 정치는 마크롱이냐 르펜이냐 하는 문제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둘 다 잘못된 선택이에요.

“르펜 당선은 끔찍한 일일 테지만, 마크롱이 극우 사상을 막을 방벽인 것도 아닙니다. 마크롱은 인종차별과 무슬림 혐오와 반동적 담론을 주도하는 자입니다.”

마크롱 투표 호소는 운동을 약화시킨다

지난 주말 여론조사에서 마크롱은 53퍼센트 대 47퍼센트로 앞섰다. 그러나 마크롱의 약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크롱을 “부자들의 대통령”으로 여기고 마크롱보다 르펜이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더 많은 것을 할 것이라고 여긴다는 점이다. 물론, 르펜이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마크롱은 친기업 정책으로 격렬한 증오의 대상이 돼 있다. 마크롱은 연금 지급 개시 연령을 3년 늦추고자 한다.(르펜은 여기에 반대한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생활고 대책에 관해서는 르펜이 마크롱을 40퍼센트 대 32퍼센트로 앞섰다. 28퍼센트는 ‘모르겠다’ 혹은 둘 다 ‘쓸모없다’고 답했다.

마크롱의 친기업 정책 덕에 파시스트인 르펜이 평범한 사람들의 편인 척할 수 있었다 ⓒ출처 프랑스 국민연합

마린 르펜은 실질적 위협이다.

마린 르펜은 그의 아버지 장-마리 르펜이 창당한 파시스트 정당을 계승하는 자다. 이 정당은 제2차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부역하며 비시 정권을 지지했던 자들, 유대인 혐오자들, 적개심 가득한 인종차별주의자들, 알제리 식민지 전쟁 당시 고문을 옹호했던 자들을 결집시킨 정당이었다. 마린 르펜은 그 이미지를 “세탁”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 본색은 계속해서 드러난다. 예컨대 르펜의 대선 공약 하나는 총기로 사람을 쏴 죽인 경찰관을 형사 기소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르펜은 이렇게 말한다. “이런 논리를 뒤집고 경찰관과 헌병[프랑스에서는 헌병도 민간 치안을 담당한다]들이 무력 사용에서 자기 방어 추정의 혜택을 입게끔 해야 한다.” 르펜은 이렇게도 말한다. “나의 임금 인상책은 이민자 유입을 막는 것이다.” 르펜은 무슬림 여성의 히잡 착용을 금지하려 한다. 그리고 낙태권도 위협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4월 24일에 투표를 하지 않을 것이다. 2017년에도 마크롱과 르펜이 똑같이 결선 투표에서 맞붙을 때에도 기권자는 1200만 명에 달했고 400만 명이 백지 투표를 하거나 투표 용지에 하고 싶은 말을 써서 투표함에 넣었다. 이를 다 더하면 등록 유권자의 3분의 1이 마크롱 대 르펜이라는 선택지를 거부한 것이다. 지금은 2002년이나 2017년보다 여론 조사에서 격차가 더 좁아서, 좌파 대부분이 마지못해 마크롱을 지지하고 있다.

저명한 좌파 활동가 피에르 테바냥은 이렇게 썼다. “파시스트 연합이 공화국 대권 가도에 올랐다. 그런 상황에서, 르펜의 상대 후보가 극우를 막을 방벽이 ‘결코’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거나 범죄적인 잘못이다.

“프랑스의 극단적 우경화를 비롯한 마크롱의 죄악이 무엇이든지간에,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적어도 향후 5년을 위해서는, 마크롱에 투표하는 것이 파시스트의 집권을 막을 유일한 방책이다.”

그러나 바로 이런 태도 때문에 프랑스 주류 정치가 이슬람 혐오, 권위주의, 인종차별적 사상으로 물들고 파시스트 세력이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파시스트를 막으려면 인종차별적 우파에 투표하라”고 하고서는 그들이 악법을 밀어붙일 때는 내버려 두는 꼴이 되풀이됐다. 마크롱에 대한 투표는 16일에 시위에 나선 그런 사람들을 무장해제시킬 것이다. 차기 정부에 맞서 저항을 준비하는 것이 시급한 바로 이 때 말이다.

프랑스 대선 1차 투표는 프랑스에 대체로 세 진영이 있음을 보여 줬다.

우선, 르펜이나 역겨운 인종차별주의자 에릭 제무르나 극우 니콜라 뒤퐁-애냥에 투표한 약 1150만 명이 있다. 전체 유권자의 대략 3분의 1이다. 그리고, 마크롱이나 다른 신자유주의 후보들을 지지한 약 1150만 명이 있다.

마지막으로, 좌파 혹은 녹색당에 투표한 약 1100만 명이 있다. 이 중 대다수는 장뤼크 멜랑숑을 지지했다. 1차 투표에서 멜랑숑은 청년층에서 1위를 했는데, 18~34세 유권자의 약 3분의 1이 멜랑숑에 투표했다. 멜랑숑은 파리 대도시권과 릴·툴루즈·마르세유·몽펠리에 등 프랑스 16대 도시 중 10곳에서 1위를 했다. 하지만 멜랑숑은 6월 총선을 준비하라는 것 외에는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아무 지침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한편, 반세기 동안 프랑스 공식 정치를 지배했던 주류 우파와 사회당은 1차 투표에서 5퍼센트도 득표하지 못하는 정당으로 전락했다.

프랑스 정치는 혼란에 빠져 있다. 지금 좌파가 고작 마크롱의 투표 부대에 머무른다면, 지난 20여 년 동안 지속됐던 상황, 즉 파시스트의 득표가 느는 상황을 용인하는 꼴이 될 것이다. 진정으로 “범죄적인 잘못”은 의회 바깥에서의 투쟁과 효과적인 인종차별 반대 정치를 내팽개치고 아무 효과도 없는 자유주의 동맹을 지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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