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민주당)이 중국의 거센 반발에도 인도·태평양 순방 중에 대만을 방문했다. 미국 권력 서열 3위인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한 것은 1997년 이후 25년 만이다.

이로써 1995~1996년 위기 이후 처음으로 대만해협에서 전쟁 위기가 고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펠로시의 이번 순방의 의미는,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 제국주의를 약화시키려 하는 와중에도 (러시아보다 훨씬 더 중요한 적수인) 중국을 억지하는 노력을 절대 늦추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는 데에 있다.

펠로시는 차이잉원과 만나 “미국은 대만과 함께 간다”고 하고, 시진핑의 “권위주의”와 “독재”를 규탄했는데,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는 바이든의 대(對)중국 압박의 핵심 슬로건이다.

역사적으로 대만 문제는 미국의 대중국 전략에 결정적 영향을 받아 왔다.

지리적으로 대만은 중국이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길목에 있다. 그래서 중국이 대만을 자기 지배하에 두게 되면 미국의 인도·태평양 장악에 균열을 낼 수 있게 된다. 세계 3대 대양(인도양·태평양·대서양) 모두를 관장할 권리가 자국에 있다고 믿는 미국 지배자들로서는 절대 용인할 수 없는 일이다.

중국 지배자들은 미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흔드는 것을 심각하게 경계한다. 중국이 대만의 독립 선언을 막지 못한다면, 중국공산당의 통치 정당성이 약화될 것이다. 또 이는 분리 독립을 원하는 중국 내 소수민족들도 자극할 텐데, 중국공산당은 자국이 옛 소련처럼 여러 민족공화국으로 분열되는 것을 매우 경계한다.

그래서 중국 지배자들은 대만 장악을 통한 중국 재통일을 중요한 국가적 목표로 설정해 왔고, 대만 문제를 전쟁까지 불사할 수 있는 ‘핵심 이익’의 하나로 규정해 왔다.

따라서 펠로시의 대만 방문은 중국 시진핑 정부로선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대만 문제는 미국·중국의 경제적 갈등(기술 패권 경쟁)과도 결합돼 있다. 미국은 중국이 자국 산업 수준을 고도화하려는 것을 저지하려고 한다. 펠로시가 순방 출발 직전에 미국 하원에서 중국 반도체 산업을 견제하는 ‘반도체 지원법’을 통과시키고, 대만을 방문해 세계적 반도체 기업인 TSMC의 회장을 만난 것도 미국의 대중국 경제 전쟁의 일환이다.

대만은 (한국과 함께) 고성능 반도체 양산이 가능한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국으로, 미국은 기술 우위를 이용해 중국 경제 고도화를 견제하려고 이른바 ‘칩4’ 동맹(미국·대만·일본·한국)을 결성하려 한다. 미국에게도 대만은 ‘핵심이익’인 것이다.

바이든

바이든 정부는 전임 트럼프 정부와 마찬가지로 중국 억지에 적극적이다. 바이든은 취임식에 대만 대표를 초대했고(40여 년 만에 처음이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항모전단을 대만 인근에 보내 중국을 압박했고, 올해 초에는 고위직 특사를 대만에 보내 힘을 실어 줬다.

이번 펠로시 순방 직전에도 바이든은 시진핑과 통화하며 펠로시가 짚은 쟁점들(‘하나의 중국’ 원칙, 인권 문제, ‘경제 전쟁’) 모두에서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바이든은 트럼프와 달리 동맹을 결집해 이를 추진해 왔다. 바이든은 쿼드·오커스 등 동맹 기구들을 가동하고, 세계 최대 군사 동맹 나토의 전략적 과제에 중국 대응을 추가했다. 이번에 펠로시가 인도·태평양 지역의 동맹국들을 순방한 것은 그런 결집 시도의 일환이다.

중요하게도, 미국의 대중국 정책의 핵심 파트너인 일본이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거듭날 개헌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은 대만 문제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이미 지난해부터 일본 외무성은 대만 유사시에 대비해 개헌을 서둘러야 한다고 밝혀 왔다.

갈등 격화

중국은 펠로시의 대만 방문에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중국은 펠로시가 오기 전부터 거센 규탄을 해 왔다. 8월 1일 건군절에 극초음속미사일을 발사했고 대만 상륙을 겨냥한 군사 훈련 장면을 공개했다.

펠로시가 대만을 떠난 다음 날인 4일부터 중국군은 대규모 군사 훈련에 돌입했다. 중국 관영 언론 〈글로벌 타임스〉는 이 훈련을 두고 “대만 통일 작전 리허설”이라고 했다. 대만을 포위하고 대만의 영해 일부까지 넘나들며 진행되는 이 훈련은, 중국이 마음 먹으면 대만을 어떻게 군사적으로 봉쇄하고 최종적으로 장악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려는 무력 시위일 것이다.

중국도 자국의 제국주의적 목표를 위해 대만을 위협하며 대만해협의 긴장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그에 발 맞춰서, 미국 역시 펠로시의 대만 방문 전후로 오키나와 미군 기지와 남중국해 인근으로 항모전단 등을 이동시켰다. 미국도 자국의 패권 유지를 위해 중국-대만 관계의 긴장을 증대시켜 왔다.

대만을 둘러싼 양측의 무력 시위와 대응은 대만해협에서 긴장을 더욱 키울 것이다.

따라서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대만 문제에서 미국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동시에, 중국 정부의 제국주의 정책인 ‘하나의 중국’ 원칙도 지지하지 말아야 한다. 즉, 미국·중국 두 제국주의와 그들의 긴장 증대 행위 모두에 반대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 모두 이번에 당장 대만해협에서 전면전을 벌이려 마음 먹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명백히 대만해협은 갈수록 위험한 바다가 되고 있다. 일본이 개입하고, 주한미군이 대만해협으로 출동할 수 있다. 한국에 미국의 지원 요청이 올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그런 일들이 벌어지면, 동아시아 전체가 전운에 휩싸일 수 있다.

펠로시의 대만 방문은 ‘화약고’인 대만해협에 기름을 붓는 일이었다. 이런 대립 격화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얻을 것이 하나도 없으며, 위기의 부담과 피해는 고스란히 양안과 주변국(한국 포함)에 사는 대중들의 몫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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