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지방선거에서 6명의 진보 교육감이 탄생한 이후 진보 교육감은 그야말로 대세가 됐다. 현재 대전·대구·경북 세 곳을 제외한 14개 시·도교육감이 진보 교육감으로 분류된다. 전국의 초·중·고등학교 1만 1700곳 중 1만 개 이상의 학교가 그들의 관할에 놓여 있으니, ‘진보 교육감 시대’라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지난 12년 동안 진보 교육감들이 표방한 ‘혁신 교육’은 한국 교육의 유력한 흐름을 형성했다.

진보 교육감들이 새로운 방향과 가치를 제시하고 의미 있는 성과를 일부 보이기도 했지만, 실제 학교 교육의 변화는 변화 염원 대중의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 예컨대, 지난해 초·중·고교생 사교육비 총액이 23조 4000억 원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이것이 진보 교육감 시대에 일어난 일이다.

이 글은 지난 12년간의 진보 교육감 시대를 돌아보면서 그들의 교육 개혁이 왜 초라한 수준에 그쳤는지, 실질적인 교육 개혁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논의하고자 한다. 또한 진보 교육감 시대를 거치면서 전교조가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살펴보고, 전교조가 진보 교육감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이야기해 보려 한다.

진보 교육감 시대

진보 교육감의 등장과 대거 당선의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요인들이 자리하고 있다.

첫째, 신자유주의 교육 개혁에 대한 반감과 새로운 교육에 대한 열망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특권·경쟁 교육에 대한 반감이 컸는데, 이는 2008년 촛불 항쟁에서 잘 드러났다. 물론 그것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부터 본격화한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에 대한 불만이 누적된 결과였다. 당시 민주당 정부는 7차 교육과정, 성과급과 교원평가, 자사고, 내신 상대평가 등을 도입해 입시 경쟁 교육을 강화했다. 이명박 정부는 여기서 더 나아가 ‘고교 다양화’ 정책으로 자사고를 대폭 늘리고 일제고사를 도입하면서 경쟁 교육 드라이브를 가속했다. 이에 반발한 청소년들이 2008년 5월 ‘미친 교육 OUT’을 외치며 거리로 나왔다.

전교조는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의 본질을 폭로하고 저항을 지속해 대중의 교육 변화 열망이 성장하는 데 일조했다. 또한 경쟁이 아닌 협력, 차별이 아닌 평등 교육의 비전을 제시해 왔다. 이 때문에 교육감 선거에서 흔히 보수 후보들은 반(反)전교조 기치를 내걸었다.

둘째, 대중 운동의 부상 덕분에 반우파 정서가 커졌다. 2008년 촛불 항쟁, 2014년 세월호 참사와 항의 운동. 2016년 10월~2017년 3월 전개된 박근혜 퇴진 촛불 운동과 그 여파로 정권 교체 등. 역대 지방선거 결과는 진보 교육감 당선이 다른 지방선거 결과(공식 정치 지형과 세력 관계)와 연관이 있음을 보여 준다. 2010년, 2014년, 2018년 세 차례 지방선거에서 대체로 우파 정당이 밀리고 민주당이 약진했다.

셋째, 교육감 선거에서 보수 진영은 분열한 반면, 민주·진보 진영은 대체로 후보 단일화에 성공했다. 2018년 선거에서는 일부 지역에서 민주·진보 진영이 분화하기도 했는데, 경기 이재정 교육감과 광주 장휘국 교육감은 진보 교육감 단일 후보 선출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다. 기존 진보 교육감의 후퇴에 실망한 진보 진영은 새로운 진보 교육감(더 진보적인 인물로의 교체)을 세우고자 했다. 이런 과정에서 경기에서는 송주명 후보가, 광주에서는 최영태 후보가 진보 교육감 단일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그런데 민주·진보 진영 전체의 득표가 늘었기 때문에 보수 교육감으로 교체되는 불상사는 없었다. 일부 진보 교육감에 대한 실망이 커지긴 했지만, 진보 교육에 대한 기대가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 줬다.

2008년 5월 ‘미친 교육 OUT’을 외치며 거리로 나온 청소년들 ⓒ임수현

12년

진보 교육감은 무상급식, 혁신학교, 학생 인권, 학교의 민주적 운영, 학생자치, 교육과정·수업 혁신 등 학교 교육의 여러 측면에서 얼마간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그들은 매 시기 주요한 시험대에서 오락가락 행보와 불필요한 타협으로 변화 염원 대중에게 실망감을 안겨 줬다.

1기(2010~2014년)

서울, 경기, 강원, 광주, 전남, 전북 등 6개 지역에서 진보 교육감이 당선했다. 전교조에 대한 정부의 공격이 거센 시기였고, 보수 진영은 선거에서 반전교조 기치를 전면에 내걸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진보 교육감의 대거 당선(전교조 출신 2명 포함)은 전교조를 비롯한 진보 교육 운동 진영을 크게 고무했다.

1기는 진보 교육감 시대 중 상대적으로 역동적인 시기다. 진보 교육감 탄생에 대한 기대가 높았고, 그를 배출한 운동이나 조직이 상대적으로 건재한 때였다. 중앙 정부와의 대립·갈등도 심했는데, 진보 교육감들도 초반에는 저항 기세를 보여 줬다. 진보 교육감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무상급식, 혁신학교, 학생 인권’도 대부분 1기의 성과다. 그러나 최근 상황을 보면 이 분야의 개혁조차도 점점 지지부진해졌다. 혁신학교가 양적으로는 확대했지만 질적으로는 퇴보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고, 학생인권조례가 최종 제정에 성공한 곳은 경기·광주·서울·전북·충남·제주 등 여섯 군데뿐이다.

1기의 주요 시험대는 일제고사와 교원평가였다. 전북·강원 교육감은 일제고사 선택권을 보장했고, 전북 교육감은 교원평가 방식을 바꾸는 등 진보적 행보를 보여 줬지만, 김상곤 경기교육감과 곽노현 서울교육감은 일제고사, 교원평가 등에서 우파 정부의 압력에 굴복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진보 교육감들은 정부의 진보 교육감 흔들기·길들이기에 순응해 갔고, 전교조를 비롯한 운동 진영이 투쟁을 자제하면서 왼쪽의 압력은 줄어들었다. 그 결과 진보 교육감들의 ‘진보성’은 차츰 퇴색되고 개혁의 동력도 점차 약해졌다.

2기(2014~2018년)

13개 지역(울산, 대구, 경북, 대전 제외)에서 진보 교육감이 당선했고, 그중 8명이 전교조 출신이다. ‘진보 교육감 전성시대’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입시 고통 해소(고교 평준화 확대, 자사고 폐지, 대학평준화·대입제도 개선), 교육 복지 강화, 혁신학교 확대·보편화, 민주시민교육 활성화 등이 주요한 공통 공약이었다.

시·도 교육청의 과반을 차지한 진보 교육감들에 거는 기대가 높았다. 그러나 진보 교육감들은 “급격한 변화는 없을 것”이라며 당선 이후 몸을 낮추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진보 교육감 대거 당선에 질겁한 우파들을 달래는 신호이자 동시에 변화 염원 대중의 ‘과도한’ 개혁 열망을 식히려는 신호였을 것이다. ‘자사고 폐지·일반고 전성시대’를 제 1공약으로 내세웠던 조희연 서울교육감은 당선 후 인터뷰에서 “모두 없애겠다는 것이 아니라 취지에 맞게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자사고를 걸러내겠다는 뜻”이라면서 소극적인 대응을 예고했다.

2016년 ‘직선 2기 교육감 전반기 평가와 향후 과제’ 국회 토론회에서는 진보 교육감에 대한 실망과 성토가 쏟아졌다. “진보 교육감이 들어섰지만 바뀐 게 뭐냐? 피부로 느껴지는 게 없다는 냉소적인 질문을 자주 듣는다.”(전교조 간부), “진보 교육감 당선시키면 우리가 원하는 세상 올 줄 알았다. ... 그런데 현재 노숙, 삭발, 단식 투쟁을 하고 있다. 교육청들의 갑질에 피눈물이 난다.”(전국학비노조 간부), “진보 교육감들의 후보 기간 정책협약과 공약이 ... 선거에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물거품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전국학비노조 간부)

2기의 주요 시험대는 ‘자사고 폐지’와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였다.

2014~2015년 자사고 재지정 평가에서 진보 교육감 다수는 진지한 폐지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자사고 지정을 연장했다. 전체 자사고의 절반 이상이 있는 서울이 관건이었는데, 조희연 교육감은 진보 진영의 폐지 압력과 우파의 반발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양 진영을 다 만족시키려고 부분적이고 부드러운 개혁을 추진하다가 결국 완패로 끝났다. 그뿐 아니라 입시 비리가 불거진 영훈중학교(국제중)의 승인을 취소하지도 않았고, 평가에서 합격점을 받지 못한 학교의 자사고 지정을 연장해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 그러고는 자사고가 이해관계가 복잡한 민감한 사안이므로 교육감의 손이 아니라 정부 법령을 손봐서 해결할 문제라면서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진보 교육감들은 정부의 전교조 법외노조 공격에 대해 비판은 하면서도, 교육부의 후속 조치(전임자 복귀 명령과 직권면직 등) 요구를 일찌감치 받아들였다. 급기야 진보 교육감의 손에 전교조 교사들이 집단 해고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일부 교육감들은 법외노조를 이유로 전교조와의 단체협상도 해지했다. 단협에는 교사의 노동조건뿐 아니라 교육복지, 학생 인권, 학교의 민주적 운영 등 학교 현장에 필요한 많은 내용들이 담겨 있는데도 말이다.

3기(2018~2022년)

울산이 추가돼 총 14곳에서 민주·진보 교육감이 당선했다. 전교조 출신도 10명으로 늘었다. 진보 교육감이 낙선한 곳에서도 보수 후보와 접전을 펼쳤다. 대부분 지역에서 진보 교육감의 득표율이 상승한 것은 교육 개혁에 대한 열망이 여전히 높다는 점을 보여 줬다. 진보 교육감들도 특권학교의 일반고 전환, 교원 노동기본권·정치기본권 보장, 학생 청소년 인권법·인권조례 제정, 학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을 공동 공약으로 제시했다.

3기에서 가장 중요한 시험대는 문재인 정부와의 관계 문제였다.

교육부와 진보 교육감이 충돌했던 이전 정부 때와 달리 “진짜” 진보 교육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들이 있었다. 진보 교육감 출신의 김상곤이 교육부의 수장이 된 것도 기대를 한층 끌어올렸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 너무도 달랐다. 문재인 정부는 전교조 법외노조 철회 요구를 한사코 외면했고,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열망을 무참히 짓밟았다. 정시 확대, 자사고·특목고 유지, 교원 감축, 성과급과 교원평가 등 이전 우파 정부의 교육 기조와 근본적으로 단절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개혁 배신을 거듭하는 상황에서 진보 교육감들은 시도교육감협의회의 공동 성명을 몇 차례 발표했을 뿐, 정치적으로 진지한 도전을 하지는 않았다. 1, 2기 때는 불충분하지만 우파 정부의 공격을 완충하는 구실을 했다면, 오히려 3기의 진보 교육감들은 정부의 개혁 배신과 교육 공격에 더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한국 교육의 일대 개혁과 혁신”을 기대케 했던 “문재인 정부와 진보 교육감 시대의 결합”은 ‘교육 개혁의 실종’으로 결론이 났다.

심지어 이전 시기보다 악화한 문제도 여럿 있는데, 그중 한 사례가 소규모 학교 통폐합 문제이다. 문재인 정부 초기 3년 동안(2017~2019년) 진행된 소규모 학교 통폐합이 박근혜 정부 시절(2013~2016년)보다 36.4퍼센트 증가했다. 진보 교육감들이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적극적으로 호응한 결과다.

또 다른 시험대는 ‘학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였다.

학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그야말로 사기극으로 끝났다. 이 사태는 분명 문재인 정부의 잘못이지만, 각 시·도 교육청이 꾸린 정규직 전환심의위원회의에서 진보 교육감들이 한 구실도 전혀 진보적이지 않았다. 심지어 일부 교육감들은 정부의 가이드라인(무기계약직 전환)조차 지키지 않았고 노조와의 대화도 거부했다. 경기 교육청은 전체 심의 대상자 중 고작 6퍼센트만 전환 대상으로 발표해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공분을 샀다.

2018년 5월 10일 민주진보 교육감 후보 공동공약 발표 기자회견 ⓒ출처 전교조

거듭된 후퇴

지난 12년을 돌아보면, 진보 교육감들의 개혁은 불철저하고 일관되지 못하며 때때로 모순적이기도 했다. 말과 실천 사이에 적잖은 간극이 있었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주요한 시험대에서 거듭 미끄러졌다. 물론 진보 교육감들 사이에 편차가 있지만 점점 오른쪽으로 이동하면서 진보성이 옅어졌다. 진보 교육감들의 대표적인 후퇴 사례를 몇 가지 유형으로 정리해 보자.

첫째, 경쟁 교육 체제에 진지하게 도전하지 않았다. 진보 교육감들의 제 1공약은 줄곧 ‘입시 경쟁교육 해소’였지만 그들의 실천은 아주 꾀죄죄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자사고와의 대결에서 그들은 정부와 우파에 맞서기를 주저하고 자신의 재량권조차 충분히 사용하지 않았다. 2019년 자사고 재지정 평가에서 진보 교육감의 권한에 놓인 학교 22곳 중 ‘지정취소’ 처분을 받은 곳은 11곳뿐이었다. 이마저도 교육부의 부동의나 법정 소송 패배로 실제로 취소된 곳은 한 군데도 없다. 특목고(과학고나 외국어고)에 대해서는 손댈 의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민병희 강원교육감은 강원외고의 학교 구성원들이 뜻을 모아 진행한 ‘특목고 지정 취소’ 신청을 부결시켰다. 그는 “정부의 특목고 자사고 폐지 정책에 따르기엔 강원도만의 특수성이 고려돼야 한다”며 “일반계고 전환보다는 일단 외고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실 자사고 폐지는 중요하지만 비교적 작은 개혁이기도 하다. 설령 자사고를 전면 폐지한다고 해도 고교 서열 체제와 교육 불평등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서열의 정점에는 과학고와 외국어고가 있고, 무엇보다 대학 서열 체제와 입시 경쟁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분적인 개혁에서조차도 주저하고 망설이는 진보 교육감이 ‘특권·경쟁 교육 체제’에 맞서 단호하고 일관되게 싸우리라 기대할 수 있을까?

둘째, 정부와 우파의 압력에 쉽사리 흔들리고 굴복했다. 당선 전에는 “잘못된 정부에 복종하는 교육감이 아니라 잘못된 일을 바로잡는 교육감이 되겠다”고 선언했지만, 교육감이 되고 나서는 교육부에 저항하기보다 교육부 핑계를 대고 뒤로 물러서는 경우가 더 많았다. 예를 들어, 전교조 법외노조 후속 조치, 진보 교사 탄압(진보정당 후원, 시국선언, 세월호 선언, 국가보안법 탄압 등)과 같은 국가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말로는 정부의 조처에 반대한다느니, 문제가 있다느니 하면서도 자신이 기꺼이 방패막이가 되려 하지는 않았다.

셋째, 부담스러운 개혁을 회피하거나 우회하는 경향이 커졌다. 학생인권조례는 진보 교육감들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잘 보여 주는 사례다. 최근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충남(2020년), 제주(2021년)에서는 알맹이와 민감한 쟁점이 빠진 ‘누더기’ 안이 통과됐다. 전남과 강원에서는 논란을 줄여 보려고 각각 ‘교육공동체인권조례’와 ‘학교인권조례’를 추진했으나 그마저도 통과되지 못했다. ‘충북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본부 상임대표’를 맡았던 김병우는 정작 교육감이 되자 부담스러운 ‘학생인권조례’를 피하고 별 실효성도 없는 ‘교육공동체권리헌장’으로 후퇴했다. 인천의 도성훈 교육감도 논란을 의식해 학생인권조례를 피하고 면피용으로 ‘학교구성원인권조례’를 제정해 좌우 양쪽에서 비판을 받았다.

넷째, 자신의 공약과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장석웅 전남교육감은 2018년 선거에서 “한 아이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소수의 영재가 사회를 이끄는 신화는 끝났다”며 작은 학교 살리기에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당선 후에는 입장을 180도 바꿔 소규모 학교 통폐합 정책(일명 ‘적정 규모 학교 육성’)을 적극 추진했다. 학생의 교육권보다는 재정 효율화를 선택한 것이다. 또한 그는 에너지과학 영재학교를 추진하려다 반발을 사고서야 중단했다. 민병희 강원교육감은 한때 교육부의 소규모 학교 통폐합 정책을 “깡패 짓”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정작 자신도 통폐합 추진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기준을 대폭 완화하면서 일부 학교를 통폐합하기 시작했다. “일방적이고 강제적인 통폐합은 하지 않겠다”며 교육부와 달리 자신은 소신과 원칙이 있음을 강조했지만, 본질적 차이는 없다.

다섯째, 갈수록 사용자로서의 본색이 분명해졌다. 학교 비정규직 처우를 일부 개선하기는 했지만, 예산을 핑계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하거나 조건 개선을 외면했고 심지어 투쟁을 비난하기도 했다. 이재정 경기교육감은 매년 크고 작은 규모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해서 농성이 끊이지 않았다. 장휘국 광주교육감도 여러 차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집단 해고해 노조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이는 진보 교육감들이 자신의 약속을 저버리고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공격한 사례 중 일부일 뿐이다. 한편, 노노 갈등을 부추기거나 이를 이용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단협 체결을 지연하는 등 사용자다운 면모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진보 교육감의 개혁은 왜 이렇게 초라한가?

진보 교육감이 등장한 지 12년. 시·도 교육청 17곳 중 14곳에서 진보 교육감. 진보 진영 일각에서는 당장 “교육혁명”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부푼 기대를 표현했다. 그런데 그동안의 학교 교육 변화는 왜 이리 미미한 것일까? 진보 교육감들의 개혁은 왜 그리 소심하고 소극적일까?

우선 개혁주의 문제가 있다. 진보 교육감들은 위로부터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한다. 조희연 교육감은 2014년 자사고 폐지를 1년 유예하면서 “설득과 유인”을 통해 자사고를 “고사”시키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개혁 목표를 향해 천천히 돌아가는 길이 아니라 결국 개혁에서 멀어지는 길이었다. 진보 교육감의 동요와 후퇴는 개혁 동력인 진보 세력의 사기를 떨어뜨린 반면, 보수 세력의 자신감과 전투 의지를 고취했다. 그 결과는 자사고와의 대결에서 완패였다. 무릇 모든 개혁이 그렇듯, 자사고 폐지도 보수적 반발을 부를 것임은 자명했다. 계급적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문제를 ‘부드럽게’ 개혁할 수 있다는 생각은 공상적이다.

한편, 위로부터의 개혁이 갖는 전형적인 한계도 보여 줬다. 교육감은 자신의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 대체로 관료적인 방식으로 개혁을 추진했다. 아래로부터 개혁의 동력을 끌어내기보다 “‘공문 한 장’으로 해결하려는 방식”은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없다. 현장 교사들의 참교육 실천 운동의 일환이었던 ‘새로운 학교 운동’이 교육청의 사업이 되자, 교사들은 개혁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으로 전락했다. 진보 교육감은 대중의 힘을 키우는 방식을 선호하지 않았다.

둘째, 그들은 교육의 진보적 변화를 바라는 대중을 분명하게 대변하기보다는 좌우를 아우르는 개혁을 추진하려 한다. 2014년 여러 진보 교육감들이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교육감’을 표방했는데, 김지철 충남교육감은 후보 시절 다음과 같은 포부를 밝히며 지지를 호소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 보수와 진보의 균형감각을 갖고 모두를 아우르는 대통합 새 시대의 교육을 이끌겠다.” 또한 교육에는 무상교육과 같은 진보적 가치뿐 아니라, 국가를 위한 충·효 교육과 같은 보수적 가치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발언을 보수 교육감(2018년 임종식 경북교육감)의 다음 발언과 비교해 보라. “실제 교육에서 진보니 보수니 하는 구분은 없다. ... 교육은 아이들에게 얼마나 효과적이고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 교육혁신을 반드시 실천해 학생과 교사, 학부모가 주인이 되는 따뜻한 교육혁명을 실현하겠다.”

그러나 교육은 결코 정치 중립적일 수 없다. 오히려 가장 정치적인 사회제도 중 하나다. 무상급식, 학생인권조례, 자사고 폐지 등 작은 개혁조차도 좌우가 대립해 왔다. 이런 현실에서 좌우를 아우르는 교육개혁이란 결국 개혁 후퇴의 방향으로 미끄러질 수밖에 없다.

셋째, 교육감 권한의 한계 문제도 있다. 교육감을 종종 ‘교육 대통령’이라고 부르는 것은 과장이다. 교육감은 상당한 예산을 쓰고 인사권을 가지는 등 재량이 있지만, 법적·제도적 한계 속에서 자유롭지 않다. 특히, 중앙 정부에 여전히 권력이 집중돼 있어서, 교육감에게는 대학입시제도나 교육 과정 등 교육을 규정하는 핵심 정책에 대한 권한이 없다. 물론 여기서 분명히 할 점은 권한의 한계가 진보 교육감의 후퇴를 정당화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한편, 정부는 진보 교육감이 반기를 들 때마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 행정적·재정적·정치적 압박을 가한다. 또한 행정부뿐 아니라 (체제의 수호자인) 법원이 나서서 경쟁교육 시스템과 그에 이해관계가 있는 지배계급의 이익을 보호해 준다. 그간 우여곡절 끝에 지정 취소된 자사고 10곳에 대한 소송에서 법원은 모두 자사고의 손을 들어줬다.

넷째, 국가적 차원의 제도 개선 없이 학교나 지역단위 개혁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혁신학교가 수천 곳으로 늘어났지만, 입시 경쟁 체제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진보 교육감들이 제시한 ‘공교육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전환’은 여전히 희망 속에 머물러 있다. 무상급식, 교복비 지원 등 보편적 교육복지가 조금씩 늘어나긴 했지만, 지난 12년 동안 교육 양극화는 심화했다. 일부 지역에서 고교 평준화가 확대하긴 했으나, 특권학교와 고교 서열 체제는 굳건히 유지됐다.

다섯째, 개혁의 진정한 동력인 (특히 전교조의) 아래로부터의 대중 투쟁이 약화했다. 만일 강력한 대중 투쟁이 있었다면 위에서 지적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개혁을 쟁취할 가능성이 높아졌을 것이다. 이형빈 전 곽노현 교육감 보좌관이 진보 교육감 1기에 대해 평가한 다음 진술은 주목할 만하다. “[전교조는] 진보 교육감에게 교원평가의 평가 방식을 바꾸라는 요구를 제기했을 뿐, 이러한 요구를 대정부 투쟁으로 이끌어 내려는 진정성을 보이지는 못했다.” “곽노현 교육감 시절 서울시교육청이 자사고나 고교선택제 문제에 소극적인 입장을 취했을 때도 전교조 서울지부가 이 문제를 가지고 집회를 연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 전교조 서울지부 정책실장으로부터 받았던 가장 큰 요구는 ‘소규모 테마형 수학여행 정책, 수행평가 확대 계획을 현장 교사들이 부담스러워하니 이를 철회하라’는 것이었지, ‘자사고와 고교선택제를 폐지하라’는 요구는 아니었다.”(이형빈, 2014)

진보 교육감 시대에 전교조 지도부의 투쟁 자제·회피 경향이 커진 것이 오히려 개혁의 동력을 약화시켰다.

마지막으로, 근본에서 교육청은 자본주의 국가기구의 일부다. 다시 말해, 노동자·민중에게 유리하게 교육을 바꾸는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는 중립적인 기구가 아니다. 자본주의 국가기구의 성격은 관리자 개인들의 성격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교육감이 바뀌었다고 자본주의 국가기구로서의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핵심 관료들은 지배계급의 일원인데, 진보 교육감이 들어섰다고 하루아침에 그들의 이해관계가 바뀌는 것도 아니다. 보수적 관료들에 포위되지 않도록 진보 교육감을 옆에서 지원해야 한다며 전교조 활동가들이 교육청으로 많이 들어갔다. 그러나 교육청의 고위 간부가 일부 교체되고 전교조 출신의 장학사들이 늘어난다고(소위 물갈이) 해도 관료조직은 그 자체의 고유한 논리에 따라 움직이기 마련이고, 교육청은 자본주의 교육제도를 유지·관리하는 구실을 지속한다.

진보 교육감의 성격과 구실

진보 교육감은 대부분 진보·좌파 출신이고 상당수가 전교조 위원장·지부장 출신이다. 그래서 진보 교육감들은 교육운동 진영(조직)과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그런데 진보 교육감은 당선 후에는 이전과 다른 정치적 성격을 띠고 모순적인 구실을 하게 된다. 이런 점이 1기 때부터 전교조에 많은 혼란을 줬다.

우선 진보 교육감에 대해 두 가지 중요한 점을 지적하자면, 첫째, 교육감이 아무리 좌파적인 인사일지라도 당선 후에는 자본주의 국가기구의 일부이자 학교 노동자들의 사용자이다. 전교조를 비롯한 운동진영이 그로부터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다.

둘째, 진보 교육감의 이런 지위 때문에 일관되게 진보적인 행보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흔히 국가기구가 가하는 압력에 굴복한다. 그들이 흔히 오락가락하는 행보를 보이다가 꾀죄죄한 개혁에 그치는 이유다. 따라서 교육 개혁의 성취 정도는 진보 교육감 당선 후에 벌어지는 아래로부터의 대중투쟁에 달려 있다.

진보 교육감(의 당선)이 교육 변화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진보적 교육 개혁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해 교육 개혁을 위한 투쟁에 나서는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고무하는 경우도 있다. 예로, 진보 교육감들은 ‘학교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약속했고 이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직을 만들고 투쟁에 나서는 데 자신감을 줬다. 진보 교육감 시대가 열어 준 기회를 이용해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규모 노동조합 조직을 일구고 지속적으로 투쟁해서 무기계약직화, 근속수당 신설·확대 등 고용·노동조건을 개선해 왔다.

이와 같이 진보 교육감은 투쟁에 유리한 환경과 교육 개혁의 기회를 열어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제한하거나 온건한 압력을 넣는 구실을 할 수 있다. 전교조가 진보 교육감의 성공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는 생각은 투쟁보다 협상을 중시하는 태도를 낳았고 진보 교육감에 대한 무비판적인 지지로 이어졌다. 그 결과 진보 교육감 시대에 전교조는 조직력과 투쟁력이 약화됐다.

진보 교육감과 전교조

진보 교육감이 대거 포진한 상황에서 전교조가 진보 교육감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중요하게 제기됐다.

우선 정부와 우파가 진보 교육감을 공격할 때는 진보 교육감을 방어해야 한다. 진보 교육감에 대한 공격은 단지 진보 교육감 개인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그를 배출한 진보 진영과 진보 교육감에 투표한 지지자 모두에 대한 공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자신을 뽑아준 사람들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고 불필요하게 타협적인 행보를 보인다면 공개적 비판을 삼가서는 안 된다.

조합원 중에는 진보 교육감의 성공을 곧 전교조의 성공과 동일시하면서 진보 교육감을 비판하면 우파가 득을 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전교조가 진보 교육감의 잘못에 침묵한다면 오히려 대중은 진보 교육감뿐 아니라 진보적인 교육 운동 자체를 불신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결국 우파가 득세하는 길을 열어 줄 수 있다.

따라서 진보 교육감의 동요와 후퇴에 대해서 공개적 비판을 삼가지 말고 독립적인 투쟁을 통해 아래로부터의 압력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진보 교육감에 대한 무비판적 지지도 위험하지만, ‘진보 교육감의 행보야 어떻든 우리는 우리 할 일만 하면 된다’는 식의 비정치적이고 냉소적인 태도도 경계해야 한다. 진보 교육감들과 그들의 정책은 대중 의식과 운동에 끼치는 영향력이 상당하다. 따라서 선거 공약을 지키도록 촉구하는 운동을 벌이고, 무엇보다 진보 교육감 당선이 열어 놓은 기회를 활용해 대중 투쟁과 조직을 건설해야 한다.

그런데 전교조 지도부는 그동안 진보 교육감의 후퇴에 공개적인 비판을 삼가고, 교육청으로부터 독립적인 투쟁보다는 “파트너십” 구축을 선호했다. 전교조 간부들은 교육개혁을 위해 진보 교육감과의 “전략적 협력관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전교조 내의 ‘소통과 실천’ 경향(현 전교조 지도부 계열)은 “전교조와 교육청이 조직적인 협력관계를 맺고”, “노조의 경영참여와 유사한 방식으로 전교조가 교육청에 조합원을 파견”해 교육청 운영에 참여해야 한다는 관점을 갖고 있다.

한편, 상대적으로 좌파적인 의견그룹인 ‘교찾사’(교육노동운동의 전망을 찾는 사람들) 경향은 교육청을 “협력과 견제”의 대상으로 설정해 왔다. 협력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지 않지만 위험성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사실 교찾사가 집행권을 갖고 있을 때에도 교육감들과의 협력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며 투쟁을 자제했다. 따라서 진보 교육감은 “협력과 견제”의 대상이라기보다 아래로부터의 압박 대상이 돼야 한다.

교육 개혁 성취를 위해 진보 교육감과 협력하고 파트너십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은 협력 관계 유지를 위해 비판을 삼가고 교육감과의 충돌을 피하는 쪽으로 기울기 십상이다. 사실 노동조합인 전교조가 사용자인 교육감(청)과 파트너십을 형성한다는 것은 독자성을 약화시킬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되면 노동조합의 손발을 교육청에 묶어두어 노조의 진정한 힘인 조직력과 투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교육감의 동요와 후퇴에도 무기력해지면서 진보 교육감의 후퇴는 브레이크 없이 가속될 수 있다.

진보 교육감과의 관계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를 낳는 방식은 전교조 활동가들이 (장학사나 장학관, 보좌관, 비서 등으로) 교육청에 직접 들어가는 일이다. 전교조 지도부는 “교육청 기구에 직접 참여해 보수적 관료들을 견제하고 진보적 교육정책을 관철”시키려는 목적으로 활동가를 “파견”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교육청을 바꾸러 들어간 활동가들 자신이 바뀌게 된다. 교육청을 견인하러 파견된 사람이 역으로 노동조합을 통제하려 든다. 전교조를 대변하기 위해 파견된 사람이 결국은 교육감을 대변하게 된다. 파견된 활동가들은 교육청 관료기구에 둘러싸여 타협적이 돼야 한다는 압력을 상시적으로 받는다. 교육청에 들어가서 성과를 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뜻하는 바는 노동조합의 힘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육청(국가기구)을 강화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교육청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교육청으로부터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것’과 논리적으로도 현실에서도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교육청에 활동가를 파견하는 방식은 노동조합이 선택해서는 안 되는 전술이다.

노조 지도부가 교육감과 협조적인 관계를 유지하려는 태도는 노동조합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는데, 현장 조합원들 사이에서도 노동자들의 조직과 무기를 사용하기보다는 교육청을 바라보는 경향이 자랐다. “진보 교육감이 당선된 지역의 학교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교사들이 주체적으로 학교 현장을 바꾸려 애쓰거나 정부의 교육정책을 변화시키려는 투쟁을 조직하기보다는 교육청만 바라보는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 학교에 어떤 사안이 발생하면 전교조 분회 모임을 소집하여 대책을 만들기보다는 교육청에 있는 보좌관들이나 파견 교사에게 전화를 걸어 손쉬운 해결책을 찾거나, 전교조 지부나 본부를 통해 투쟁을 조직하기보다는 교육청에 민원을 내는 경향도 있었다.”(이형빈, 2014)

한편, 진보 교육감의 등장은 혁신학교가 대폭 확대되는 계기가 됐는데, 혁신학교를 투쟁의 대체 수단으로 여기는 경향이 자랐다. “전교조 일부 활동가들은 진보 교육감 시절 동안 대정부 투쟁을 조직하기보다는 혁신학교 사업에 ‘올인’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심지어 일부 지역에서는 거의 모든 지회 집행부가 특정 혁신학교 한 곳에 몰려 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이형빈, 2014) 또한 노조 활동가들이 교육청 관료로 들어가는 것뿐 아니라 내부형 교장 공모제를 통해 교장으로 진출하는 사례도 늘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전교조는 나름 좌파적인 노조 중 하나였는데,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진보 교육감 시대는 전교조 내에서 위로부터의 점진적 제도 변화 프로젝트가 급속하게 부각되는 계기가 됐다. 필연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전교조 지도부는 ‘위로부터의 개혁’을 자신의 임무로 여기는 진보 교육감에 대해 ‘아래로부터의 압력’을 가한다는 전망이 아니라 그와 협력해서 위로부터의 개혁을 성공시킨다는 전망을 택했다.

전교조는 오랫동안 정부의 탄압을 받았고 우파의 표적이었다. 그래서 전교조의 주된 활동 무대는 학교 안과 밖(거리) 두 군데였다. 학교 안 실천(참교육 실천)과 제도 개선 투쟁 중 무엇이 우선인지는 전교조 내에서 늘 벌어진 논쟁이었다. 그러나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서 전교조 지도부는 새로운 전망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교육청을 활용해 교육을 바꾼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느닷없는 변화는 아니다.

역대 전교조 지도부 사이에 차이는 있었지만 그들은 대체로 투쟁을 자기 제한적인 방식으로 이끌었다. 쟁의권이 없어 다른 노조와 같은 방식의 산업적인 투쟁이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투쟁은 서명이나 선언이 주를 이뤘고 드문드문 연가나 조퇴 투쟁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그조차 신통치 않다. 투쟁의 효과(위력)가 떨어지다 보니 갈수록 민주당을 통해 개혁 입법을 추진하는 데에 더 매달렸다. 투쟁은 상층의 여론전이나 협상을 뒷받침하는 정도의 구실에 머물렀다. 또한 투쟁보다는 선거를 통해 교육을 바꾸려는 경향이 자랐다. 이런 속에서 전교조 출신 진보 교육감의 등장은 교육청을 활용해 교육을 바꿀 수 있다는 새로운 기대를 제공했다. 상층 활동가들은 진보 교육감을 성공시키기 위해 실현 가능한 정책적 대안 제시와 학교 현장에서의 실천에 집중하면서 그것이 전교조의 “진짜 실력”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투쟁을 멀리하고 진보 교육감과의 협력(협상)에 기대는 동안 노조의 진정한 힘(조직력과 투쟁력)은 점점 약해졌다.

전망과 과제

아무래도 최근 대선 결과와 그에 따른 우파 정부의 복귀가 이번 선거 구도와 쟁점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쪽에서는 대통령 임기 초반 허니문 정서가 지방선거에 반영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고 또 다른 쪽에서는 우파 집권에 대한 반발로 진보 지지층이 투표에서 결집할 것이라는 기대 섞인 예측도 나온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윤석열의 당선이 문재인의 배신에 대한 환멸 때문이지 대중 의식이 보수화된 탓이 아니고, 또한 노동계급이 사기 저하에 빠진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현재 사회 전체적으로 계급투쟁이 활성화되지 못한 상황은 진보 진영에 유리하지 않다.

이전보다 보수 진영의 후보들이 일찍부터 단일화 움직임을 보였다. 물론 곳곳에서 삐걱대는 소리가 들리지만 말이다. ‘잃어버린 12년’을 되찾겠다고, ‘전교조가 망친 교육’을 살려보겠다고 이를 악물고 있는 모양새다. 진보 진영에서는 현 교육감이 재선 또는 3선에 도전하는 곳이 많다. 서울, 부산, 경남, 충북, 충남, 세종, 제주, 인천, 전남, 울산 등. 그 외 경기, 강원, 광주, 전북에서도 진보 후보들이 단일화 논의를 마무리했거나 진행 중이다. 대전에서는 지난 선거에서 설동호 교육감과 접전을 펼쳤던 성광진 후보(전 전교조 대전지부장)가 다시 도전장을 냈고, 대구·경북에서는 아직 진보 후보가 출마하지 않는 상태다.

선거에서 양 진영의 후보 단일화 여부(구도)가 주요 변수지만, 관건은 진보 교육감에 대한 대중의 평가일 것이다. 진보 교육감들의 개혁이 대중의 기대에 못 미치면서 실망이 커져 온 것도 사실이다.

지난 선거에서 진보 교육감 다수의 득표율이 상승했으나, 3선의 경우 민병희를 제외한 두 명(장휘국과 김승환)의 득표율은 재선 때보다 감소했다. 리얼미터가 발표한 ‘2022년 1월 시도교육감 직무수행 지지도’ 조사를 보면, 지지도가 50퍼센트가 넘는 진보 교육감은 1명뿐이고, 진보 교육감 9명은 30퍼센트대의 낮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2018년 7월의 같은 조사에서는 50퍼센트 이상의 지지도가 4명이고 30퍼센트대는 5명뿐이었다. 진보 교육감 14명의 평균 지지도는 44.4퍼센트에서 39.1퍼센트로 낮아졌다. 시간을 더 거슬러 가면, 2기(13명)에 해당하는 2014년 10월 조사 때는 지지도 50퍼센트 이상이 5명이고, 30퍼센트대는 3명에 불과했다.

이런 데이터는 진보 교육감에게 거는 기대, 즉 진보적인 교육 개혁에 대한 열망은 확대해 왔지만, 실제 진보 교육감이 보여 준 행보에 실망하는 사람들도 늘어 왔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한편, 우파 정부가 다시 들어선 상황에서 진보 교육감이 보호막 구실을 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몇몇 진보 후보들은 “윤석열의 특권경쟁교육에 맞서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지난 12년 동안 우파 정부하에서도, 문재인 정부하에서도 진보 교육감들이 신자유주의 경쟁 교육에 제대로 맞서지 못한 터라 대중의 기대가 예전만 못할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 보수 후보들이 내세우는 핵심 공약은 학생인권조례와 혁신학교의 폐지, 자사고·특목고 유지 등 진보적 교육 개혁의 성과를 허물고 경쟁과 차별을 강화하려는 것들이다. 한편, 전교조는 이번 선거에 맞춰 평등과 협력의 교육을 위한 정책을 담은 교육의제를 발표했다. 선거 국면에서 우파의 비난에 맞서 진보 교육의 가치를 방어하고 진보 후보들이 의미 있는 공약으로 진보 염원 대중의 열망을 표현하게 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선거보다 더 중요한 것은 투쟁이다. 진보 교육감 당선이 자동으로 개혁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전교조 내에서 ‘전교조와 진보 교육감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평가와 성찰이 필요하다. 전교조가 투쟁을 자제하고 진보 교육감과 파트너 관계를 맺는 경향은 진보 교육감이 더 쉽게 후퇴하는 길을 열어 줬다. 조합원들은 점점 수동화되고 개혁의 후퇴로 투쟁의 사기도 떨어졌다. 투쟁력이 떨어지면서 진보 교육감의 후퇴를 막고 전진을 압박하는 힘이 더 약해져 개혁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이러한 악순환의 결과, 교육 개혁의 기회는 유실됐고, 전교조는 조직력과 투쟁력이 약화했다. 이것이 지난 12년 동안 전교조에서 벌어진 안타까운 일이다.

진보 교육감 시대 전교조의 과제는 진보 교육감과의 “거버넌스 구축”이 아니라 대중의 기대와 열망이 열어 주는 틈을 활용해 아래로부터 독립적인 운동을 건설하는 것이다. 진보 교육감이 제공할 수 있는 개혁의 수준도 전교조를 비롯한 교육노동운동 진영의 투쟁에 달려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이미 정시 확대, 자사고·특목고 존치, 일제고사 부활 등 신자유주의 경쟁 교육 강화를 예고한 상태다. 경제 위기와 지정학적 위기 심화에 직면한 지배계급은 교육 경쟁을 강화하고 교육을 더욱 통제하려 들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보수 교육감으로 교체되는 곳이 있다면 진보 교육감의 성과를 되돌리려는 반격이 있을 수 있다. 우파의 교육 공격을 막아 내고 교육 개혁을 관철하려면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필수다.

노조 지도자들은 흔히 ‘진보 교육감을 활용한 개혁’이 힘들게 투쟁을 조직하는 일에 비해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믿는 듯하다. 그러나 부분적이고 단기적인 성과가 있다 하더라도 우파의 공격에 맞서 그 성과를 유지·확대하는 힘도 결국에는 대중 투쟁에 달려 있다.

영국 마르크스주의자 크리스 하먼의 다음 말은 좌파 활동가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 준다. “좌파 정부의 출현이 노동자 운동을 강화시키는 경우는 오직 노동계급이나 적어도 계급의 가장 선진적인 부문이 이 정부에 대해 착각하지 않는 경우뿐이라는 것이다. 노동자 운동이 독립적이고 강력할수록 좌파 정부에게서 더 많은 개혁을 얻어낼 수 있다.”

참고문헌

김인식 2014, ‘조희연 서울교육감, 자사고 폐지 공약 어기려는가’, 〈노동자연대〉 133호.

김학한 2018, ‘2018년 교육감선거 분석과 향후 과제’, 〈진보교육〉 69호, 진보교육연구소.

이형빈 2014, ‘진보 교육감 4년은 무엇을 남겼는가’, 〈오늘의 교육〉 통권 20호.

이형빈 외 2016, ‘직선 2기 교육감 전반기 평가와 향후 과제’ 토론회 자료집.

정원석 2014, ‘진보 교육감 시대, 교육 혁신 어떻게 할 것인가?’, 〈노동자연대〉 132호.

정진희 2010, ‘진보 교육감 탄생과 교육운동의 쟁점’, 〈마르크스21〉 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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